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동래야류〉의 핵심과 영남 춤의 질감, 그리고 위트와 위로를 담아냈다
김영희_전통춤이론가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 무용단이 정기공연으로 6월 3, 4일 연악당에서 ‘야류별곡(野流別曲)’을 공연했다. 무용단의 정신혜 예술감독이 안무와 연출을 맡았고, 박숙영이 안무를, 천정완이 대본을, 주혜자가 협력연출을 했다. 반주는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이 맡았다. 2014년에 무용단 정기공연으로 올린 〈춤극 야류 I – 문디야 문디야〉와 2016년 〈춤극 야류 Ⅱ- 달 숲 아래〉가 영남의 야류와 오광대놀이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새롭게 스토리를 입힌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부산의 대표적 탈놀이인 국가무형문화재 18호 〈동래야류〉(東萊野遊​)의 틀을 흔들지 않고 무대화한 작업이었다.


〈야류별곡〉은 프롤로그 - 달의 시간으로 사는 마을, 1장 문둥과장, 2장 양반과장, 3장 영노과장, 4장 할미과장, 5장 동살맞이, 에필로그 - 해의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이 구성은 〈동래야류〉의 전개 과정을 그대로 따랐으나, 4장 할미과장에서 할미의 상여가 나간 이후의 뒷놀이를 5장 동살맞이로 따로 설정하였다. 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설정하여 동래야류 본놀이의 앞뒤에서 벌어지는 줄땡기기, 연등 길놀이, 뒤풀이 과정이나 동래야류라는 축제 내지 통과의례의 의미망, 그리고 연출 의도를 담아냈다.

프롤로그에서 본놀이 전 동래의 동부와 서부 마을이 겨루었던 줄땡기기를 짧게 상징화했고, 말뚝이탈을 놀리며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달맞이춤을 추자 무대 중앙 웜홀같은 무대장치에 여성 춤꾼 1인이 등장하면서 달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춤꾼이 말뚝이 탈을 쓰자 동래야류의 본 놀음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문둥과장 ⓒ국립부산국악원




1장 문둥과장에서는 원래 동래야류에 등장하는 2명의 문둥이를 문둥이 부부로 설정했다. 그리고 문둥애기 인형을 등장시켰는데, 문둥이 부부의 금지옥엽 아이이다. 문둥이로 천대를 받지만 숨이 붙어있으니 살아내야 하며, 살아있는 한 생명을 이어가야 했다. 문둥애기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과 생명성을 표현한 매개라고 하겠다. 실제 아이를 등장시키지 않고 2인의 인형잡이가 인형을 연기시키므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따뜻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했다.




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양반과장 ⓒ국립부산국악원



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영노과장 ⓒ국립부산국악원




양반과장에서는 원형 놀이판에서 추는 춤들을 일면 무대에 맞게 동선을 재구성했고, 양반과 말뚝이의 대사를 가능한 축약하면서 갈등의 핵심을 드러냈다. 각 인물 - 원양반, 차양반, 모양반, 넷째양반, 종가도령의 연기도 능란했으며, 영남 남성 덧배기춤을 훤칠히 보여주었다. 3장 영노과장은 영노가 전혀 쓸데없고 허식(虛飾)에 싸인 양반을 벌주는 내용이다. 영노는 양반 100명을 먹으면 승천한다는 상상 속의 가상 동물이다. 원전과 다르게 영노를 5명으로 확대했으며, 등판 전체에 탈을 씌우고 굵고 긴 털이 휘날리게 탈을 변형했다. 이렇게 5명의 영노는 큰 동작으로 양반과장 다섯 인물을 압도했다. 결국 오케스트라 피트의 무대가 내려가면서 영노의 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양반을 벌하였다. 영노과장의 표현을 춤으로서 에너지를 증폭시켰기 때문이었는지, 말뚝이의 역할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요 장면을 이끄는 이야기꾼이었다.




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할미과장 ⓒ국립부산국악원




4장 할미과장은 할미와 영감, 제대각시가 등장하는 처첩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마당이다. 각 인물의 춤동작들은 곧바로 3자 간의 갈등을 보여주었고, 관객들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런데 할미와 제대각시의 갈등이 전개되면서 잠간 퇴장했던 제대각시가 다시 등장하는데, 12명이 줄줄이 들어왔다. 와아- 젊은 것들! 늙은 할미가 젊음을 어찌 당해낼 수 있는가. 생명의 본질을 꿰뚫은 감각적인 발상이다. 또한 그 상황을 만든 영감을 욕망 덩어리로 표현했다. 하지만 먼저 삶을 살아내고 생명을 남겨준 할미를 추모하며 할미의 상여를 배웅한다. 등장인물 전체가 6면체의 하얀 등불을 들고 너울거리며 무대를 한바퀴 돌고 떠나는데, 이 장치는 할미의 상여이기도 하며, 등장인물들의 자기 위무(慰撫)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또는 마음을 다잡고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할미과장의 상여 나가는 장면 ⓒ국립부산국악원




뒷풀이 내지 뒷굿이라 할 수 있는 5장 동살맞이는 본래 동래야류의 에필로그인 셈이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등장인물들이 탈을 벗고 탈 벗은 얼굴로 서로 눈맞춤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문둥애기와 말뚝이의 장면은 후렴의 후렴인 셈이었다.

〈야류별곡〉은 우선 〈동래야류〉를 잘 보여주었다. 양반과 상놈 말뚝이의 갈등, 쓸데없고 사회악이었던 양반과 이를 벌하는 영노들의 갈등, 영감을 두고 벌어지는 할미와 제대각시의 갈등이 선명하게 표현되면서 흥미진진했다. 이는 원전의 탄탄함 뿐만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없애고 본래 각 마당의 갈등구조들을 선명하게 강화하면서, 연출과 안무가 이를 극대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원전에 없던 몇 가지 오브제들을 첨가하여 내용 전개에서 감성의 흐름을 극대화시키고 볼거리도 많아졌다. 문둥과장에 등장한 문둥애기 인형이나, 12명으로 강화한 제대각시, 5명의 영노, 상여를 대신한 하얀 등의 행렬, 그리고 무대 중앙에 여러 겹으로 표현한 웜홀 모양의 무대장치는 낮과 밤, 현실과 꿈,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장치였다.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상여가 나간 후, 말뚝이로부터 시작하여 등장인물들이 서서히 겹겹이 모여들며 전출연진이 군무를 펼치는 대목이었다. 영남 덧배기의 맞춘 군무를 추다가 허튼춤으로 풀어 추어냈고, 다시 동래야류의 춤 동작들로 추어낸 전출연진의 춤이 장관이었다. 물론 옥의 티도 있었다. 1장에서 2인의 문둥이춤이 조금 길었고 서사가 약했으며, 프롤로그에서 말뚝이춤도 연출의도에 맞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상여가 떠나는 장면에서 춤꾼들의 호흡을 좀 더 가다듬어야 하겠고, 말뚝이와 문둥애기의 마지막 장면은 사족으로 느껴졌다.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의 프로시니엄무대에 올려진 〈야류별곡〉은 원전 〈동래야류〉의 핵심과 영남 춤의 질감을 잃지 않았고, 현재적 감수성으로 위트와 위로를 주기도 했다. 별곡(別曲)은 별도의 악곡이자 노래이다. 원전과는 다른 별곡을 그려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성과이다. 국립부산국악원의 브랜드 작품으로서 충분하며, 다른 지역 관객들에게 영남 풍류의 별곡으로서 선보일 만하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
2022. 7.
사진제공_국립부산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