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연속 기사 · 투잡(2)
어느 안녕
김채현_춤비평가

연간 650만원의 수입

 

춤 예술 생태계는 공연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작품 발표를 목표로 하는 공연이 부재한다면 궁극에 춤이 소멸할지 어떨지는 생각을 요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단언할 수 있는 점은 이러하다. 작품을 내세우는 공연이 없다면 무용(학)과의 재학생과 교강사진은 물론 춤 공연장 및 공연장 운영자, 기획자, 보도 매체 종사자 그리고 심지어는 평론 비평 활동가들마저 대개는 사라질 것이다. 이런 황망한 상상을 배경으로 투잡 현상은 경종을 울리는 중이다.

 

지난 호에 소개된 내용을 약간 복기해보자. 2022년 10월 기준 통계청 조사로는 전체 경제활동인구 2900만명 가운데 부업(투잡) 인구는 55만명(1.9%)이며, 2018년에는 43만명이었다. 2010년대에 부업 인구가 40만명 초반선이었던 사실과 비교하면 최근 5년 사이에 큰 폭으로 늘은 편이다. 그리고 2021 예술인 실태조사보고서(문화체육관광부, 매 3년마다 발간함)에서 2020년 조사 당시 전체 예술인 가운데 46%가 투잡을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무용 분야도 46%였다. 통계청 기준을 적용하면 문광부 조사의 겸업 비율은 절반 이하로 낮춰질 가능성이 높아서 2020년 현재 예술인의 겸업 비율은 20% 남짓으로 추정될 것 같다.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투잡은 산업구조의 전환에 따른 고용형태 다변화, 코로나19 장기화, 주52시간제가 도입된 2018년 이후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소득 저하 등의 요인에 의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이런 추세가 아니더라도 춤계와 예술계의 투잡은 아주 오래된 관행이었고, 춤계 현장에서 접하는 느낌에 비추어 지난 몇 해 더 심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술인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예술인의 연간 평균 가구 총수입은, 지난 호에 그 액수가 언급되었지만, 2017년 4225만원(무용 3924만원)에서 2021년 3972만원(무용 4142만원)으로 줄었고(무용은 늘었음), 예술인의 연간 평균 예술활동 개인 수입은 2017년 1281만원(무용 1029만원)에서 2021년 695만원(무용 634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그 사이에 코로나 사태가 기승을 부린 것을 고려하더라도 연간 예술활동 개인 수입이 줄어드는 추세가 정착되는 것은 아닌지 주목을 요하는 현상이다.

 

개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을지언정 연간 650만원 정도의 예술활동 개인 수입 규모는 특히 창작자와 출연자의 연간 평균 수입을 판단하는 기준 정도로 받아들여져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용 분야에서 연간 예술활동 개인 수입이 2014년에는 861만원이었고, 2017년에서는 1029만원으로 늘었다. 그렇게 늘은 요인이 관심을 끌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2021년에 634만원으로 줄어들은 연간 650만원 정도의 예술활동 개인 수입 규모에 더 관심이 간다.



 

예술에 지장이 많은 투잡

 

4년 전에 젊은 무용인의 수입을 스스로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춤:인, 2019. 9.). 아래에서 보는 그 경험담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한 것 같지 않고 도리어 더 흔해진 듯한 인상이다.

   - 몇 해 전 배운 여가와 필라테스가 어쩌다 생계 유지 수단이 되었고, 날마다 SNS에서 대타 강사를 구하는 글은 올라오자마자 1분 만에 마감되므로 일을 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스피드가 필요하였다. 운 좋은 날은 세 타임, 평소엔 한 타임도 구하기 어려웠다.

   - 공연 작업하는 시간 외에 4년 동안 요가 강습 시간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면서 요가를 가르치며 갖는 죄책감은 정신적 데미지를 입혔다. 그럼에도 여가 강습을 지속했던 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공연 작업 임금과는 비교되지도 않는 시간당 수입의 유혹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던 때문이다. 

   - 정기적으로 연기학원에서 입시 준비생들에게 무용 특기를 가르쳤다. 고작 일주일에 단 하루 두 시간이라도 예술 작업을 하면서 이런 일을 정기적으로 지속하는 건 정말 어렵다. 정기적인 일자리를 구했다 하더라도 공연 작업 제안이 들어오면 프리랜서의 삶으로 다시 돌아갔다. 프리랜서로서 비예술 노동과 예술 노동을 병행하는 것 또한 쉽지가 않았다.

   - 연기학원에서는 무용 특기 수업을 하였다. 당시 연기학원의 무용 일자리가 더 많은 편이었다. 무용 특기 수업은 무용 기본과 스트레칭을 간단히 가르치고, 1분 이내에 자기 매력을 펼치는 작품을 만들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0명 정도 학생에게 각자 다른 작품을 만들어 주어야 해서 유튜브에 있는 무용 콩쿠르 영상을 참고하며 준비해서 가르쳤다. 가르치다가 때론 내가 왜 이걸 하려 대학원까지 나왔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가르치는 일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여기 소개된 경험담은 그 이상의 고생담이 아닐까 싶다. 무용인의 주업무(창작과 공연)와 상당히 가까워 보이는 투잡일지언정 정작 본인의 관심 및 흥미와 부합하지 않으면 장애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가령 피카소가 교습소에서, 쇼팽이 교습소에서 가르치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각자가 그 일을 즐겼다면 별문제이겠으되, 생계를 위해 가르치기에 종사했었더라면 그들이 과연 그만큼의 수작들을 창작해낼 수 있었겠는지 의문이다. 공연을 비롯 예술에는 어느 정도 이상의 집중성이 일상화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어느 안녕

 

그는 2022년도에 15회 안팎의 공연에 출연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30대에 접어들어 면담 중에도 팔팔한 기운이 생생하다. 대학 재학중에 병역 의무를 수행하고 대학 졸업 전부터 여러 무용가들에게 발탁되어 객원 출연을 근 7년 동안 지속하였다. 

 

그가 춤에 입문한 것은 뮤직비디오 때문이었다 한다. 예술에 대한 자극이 드물었던 지역에서 뮤직비디오는 큰 자극제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TV에서 보았던 힙합 가운데 특히 어느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그런 역할을 하였다 한다. 인문계 고1 겨울방학 때 부모님과 상의하여 학원에 20만원 남짓 수강료를 내고 두어 달 매일 8시간씩 힙합을 수강하였다. 스스로 재미뿐 아니라 행복감을 느껴 자발적으로 수련하던 시기였다. 이후 그가 대학에 무용 전공으로 바로 진학한 것은 아니었다. 먼저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하였지만 한 달 여 고민 끝에 자기 길로 와닿지 않아 자퇴하였다. 고교 2, 3년 동안 그는 춤을 수련하지 않은 상태였어도 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고 진학은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자퇴 후 대학 입시를 재수하면서 1년 동안 무용학원에서 아침 9시부터 무려 밤 11, 12시까지 나름 춤을 열씸 닦았다. 홀로 수련 시간에는 힙합을 하고, 집단의 정규 교과 시간에는 춤 기본기를 배웠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본가에서 숙식하며 춤 활동을 지속하였다. 춤 활동에 소요되는 일체의 비용은 본가의 도움 없이 해결하였고, 그러다 보니 오래 전부터 여러 투잡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크게 도움이 되었던 투잡으로 기억되는 것은 몇 개의 예술강사 직무였으며 강사료를 많이 수령한 달은 기백만원 선이었다. 예술강사 직무를 수행할 동안 공연 연습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운 등으로 어느 정도의 제약이 따랐다. 그러나 예술강사 직무는 1년에 길어야 8, 9개월 정도여서 여전히 다른 투잡이 필요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투잡으로 공사판의 철근 배근 작업을 몇 달 해보고 위험을 느껴 그만두었다 한다. 

 

이렇게 투잡을 해서 저축한 자금을 갖고 그는 공간을 확보해서 자기 수련과 공간 임대를 겸한 무용 연습실을 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갓 시작한 시기에 마련한 연습실에서 임대 실적은 사실상 전무하여 2년 동안 월세만 내다가 그만 두었다. 유감스럽게도 투잡의 대가가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그가 무용 전공으로 대학을 진학할 적에 부모님과 약간의 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을 모셔야 할 일이 그에게는 현실로 또렷해졌다. 몇 해 갈등과 고민 끝에 그는 일단 객원 무용수로서의 활동을 접고 부모님의 사업에 합류할 것임을 면담 자리에서 밝혔다. 향후에 그가 춤판으로 되돌아올지는 미지수이다. 그의 경우 춤 활동을 접는 것이 투잡 때문만은 아니다. 투잡 이외의 다른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례이다. 춤 활동으로 그가 부모를 모시고 생계를 유지할 정도라면 그가 춤 활동을 접을 결심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어서, 투잡이 일반화되는 혹은 투잡이 대신 말해주는 열악한 춤 환경이 그의 최근 결심에 적잖이 작용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3. 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