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문래동 철공장 지역 창착촌과 예술공장을 말한다
지역 대안공간, 열린 소통으로 뿌리내려야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던 시대에 산업사회로부터 정보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도시도 재편성되고 있다. 도시가 노후화함에 따라 재개발되는 한편으로 산업 개편에 따라 도시가 재구축되는 면도 있다. 20세기말에 도시의 재구축 단계에서 문화예술을 연계지어 도시 활성화를 꾀하는 것은 전반적인 관행이 되어 왔으며, 국내에서는 21세기초의 현상으로 대두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은 국내 최대 철구조물 제작 단지였으나 이제는 많은 공장들이 나가면서 모습을 바꾸고 있다. 주민자치센터뿐 아니라 예술 대안공간은 예술이 기존의 제작 방식을 넘어서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지며 나아가 춤과 예술이 일반인과 접속하는 새 공간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이른바 문래동 철공장으로 통칭되는 창작촌은 이전의 ‘홍대앞’과 더불어 서울 시내 대안공간의 효시로 생각된다. 문래창작촌과 예술공장의 안팎을 들여다 봄으로써 춤과 대안공간의 앞날을 짚어본다. 이번 호 춤웹진은 이를 위해 본 인터뷰 및 심층기획과 학술연구 란에도 문래동 창작촌을 주제로 기사를 싣는다. - 편집자 -

 
사회 진행: 김채현 본 협회 공동대표 / 무용원 교수 
한창호 온앤오프 공동대표 
김은정 온앤오프 공동대표 
서명구 문래예술공장 매니저 
문재선 퍼포먼스그룹 소로 대표 
김희현 춤치유연구가(재중) 
박은주 프리랜서 
일시ㆍ장소: 2011. 8. 16. 문래예술공장 세미나실




사회: 한국춤비평가협회 발간 춤웹진은 이번 주제로서 문래동 철공장 일대 공간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대안공간은 예술 창작에서 베이스 캠프 같은 구실을 하는 곳이므로 그 중요성은 다들 인식하는 바이다. 7, 8년 전에 문래동 철공장 지역에서 둥지를 트는 작업을 대안공간의 효시로 봐야 할지 좀 더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겠는데, 아무튼 그때 문래동 철공장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사람들의 발상은 이즈음 들어 더 가치 있어 보인다. 그후 철공장 지역에서도 정기적 축제나 행사가 열리고, 내가 알기로는 100여 작가 혹은 단체가 여기 입주(?)해 있고, 드러나지 않은 작품 활동도 꾸준히 진행되어 온 것으로 안다. 최근 몇해 사회자는 개인적으로 철공장 지역 공연 및 퍼포먼스 행사를 드문드문 참관한 바 있다.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이런 점에 착안하여 서울 시내 여러 곳에 대안공간을 조성하고 있고 앞으로도 대안공간 활동이 증가하고 당연히 그 비중도 커지리라 예상된다. 문래동 철공장 창작촌 공간에서 활동하는 여러분의 소감을 모아서 들어보며 대안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전망하려고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였다. 지역과 공간의 성격상 오늘 집단 인터뷰는 춤 전문인들에 국한하지 않고 이곳에서 둥지를 트는 창작자들에게서 가능하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우선 자기 소개부터 부탁드린다.

한창호: 춤 장르를 굳이 분류하자면 현대무용을 하면서 김은정씨와 춤단체 ‘온앤오프’를 2001년에 창단하였다. 이후 매달 ‘토요춤판’도 운영하고 또 2004, 5년에는 작은 페스티벌로서 ‘돌출춤판’ 행사를 대학로에서 열며 건강한 춤꾼들과 교류를 자주 가졌고 스튜디오를 서울 이문동에 갖고 있었다. 2005년 문래동 철공장으로 이주하여 더 적극 교류하고 있다. 2007년부터 해마다 10월에 문래(혹은 물래)아트페스티벌을 개최하였고, 올해는 9월 30일 전야제부터 10월 15일까지 철공장 옥내외 지역과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에서 춤, 다매체, 거리 예술 등의 행사가 올려질 것이다. 

김은정: 미국의 CAL Arts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1년 체류하며 공부하다가 90년대 말에 귀국하였다. 이후 한창호씨와 온앤오프를 같이 운영해 온 것으로 제 소개를 대신하겠다. 

박은주: 프리랜서 춤 활동을 하고 있다. 창작춤 단체 바다희다를 갖고 있다. 이전엔 연극을 배우고 연극 활동을 배우 집단 ‘숨’에서 하였다. 신체 이미지 극단이다. 7년전에 연극 배우를 위한 살풀이 춤 워크숍에서 춤을 춰야 하겠다는 강한 욕구가 밀려와서 춤 창작에 전념하기로 결심하였다. 창작을 하다보니 특히 움직임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되고 지금도 그것을 작업 초점으로 맞추고 있다. 지금 철공장 지역에 스튜디오가 있고, 그동안 독무 2편을 발표하였다. 2007년 <13홍>을 춤공장 지하에서. 2010년 <어스 라이징(Earth Rising)>을 문래예술공장에서 발표하였고, 올해에는 문래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다. 

문재선: 2004년 퍼포먼스 그룹 ‘소로(Soro)’를 창단하여 대표로 있다. 2005년부터 철공장에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지난 달에는 문래예술공장에서 70분 길이 퍼포먼스를 춤, 비디오, 신체 움직임이 접목된 양식으로 발표하였다. 이곳에서 스튜디오 활동과 작가 교류를 하고 타 예술 공간과 접촉하고 있다. 소로는 이번 10월 중순에 판(PAN) 아시아 퍼포먼스 네트워크 행사를 며칠간 열 예정이다. 판 아시아 행사는 2007년부터 해마다 홍대앞, 대학로, 지방, 문래 철공장 지역을 번갈아 가며 열어 왔고, 올해는 문래 철공장 지역과 전남 광주에서 열린다. 여기로 오기 전 90년대 전반기부터 홍대앞에서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지금은 문래동 철공장이 우리 활동에서 주축을 이룬다. 처음에는 일상과 거리를 발판으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점차 활동이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문래동스럽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는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서명구: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사업단 문래예술공장 매니저로 있다. 서울 시내 창작 공간은 9곳 있고, 이는 둘로 나뉜다. 창작공간사업단의 제2팀에는 금천, 서교, 신당, 문래 지역 창작공간이 소속되어 있다. 문래예술공장은 2010년 1월에 개관하였고, 이후 계속 매니저로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공연, 축제, 지역 공간의 문화 행사와 해외 진출 공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였다. 주로 비상업적 공연들이었다.

사회: 문래동 지역이 세칭 철공장(지역)으로 불리고 대개 그런 식으로 이미지화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근래에는 문래창작촌이라는 새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편의상 문래창작촌이라 부르기로 하고, 이 공간과 문래예술공장이 이 지역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앞날을 전망하자면, 과거에 대해 얼마간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문래창작촌의 개척자 역할을 한 문재선, 그리고 온앤오프가 그동안 공간 형성 내력을 잠깐이나마 짚어주었으면 한다. 

문재선: 온앤오프와 비슷한 시기에 철공장 지역에 입주(?)하였다. 2003년 무렵 시각예술가들이 몇 사람 작업하고 있었다. 홍대앞에서 활동하던 입장에서 여기를 와보니 홍대앞에서 멀지 않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으나, 그래도 서울 같다는 다소 냉소적 느낌에다가 지역의 노동자들에게서 괜히 주눅도 들곤 했었다. 그리고 을씨년스럽다는 느낌도 들었다.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적었지만, 잘 해 봐야지 하는 기대감은 있었다. 또 처음에는 왜 이런 공간을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놀라움도 있었다. 여기 공장들은 1층은 용접, 철조각, 철구조물을 하는 철공장 현장, 2층은 작업이나 사무 공간인데, 당시에 2층에 더러 빈 공간들이 나 있었다. 그때 잘은 몰라도 작가가 아마 10사람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새로운 공간에서 음침한 느낌도 교차하고 어떤 기대감도 작용한 그런 공간이었다. 

한창호: 동대문구 이문동 시장골목에 자리잡은 작업 스튜디오가 여의치 않아 다른 지역에서공간을 알아보았다. 마침 당시에 뉴욕 브루클린의 공장 지대에서 열린 덤보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한국에서도 이렇게 해봐야지 하고 꿈을 꾸었다. 시각예술하는 최영호 작가와 문재선씨에게서 철공장 정보를 얻어 이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한 것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주인을 잘 만나선지 지금도 비슷한 부담 수준이다. 

김은정: 2005년 당시에 문재선씨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니 정보를 주었고, 우리가 이곳에 들어오자 시각예술하는 여러 사람들도 이 지역에서 합류하는 흐름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된다. 

문재선: 처음 이주하니 전기도 끊겨 있었고, 수리하는 데만 두어 달 걸렸다. 페인트칠도 여러 차례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작가들 사이에 우정도 싹텄다고 말하고 싶다.

김희현: 문재선 작가와 그전부터 친했던 사이여서, 여기 도와주려고 처음 왔을 때 한 마디로 안쓰러웠다. 예술을 하다 보니 이런 곳에까지 밀려나는구나 하는 속마음도 들었다. 사실 이 근처에 영등포역도 있으므로 서울 한복판인데도, 수퍼도 마치 시골 오지에 있는 그런 곳 같았다. 텅빈 2, 3층 계단은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수북하였고, 화장실은 더 말할 것도 아니었다. 내 마음으로는 엄청난 실망감부터 일어났다. 그런데 6개월 후에 이곳에 다시 와보니 많이 정돈되었고, 손으로 테이블도 다듬어 들여 놓고 형태도 갖춰져서 거기서 희망을 보고 다시 오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말하자면 밀려났던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대안을 발견한 그런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창호: 당시 작업 공간은 너댓 군데 정도 있었고, 밤에는 가로등도 없어 우범지대 같은 느낌에다 밤길을 거닐려면 뒷목이 당기는 그런 기분이 들곤 했다. 지금은 보안등도 들어서고 환경이 호전되었고, 또 우리 작업실 주변 노동자들과도 정이 들어서 안부를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아직도 일부 노동자들의 반응은 냉소적인 것 같고, 주민들도 우리 행사에 대해 호불호 반응이 아직 절반씩이다. 공연 소음이 아이들 학습에 방해된다고 믿는 아파트 주민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사회: 문래예술공장 홈페이지에 이곳 창작촌 스튜디오 지도가 게재되어 있다. 그걸 중심으로 작가 분포라든지 다시 이야기해보자. 

서명구: 문래동 창작촌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170여명이라 하는데, 추산키로는 200명 남짓으로 보인다. 여기서의 활동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작가도 있는 것 같다. 숫자로 봐선 시각예술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공연예술 활동은 인원수가 많으므로, 대개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이 반반씩인 것 같다. 시각예술은 평면, 입체, 미디어, 영상,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을 포괄하고 있고, 다원예술 활동이 전반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을 보인다. 도시 내의 문화 배치 등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있다. 

문재선: 어느 작가는 학생들의 교육과도 연계하거나 일상 공간과 연결해서 활동하기도 한다. 

한창호: 지금 창작촌에는 공연예술 작업실이 10곳 정도 있다. 이곳을 거점으로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적지 않다고 봐야 한다. 

서명구: 이곳을 베이스 캠프 삼아서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다. 

김은정: ‘경계없는 예술 축제’가 거리 행사 중심으로 구청과 손잡아 진행되었고, 올해는 가을에 열린다. 문래창작촌에서 지난해까지 토요춤판이 열렸고 해마다 PAN 아시아 그리고 문래아트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서명구: 서울시창작공간은 소단위의 비상업적 창작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지원이 기본이며, 전부 공모를 통해 진행된다. 문래예술공장 사업은 크게 보아 창작 및 제작에 필요한 공간 지원이 그 하나고 잠재력 있는 프로젝트 개발 지원이 그 하나이다. 이와 아울러 지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과 주민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춘 활동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존의 창작공간은 주로 시각예술 분야에 대해 쓰였고 또 스튜디오형 레지던시 개념 위주였다. 다시 말해 개인 스튜디오와 입주 작가를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비해 문래예술공장은 레지던시 개념이 없거나 아주 약하다. 여기서는 주로 창작에 필요한 기능적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장기 체재 작가 개인에 대해서보다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보통 1,2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대관한다. 대관하는 공간은 스튜디오, 박스시어터, 녹음실, 편집실, 호스텔인데, 비용은 아주 저렴하다고 생각된다. 대관비는 약간의 사용료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해외 작가를 초청하는 경우 체재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아직 2년도 채 안되지만, 그간의 성과를 어떻게 자평하는가? 소감을 곁들여 소개한다면….

서명구: 지금 올해 대관이 모두 예약되었을 정도로 수요가 많아서 인기 공간이 된 것 같다. 상업성 행사를 배제함에도 불구하고 올해 예약이 완료되었다. 즉 제작 공간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여기에 비추어 인큐베이팅 지원이 중요하다. 입주 작가를 공모할 경우에는 예약이 필요치 않을 것인데, 문래예술공장은 입주 작가를 뽑지 않으므로 다른 공간과는 차이가 난다. 한마디로 제작 공간 대관이 중심이다. 박스시어터에서 월 1회 정도 대관 공연이 열리는데, 문래예술공장에서 정규 공연은 적다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일반 공연 대관 지원이냐 제작 공간 지원이냐 하는 분리된 개념이 제기될 수 있겠는데, 엄밀히 말해 문래예술공장은 제작 공간 지원에 중점을 둔다고 보면 된다. 공연의 최종 결과물 이전 단계에 프리뷰나 쇼케이스를 제시할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그간 이런 공간이 흔치 않았다. 일반 극장을 공연 기간보다 훨씬 더 길게 대관해야 하지만 대관사정도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렇게 올래 대관한다 하더라도 창작자들의 비용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문래예술공장은 그런 공간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1차 제작물을 만들고 다른 전문 공간에서 그 결과물을 완성시키는 방식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문래예술공장을 그렇게 이름지은 이유가 알 만해진다. 흔히들 문래예술극장이라 하지 왜 예술공장이라 했는지 궁금증을 가질 만하다. 일반 공연 중심이 아니라 예술 창작을 위한 제작 공간을 염두에 둔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명칭으로 수긍이 간다.) 

사회: 그러면, 문래창작촌과 예술공장의 관계를 소개한다면? 

김은정: 예술공장을 많이 사용하는 입장에서 이런 공장의 필요성은 더 느낀다. 그런데 창작촌과 예술공장 간의 유기적 관계는 더 강화되어야 할 것 같다. 창작촌 작가들과 예술공장 간의 의사소통이 활발해졌으면 생각하는데, 그 소통 방식이 어떠해야 한다고 고정 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작가들과의 소통이 더 활발해졌으면 한다. 

서명구: 시기를 정해두지는 않고 작가들과의 간담회를 갖는데, 한번 하면 30명 정도 참석한다. 간담회에서 많은 의견들이 교환되는 편이다. 간담회에 참석하는 분들만 참석하는 경향이 있어, 참석하지 않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는 분들의 여론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별 행사들에도 참석해서 의견들을 듣곤 한다. 파티 같은 이벤트를 응용해서 마련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문래옛루공장에서는 개인 지원 사업은 없고, 모두 공모 사업이다. 공모 이외 다른 방식으로 하자는 여론도 있으나 공정성 면에서 쉽지 않다고 본다. 

사회: 창작촌 작가들의 공간 이용도는 얼마나 되는가? 

서명구: 창작촌 작가들이 약 60% 정도 차지한다. 

사회: 창작촌의 최근 동향은 어떤가? 

문재선: 초기에는 파티가 많았고, 8월 20일 대안공간 ‘문’에서 음악 밴드 공연이 있을 것인데, 아마 밴드 공연은 이전에 없었던 것 같다. 창작촌이 점차 음악을 비롯해서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서명구: 문래동이 다양한 다원 활동이 이뤄지는 곳인데, 밴드 문화의 상업화나 권력화와 거리를 두고 매달 정기적 공연도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인디 밴드 행사가 기획된 것으로 안다. 

박은주: 제 같은 경우 3년 전에 이곳으로 왔다. 공장 3층에 입주하고 있다. 스튜디오에 있다 보면 낮에는 공장 소음, 저녁부터는 교통 소음에 시달리는 편인데, 어느덧 적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춤 구성법과 안무에 대해 갈증을 갖고 있는데, 발견된 움직임이 구성법에 따라 생명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자각이 든다. 여기 있는 3년 동안 매우 좋은 시기를 보낸 것 같다. 먼지와 소음이 있는 환경에 내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고 적응하는지 관찰하면서 신체의 말하자면 진화 같은 개념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진화에서 키포인트를 이루는 것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싶고, 문래동에서 또 다른 예술적 자연을 찾아보려고 한다. 문래동 창작촌은 정신적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그런 곳이라 본다. 

사회: 타인들에게 권하고 싶은가? 

박은주: 권하고 싶다. 

김희현: 나는 중국 광저우에서 춤 치유와 요가 활동하고 있고, 이번에 강의차 잠시 귀국하게 되었다. 오늘 인터뷰 소식을 듣고, 나도 이곳 공간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이 자리에서 업저버로서 참석해 여러 말씀을 잘 들었다. 물론 해외에도 이런 공간들이 적지 아니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7년전에 왔었던 문래동 철공소 지역은 참 을씨년스러웠는데, 이제는 문래창작촌이 되어 중국에도 소개하고 싶다. 사업을 보니까 문래예술공장이 축을 잡아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번에 여기 호스텔을 이용하고 있는데, 편리해서 좋다. 이런 공간이 더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대한항공 기내지에서도 문래창작촌을 소개한 기사를 보았다. 중국에서 장이무의 공연 <계림 인상>을 보았다. 생활과 공연 활동이 밀착된 사례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직 서울은 둘이 분리되고 동떨어졌다고 보는데, 그런 점에서 장이무르이 공연은 분명 더 부러움을 살 만하다. 그런데 문래예술공장의 프로그램을 보면 그런 괴리감을 없애나가는 것 같아 더 기대된다. 

(서울시창작공간에서 호스텔이 있는 공간은 문래예술공장과 금천예술공장 두 군데뿐이다. 다만 금천 쪽은 레지던시 중심이어서 호스텔 운영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지역주민과의 교감이나 지역 주민 참여도는 어떠한가? 

김은정: 지역 주민 참여는 어느 정도 있다. 서서 보다가 가는 사람이 있고, 막걸리 판에 간혹 동참하는 일반인도 있다. 공장주들은 행사 공간 제공에 대서는 대체로 협조적이다. 일단은 소극적이랄 수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전반적인 현상이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다. 올 가을에는 우리 예술가가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거나 음악이 있는 다방 같은 프로그램으로 더 가까이 가려고 한다. 

박은주: 지역 주민과 움직임 구성 워크숍을 함께 하고 싶다. 자기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워크숍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다른 예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문래 사운드 워크숍, 문래동 산악회, 문래 밴드 등으로 지역 주민들이나 철공장 공장주들과 작가들이 어울리는 프로그램들이 1,2년 전부터 실현되고 있거나 계획중인 줄로 안다. 

문재선: 그러고 보니까. 이와 유사하게 전남 광주 대인동 대인시장에 대안공간이 있는데, 작가들의 아지트로서 자자가 있고, 또 작가들의 갤러리로 밑에, 작가들의 카페 우우로가 있다. 또 주민들과 함께 하는 밴드도 계획되고 있다고 한다. 

서명구: 소규모에서 점진적으로 진전해 나가는 게 바람직스러울 듯하다. 움직임이나 몸을 갖고 주민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도 개발되는 중이고, 주민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사례로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제목으로 목공예를 활용하여 고양이 놀이터를 함께 제작해서 반려 동물의 현실을 알리는 행사도 있었다. 판이 열리니까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 철공소와 작가가 결합하여 공동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도 시도되고 있다. 이런 경우들은 우리 시대와 문래 지역의 장인(匠人)들의 솜씨를 활용하여 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그런 작업으로 해석될 것이다. 

(문래예술공장의 사업은 http://www.seoulartspace.or.kr/G05_mullae/main.asp에서 그 개요를 확인할 수 있다. 공간 지원 프로그램 이외에 시민 예술체험교육, 국제 교류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고, 문래 지역 작가 및 주민의 시너지를 모으는 취지의 MEET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간략한 소식지 ‘문래 동네’를 작가들의 자원 봉사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2호를 발간하였다. 올해 10월에 문래창작촌 저널로서 ‘문래’(100면 내외)를 발간할 계획으로 있다.) 

사회: 문래창작촌과 문래예술공장을 묶어 좌담을 진행하니까, 그 각각을 소개할 때보다 더 풍성한 좌담거리가 제공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문래동 지역은 홍대앞 시대 이후 서울 시내 어느 지역보다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간의 노고도 물론 상당했음은 물론이다. 아직은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이므로 미진한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진정성으로 헤쳐 나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계속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고, 그러자면 작가-주민-지원기구 간의 소통이 중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고 또 소통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장시간 대담에 감사드린다.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