좌담

전통춤, 현장과 진단 1
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전통춤계
  • 일    시
    2022년 3월 22일(화) 오후 6시
  • 장    소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 사    회
    김영희
  • 참석자
    임수정 서정숙 김태훈





김영희(전통춤이론가, 춤비협 회원): 오늘 전통춤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경상국립대 임수정 선생님, 서울교방의 서정숙 선생님, 국립국악원 무용단 김태훈 안무자를 모셨습니다. 전통춤 현장에서 여러 문제 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관해 의견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이 좌담은 일차로 중견 무용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어서 젊은 춤꾼들의 진솔한 이야기, 그리고 연령을 올려서 여러 전문가들을 모셔서 앞으로 여러 차례 대화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오늘 좌담으로 전통춤계 과제가 해소된다기보다는 이제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작년에 관람하신 공연 중에서 인상적인 공연이 무엇이었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임수정(국립경상대학교 교수): 국립부산국악원에서 매해 ‘영남춤축제’를 여는데, ‘춤, 보고싶다’라는 부제를 붙였어요. 관객 입장에서 강하게 다가왔는데, 춤의 고장답게 영남 지역 사람들은 춤을 갈망하는 것 같아요. 좋은 공연을 보고싶다고 희망하고요. 부산국악원이 2017년 첫 개최 후 몇 년간 축제를 열면서 내용을 점차 발전시키고 내실을 기하는 듯합니다. 며칠간 춤을 테마로 여러 국면이 벌어지는데요. 앞으로도 잘 진행한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춤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년에는 국립국악원이 개원 70주년을 기념하면서 각 원의 무용단이 한 장소(국립부산국악원)에 모였고, 함께 공연을 펼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국악원 무용단이 정기발표회를 연다든지 2개 정도의 무용단이 교류한 적은 있습니다만, 본원인 국립국악원과 국립부산국악원, 국립민속국악원, 국립남도국악원 등 4개의 국악원 무용단이 한 무대에 모인 적은 없었거든요. 그리고 각각의 레퍼토리를 잘 선택했어요. 지역 대표 레퍼토리를 선정해서 벽사진경의 의미와 화합을 담아내고, 코로나 시대를 벗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펼쳤습니다. 왕조시대 때는 역병이 창궐했을 때 나라 전체가 굿을 펼침으로써 치유의 역할을 했습니다. 작년에 국립부산국악원이 기획을 해서, 코로나로 인해 지친 삶이 치유되도록 나라굿을 한 것 같다는 마음에 퍽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임수정 국립경상대학교 교수




김영희: 의미 부여를 잘 해주셨네요.
임수정: 국악원이 발행하는 『국악누리』에 그런 의미를 살려 ‘영남춤축제’ 개막식 공연에 관한 리뷰를 썼어요. 앞으로도 개별적으로 공연할 뿐 아니라 1년에 한 번 정도는 국악원 무용단들이 모여 공통된 주제로 합동해서 마음을 모아 정성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아내 공연을 펼치고, 춤으로써 사회적 의미와 기능을 충실히 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희 : 김태훈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김태훈(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자): 공감합니다. 4곳의 국악원 무용단이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고, 지역별로 색깔이 있잖아요. 이제 교류 물꼬가 트였고, 올해도 교류 공연 계획이 잡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처럼 올해는 어떤 주제로 무엇을 담아낼 것인지, 어떤 포인트로 관객과 만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악원은 공연과 학예연구 인프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통문화 관련해서 제 역할을 해줘야 할 부분이 존재합니다. 무용단들이 협동해서 각 지역의 춤을 소개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부산에서 기획하시는 분들이 그런 역할을 참 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립국악원의 일무 같은 경우에 대한제국 시기에 황제국가를 선포고 팔일무를 춘 이상, 공연에서도 팔일무로 단위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여건상 무대에서는 잘 실행되지 않고 있어요. 사실 국악원 무용단 인력구조상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거든요. 지방 구성원들도 일정 정도 궁중 정재를 연마하고 있고, 일무로 상설공연도 하고 하니까 단기간에는 부담되겠지만 이걸 쌓아가는 과정을 거쳐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4개 원이 같이 협동 작업을 하면 그 규모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봐요.




김태훈 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자




김영희: 4개 지역 무용수들이 모여서 춤춘다면 정말 볼 만할 것 같군요.
김태훈: 그렇죠. 지역별로 무용단 성격상 조금 편차가 있잖아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취업이 너무 힘든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지역 무용단에 취업한 무용수들도 개인적 능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진도 지역 같은 경우 대도시 보다는 조금 소외되어 있는데,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고요. 중앙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진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옛날에도 선상기 제도가 있어서 중앙에 인원이 부족하면 지방에서 인원을 충원해서 국가행사를 치루었죠.

임수정: 국가기관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결집시키고 더 큰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분명한 힘이 있어요. 다른 춤 단체와 유사한 활동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큰 생각을 갖고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공연을 해야 합니다.
김태훈: 국악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관이고, 그 국가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있어서 ‘영남춤축제’ 처럼 부산국악원이 지역문화 발전에 모범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잖아요. 내부 공연뿐 아니라 당연히 지역 무용인들에게 전통춤의 플랫폼을 마련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재를 예로 들면 교육현장에서 정재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유도하려면 정재 활성화 방안으로, 무용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단위의 ‘대학 정제 축제’ 같은 것을 기획할 수도 있겠죠. 그런 식으로 교류의 장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특히 국공립 단체에서는 다양한 전통춤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시민들에게 수혜를 주는 것, 그리고 거기에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김영희: 네. 서정숙 선생님은 작년에 어떤 공연이 인상적이었어요?
서정숙(서울교방 동인): 저는 많이 보진 못했는데 그중 국립무용단 ‘홀춤’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두 선생님의 말씀처럼 국공립 단체에서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국립무용단은 외부 안무자를 초청해서 창작 위주의 공연을 하지만, ‘홀춤’의 기획 의도는 전통 답습이 아니라 30~40대 무용수의 역량을 키워내고, 전통을 해석하고 자기의 색깔을 입혀서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획 의도가 좋게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공연에 앞서 학술모임을 열어서 전통춤계에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을 모시고 토론도 진행했습니다. 또 공연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몇 차례 외부에서 전통춤을 하시는 선생님을 모셔서 작품의 주제와 방향을 잡을 때 조언을 주고, 연출과 다른 개념으로 비주얼 아트 디렉터를 초청해서 6개의 작품을 통일성을 가지고 색깔을 입히기도 했고요. 전통을 홀춤으로 하다 보면 조명이나 무대 장식의 도움보다는 춤으로 보여주는 게 큽니다만, 달오름극장은 혼자 추기에는 좀 큰 무대라 춤이 좀 더 돋보일 수 있게끔 인력을 지원받은 거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도 달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작년에 했던 작품 중에서 선정된 세 작품과 내부 공모를 통해 선정한 세 작품을 올렸어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단원들에게 자기 춤을 만들어가고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습니다.




서정숙 서울교방 동인




김영희: 손인영 예술감독이 고정된 전통춤이 아닌 현대적인 감각으로 출 수 있는 전통춤 작품을 선보이고자 기획한 공연이었습니다. 김태훈 선생님은 어떠했나요?
김태훈: 공연을 하면 하나씩 구성해서 나열하는 식이 아니라 공통된 주제와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조금 더 생각해볼 문제라고 봅니다. 제가 아는 무용수도 참여했고 준비 과정을 들었는데, 디렉팅할 때 연관성이나 전체 공연이 지향하는 포인트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영희: 몇 차례 더 해봐야 알 겁니다. 어떤 레퍼토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서정숙: 진도북춤처럼 북을 보듬고 음악을 나름 바꾸고 구성과 가락을 다채롭게 만들거나, 진주검무를 기본 틀로, 팔검무가 아닌 홀춤에 이야기를 입혀 권번이든 아름다웠던 모습이든 젊은 날을 회상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스토리텔링을 집어넣은 작품도 있었어요. 어떤 작품은 도살풀이와 소고, 두 작품을 매칭하여 도살풀이의 긴 천에 소고를 매달아서 했는데 비주얼을 보여주는 작품처럼 했고 시도는 좋았으나 정리가 되지 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한량무와 크게 벗어나지 않고 오롯이 춤을 보여주면서 자기 색깔보다는 기존의 한량무를 자기의 호흡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가장 무난해 보인 경우도 있었어요. 다른 작품에서는 굿 음악에 지전을 들고 했는데, 무속적인 색깔을 더욱 입혔어고요. 보통 전통에는 스토리텔링이 많이 없는데, 나름의 자기 이야기를 담아냈던 것 같아요. 의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음악은 변화가 있었고, 그 음악에 자기 호흡과 색깔을 입혀서 공연을 준비했던 것 같아요.
좀 아쉬웠던 점은 국립무용단 특성상 전통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엔 한계가 있고, 이 친구들이 원하는 멘토나 사람들을 매칭했으면 어떨까 했어요. 무용수의 역량을 키우려면 과정이 중요한데, 무용수 각자에게 맡겨놓고 하라고 하면 사실 답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전통의 재창작, 재구성 부분에서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어요. 의도 자체는 좋았지만 고민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춤꾼들이 자기 정리를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홀춤’에 출연한 무용수들이 춤, 음악, 의상 등 여러 방면에서 자신이 원하는 멘토와 함께 고민하고 만들었으면 작업이 좀 더 풍성해졌을 거란 생각도 들었어요.

김영희: 저는 재작년에 관람했습니다. 전통을 모티브로 잡아 작품을 하는데 전반적으로 깊숙이 다각도로 알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춤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춤이 어떤 자리에 어떻게 놓여있었고, 춤 앞뒤에는 무엇이 있었으며 어떤 서사가 담겨있는지 등을 충분히 알게 된다면 뽑아낼 수 있는 게 많을 텐데, 겉으로 드러나는 춤사위나 도구만 활용하는 듯한 작품도 있었어요.

김태훈: 네, 공감합니다. 요즘에는 무대에서 추어지는 춤 중에 경기도당굿에서 온 춤이 많잖아요. 경기도당굿을 자기 시각으로 보고 음악적인 부분을 이해한다면, 윗대 선생님들이 다양한 춤들을 양식화하셨던 것처럼, 그것들과 다른 것들이 양식화해서 나올 기회가 있을 텐데 계속 전승받은 춤만 학습하고, 그 틀 안에서만 하려고 하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춤비협 회원




김영희: 이 이야기를 두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하나는 전통춤 교육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이러한 작업이 전통춤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입니다. 임수정 선생님은 학교에서 전통춤 가르치시며 어떠신가요?
임수정: 전통춤 교육이 사라졌기 때문에 예인들이 나오지 않은 거예요. 한성준 선생님, 이매방 선생님, 김수악 선생님, 박병천 선생님, 김숙자 선생님 등은 전통춤의 예인이고 우리가 범접하기 어려운 세계에 계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선생님들은 철저히 가무악 학습 속에서 혼합된, 합일의 세계에서 공부했습니다. 카오스, 무질서의 세계에서 통째로 에너지를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 교육은 그러한 가무악 합일의 총체적이고 융합된 세계에서 무한한 에너지를 받는 게 없어요. 그저 춤만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그 세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거예요. 더욱이 현재의 무용과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으로 전공이 나뉘어 있어, 총체적인 교육 속에서 음악, 소리, 춤을 배우고 무한한 세계 속에서 자기의 것을 드러낼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저는 이 점이 전통춤의 교육에 있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훈: 대학교육에 무용과가 생기면서 악과 무가 분리된 것 같습니다. 춤의 구성요소로는 크게 공간적인 것과 시간적인 것, 두 축이 있습니다. 공간적인 것은 선이나 면을 분할하는 것 등 시각적인 것인데, 오늘날 무용교육에 있어 시,공간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심화되어 있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청각적인 부분 즉, 시간적 분할에 대한 인식은 미미합니다. 전통춤 같은 경우는 춤을 추면서 기본적으로 장단 교육을 심도 있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춤은 과거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종교무용 혹은 민속에서 맥이 이어졌거나, 근대화 과정에 무대화를 위해 만들어진 춤인데, 지금 전통춤이라고 하는 무대 무용들이 선대 선생님들에 의해 무대 춤으로 양식화할 수 있던 이유는 밑에 깔린 시간적 분할에 대한 이해, 즉 전통장단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음악적인 부분의 인식 없이 새로운 전통 춤의 구조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 체계적으로 훈련이 되어 있어 몸도 잘 움직이고, 움직임의 패턴이나 시각적인 면에는 굉장히 민감합니다만, 전통춤에 관한 청각적인 부분의 이해가 부족합니다. 조흥동 선생님의 〈진쇠춤〉같은 경우 그 장단이 터벌림부터 시작해서 나아가잖아요. 낙궁, 푸살, 진쇠, 올림채 등 경기도도당굿에서는 왔다고 이야기하려면 음악적으로 더 풍부하게 거쳐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너무 간략하거나 누락된 부분이 있었거든요. 선생님은 지금도 경기도당굿 음악에 대해 고민하시고 그 부분들을 채워 나가고 계세요. 그만큼 음악이 중요한 거죠. 만약 음악 교육이 짜임새 있게 선행된다면 젊은 전통 춤꾼들도 선생님들과 다른 경우의 수로 음악과 춤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승무〉나 〈살풀이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예를 들어 살풀이가 시나위에서 온 춤이잖아요. 때문에 시나위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존의 춤 구조를 해석하거나 자신만의 다른 구조로 나아갈 수 없어요. 춤추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해석과 구조를 달리하면서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거죠.
다양성 문제가 나왔으니 말씀인데 문화재제도의 폐단 중 하나가, 어떤 양식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그 외의 것들이 다양하게 분화하는 것이 막히게 되는 거죠. 또 다른 예로 〈삼고무〉, 〈오고무〉 역시 모두가 똑같은 패턴으로 장단을 치는 게 아니라 다른 가락을 가져다 쓸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기존의 것들이 짜임새나 음악적 밀도를 탄탄하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수준에 올라서기가 어렵겠지만, 요즘처럼 기존의 작품양식들이 여러 제약들에 걸려서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장단을 재구성하면 된다는 거죠. 어쨌든 춤추는 사람에게 시간의 축인 장단 개념에 대한 이해는 정말 중요한데, 너무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교육 역시 시간적인 축인 음악교육에 대한 배려가 더 있어야 하고, 교육을 통해 전통 리듬을 통섭할 수 있다면 전통춤에서도 기존의 양식과 다른 경우의 수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임수정: 저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장단이라 생각해요. 각각의 민속춤의 내부 체계가 다 다르거든요. 자기 고유의 리듬을 얹혀서 고유한 민속춤이 형성되잖아요. 그러니까 장단에 대한 이해가 없고 그 장단이 몸으로 익혀지지 않으면 우리의 몸짓이 나올 수가 없어요. 제가 처음에 박병천 선생님을 찾아가서 춤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네 눈에는 이게 춤으로 보이더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은, 장단과 음률이 먼저 몸으로 익혀지고 겉으로 드러나며 표현돼서 춤이 된다는 것이죠. 춤추는 사람이 내면에서 장단과 음률의 흐름없이 그저 춤사위로만 보여주면 안 된다는 말이지요.

김영희: 전통춤 공연을 보면, 점점 재미가 없어져요. 제가 그나마 강조하는 바는 본인의 새로운 정서와 해석을 넣어서 했으면 좋겠다고 것인데, 전통춤꾼들이 고정관념에 매어 있는 것 같아요.
임수정: 마치 AI가 추는 것 같아요. 기운과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아요. 춤의 기운과 생동감을 아는 사람이 춤을 추면 순간순간 표정이 달라집니다. 전통을 바탕으로 창조하는 건 다른 이야기죠. 다른 방식의 메소드가 들어와야겠지만, 전통춤을 살리기 위해선 저는 장단 학습을 통해 기운을 일으키고 발전시키고 맺고 푸는 원리를 학습해야 한다고 봐요.

김영희: 조흥동 선생님은 음악을 알고 자기 식으로 풀어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태훈: 반대하시지 않아요. 춤출 때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보통 추임새를 넣어주시는 스타일입니다. 풀어놔 주시는 거지요. 사실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춤추는 사람의 청각적, 공간적인 사고력에 달려 있는 거죠. 어쨌든 인정을 하십니다. 선생님들의 춤은 원작자로서 자기 구성을 가지고 계신 것이고, 그것을 학습하고 참고하여 후대에 춤추는 사람들이 음악적인 부분을 더 쪼갤 수 있다면, 더 세밀하게 분할해가는 거죠. 선생님들 세대보다 지금 세대는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임수정: 음악뿐만 아니라 춤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죠. 인문학적인 배경을 갖추어야 합니다. 역사, 문화, 철학을 알고 춤을 올곧게 이해하고, 이를 충분히 자신의 춤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해요.

김영희: ‘홀춤’과 같이 새로운 전통춤을 만드는 작업이 전통춤계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나눠볼까요.
임수정: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시도는 좋은 것 같아요. 선생님께 배운 것을 토대로 자기가 해석하는 방식은 좋습니다만, 조금 더 전통의 방식대로 가면 이상적인 듯합니다.

서정숙: 저 또한 시도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재에만 얽매여 있을 순 없어요. 단순하게 남이 하지 않았던 것을 하는 게 아니고요. 우리나라 전통 음악이 가진 것들이 풍성하고 대단합니다. 저 역시 가무악이 함께 가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들은 권번에서 배울 때 소리를 먼저하고 장단과 악기를 배우고 그것이 갖춰졌을 때 절로 나오는 게 춤이었다고 해요. 한성준 선생님 같은 경우도 도당굿 장단을 가지고 오셔서 〈태평무〉 춤사위를 정리하셨고, 이매방 선생님, 최현 선생님도 장단을 다 아시고 즉흥무를 하시죠.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춤에서 즉흥성이 빠져버렸어요. 그리고 배웠던 순서 그대로, 선생님의 표정 하나까지 답습하죠. 저는 결국 춤꾼이 장단을 알면, 선생님은 하나에서 치고 올라갔지만 누군가는 하나에서 먹고 둘에서 잉어거리로 갈 수 있어요. 그래서 원본은 있지만, 다른 식으로 자기 장단을 타고 가면 분명히 춤의 색깔이 다를 거라 생각해요. 그만큼 음악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양 음악처럼 배경으로 틀어놓고 춤추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장단을 정확히 알아야 춤길을 어떻게 갈지 알아요. 그런데 그런 것이 없어졌어요. ‘홀춤’과 같은 공연을 할 때 음악에 대한 고민이나 춤에 대한 배경, 어떤 시대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느 장소에서 춤을 췄는지를 알게 되면 춤을 창작하고 재구성할 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고, 다른 춤의 결이 나올 것 같아요. 전통은 그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본다’는 문제로 끝날 게 아니에요.

김영희: 이런 작업들을 전통춤계 어른들이 어쩌면 ‘내 판을 흔든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앞서 임수정, 김태훈 선생님의 전통춤 연행의 방향에 대한 말씀과 ‘홀춤’은 기획 방향이 약간 다른데요.
임수정: 실험 작업을 할 수 있는 세대가 있을 거예요. 그런 세대에게는 충분히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상상력이 굉장히 뛰어난 세대잖아요. 기능적으로 미숙하지만, 자기 아이디어와 전통의 소재와 재료를 갖고 버무려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야 해요. 사실 50대 이하면 전통춤을 춘다고 얘기할 수 없어요. 50대 정도 되어야 춤이 푹 삭여지면서 전통의 맛이 나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한테 50대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수 없어요. 너무 지치고 많은 선배들 틈에서 언제 빛을 볼지 모르므로 포기한단 말이죠. 40대가 제일 힘든 상황인듯 합니다. 춤을 배우긴 했는데 풀어낼 장이 없고, 전통춤계에선 아직 어리다고 인정을 해주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20~30대가 치고 올라오고요. 그러니까 그들을 위한 실험의 판, 자신을 드러내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판이 필요한 거지요.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꾸준히 전통을 하겠다는 건데, 이 친구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재 보유자 선생님들은 그동안 혜택을 받으셨으니, 국가무형문화재나 지방무형문화재 단체에서 이수자들이 전통춤으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국립무형유산원 역시 이수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그들이 전통춤을 이어갈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김영희: 시대는 10년 단위, 5년 단위로 빨리 변하는데, 1980,90년대 선생님들이 했던 교육방식이나 전통춤의 보급 내지는 유통 방식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임수정: 네. 그런데 전 담금질 하는 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전통은 그 기간을 거쳐서 새로운 차원으로 형질 변화를 시키잖아요. 그 기간을 인내하고 다질수 있도록 동기 부여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시간을 견뎠을 때 어떤 세계가 열린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게 빠져 있어요.

김태훈: 어쨌든 간에 전통춤도 공연예술의 시장에 있잖아요. 교육은 양적으로는 사실 우리 시장규모에 비해 너무 팽창해있어요. 예를 들어 전통춤을 전공해서 배출되는 인원은 많고, 전통춤꾼으로서 경쟁력을 갖추는 역량을 숙성시키는 기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그들이 무용계 내에 존재해야 하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전통춤으로 경제 활동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배출된 인력 크기와 시장규모가 맞지 않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전에 전통춤 같은 경우에는 문화재제도로 선생님들께서는 전승활동이나 생활에 대한 보호를 받았어요. 그러나 이수자들이 한 종목에도 수백 명 씩 되는 지금 상황에서 그 많은 분들을 제도의 틀 안에서 생활을 보호하거나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에요. 전통춤 공연 무대나 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죠. 그나마 여건이 나은 국립국악원에서 같은 곳에서는 창작 작업을 많이 하지 않고 정재나 민속무용을 공연을 많이 하는 정도지요. 작년에 서울시무용단 ‘감괘’, 경기도무용단 ‘율’, 인천시립무용단 ‘새봄 새춤’ 등을 봤는데 공연 패턴들이 우리 전통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힘든 부분이 있어요. 물론 기관마다의 정체성이나 성격이 다 다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통춤꾼들이 존립하려면 버거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기관에서 해줘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방향성이 너무 창작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무용단에서 예전에는 레퍼토리도 많이 하고 우리 춤사위로 무용극을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뉘앙스입니다. 한국 춤 관련 기관들이 올리는 공연을 보면, 전통춤 공연을 볼 때처럼 추임새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그런 부분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나마 작년 인천시립무용단에서 ‘새봄 새춤’을 할 때 장구춤이라든가 전통을 재해석한 창작이 있었어요. 저는 그렇게 장구춤을 추더라도 기관마다 색깔을 달리해서 전통기법으로 창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기획이 좋았던 이유는 보통 그 지역 관객분들은 그 지역 단체들이 공연하는 패턴밖에 보지 못하는데, 시립무용단들이 모여서 교류 공연을 했어요. 다양한 볼거리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거죠. 저는 이런 공연기획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임수정: 국립국악원을 제외하고 지역 무용단들은 대중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전통의 어법을 포기한 것 같아요. 최근에 경기도무용단에서 ‘경합’이라는 작품을 공연했는데 전통춤의 학습과 과정을 주제로 내용을 전개하면서 춤사위에서는 전통적인 호흡과 장단에서 느껴질 생동한 기운들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서정숙: 외부에서 연출로 참여하는 분들은 한국춤의 맥을 모르시는 것 같아요. 국립무용단 ‘향연’이 성공한 레퍼토리로 꼽히는데, 비주얼적으로 세련되고 발전된 모습일 수 있지만 한국춤의 신명과 기운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대중화도 중요하지만 대중화라는 것을 등에 업고서는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영희: 국립국악원에서 ‘수요춤전’을 꽤 오래 했고, 이 기획이 전통춤 감상을 풍성하게 했다고 봅니다.
김태훈: 네. 국립국악원의 역할이 전통춤계에서 나름 큰 것 같습니다. 아까 언급된 무용단들과 달리 국립국악원 무용단은 전통적인 특징을 아직도 많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립무용단에서 하는 모던한 작품이 매진되었다고 해도, 관객들이 그 공연을 관람하면서 추임새를 넣을 수는 없어요. 집중해서 봐야 하고, 무슨 의미인지 심각하게 찾아봐야 하죠. 물론 이러한 춤도 무대예술로서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영남춤축제’ ‘수요춤전’, ‘명무전’과 같은 전통춤 관련 공연기획도 유지되고 질적으로도 더 성장해 한다고 생각해요. 전통춤과 관련한 보존회와 같은 기관들이 참여할 수 있는 페스티벌 같은 형식도 필요할 것 같고요. 요즈음 직업 무용단에서 여러 상황 때문에 큰 공연을 하기 어렵고, 사실 갈라 식으로 자꾸만 분할해서 넘어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기획보단 ‘수요춤전’ 처럼 전통춤을 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하고, 그 기획에 무용단이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아요. ‘수요춤전’은 무용단에게도 참여 기회를 주고 무용단 레퍼토리 중에 잘 볼 수 없었던 종목을 단원들을 대상으로 추출해서 관객분들이 보기 힘들었던 레퍼터리를 발굴해서 공연을 하기도 했거든요.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강습회에서 만난 일반인 분들에게 춤 공연관람에 대해 여쭤보면, 창작인지 전통인지 먼저 물어보시고, 전통 공연이면 보시겠다고 합니다. 물론 전통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용단에서 하는 창작 공연들이 너무 관념적인 것에 치우치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 어려워요. 이러한 공연을 통해 예술적 경험을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면 관객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춤 공연은 같이 함께 신나게 들뜰 수 있고 즐길 요소가 있어요. 그러려면 전통적인 맥박이 들어간 장단이라든가 거기에 일치된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점들이 자꾸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예를 들어 예전에 국립무용단에서 오고무를 규모 있게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은 관객들이 열광하시고 정말 가슴이 웅장해 정도로 큰 울림을 받았었는데, 요즘은 그런 규모 있는 전통 공연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 같아요. 무용단에서 지도하는 분들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희: 지난 늦가을에 김은희 선생이 오고무 가락을 새롭게 짜서 공연하셨죠.
김태훈: 그런 식의 시도가 여기저기서 나와야 겠지요. 전통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한국적인 것을 잃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확장해야만 문화가 다양해질 수 있는데, 다양성이 없어지면 퇴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영희: 이러한 것에 대해 원로 선생님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김태훈: 저는 조흥동 선생님과 이야기 할 기회가 생기면, 선생님은 언제부터 선생님만의 춤을 만들어 가셨나 여쭤 봅니다. 그리고 자극 받죠. 선생님은 그 많은 스승님들의 춤을 똑같이 카피해서 추시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재구성해서 양식을 만들어 오신걸 아니까요. 저희 선생님처럼 그렇게 재구성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살아남은 레퍼토리는 그리 많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시도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성준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장단을 익히려고 젊은 시절에 전국을 누비셨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같은 명무를 만드실 수 있었던 거고, 그것들도 원래 있던 무대 장르가 아니잖아요. 스스로 무대에 맞게 전통적인 모티브로 무대예술 양식을 만들어 나가신거죠. 그분들은 음악적 이해와 더불어 장단구조를 꿰고 계시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어내실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시대는 마음만 먹으면 정재, 민속춤, 종교무용 등 다양한 춤을 배울 수 있도록 열려 있어요. 그렇기에 충분히 학습을 하면 학습한 것을 토대로 충분히 자기 양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흥동 선생님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춤을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만 하는게 어떻게 진정한 예술가냐. 자기 춤 양식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선생님 춤은 선생님 춤대로 추고, 학습하고 어느 정도 연배가 되면 자기 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요.

임수정: 예전에 LG아트센터에서 명인들이 오르는 무대를 기획한 기획자가 전통춤은 이음(계승)과 지음(창조)의 시대가 날실과 씨실을 엮어서 지금의 전통춤이 형성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 전통춤의 역사는 이음과 지음의 역사라 봅니다. 선생님들이 춤을 만들고 정착시켜서 문화유산으로 남겨주었듯이 우리 세대에서도 춤의 유산을 만들어 후대에 물려주어야 합니다.

김태훈: 전통춤이 과거로부터 왔다고 하지만, 시간은 과거·현재·미래 이렇게 분절되어 있는 게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패턴, 자기 스타일에 맞게 양식화해 나간다면 그게 당장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겠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는 변해간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지금 우리가 전통춤이라고 하는 양식들도 그런 과정으로 만들어 졌을 수밖에 없겠지요.

김영희: 제 생각과 선생님들 생각이 같아서 반갑습니다. 혹시 옛날에 했던 것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하실까 봐 우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네요.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셔서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 같아요.
김태훈: 판소리는 더늠이 있잖아요. 그래서 자기 스타일이 없으면 제대로 인정받지 못 하죠.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반대로 자기 스타일을 만들려 하면 불경하게 바라봅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문화재제도 때문인 것 같아요.

김영희: 그럼 문화재제도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최근 이수 심사가 굉장히 엄격해졌다고 해요.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이수자를 많이 뽑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 한동안 이수자 선정을 하지 않아서 많이 밀려있어요. 이러한 점은 또 전통춤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서정숙: 저는 심사를 더 철저히 강화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이수자들이 마스터를 하고 이들이 나가서 제대로 교육할 수 있어요. 옛날과 다르게 시간, 출석률, 성실도를 보고 음악, 장단도 심사하지만 아직은 형식적인 것 같아요. 더 강화해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자기 업으로 삼고 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전에는 너무 느슨했어요.

김영희: 그전에는 보유자한테 맡겼으니까 그분 재량이 있었죠.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건 잘된 일이에요.
임수정: 선생님 말씀처럼 강화해야 해요. 이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갈 것인지 선별해야 하는데, 한동안 너무 쉽게 이수를 시켜 이수증이 운전면허증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잖아요.

서정숙: 실기 위주로 가다가 이제 장단을 결합해서 가는 식으로 되었는데, 거기에 이론적인 공부도 같이 가야 합니다. 인터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춤이 가진 역사성과 인문학적 배경까지 습득해야 해요. 대학, 대학원 과정에서 자기 전공을 공부하듯이 그런 과정을 철저하게 거쳐야 합니다.

김영희: 국가문화재와 시도문화재는 약간의 차별이 있잖아요. 요즘은 차별을 줄이는 경향을 보이지만 어떤 생각들이신지 궁금합니다.
김태훈: 양 제도간 편차를 줄이려면 지정하는 단계에서부터 훨씬 더 엄격해야 하는 거죠. 사후 관리도 마찬가집니다. 국가무형문화재보다 지자체에서 지정하는 것이 진입 장벽이 낮아요. 그래서 철저하게 검증이 잘 되지 않는 것 같고, 사적인 영역에서 사유화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수자로 인정되고 나면, 약간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관리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임수정: 관리 체제가 끊임없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경상남도는 경상남도 도청이 문화재를 관리합니다. 무형문화재를 관리감독하는 기구가 각 보유단체나 보유자가 제대로 전수교육이나 활동 등을 하는지 감독을 하고, 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과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태훈: 문화재제도의 역효과는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됨으로써 다른 경우의 수나 다양성들을 본의 아니게 모두 집어삼키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문화재 보유자가 타계하고 새로 지정할 때, 거기서 밀리면 다 사라지죠. 그 폐단이 너무 커서 섣불리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문화재제도 자체가 방향성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전통춤종목에서 새로운 양식이 만들어지는 것을 제한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새로 만들어져서 양식화된 춤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반복해서 내려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틈에서 양식화되어서 살아남은 것들이 어떻게 새로이 문화재로 편입되어질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화의 확장성 측면에서 다양하지 않은 문화는 생명력이 없어요. 이런 점도 문화재청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문화재제도 전반을 어떻게 끌고 갈 건지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전승교육사의 역할이 예능보유자와 크게다를 바 없어요. 전승교육사 역시 교육과 이수시킬 수 있는 자격이 있는데, 문화재청에서 이름만 달리 주는 거잖아요. 일괄적이지 못한 행정의 일면이라 생각됩니다.







김영희: 이수자 관리를 어떤 방법으로 엄격하게 관리했으면 좋겠는지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싶네요.
김태훈: 이수자 관리 문제가 아니라, 지금 문화재는 개인한테 주지만 어쨌든 보존회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법인에 줘서 운영하게 하는데, 예전에는 춤을 이수하기 위해선 선생님들께 가서 작품비를 따로 냈어야 했어요. 우선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면 진입 장벽이 낮아지겠죠. 하지만 검증은 엄격하게 해야 해요. 그래야 이수자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억울하지 않겠지요. 내가 시간을 들여서 공부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시도해보고 되지 않으면 다시 생각해 봐야겠지요. 그런데 비용이 커지면 좀 복잡해지죠. 예를 들어 어떤 이는 이수비를 얼마를 드렸는데 선생님께서 돌아가셔서 이제 어떡하나 라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리잖아요. 그 이후의 사후 연계교육도 어렵고요. 그런 부분들이 사유화로 인해 생기는 문제라 생각해요.

김영희: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면서 사유화는 약간 벗어났죠. 그런데 문화재청에서 종목의 다양성을 키우느냐, 지금 있는 것에 한정하느냐, 개인한테 주지 말고 종목만 지정하느냐 등 논란이 있었어요. 보유자 지정을 하지 않고 종목 지정만 하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죠.
김태훈: 종목 지정을 한다 해도 그것을 이수하기 위해선 사적인 교육 영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예능보유자 선생님을 통해서 배우지 않고 혼자 인터넷을 보고 배우고 연습해서 이수 시험을 보러 갈 수 없으니까요. 교육이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서정숙: 전통의 박제화, 개인의 권력화 등 문화재에 맹점이 많고, 한국춤이 가진 전통의 정신을 훼손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차라리 문화재제도를 폐지하고 보존 단체를 활성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임수정: 단체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단체 지정종목들도 운영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회원들간의 불화가 심한 듯합니다.

서정숙: 문화재제도를 다 없애고 개인한테 춤을 넘기고 단체에 힘을 실어주는 거죠. 시장을 훨씬 넓혀서 기회를 많이 주는 거예요. 다만 단체를 만드는 조건이 법인화시키는 것 이상으로 철저하게 관리해야겠죠. 물론 문제가 많겠지만 답답한 마음에 이런 생각도 드네요.

김태훈: 문화재제도는 전통문화가 활성화되지 않고 전승자들의 폭이 좁은 시대에 이것을 존립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런데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서 제도 안에 있는 분들이 권력화, 서열화하고 무용계 전체의 방향성이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쏠리게 되어서 많은 부분의 다양성이 제한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리고 현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양식들의 생존 장벽을 높게 만들었기 때문에 현대에도 유효한 제도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수정: 1세대와 2세대는 다릅니다. 1세대는 전통을 하대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려고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보유자로 지정된 분들입니다. 그러나 2세대는 다른 개념입니다. 그분들은 지킨 게 아니라 이어받은 거잖아요. 몇 년 전 새롭게 지정된 선생님들이 많으신데, 그분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전통춤 전체를 길게 보시면서 전통춤을 계승하려는 후학들을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실수 있을지 의견을 모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자라나는 후학들이 답답해하고 전통춤의 맥이 끊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전통춤계의 어른으로서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기획 공연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자신의 전통춤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서로 연대가 되어 전통춤계의 문제점을 함께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 같아요.

김영희: 그래야 전통춤계 전체가 커지겠죠.
서정숙: 춤은 개인적인 유산이 아니잖아요. 그분들은 후세에게 물려줘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사유화되어 있어요. 이매방 선생님이나 윗 선생님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예술가라기보단 딴따라라고 손가락질 받으면서 문화유산을 지키셨어요. 그래서 정부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신 것이고요. 그래서 2세대들이 책임감을 더욱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희: 좋은 의견들입니다. 그런데 문화재제도가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국제적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때문에 각 국가들이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 국내 문화재제도가 오히려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제도의 영향을 받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문제점은 문화재 위원, 전문위원의 전문성입니다. 전문위원의 경우 희망자가 자신을 추천하고 있어요. 물론 추천자를 대상으로 심사가 있겠지만, 충분히 검증하고 있는지 알수 없어요. 몇 년 전에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운 분들이 선임된 경우가 있었어요. 이는 문화재청이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봅니다. 학문적으로 인정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위원, 전문위원을 선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 부분을 현재 문화재청이 아주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원을 두려워하면 안되고 민원이 생기기 전에 확고한 방침을 세워야지요. 사후관리나 감시 체계, 문화재 선정 등의 정잭 수립을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역할이지요.
오늘 춤 교육, 전통춤의 창의성 그리고 국공립 단체나 기관에서 해야 할 역할, 문화재제도까지 굉장히 중요한 지적들이 나왔어요. 마지막으로 제안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서정숙: 어릴 때는 외국춤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습니다만, 대학에 가서 우리 춤이 가진 걸 다시 보게 되면서 우리 춤을 추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좋은 것을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이 공정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서양을 나누기 보단, 일단 나를 알고 우리나라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땅에서 생성되고 발전된 음악이나 춤을 어릴 때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온 국민이 굿거리장단을 치고 춤 한 가닥이라도 출 수 있는 나라를 희망해 봅니다.

임수정: 제자가 학원을 하고 있는데, 강강술래를 가르쳐 주면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흥미 있어 하는데 정작 아이들 교과서에는 강강술래가 없다는 거예요. 음악교과에서 노래만 배우는 거죠. 학교 교과서를 보면 전통춤은 거의 사라지고 서양춤만 있어요. 그래서 공교육에 무용을 포함해서 다양한 무용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김태훈: 어린이 교육도 중요하고요, 요즘 노령화 사회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저는 전통춤을 추는 젊은 친구들이 여기에서 나름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무용학이 다른 분야에 비해 학문적 성과가 매우 큰 것은 아니고, 그것들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커리큘럼이나 시장 여건상 많은 학생들을 직업적인 무대 현장으로 보낼 수도 없고요. 어쨌든 사회는 변하고 사람들의 여가라든가 은퇴하고 남는 시간을 보낼 때, 자기 존재의미를 찾기 위한 여가 활동으로 전통춤이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시장이 있고, 젊은 친구들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고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전통춤을 가지고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김영희: 오늘 전통춤, 전통춤계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나누었습니다. 전통춤을 주제로 한 좌담이나 논의의 장이 별로 없어서 좌담 전에 세 분 선생님들이 잘 이야기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 하셨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역시 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경험들을 토대로 말씀해주시니 여러 의견들과 문제점, 개선책들이 나왔어요. 또 오늘 좌담이 이후에 이어질 좌담의 마중물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전통춤 현장에서 또 뵙겠습니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를 책임편집하고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의 역사성과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 ‘검무전(劍舞展)’을 5년째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 ​​

2022. 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