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김용걸댄스시어터 〈빛, 침묵, 그리고…〉
새 틀의 참여형 발레에서 숙제를 얻다
  • 일    시
    2021년 4월 20일(화) 오후
  • 장    소
    zoom 화상회의
  • 참석자
    김혜라 방희망 서정록

- 김용걸 안무작 〈빛, 침묵 그리고…〉 공연이 4월 16~18일(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있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했고, 참사 7주기를 맞아 올려진 발레 공연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석 무료 초대 공연으로 90분 동안 진행되어 공연의 의의가 크게 부각되었지요. 다수의 출연진들은 참사 희생자 학생과 아빠, 13명의 희생한 아이들, 생존자, 잠수사, 6명의 권력자들, 중립적 목격자의 역할들을 맡았고 작품 서두와 말미에 한국무용가(김미애)가 자비(慈悲)의 역할로 희생자를 위무 진혼하는 의례를 펼쳤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녹음 육성(肉聲)과 보도문, 다큐 해설, 흑백의 바다 파도 풍경 등등을 공연 처음부터 군데군데 삽입하고 잠언 류의 문구(文句)도 몇 가지 스크린에 등장했지요. 발레의 통상적인 구성 방식을 전면적으로 탈피한 이번 공연에 대해 의견들을 나누기로 하지요.




김용걸댄스시어터 〈빛, 침묵, 그리고…〉 ⓒBAKI/김용걸댄스시어터




-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면하기 힘든 세월호 사건에 감정이 흔들렸습니다. 안무자는 사건의 시작부터 현시점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여러 관련 입장의 이야기와 산적한 미해결 과제들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발레 현장을 상기하면서, 아주 의미 있는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우리 발레에서 사회에 동참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류의 작업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이 작품이 하나의 방향성을 제안하며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봅니다.

- 작품의 제목이 〈빛, 침묵, 그리고…〉였는데 침묵이라는 단어가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래도 춤을 춘 댄서들과 안무자는 결코 침묵하지 않고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걸 통해 행동한 점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 저는 공연에서 착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7주기를 맞도록 채 정리되지 못한 채 산적한 세월호 과제들이 고스란히 무대로 옮겨진 느낌이기도 했어요. 안무자가 작품을 준비하며 느꼈을 분노와 슬픔, 무력감 등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에 반영되었다 생각됩니다. 세월호 관련한 최근 뉴스들까지 추적하고, 또 사건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라면 기억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잘 모를 수도 있는 희생자와 유가족이 실명으로 등장하기도 하여 안무자가 기울였을 진심어린 노력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안무자의 위상이나 조건 등을 생각하면 좀 더 나은 방향의 작품이 나올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을 품게 되지요.




 

김용걸댄스시어터 〈빛, 침묵, 그리고…〉 ⓒBAKI/김용걸댄스시어터




- 저는 이번 공연을 무엇보다 일종의 참여 예술로 보았습니다. 특히 발레 쪽에서는 참여 예술이라는 것이 아주 드물지 않습니까. 참여 예술 측면에서 어쨌든 발레가 이런 식으로 시도한 것은 평가되어야 합니다. 발레의 관행적 영역이나 환상적인 소재에 맴돌지 않고 현실을 얘기하는 발레라는 것이 매우 신선했고요.

- 참여 예술이라는 속성 자체가 좋은 의미의 통속성을 부르고, 통속성을 유지하려면 관객들을 설득하는 쪽으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주어야 할 것입니다. 텍스트적 내용과 이미지가 과도해 보인 점은 있습니다. 좋게 얘기하면 관객들에게 친절히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장점이 있지요. 많은 이미지가 등장한 것도 이런 맥락과 통할 것입니다.

- 이번에 통속성 측면에서 사실과 사건을 중심으로 감정선을 파고들었습니다. 이런 점들로 인해 공연이 신파로 흐르거나 작품의 미학이나 구조를 저해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파장이 엄청난데도 진상 규명 등 사후 수습은 순조롭지 않았지요. 유감스럽게도 세월호 참사 진실 찾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안무자는 시종일관 이 점을 환기합니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안무자 나름의 문제의식이 투철한 것으로 느껴졌고, 또 세월호 7주기를 맞아 특히 일반 관객들과 진실을 공유하려는 의도가 뚜렷해 보였습니다. 여기에 호응하는 관객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이로써 안무자 나름 문제를 제기하고 일정 부분 관심을 환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취지에서 안무자가 택한 것은 사실적 또는 사실주의적 전개 방식이었는데,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도 보였습니다.

- 동감입니다. 이번에 안무자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던 것 같고 실제 무대가 그랬습니다. 먼저, 진혼제로 시작한 출발이 무색할 만큼 세월호 참사에 관한 온갖 진단이 열거되었는데, 안무자가 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제 판단으로는 상당히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비판의식을 촉구하려는 의욕과 춤 사이의 일체감이 약해 보였습니다. 권력자를 설정한 상황과 조종당하는 희생자들 그리고 “무능한 정권, 공소시효가 3개월밖에 안 남았는데”라는 외침이 위무의 측면과 수시로 오버랩되면서 하나의 굵은 주요 관점이 희석되었다고나 할까요. 사실과 사건을 무대에 소환시켜 놓고 정말 넋을 위무한 건지 아니면 정치적인 외침과 행동 촉구를 요청하는 것인지 그 방향이 분명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가 범람하다 보면 자칫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 공연에서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을 살린 사람들 가운데 잠수사들의 말을 안무자가 소개한 부분에 저는 공감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다루려고 한 탓에 그다지 부각되진 못했어요. 아마도 메이저 방송사의 엄청난 기획력으로 몇 부작 다큐멘터리로 만든다고 해도 그 참사의 실상을 온전히 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혹시 안무자도 이런 점을 모르지 않았을 테고, 그런데도 무용 공연으로 제작했다는 가상한 노력은 인정되어야 합니다. 아무튼 근래에 논할 만한 문제작이었습니다.

- 몸을 표현 매체로 삼는 춤의 영역에서는 현실 세계의 언어가 배제된 만큼, 어떤 사회 문제를 이성으로 판단하고 문제를 제기하려 한다 해도 그것을 잘 소화해서 오히려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표현으로 몸에 장착시켜야 예술로서의 묘미가 있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에서 발레 자체의 힘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내거나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저는 문제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 저는 텍스트나 이미지 부분이 춤으로 소화되었더라면, 많은 걸 다뤘더라도 신선했을 것이라 봅니다. 창작자의 상상력이 더 필요했다는 판단입니다.

- 같은 맥락에서, 이번 무대에서 육성과 문자 등의 언어가 춤을 압도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레에 집중하는 것을 오히려 저해하는 역효과도 있었고요. 설령 그렇더라도 이번 무대에서 컨템퍼러리 발레의 특성을 관객이 어떻게, 얼마나 수용했을지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더욱이 언어에 힘입어 일반 관객이 춤을 용이하게 수용하도록 한다든가 고전발레에 편향된 시각을 향하여 컨템퍼러리 발레로 유인하는 효과는 없었겠는지 참작해볼 점입니다.

- 거대 국가권력이나 시대상황에 의해 희생된 개인들의 주제로 종종 다뤄지는 것이 위안부 문제입니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공연에서 문제로 느껴지는 게, 희생자들의 고통이 직접 연상되는 장면을 꼭 넣어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이런 것을 넣어야 관객이 주제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고 보는, 손쉬우면서도 무척 자극적인 유혹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재현이 있었는데 꼭 필수불가결했는지 물음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그 장면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하는 걱정과 아울러 출연자들의 간접 외상(外傷)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이런 재현 방식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용걸댄스시어터 〈빛, 침묵, 그리고…〉 ⓒBAKI/김용걸댄스시어터




- 이와 관련해서 저는 두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공연을 준비하는 무용수들이 이 사건을 간접 경험하면서 동시에 고통을 나누고 회복할 그런 보조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는지, 두 번째로는 이렇게 실화를 그것도 무용수들과 같은 또래가 겪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건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 때는 안무자 개인의 창작보다 공동창작의 형태가 오히려 모두에게 학습의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생각되는데 작품 제작 과정에서 그런 점이 거론되었는지 궁금하지요. 우리 시대의 실화이기 때문에 출연진들이 참여할 여지가 분명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용수보다 한 사람의 예술가를 키워내는 기회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출연진들이 희생자들과 같은 또래가 아닐까 합니다. 어찌 보면 자기 친구의 사연이기도 했을 테지요. 안무자의 주문대로 했겠지만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니까 본인들도 단순히 안무자의 지시대로만 테크닉을 수행하기보다는 무언가 많이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공연 전반에 걸쳐 안무자는 우리 각자 중립이기보다 나서서 행동하자고 권유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자막으로 제시된 여러 텍스트 때문인지 몰라도 전반적인 톤에서 안무자 개인이 관객에게 일침을 가하는, 어떤 면에선 다소 고압적이면서 윤리적 우월감마저 느꼈다면 저만의 반응일까요.

- 참사 당시의 중요한 언어, “가만히 있어라”에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했고 그래서 가만히 있지 않은 결과 촛불혁명으로 지금 정권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빚진 것은 사실이지만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게 온전히 지금 정부 탓인가
 물으면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조사를 하고 각종 혐의가 있는 책임자들을 고발해도 줄줄이 무혐의로 풀려나는데… 이건 검찰과 언론까지 통째로 개혁이 되어야 해결되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대통령이 약속을 지켜라’라는 육성은 설령 유족들의 외침을 인용했다 하더라도 그 부분은 가볍고 호소력이 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 그런 반면에 정부 책임을 질책하고 사회단체에서 주장할 내용을 소재로 안무자와 출연진이 해낸 공연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나름대로 평가하자면 이 사회 아니면 국가가 책임지고 해야 하는데, 안무자 혼자서 아니면 무용단의 사람들이 많은 이미지나 텍스트들, 육성 자료들까지 동원해야 했으므로 어떤 면에서 힘겨웠겠다는 짐작을 했어요.

- 저도 그런 부분은 동감합니다. 안무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사회 참여적 예술을 실행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조밀한 관점으로 더 다듬어질 부분들은 있었지요. 안무가 김용걸씨만이 아니라 무용가들의 사회참여적 행동들이 지속되어 왔어요. 7년 내내 팽목항을 같이 걷는 무용가, 현장에 가서 해마다 살풀이를 하며 참여하는 무용가도 있고요.




 

김용걸댄스시어터 〈빛, 침묵, 그리고…〉 ⓒBAKI/김용걸댄스시어터




-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 구사한 테크닉은 윌리엄 포사이드 스타일 같아요. 기존에 우리나라에서 흔한 클래식 발레 스타일이 아니고 포사이드 스타일을 응용해서 한 건데, 무용수들 춤을 보면서 제가 놀랐던 거 중 하나가 포사이드 테크닉을 김용걸 선생이 굉장히 잘 숙지한 것 같다는 점이지요. 체화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것들이 무용수한테서 보이는 게 아주 신선했어요. 우리 무용가 중에 윌리엄 포사이드 테크닉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은 거 같거든요.

- 아쉬운 점이라면, 서로 다른 테크닉들 사이의 이음 부분에서 갑자기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테크닉과 테크닉 사이에 약간의 갭이 있다고 할까요. 제가 인상 깊었던 점은 우리 발레에서 일반적인 클래식한 동작과는 다른 발레의 동작들을 목격했다는 점이지요.

- 이음 부분에서 갭이 눈에 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것이 음악 선택에서 기인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이건 비단 김용걸 안무가뿐 아니라 창작발레 안무가 다수에게서 받는 인상이기도 한데요. 음악을 사용하는 데 있어 여전히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피아노로 따지면 왼손으로 하는 저음부 반주 부분, 리듬이 마치 메트로놈을 맞추어 놓은 것처럼 딱딱하고 너무 선명하게 들리는 그런 음악들을 주로 사용합니다. 박자, 비트가 고정되어 있으니 춤이 그 이상을 날지 못한다는 느낌이라 할까요? 동작이 굉장히 절도있게 보일 수 있고 안무자 입장에서는 그 비트에 맞추어 안무를 넣기가 용이하다는 장점은 있을지 몰라도 관객에게는 지루함을 유발합니다. 리듬 자체가 획일화되어 있으니 그 안에서 펼쳐지는 춤도 획일적이기 마련입니다. 이번에 손동작에서는 나름 표현주의적 스타일도 반영했지만 전반적으로 어떤 테두리가 상존하는 것 같아요.

- 동감입니다. 음악만이 아니라 동작 시퀀스를 따지고 보면 기존 패턴과 비슷해서 아마도 사회참여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는 여러 매체와 결합한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적어 다소 획일적으로 보였을 거예요. 제 생각에는 안무자가 어떤 파격적인 형식의 동작을 요구하더라도 댄서들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지 않나 해요.

- 출연한 어린 친구들은 적어도 10년 이상 허리를 곧추세우면서 발레 동작을 수련해 왔기에 그런 움직임들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됩니다. 아직은 어린 출연진들의 한계라 하겠지요. 그런 때문에 이번 공연 진혼 부분에서는 농밀한 김미애 무용가를 모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주제, 소재, 영상이나 문구를 통해서 프레임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는데, 동작이나 형식에서 컨템퍼러리함이 약했던 점이 아쉽죠. 클래식 발레의 동작 패턴이 발레의 고유한 교본이기도 하지만 컨템퍼러리한 작품을 만드는 우리 안무가들이 그런 패턴을 해체할 필요성을 인식하는지 의문입니다.




 

김용걸댄스시어터 〈빛, 침묵, 그리고…〉 ⓒBAKI/김용걸댄스시어터




- 〈빛, 침묵 그리고…〉는 2016년에 초연되었고 이번에 새 버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손질한다는 것을 전제로 다음의 부분도 재고되었으면 합니다. 끝부분에서 김미애씨의 진혼무로 마무리되는 듯하다가 희생자들이 대형 사진 액자 속에서 등장하는 장면에서 사실 당황했어요. 노란 나비 앞에서 희생자들이 집단으로 해맑게 웃음짓는 모습을 슬로모션의 스틸 사진 식으로 재현한 장면입니다. 그저 우리 마음 편하려고 희생자들을 그렇게 그려 마무리하는 것인가 하는 마음에서 사실 불편했어요. 이 부분은 안무자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현실 상황을 비판하는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그런 스틸 장면을 덧붙인 것인가 하는 짐작도 듭니다만, 오히려 참사의 비극을 봉합하는 듯해서 진혼의 여운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봅니다. 덧붙여 마지막 진혼 의례는 어쩌면 가장 품위 있고 중요한 메시지를 담는 부분일 텐데 저로서는 굳이 한국무용가에게 맡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 〈빛, 침묵 그리고…〉는 참여 경향의 춤이자 발레로서 일테면 넌픽션 성향의 발레라 하겠습니다. 예술에서 다큐멘터리, 넌픽션 장르가 있지만, 국내외 춤계와 발레계에서는 흔치 않은 개념들이고 춤이 굳이 다큐나 넌픽션을 추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 것입니다. 그래도 다큐적, 넌픽션적 성향은 참조해볼 만한 개념이라 봅니다. 컨템퍼러리 발레이면서 이렇게 소재에서도 국내 발레 경향을 탈피한 점에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아무튼 안무자의 문제 의식이 강하여 처음부터 참사 현장과 보도 육성을 내세워 안무자의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이와 유사하게 실제 작품 구성에서 절제되지 않은 면면들이 보였습니다. 이에 따라 춤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 부작용도 수반되었습니다. 넌픽션 성향의 발레 같은, 국내 발레계에서도 익숙지 않고 관객에게는 더욱 익숙지 않은 공연 유형을 개척해나가려면 이제는 특히 절제와 구성에서의 묘책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공연이 김용걸 안무자에게 남긴 가장 큰 숙제가 아닌가 싶고 오히려 국내 발레계를 위해서도 소중한 숙제라 하겠지요.

- 안무자와 출연자들이 사회적 이슈에 둔감하지 않는 수고와 노력을 특히 코로나 시기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냅니다. 사회적 참사를 발레로 구현하는 것이 안무자나 출연자에게 예삿일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우리 발레에서 이런 유형의 작품이 나온 것을 크게 주목하며, 여러 의견을 불러일으킨 의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2021. 5.
사진제공_BAKI/김용걸댄스시어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