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시리아 난민 캠프촌 청소년 춤 워크숍
그날을 꿈꾸고 있는 그들....
김형희_무용가

"Pipe way with trust"-Lebanon
유난히 더웠던 2018년 9월1일부터 9월14일 13박14일 동안 레바논 베이루트 트리폴리 북부지역과 시리아국경지대 옆 동부지역 자흘레에 살고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촌에서 아동, 청소년 대상으로 워크숍 및 쇼 케이스를 한국메세나협회의 후원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트러스트무용단은 1995년 창단 이후 지금까지 국내외 소외지역 및 일반인들을 위한 공연활동과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어린이를 위한 공연을 지속해오고 있다. "Pipe way with trust"는 무용단의 국제교류의 프로젝트 타이틀이다. 트러스트무용단과 함께 인종, 종교, 이념의 차별 없이 예술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작업을 세계가 하나의 통합된 문화공유를 하고자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작업은 무용단에서 고민의 중심이 되어 있다. 이 시대에 어떻게 녹여낼 지 늘 고민한다. 
 그동안 많은 나라를 다녔다. 몽골, 티벳, 중앙아시아, 터키, 북카프카즈, 아제르바이잔 등 1997년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국제교류를 했지만 2013년부터는 사회공헌프로그램으로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콜롬비아 아시아 이베로 문화재단의 초청으로 사회공헌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후 시리아 난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중동국가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테러와 전쟁으로 위험했고 레바논에는 시리아 난민들의 캠프촌이 있어 안전하다는 정보를 알게 되면서 2017년도에 계획했지만 현지 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를 도와줄 수 없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아쉽지만 다음해로 미루게 되었고 그해에는 동남아시아 라오스의 불발탄 지역 아동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했다. 인도차이나 전쟁 때의 폭탄이 지금도 터지고 그래서 장애아동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폭탄을 장난감인 줄 알고 가지고 놀다가 실명, 손 발 다리가 절단이 되고 파편이 온몸에 박혀 아직도 몸속에 있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평생 집에서만 지내는 아이들을 마을마을 마다 공무원을 통해 찾아내어 장애아동 25명 부모 25명 함께 춤을 추며 감동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2018년 3월 평창문화올림픽 인증사업에서 라오스 아동 청소년 6명을 초청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라오스 불발탄 장애아동들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고 뭔가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춤을 추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레바논 시리아 난민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있었다. 2018년 4월부터 다시 현지 단체와 연결이 되었고 우리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인력과 캠프촌이 확정이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무엇을 나누면 될까... 계속적인 질문과 함께 아무리 형식과 외양이 달라진다 해도 본질은 변할 수 없는 것이 진실일 것이고 모든 예술이 진실을 추구한다면 시대와 세계를 아우르는 인간 본연의 참다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차원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작업은 우리가 만들어낼 존재적 가치일 것이다.

 



 시리아 난민 하면 대표적으로 터키 해안에 떠밀려온 어린아이 쿠르디의 시신 사진일 것이다. 전쟁을 경험하고 공포와 끝을 알 수 없는 혼란과 어둠 속을 치닫고 있는 시리아 난민... 
 전쟁으로 인한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함께 나눌 수 있을지 몇 해 전부터 생각하며 준비를 해 왔었다. 이미 주변국가에는 도시형 난민들로서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지만, 레바논에서는 아직도 천막 캠프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난민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수업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등등의 고민과 함께 준비해 간 프로그램이 과연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표현되고 전해질지 궁금했었다. 몇 명이 올지도 모른다고 한다. 체크가 안 되고 북부지역(트리폴리) 캠프촌 에는 두 군데가 있는데 같은 시리아 사람이지만 민족이 달라 같이 섞이지 않고 따로 해야 했다. 한군데는 아이들이 120명이라고 하고 한쪽은 25명 정도라고 했다. 120명은 수용이 안 될 것 같아 25명으로 정했는데 몇 명이 올지도 모른다고 와 봐야 안다고 했다.  
 첫날 수업 장소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저 너머 나무 뒤에 숨어 아이들은 부끄러워 못 오고 데리러 가면 도망가고 선생님들이 들판을 다니면서 아이들과 손을 잡고 몇 명오니 그 뒤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는데 첫날은 40명 정도의 남녀 섞여 연령대가 어린 3살부터 17살까지 있었다. 큰아이가 오면 여동생 남동생 모두 다 데리고 와야 하는 실정이었다. 원래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니 우리도 도리 없이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을 해야 했다. 이미 남자 청소년들은 일터로 나가 참석은 힘들고 여자 청소년들은 아이들을 돌보며 춤을 추게 되었다.  
 40명과 인사 나누고 수업시작한 지 5분... 그러나 준비한 수업내용은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 집중력 시간 1분... 전혀 듣지 않고 서로 싸우고 때리고, 울고 웃고 한마디로 난장판! 약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학교도 없어 어떤 교육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한 대상에게 집중해서 뭔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생소한 시도였다.  
 수업을 하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설명을 해도 듣지도 않으니 선생님, 통역자 모두 목소리 높여 소리를 지르다 보니 지치게 되고 게다가 아이들이 모일 장소가 없어 흙먼지 날리는 거리에서 해야 했는데, 한 레바논 사람이 자기 집 마당을 내어 주어 그나마 햇볕을 좀 피해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틈만 나면 서로 싸우고 때리고 울고 웃고 정말 정신이 없었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나를 사랑해 주세요! 관심 좀 가져 주세요! 라는 외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이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흡수되어져갔다. 준비한 수업내용을 하나씩 펼쳐보니 처음엔 좀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면서 즉흥적인 요소들을 섞어 표현하기 시작했다.  
 첫날 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이틀째 수업장소로 들어오는 순간 저 멀리 캠프촌 언덕에서 아이들이 모여 우리를 기다리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순간 손을 흔들며 뛰어 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숙소에서 캠프까지는 30분 거리. 차선이 없어 오토바이, 각종 차량, 사람들이 뒤엉켜 정말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운전자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자동차를 탄 게 아니라 꼭 말(horse)을 타고 가는 느낌이랄까? 시내에는 레바논 내전 때 박힌 총알과 자국이 상가건물, 아파트에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창문도 없이 그냥 천으로 덮어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3일째 우린 또 기대하며 아이들이 언덕에서 우리를 반길 것을 기대하고 당연히 우리를 맞이할 것을 기대하며 눈을 돌렸는데 실망스럽게 아이들이 없었다. 좀 실망하려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수업장소에 먼저 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것 아닌가! 그들의 함성은 지금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우리는 대단한 무엇을 가르치러 온 게 아니다. 그들과 함께 놀아주고 춤추며 노는 것이었다. 수업 중간 휴식시간에 간식을 나누어 주면 이때는 꼭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을까봐 새치기를 해야 하고 질서와 양보라는 것은 배울 틈이 없다. 간식을 받고도 거짓말을 하면서 또 받아 가기도 한다. 수업 때 사용한 수업재료도 그냥 옷 속에 숨겨 가져가고 준비해간 선물을 줄 때도 또한 난장판이 된다. 뭔가를 나누어 주려면 어떻게 줘야 하는지 이때 배우게 되었다.  
 아침 9시부터 3시까지 프로그램을 진행을 했다. 처음으로 이렇게 긴 시간에 뭔가를 하나에 집중해 본 것은 태어나 처음일 것이다. 질서 없이 가는 것 같았지만 질서가 있었고 하나씩 무엇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몇 명의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춤을 표현했고 우리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강렬했다. 수업을 마치고 난민 집으로 초대되어 시리아 음식을 만들어 대접을 받았다. 내심 없는 형편에 이렇게 음식을 대접하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걱정했는데 시리아 사람들은 사람들을 좋아해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게 그들의 풍습이라 했다.  
 수업 마지막 날 부모님들과 동네 사람들을 초대하기로 했고 남자들은 다 일터로 나가 참석을 못했다. 여자들, 아이들만 모여 그동안 준비한 수업내용을 연결하여 작품을 만들어 쇼케이스를 했다. 의상을 한국에서 준비해서 가져갔다. 공연은 40분이 넘는 시간을 아이들이 순서를 익혀 스스로 만들어 나갔다. 
이렇게 짧은 연습 기간임에 불구하고 준비한 순서에 따라 음악에 맞추어 춤추며 웃는 저들은 마치 천국에 있는 아이들 같이 행복해 보였다.




 하루 쉼도 없이 바로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북부에서 동부지역으로,  
 북부에서 동부지역은 2시간 정도 이동거리다. 서커스 같은 운전에 산을 굽이굽이 넘어 시리아 국경을 지나 작은 도시 자흘레로 갔다. 동부는 난민학교가 있고 그곳에서 여자청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여학생들은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가방도 만들고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청소년 남학생들은 경제활동을 해야 하기에 참여가 힘들다고 해 남자 10세에서 13세 어린이 20명이 참여하게 되었다. 자흘레에서는 북부보다 좀더 훈련이 되어 있고 이미 많은 교육을 받아본 아이들이라 프로그램 진행이 좀 수월했다.  
 그곳은 여자청소년과 남자아동들 수업을 분리해서 해야 했다. 남자는 여자 선생님이 가르칠 수 없고, 같이 공연도 할 수가 없었다. 완전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래도 동부지역 남자 아이들은 이미 다른 교육을 많이 받아본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집중도 잘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잘했다.  
 이슬람국가의 여학생들은 움직임에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남자 아이들은 얼마나 유연한지 스트레칭과 물구나무는 기본이었다. 남자아이들은 역동적인 동작을 좋아해 트러스트 무용단의 레파토리 중 아주 열정적이고 강렬한 움직임 부분을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맞게 다시 정리를 했다. 지난 수업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에는 가족 친구 학생들 앞에서 여자청소년, 남자어린이로 각각 나누어 공연을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장 가슴 뭉클한 한 장면이 기억난다. 남자 아이들이 한명씩 나와 관객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의 시선은 진지했고 뭔가를 말하고 싶은 외침으로 느껴졌다. 난민으로 살면서 여러 부분에서 불편하고 모자란 상황가운데 처하다 보면 잃어버리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바로 한 인격으로서의 품격이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지원 앞에서는 누구나 생존을 위해 전투적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거짓말과 속임이 난무하고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생존인 것이다. 한 시리아 아저씨가 독설을 날렸다. 도와주려면 제대로 도와주라는 것이다. 지원을 받다가 보면 자립하기보다는 그냥 지원을 받는 쪽으로 남아버리려는 인간 본성의 영리한 게으름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로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삶의 여러 분야에 안정적인 공급을 받고 있었다. 앗시리아 민족의 후예로 자긍심이 높은 시리아 사람들은 아랍 국가에서도 관대하고 넉넉한 인심으로 유명하던 민족이었다. 그런 시리아 민족이 전쟁 앞에서 속절없이 그 넉넉한 민족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는 한 시리아 난민 지식인의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우리를 그저 물건이나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난민으로만 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런 시선과 도움이 오히려 내가 난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고 한다. 진짜 난민을 만드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상황이 아니라 난민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대우라고 한다. 교육에서도 한 아이를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듯이 우리가 그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때, 그저 구호물품을 툭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필요들을 듣고 그들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 그들에게 희망과 기대들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쟁이 오래 지나 이제는 조금씩 정착해 가는 난민들에게 이제는 좀 더 차원 높은 접근과 도움이 필요하다. 난민들을 난민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그들을 더 힘들게 할 따름이다. 그들에게도 꿈이 있다.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갈 그날을 꿈꾸고 있는 그들을 위해 우리는 다시 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2019년에도 레바논 베이루트 극장에서 10월중에 공연을 가질 계획이다. 워크숍을 통해 만난 춤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는 남자아이들 4명과 베이루트에 살면서 춤 동호회를 만들어 금요일마다 길에서 연습하는 시리아 청소년들, 트러스트 무용단과 함께 작품을 만들 계획이다. 춤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아래 더불어 사는 세상의 가치를 높이고 2019년은 서로 간의 화합, 사랑, 희망, 평화의 해가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김형희
1995년 사단법인 트러스트무용단을 창단, 대표와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함께 나눌 이야기를 춤을 매개로 나누고자 한다. 2017년 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케인 앤 무브먼트 무용단의 예술 감독이기도 하다.

2018.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