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랑스에서 보내는 엽서 11
답을 정하기 전에 스스로 판단부터 했어야지
남영호_재불무용가

프랑스에서 가진 몇 가지 질문,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싶다.

내 주위의 프랑스 친구, 지인들은 된장찌개를 맛있어 하고 좋아한다. 나에게는 아주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물었다. “된장찌개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라고. 그들의 대답은 “된장찌개가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냄새가 나는 것은 냄새가 나는 것이고, 맛이 있는 것은 맛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다르다. 프랑스의 치즈도 냄새가 나지만 맛은 있다. 아예 어떤 것은 냄새 가 독할수록 맛은 더 있다. 그래서 냄새는 나지만 맛은 있다”라고.

프랑스 부부들이 둘이서는 이혼, 헤어졌지만 자녀들의 문제로 종종 서로 전화하면서 의논하는 것을 보면서 “저러면서 왜 헤어졌지?”라고 물으면, 자기들은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졌지만, 애기 엄마 아빠로서 애들은 엄마, 아빠가 다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일은 서로 의논하면서 최상의 것을 찾는다고 했다.

나는 프랑스 와서 초창기 때 치즈를 안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원래 동물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당연히 치즈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프랑스 친구 집에 초대받아서 갔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치즈와 빵, 샐러드가 있었다. 난 배가 고픈 터에 조심히 치즈를 조금 잘라서 빵과 먹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 조금만 천천히 요기만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치즈 입에 넣고 여러 번 씹었는데, 입안의 치즈가 부드러워지면서 맛이 고소하고 맛있어지는 거였다. 갑자기 혼자 당황하면서 또 조금 더 치즈를 먹었다.

정말 내가 고른 치즈가 맛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그동안 내가 치즈를 안 좋아한다고 한 말은 잘못이었다고. “나는 치즈를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나는 치즈를 잘 모른다”고 표현했어야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모른다고 했어야 할 자리에 안 좋아한다는 말로 대신했었는지 알게 되었고, 참 많이 부끄러웠다.

그 후로 내가 말하는 것이 좀 더 디테일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몽펠리에




친구가 나 보고 “너는 자주 나에게 사람들이 이게, 이렇게 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잘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래서 왜? 뭐?”라고 물었더니, 그는 “너는 ‘자신이 느껴보지도 않고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들었던 것을 너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뭔가 한 대 띵 맞은 느낌, 당황스러웠고, 곰곰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자존감의 문제였다.

가령, 어떤 좋은 것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 좋은 어떤 것은 나에게도 좋은 것인지? 그것을 나도 좋아 하는 것인지? 나에게 맞는 것인지? 등등 나와의 많은 물음을 통해 그 답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남들이 좋다고 한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마치 내가 좋아한다고, 나도 좋아한다고 착각 해본 적은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었다.






몽펠리에




어느 셰프가 과일 잼을 냄비에 익힐 때 직원 셰프에게 살구 50개를 넣었으니 50개의 씨를 걸러 내라고 시켰다. 그 직원은 알겠다고 하면서 살구가 익혀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씨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직원 셰프는 아무리 찾아도 씨는 49개밖에 없었다. 몇 번을 다시 찾아보고 하다가 결국 상사 셰프에게 아무리 찾아봐도 씨를 49개 밖에 못 찾았다고 했다. 상사 셰프는 그 직원 셰프 에게 웃으면서 알았다고 했다. 상사 셰프는 사실 살구 49개를 넣었고, 직원에게 50개를 넣었다고 얘기한 것이었다. 그 셰프는 직원 셰프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어느 날 오페라 극장에서 하는 춤 공연을 보러 갔었다. 그 당시 잘 나가는 프랑스 안무가의 작품이었는데, 아주 유명한 노래에 맞춰서 여러 무용수들이 서로 안고 즐기는 춤을 추면서 1시간 20분을 하는데, 나는 그 안무가의 의도와 안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춤을 좋은 음악에 기대어 모독 배신하는 느낌에 분노가 일었다. 그런데, 오페라 극장에 보러 온 모든 관객들은 그 작품에 기립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 황당해하며 마치 군중 속의 소외를 느끼며 집으로 와서 막 울었었던 것 같다. “왜 그 많은 관객들은 좋아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가?” 묻고 또 물었었다.






샤토 주인이 경영하는 몽펠리에의 레스토랑. 점심까지만 영업한다.




몽펠리에에 내가 아는 아주 서로 다른 레스토랑 두 군데가 있는데, 두 곳 다 몽펠리에에서 나름 아주 잘 나가는 레스토랑이다. 두 곳 다 장소도 넓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 근데, 이 두 레스토랑은 점심만 한다. 한 곳은 샤토 주인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으로 하루에 메뉴도 딱 두 가지만 하고 메뉴는 매일 바뀐다, 예약 없이는 전혀 먹을 수 없고, 일반 정식 레스토랑보다 맛도 좋고 가격도 괜찮다. 많은 직장인들이 점심 미팅에 많이 이용하는 레스토랑이다.

난 어느 기회에 그 레스토랑 세프와 얘기할 수 있었다. 그 세프는 이 레스토랑은 5명 이 아침 8시에 시작, 오후 3시가 되면 끝난다고 한다. 본인은 이후 시장에 가서 그 다음날 할 메뉴를 생각하고 저녁 시간은 가족들과 보내기도 하고, 다른 공연들을 보러가기도, 외출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세프는 중국 상하이에서 2년 정도 프랑스 레스토랑을 한 경험으로 요리에 크림을 잘 사용하지 않고, 그 대신 간장, 참기름 등 아시아 요리 재료들을 이용해 메뉴를 창작한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레스토랑이 잘되는데 저녁 식사까지 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는데 그의 답은 “노”였다. 레스토랑이 잘된다고 해서 일상생활을 모조리 레스토랑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점심만 하면서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고 했다.






몽펠리에의 채식 위주의 레스토랑. 점심까지만 영업한다.




또 다른 한 군데 레스토랑은 겉은 아주 평범한 레스토랑으로 여러 가지 샐러드의 뷔페식으로 운영되는데 가격이 아주 파격적이다. 오늘의 메뉴도 선택할 수 있고, 그렇지 않고 샐러드 뷔페만 선택하면 거기에 가격이 더 작아진다. 한동안 채식 친구와 퍽 자주 갔었다. 이 레스토랑은 아예 예약을 안 받고 오는 순서대로 하다가 음식이 없어지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이 레스토랑도 친구들 다섯 명이 함께 시작했다고 한다. 모두들 결혼해서 자녀들도 있기 때문에 저녁 식사까지는 할 수 없다는 거였다.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2. 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