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2020 젊은춤축전
2020 ‘젊은춤축전’이 던진 질문
  • 일    시
    2020년 11월 27일(금) 오후 1시
  • 장    소
    동양예술극장 춤카페
  • 사    회
    이지현
  • 참석자
    정연도 최찬열 남기성 서정숙





사회(이지현): 날씨가 많이 차가와졌습니다. 코로나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이 자리에 ‘젊은춤축전(이하 축전)’을 주최한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님과 심사위원 선생님들을 모셨습니다. 지난 10월 27-28일 양일간 동양예술극장 2관에서 치러진 ‘축전’은 민족춤제전의 일부로 작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청년춤꾼들의 무대입니다.
 저는 작년과 올해 모두 심사위원으로 참석을 했는데요, 작년에 첫해였음에도 심상치 않은 열기와 작은 무대의 젊은춤들이 작지만은 않은 것에 상당히 놀랐기에 올해도 관심있게 지켜보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공연 자체가 마지막 순간까지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무대를 못 열게 되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한 마음이었으나 무사히 잘 치뤄졌고, 작년에 이어 젊은춤 무대가 던져주는 고민들이 매우 신선하기에 이렇게 공연을 지켜보신 선생님들을 모시고 얘기해보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선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남기성(이하 남): 전 이번에 민족춤제전 총연출을 맡았습니다. 젊은춤축전도 연출을 하는 것이었으나, 축전은 청년위원장의 연출을 하고 제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도와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고 그렇게 진행해 보았습니다. 평소에는 공연연출 및 탈춤을 중심으로 한 마당춤을 추고 있습니다.

최찬열(이하 최): 저는 춤문화연구소 소장이며, 거리예술창작단 사하라 예술감독을 하면서 춤미학과 춤인류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정연도(이하 정): 70년대 대학 탈춤반 출신이며, 졸업한 후 놀이패 한두레에서 활동을 했었고 은퇴 후 주로 춤공연을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서정숙(이하 서): 한국민족춤협회와는 2016년 준비모임 때부터 함께 했으며 올해 6월 민족춤협회 이사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춤을 전공하고 춤패 디딤에서 활동하다가 현재 전통춤을 추면서 계속 활동 중입니다.
 젊은춤축전은 작년에 장순향 전이사장께서 젊은 친구들이 무대에 설 기회가 부족하고 기성의 신인무대들이 선심 쓰는 듯 한 분위기속에서 이뤄지는 것에 문제의식를 갖고 있던 차에 당시 협회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변상아양을 청년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첫해부터 청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축전을 치뤘습니다. 이 축전은 경연형 축제로 작은 긴장감과 상금이 재미를 위해 마련되었고, 추임상, 디딤상, 돋움상, 으뜸상으로 시상제도도 갖고 있습니다. 올해 으뜸상은 문광위 위원장상(도종환위원장)으로 시상을 했습니다.

사회: 무대는 소박한데, 상금은 소박해 보이지 않던 걸요.(웃음) 지원금없이 치러지는 상황인데 상금도 있다는 게 좀 놀랍습니다. 올해 지원 상황은 어땠나요?

: 올해 지원금을 받지는 못했지만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코로나 별도지원금으로 ‘공연업회생프로젝트’로 500만원을 받은 게 다였습니다. 그 외에 개인후원금과 텀블벅 등을 통해 조금씩 모아서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 축제를 위해 봉사를 해주시는 이사님들이 계시구요 매년 후원해 주시는 따뜻한 마음들이 많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드립니다. 또 뉴딜 청년일자리 사업으로 무용을 전공한 젊은 친구들 3명이 축제를 도와 준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올해는 좀 더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축제를 준비하고 싶어서 내부에서 조직위원회(조직위원장 변우균)도 꾸리고, 외부에서 전문기획자도 모시고 연출 및 스텝 감독님들도 좋은 선생님들로 모셔왔습니다. 물론 다른 데서 받으시는 것만큼 드릴 수 없어서 죄송할 따름이지만 그 분들 덕분에 축제가 치러질 수 있었습니다.




서정숙




사회: 지원금 없이 치러지는 보기 드문 사례 뒤에는 많은 분들의 노고가 많았군요. 올해 축전은 작년과 비교해서 응모상황이 어땠나요?

: 작년에는 창작팀이 많았습니다. 으뜸상도 창작팀에서 나왔구요. 작년엔 지원팀을 무대에 다 올리고 싶어서 나흘 동안 전통춤판 하루(8팀), 창작춤판 사흘(10팀)로 총 18팀이 무대에 올랐고, 올해는 코로나의 영향을 받아 지원도 작년보다는 적고 시기도 미룰 수 밖에 없어서 이틀 동안 전통 8팀, 창작 4팀 총 12팀으로 진행했습니다. 올해는 날짜가 줄어서 서류심사와 영상심사를 통해 조금 거르기도 했구요. 창작팀이 작년에 비해 지원 자체가 많이 줄었고, 전통춤은 작품의 종류가 작년하고는 많이 다른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포스트 전통춤’ 시대에서 ‘춤의 생기’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가

: 올해 처음으로 젊은춤축전 심사위원으로 참가를 했고 민족춤제전 전체를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프로그램입니다. 다른 전통무대들과는 다르게 풍물춤이나 민속춤계열의 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좋은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놀랐던 것은 이런 큰 행사를 치르면서 예산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공연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보통은 엄두도 못 낼 일인데요. 그 속에 젊은춤축전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민족춤제전의 전체행사 중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 축전이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춤꾼의 무대가 전통, 창작춤판이 골고루 균형을 가진 모습이 민족춤, 전통춤이라는 큰 틀이 앞으로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까 하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를 고민하는 전통춤과 현대춤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어 기뻤습니다.

: 리허설부터 죽 지켜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느낀 것은 참가자들이 진지하고 열의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그런가 무대를 기다려 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전날의 어른들의 무대와는 좀 다른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고요. 그런데 공연 전날 ‘네트워킹 파티’ 때 들어보니 젊은 친구들의 무대에 서려면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축전이 젊은 친구들에게는 사뭇 다른 무대로 느껴지겠다 생각했습니다. 이 무대는 그야말로 학연, 지연 이런 것도 없고 무대부터 홍보, 영상, 사진까지 무료라고 하니 다른 무대와는 많이 다른 춤판인 거 같습니다.
 공연은 전통춤판의 수준이 상당했습니다. 점점 전통춤이 제대로 된 전통의 무게를 보여주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전에는 젊은 친구들이 추는 전통춤이 동작과 장단만 겉모습을 따온 것이고 추는 방식은 신무용 테크닉이 많았다면 이 축전의 젊은 친구들의 춤은 보다 전통의 맛을 내는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창작춤판은 참가팀들의 수가 적어 아쉬웠지만 현재 20대들이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고민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좀 더 젊은이다운 실험정신과 신선하게 풀어나가는 부분이 있다면 좋았겠다입니다.




남기성




: 전통춤판은 여러 가지 종목을 볼 수 있게 다양성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교방굿거리, 구음 검무 등 교방춤도 있었고, 풍물춤인 고창 고깔소고춤, 영덕별신굿 중 ‘중나려온다’ 라는 보기 쉽지 않은 굿춤도 볼 수 있었고, 솔로로 작품화된 김병섭류 설장고춤도 재미있었고, 젊은 춤꾼이 추는 태평무도 신선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젊은이들의 기량이 뛰어났는데 나이 들어야 할 수 있는 우리춤의 절제력을 갖추고 있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회: 정선생님 심사 때도 감탄하셨는데요, 특히 교방굿거리를 춘 서유리 춤꾼이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알고 심사위원 모두 놀랐었지요.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야 당연히 나이가 어리니까 약하다고 쳐도 초반에 압도하는 힘이나 나이답지 않게 절제미를 보여준 것은 앞으로 많은 기대를 하게 하는 춤꾼의 등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프로그램이 좋았었다는 생각인데요, 우리춤의 뿌리인 굿춤부터 무대화, 예술춤화 되어가는 춤들이 망라되어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영덕별신굿의 ‘중나려온다’는 승무로 정형화되기 전의 원형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구요, 고깔소고춤도 전체 풍물패가 아닌 젊은이 3명의 무대로 보니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 두 작품은 특히 악사가 라이브 반주를 보여줌으로서 우리춤이 원래 악가무 일체였구나, 그 맛이 이렇게 강렬한 것이었구나를 깨우쳐 해주었습니다. 다른 비용은 무료지만 참가를 위해 지방에서 악사들까지 올라온 여비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 얘기가 나온 김에 제안하고 싶은데, 내년에는 축전에서 기본악사를 준비해 주면 어떨까 합니다. 경연이라 조건이 같은 것이 예민한 부분도 있는데 MR과 라이브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기본악사를 꾸려 균형을 맞추는 것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각 팀이 꾸려 왔을 때 비용의 중복도 피하게 되구요.

: 요즘 전통춤들이 재미가 없는 이유가 계승제도로 인해 형식적 틀이 강해지면서 틀 안에 갇히게 되었고, 관객은 그 틀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어서 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통춤판이 재밌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래되어 오는 대로,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가 아닌 조금은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자기만의 느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젊은 춤꾼의 힘이 아닐까 하는데, 저는 앞으로 축전의 전통춤판은 춤꾼의 해석과 느낌이 강하게 살아있고, 틀에 갇히지 않은 전통춤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길 바랍니다. 또 그런 춤을 추는 친구들을 지원하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대에 참여하게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포스트 전통춤’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최찬열




: 과거에는 시기적으로 계승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러자니 발굴하여 사라질 수 도 있는 것을 막아야했지만 그 여파로, 그 부작용으로 틀 안에 갇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유지 보존에 불안하지 않기에 좀 더 춤의 생기를 보고 싶은 마음들이 생긴 거지요.

사회: 이번 무대가 춤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것도 그런 춤의 생기가 살아있어서 인 듯합니다. 구음검무를 춘 노수연 춤꾼은 객석을 사로잡았는데요, 녹음음악이었지만 그 역시 구음이 가진 음악적 힘을 한껏 살렸고, 음악을 고려한 매우 섬세한 안무, 노련하게 소화해낸 춤 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날 객석이나 심사위원들께서 논란 없이 으뜸상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양세인 춤꾼이 춘 김병섭류 설장고는 한껏 무대화한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는데요, 대금 라이브 반주도 매우 색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어떤 심사위원은 너무 쇼처럼 됐다, 어떤 심사위원은 현대화 과정의 한 모습이고 실험이라고 본다는 이견을 보인 작품이었지요. 이런 논의를 할 수 없게 공연 중 장고 궁편이 찢어져 소리가 나지 않는 일이 있었는데 관객들이 마음으로 응원하고 함께 하는 무대를 만들어 무대와 객석이 응원 박수로 하나가 되버리고 춤꾼은 다시 마음을 내어 끝까지 추는 열띤 무대를 만들었지요. 한량무를 춘 박정훈 춤꾼은 무대에서 탁월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는데, 남성적 선이 살아있으면서 호방한 춤에 어울리는 조건을 두루 갖춰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춤꾼이었습니다.




노수연 〈구음검무〉 ⓒ장성하



양세인 〈설장고춤〉 ⓒ장성하




전통춤판에 대한 관점들

: 탈춤 출연자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경연에 나오거나 하나의 춤 종목이 되려면 어느 정도 구성 틀을 갖추어야 하는데 탈춤의 일목, 이목 춤들은 춤꾼의 자유로운 춤이기도 하거니와 따로 떼어서 추었을 때를 위해 볼만한 구성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어서 이런 무대에 잘 올라올 수 없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정연도




: 저도 아쉬웠던 점은 남자춤, 마당, 탈춤 등 이 약한 부분입니다. 전체적으로 남자 출연자가 2명 뿐 이었던 걸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무대가 그런 건지… 지금도 다양해서 좋지만 전통춤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는 바람입니다. 정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무대로 올라오지 못한 전통춤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런 춤들이 발굴됐으면 좋겠습니다.

: 민족춤협회가 그런 작업들, 아직 우리 곁으로 오지 못하고 있는 전통춤들을 무대에 오도록 도와주는 기획들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립된 연희종목으로 무대에 오를 기회가 있어야 구성을 고민하게 되고, 구성이 되어 무대에 올라야 관객이 조금 더 가까이 그 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나면 다른 무대의 초청도 이어질 거구요. 탈춤에서 그런 작업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 덧붙이고 싶은 얘기는 민족춤제전의 전체적인 춤판이 오늘춤잇수다, 아재들의 춤수다 등 기존의 전통무용가들이 한국에서 전승되어 내려오는 정형화된 춤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고, 이들이 명무 이후의 춤들을 추고 착실히 따라하고 있는 거라면 젊은춤축전의 친구들은 젊은이들이 기존의 전통을 이어나가기보다 자기만의 춤 범례를 만들어나가는 씨앗이 보였다고 봅니다. 전반적으로는 아직 선생님의 그늘에 있으나 춤의 어떤 장면들이, 어떤 부분들이 춤을 무작정 쫓아가기보다는 본인의 감각으로 이 시대의 전통춤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것 같아 보였지요.

사회: 사전에 심사의 기준을 논의하면서 전통춤판의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전통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이 있느냐, 관객과 어떻게 소통하느냐로 잡았습니다. 전통춤은 전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선생님의 춤을 흉내 내는 것이 강조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나 현재 우리의 전통춤의 계승을 돌아보면 자칫 형식을 지키는 데에 많이 치우쳐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안에 든 춤의 정신이나 생기, 관객과의 어우러짐 이런 것들이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개인의 예술성이 돋보이고 그것에 매료당하는 춤판을 보기 힘든 현실이 전통춤을 재미없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답습만이 강요될 것이 아니라, 강요 받을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더 적극적으로 전통을 새롭게 고민하고 해석하고 창의성을 담아내는 나타나길 기대해 봅니다.




사회_이지현




동시대적 감성의 젊은 한국창작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

사회: 창작춤판에서는 세 작품이나 한국춤을 전공한 친구들이 창작춤을 출품하였습니다. 한작품 만이 현대춤이었구요. 세 작품이 자신들이 창작춤을 추어 온 다른 스타일을 보여 흥미로웠는데, 〈여정〉의 이한빛, 박성현은 아직은 춤언어나 구성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나 정서 중심의 춤으로 교감의 힘을 발휘했고, 〈D-Day〉의 윤혜진(안무), 추세령, 고다연은 한국춤을 춰온 감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현대화된 작품을 보여주었지요. 동작도 거의 현대무용으로 매우 잘 훈련된 무용수가 보여줄 만큼의 속도와 간결함이 돋보였습니다. 연극배우가 객석에서 등장하면서 20대 여성의 구체적 현실-사랑, 일상 등-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등장하고 나머지 두 명은 그녀의 방에 있는 금붕어 두 마리로, 점차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금붕어가 말하지 못하는 존재지만 그녀를 보고 느끼는 무언의 입장들이 재밌게 교차하고 전도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명료함이 관객들이 공감을 받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블라인드〉의 조혜정(안무), 오승희, 조상희는 정돈된 구성으로 완결성 있으면서도 매우 강렬하고 스타일화되어 있는 표현 양식을 보여줬는데요, 그 근원에 표현하고 싶은 실존적인 무거움의 정서가 깊고 뚜렷했습니다. 그 에너지로 립스틱, 구두, 흰 천 등을 사용해 제의적인 앞과 뒤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고 젊은 작품답지 않게 탄탄했습니다.
 유일한 현대춤 작품 〈데칼로그〉는 마카오 출신으로 지금 한국에서 춤공부 중인 소가의의 솔로작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누아르 춤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현대의 인간이 빠진 어둠 그 자체를 분위기로 압도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는데요, 숨기거나 모호한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자신의 몸에 사회에서 강요되는 관습과 윤리를 붉은 립스틱으로 새겨 넣어 그것들을 적시하였지요. 주제가 새겨진 몸이 다시 주제가 되는 순환을 만들어 냈습니다. 객석과 심사위원에게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반응이 있었는데요.

: 저는 이 작품을 참 좋게 봤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소수 민족이 느끼는 감성을 담고 있는 춤이라고 봤구요, 매우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몸에 새겨진 강요된 것들은 지정학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이며, 환경문제, 종교문제 등 많은 것을 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지점들을 함축할 수 있는지 감탄했습니다.

사회: 가는 빨간 실 한 오라기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려 마치 문틀에 갇힌 것처럼 들고 서 있는 뒷모습만을 보여주면서 몸에 새겨진 글씨를 읽게 했던 초반부의 긴장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사회를 이리 예리하게 보고 있다니, 저 작은 한 몸으로 사회를 담아내다니 하면서 놀랐습니다. 근데 저는 그 친구가 앞으로 돌아서는 순간, 영화 ‘조커’의 주제곡이 흐르는 순간 약간 집중이 흐트러졌습니다. 후반부가 좀 약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완결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의 감성에 조금 더 충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현대무용과는 많이 다르게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과 큰 마음이 훌륭해 보였습니다. 정말 성장을 기대하게 하는 친구였습니다.




소가의 〈Decalogue〉 ⓒ장성하




: 이 작품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 민족이라는 단어를 다시 되짚어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춤협회의 축제를 보면서 협회에도 묻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젊은이들이 이 사회의 현실을 바로보고자 하고, 이런 문제를 다루는 주제를 민족춤의 테두리에서 추려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생소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은 더 잘 정리되어 잘 설명되고 남겨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민족춤협회가 명칭에 민족이 있는 만큼 그 단어가 지금의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폐기해도 되는 것인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통춤을 추는 친구들에겐 우리 민족의 춤, 전통적인 춤들이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고, 현대춤을 추는 친구들에게도 동시대 미학에 대한 논의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거기에 보태서 얘기하고 싶은데요, 예술은 사회와의 접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도 자유로움이 더 보장되어야 발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회의식이라는 것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면 자유로운 창작과 실험의 분방함을 공존시키기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지점을 교훈삼아 지금, 여기의 춤의 아름다움을 논한다면 정말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은선, 정은혜 〈영덕별신굿〉 ⓒ장성하




사회: 젊은춤을 얘기하면서 앞 세대의 고민이 깊어지는 거 같습니다. 젊은 세대의 춤은 그들만의 것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거지요. 이렇게 그들의 춤을 통해 시간과 세대, 고민과 희망들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 저는 춤의 매력적인 관능성이 살아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승무도 염불 나오다가 타령으로 가면서 아주 고급스런 관능미를 보여주지요. 그래서 탁월한 춤으로 인정을 받는 거구요. 하지만 문화재가 된 춤에서 그런 부분마저 점차 박제화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춤에서 우리춤의 정수인 그런 멋드러짐, 그런 살아있음, 그런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춤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매력을 젊은이들이 잊지 말았으면 좋겠고 그들이 그런 춤을 추는 것이 보고 싶습니다.

사회: 모든 복잡한 문제를 승무의 관능미로 정리를 하시는군요. (일동 웃음) 마지막으로 이사장께서 축전에 대한 계획을 말씀해 주시지요.

: 앞서 다른 지역의 청년위원회 얘기를 듣고 빨리 교류하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변상아 위원장이 너무 외롭고 힘겹게 하고 있는데 함께하면 도움이 많이 되고 더 풍성한 무대가 될 거 같습니다. 축전 무대에 올라온 좋은 작품들도 다른 지역의 관객들에게 보여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올해 청년위원회가 오롯이 주관한 네트워킹 파티도 더 편한 자리가 되어 젊은춤축전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일 년 내내 자신들에게 필요한 활동을 하면서 생계도 되는 중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관객심사단 10분이 구성되어 심사과정을 함께 했는데요. 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춤에 대해 얘기 나누고 기록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저희 협회에서 젊은 친구들이 꿈과 춤을 펼칠 수 있는 자리는 마련하겠으니 젊은 춤꾼들과 선생님들께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무대에 서고 싶고, 자기의 감성을 펼치고 싶어 하는 젊은 춤꾼은 전국에 다 있겠지요. 작년부터 보이는 축전의 활기는 여러 곳에서 공부한 친구들이 여러 모습으로 참여하는 데서 오는 ‘다양함의 힘’ 아니었나 합니다. 몇 년을 지속해 이곳에서 빛난 좋은 작품들을 모아 춤판을 마련하고 이어나간다면 정말 볼만한 젊은 춤판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가 한목소리로 젊은이들이 어렵다고 합니다. 예술하는 젊은이들은 그 중에도 더 어려운 소수지요. 고용보험, 산재보험도 다 다른 동네이야기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 축전의 무대에서 아직 어리지만 자신의 춤을 꿋꿋하게 추는, 이 어려운 현실에서도 얼굴의 빛을 잃지 않는 그들의 건강하고 밝은 춤을 보았습니다. 한 생을 춤에 담으려는 각오와 그 어려움이 묻어나오는 춤도 보았습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소수자의 어려움과 함께 바라보는 성숙한 마음도 보았습니다. 그것이 이 무대를 잊지 못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축전이 젊은 춤꾼을 보듬고 더욱 확장하길 기대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주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서 다하지 못한 깊이 있는 논의의 계속되길 기대하겠습니다.


녹취 및 기록: 이한별

2020.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