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구미시립무용단 〈호형虎兄〉
관객과 춤추는 이들 간의 기대지평, 그 넓이
권옥희_춤비평가

구미시립무용단(안무자 김현태)이 신작 〈호형虎兄〉(구미강동문화복지회관 천생아트홀, 6월16일)을 올렸다. 올해 새로 부임한 안무자(김현태)의 첫 무대다.

1989년 창단공연을 시작으로 63번째 정기공연 무대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구미시민들에게 춤예술의 가치를 알리고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치 아래 (터무니 없이) 열악한 환경을 모두(관(시),무용단원,안무자)의 춤 의지로 다져, 마침내 밟고 선 무대다. 지난해 내부적으로 큰 위기(존폐여부)를 겪은 저간의 사정은 그동안 무용단이 지역에 기여한 시간을 상기하는 것으로 그 일에 대한 거론을 대신할까 한다. 다만 (국)공립 예술단체의 활동과 그것을 향유하는 시민과의 관계는 그 어떤 것보다 우선된다는 원론, 모두 잊지 않았으면. 다시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안무자 김현태가 견지해온 춤의 힘은 창작과 전통을 아우르는 한국춤의 정서와 모더니즘으로 훈련된 문화적 감수성에 있다. 하지만 공공단체의 현실적 춤 실천은 안무자가 안무 의도로 세계상을 선택하고, 이 선택으로 관객이 결정되고 이 결정으로 다시 안무자의 주체가 확보된다. 춤은 특정한 관객을 상정하지 않는다. 관객이라는 층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관객(시민)이라기보다는 춤을 보고 즐기고(이해하면 더 좋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이다. 안무자가 안무 의도를 관객과의 눈높이 지점을 세속이 초월한 곳에 둘 수만도, 그렇다고 관객 확보에 등한할 수도 없는 이유다. 안무자로서 (공공단체의) 생존이라는 것이 허공에 떠 있을 수도 없고, 세속을 초월할 수도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여러 의미에서 춤은 관객(시민)과 소통하고 수용되어야 하는데.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춤이 발휘하는 강렬한 힘, 그 자체가 지닌 자율적 구조로 자연처럼 순환될 것이라 믿는 수밖에.

올해(흑호黑虎의 해) 임명된 안무자(김현태)는 이 수용의 문제를 ‘모든 삿된 기운이 물러나기를 바라’며 문학(아동문학)과 연루된 춤의 인문학적 담론으로 시민과의 소통과 대중성에 무게를 둔, 총 6장의 춤극으로 풀어낸다. 소파 방정환의 1926년 동화(〈호랑이 형님과 나무꾼 아우〉)와 한국 콘텐츠대상을 수상한 ‘호랑이 형님’이라는 두 편의 작품을 접목, ‘용맹’함과 ‘정의’라는 의미와 상징을 담은 춤의 서사를 따라 가다보면 마지막, 제의와 문화로 귀결되는 에필로그를 만나게 된다.








구미시립무용단 〈호형〉 ⓒ구미시립무용단




소나무가 울창한 깊은 숲(영상)에 ‘산군’이라 불리는 호랑이(김교열)의 포효소리와 함께 김교열(산군)이 발과 팔을 바닥에 붙이고 느리게 움직이다가 두 발로 우뚝 서며 시작되는 춤 이야기는 이렇다. 냉산(冷山)이라는 곳에 영토를 수호하는 ‘산군’이라 불리는 호랑이가 살고 있었고, 승지(최재호)라는 소년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산군’과 맞닥뜨리자 꾀를 내어 형님을 만났다며 넙죽 엎드리며 절을 한 뒤 같이 어머니를 만나러 가자고 한다. ‘산군’은 짐승의 모습으로 어머니를 만날 수 없다며 거절하는 1장 ‘산군’과 2장 ‘승지’의 이야기를 극으로 풀어낸다. 장과 장 사이에 흰색의상을 입은 아름다운 군무진의 춤으로 평화로운 마을 풍경을 그려내는 춤의 배치로 춤극임을 환기시킨다. 이어 산군과 대척점에 서 있는 마을을 노리는 ‘붉은 삵’의 존재를 암시하는,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붉은 기운이 마치 마을을 덮치는 듯한, 영상과 장치를 배경으로 삵들의 군무가 이어지는 3장에 이어 4장, 산군이 토끼(빨간색 토끼 탈이라니)를 사냥하는 코믹한 상황과 사냥한 토끼를 어깨에 메고 집 앞에 내려놓는 신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아동극에 가까운 신. 산군을 도와 붉은 삯들의 무리에 맞선 검(검무 검)을 든 흰색의상의 군무. 아동의 눈높이에 맞춘 직설적인 극과 비유적인 춤 언어가 겹쳐 나타나는 5장, 붉은색 토끼가 춤의 개화를 막았다.








구미시립무용단 〈호형〉 ⓒ구미시립무용단




마지막 6장. ‘붉은 삸’ 무리와 전쟁 중에 산군을 지키려다 죽음을 맞는 어머니를 그려낸 신. 무대 천장에서 내려뜨려진 붉은 색 천에 꽃대가 휘듯 매달린다. 피를 상징하는 듯한 붉은색이 흰색의상을 휘감은 선명한 대비로 희생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선 ‘산군’의 포효소리. 모친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여긴 ‘산군’이 자책하며 추는 김교열(산군)의 솔로. 고통과 슬픔으로 무너지는 철저함이 보이는 춤이었으면 하는 아쉬움. 무대 중앙으로 옮겨 선 그를 마을사람들이 에워싸자 우뚝, 바위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신은 죽음너머까지 존속되는 관계의 힘을 잘 그려냈다. 예술의 힘은 논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논리가 마침내 가서 닿아야 할 무한한 감정, 몽환에서 만들어진다. 아들과 산군의 용맹한 춤, 어머니역할의 윤민정의 아름다운 춤과 붉은 삯들의 역동적인 춤과 강렬한 비트의 음악으로 풀어낸 장에서 젊은 안무가의 분출하는 에너지를 본다.




구미시립무용단 〈호형〉 ⓒ구미시립무용단




이후 산 정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던 바위를 ‘범바위’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 범바위가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은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로 제의가 되고, 문화가 되었다는 에필로그에서 〈호형〉은 ‘범바위’에 얽힌 호랑이와 옛이야기를 발견한다는 식의 상투적 진술을 벗어난다.






구미시립무용단 〈호형〉 ⓒ구미시립무용단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극 형식의 1장, 2장, 4장의 허구성과 춤으로 지탱한 3장, 5장, 6장에서의 추상성, 안무자는 이 두 틈새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한 쪽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는, 좁은 틈을 건넘의 용맹이 춤을 춤답게 할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까지 고려한 대중성과 춤의 예술성의 겹침의 부분을 일부분 확보한 듯.

짐작컨대 〈호형〉 작업 내내 안무자 자신이 추구하는 춤의 존재방식과 관객들에게 수용되는 춤에 대한 풀기 어려운 질문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 수용을 보장해주는 것은 예술단체가 속한 관(시)과 문화예술회관, 지역의 언론, 춤계 같은 제도들인데 이 문화적 제도라는 것이 그 제도성을 겉에 드러내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시민 관객이 춤 공연 한 편을 보기 위해, 혹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춤 공연을 보러 극장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아직 이르지 못한 사회와 경험하지 못한 행복에 대한 신조의 표명일 수도 있을 터. 관객과 춤추는 이들 간의 기대 지평이 넓어보였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 ​ ​ ​​​​​​​​​​

2022. 7.
사진제공_구미시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