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夢遊桃源舞)
또 만난 차진엽 포스(force)
이만주_춤비평가

춤으로 그린 샹그릴라(Shangri-la). 이 혼탁한 세상에서 잠시 몽환의 세계에 젖었다. 15세기 안견(安堅)이 그린 꿈속의 이상향이 21세기 현대춤 무용가의 안무와 국립무용단 전통춤꾼들에 의해 춤으로 재탄생되었다. 한국회화사 최고 걸작 중 하나인 몽유도원도(圖)를 6세기라는 긴 세월 지나 몽유도원무(舞)로 재현한 현대무용가. 그에 호응하여 첫날부터 객석을 꽉 채운 팬덤(fandom). 차진엽의 역량과 인기가 다시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국립무용단
(손인영 예술감독)은 색다른 작업을 기획했다. 현재 현대무용 분야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안무 작업을 하고 있는 차진엽과 고블린파티를 초청하여 작품을 의뢰한 것이다. 1년간의 준비와 10주간의 집중적인 협업. 드디어 지난 4월 21~24일 국립극장의 달오름극장에서 ‘더블 빌’(Double Bill)이라는 큰 제목 아래 1부는 고블린 파티의 〈신선〉, 2부는 차진엽 안무의 〈몽유도원무〉의 공연이 올려졌다(필자 4월 21일 관람).




 

국립무용단 ‘더블 빌’_ 차진엽 〈몽유도원무〉 ⓒ국립극장




안무자 차진엽은 처음 국립무용단의 협업 제의를 받았을 때, 우선 한국문화의 정체성이 무엇일까를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산도 많고, 고개도 많고, 강도 많고, 내도 많으니 '굽이굽이'를 머리에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환경에서 영향받은 한국의 정서와 미학의 본질 또한 유장성(悠長性)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한국인의 근성도 모두 ‘굽이굽이’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고 추론했다. 그러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떠올리고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을 했고, 춤도 음악도 미디어아트도 모두 ‘굽이굽이’ 컨셉(concept)으로 가기로 작정했다 한다.

과거, 동양에서는 글씨를 쓸 때나 그림을 그릴 때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몽유도원도는 파격적으로 왼쪽 구석에서부터 오른쪽 위로 전개되어 나간다. 우연의 일치인지 안무자가 연구를 한 것인지, 춤 작품, 몽유도원무 역시 무대 왼쪽 아래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안무자는 이심전심으로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안견에게 들려준 안평대군의 마음이 되었고 화폭을 완성해 나가는 안견의 의중이 되었다. 몽유도원도는 크게, 속세인 현실세계, 중간경계,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르는 이상향인 도원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진엽은 그 세 개의 세계 중, 대비되는 현실세계와 이상향의 표현을 염두에 두었고, 현실세계에서 이상향까지 가는 과정을 그리려고 했다.


“전반부의 장면은 영상과 의상 모두 흑백으로 표현하여 몽유도원도에서 보여준 현실세계의 수묵적 느낌을 살리며 비선형적 시간과 공간을 원근감 있게 펼쳐낸다.” 이같은 안무자의 의도대로 현실세계의 시작은 무대 앞에 쳐놓은 얇은 천 뒤에서 여자 무용수들이 낮은 자세로 춤을 추는 것을 실루엣 내지는 그림자극 형식으로 처리했다. 수묵, 즉 검은 색의 톤과 느낌을 유지했다. 그림에서는 옛부터 이상향을 뜻하는 복숭아나무 숲을 담채로 그렸지만 이 춤 작품에서는 이상향이란 초현실세계임을 나타내기 위해 빨간색, 초록색 같은 현란한 색으로 무대를 채웠다.

작품의 처음서부터 한 남자 무용수가 큰 봇짐을 등에 지고 계속 오른쪽으로 길을 간다. 그는 아마도 도원경을 향해 가는 안평대군일 수도 있겠고 모든 인간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 옛 마야의 달력(Mayan calendar)을 보면 가운데 무거운 등짐을 진 사람이 그려져 있다. 그만큼 인생역정이 힘든 길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남자 무용수의 큰 봇짐은 7개의 짐으로 나누어져 7명의 남녀 무용수가 각각 지고 길을 재촉한다. 드디어 도원경에 도달해 짐을 벗어버리고 환희의 춤을 춘다. 그리고는 다시 어두운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한 폭의 그림에 담긴 몽유도원을 살아 움직이는 현묘한 아름다운 몸의 몸짓으로 그려보겠다”는 안무자의 의도는 국립무용단의 출중한 한국춤꾼들 김미애, 조용진, 김은이, 황태인, 박지은, 최호종, 이도윤, 박혜지, 박준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 중에는 비보잉에 필적하는 땅재주, 자반뒤집기의 기량을 보여주는 무용수도 있었다. 요즘 한국창작춤의 경우는 한국전통춤의 몸짓이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현대무용가가 안무했음에도 원체 실력파 춤꾼들이다보니 한국춤의 춤사위가 역력히 들어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들 열정이 넘치는 무용수들에게 안무자 자신도 국보급 무용수들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에 따라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면서 선묘와 수묵과 담채가 어우러지게 그려나간 것이 몽유도원도의 특징이다. 비단 폭에 수묵과 담채의 풀림과 번짐으로 낮은 산과 고산준봉을 묘사하던 붓을 현대의 미디어아트라는 테크놀로지가 대신했다. 먹물의 풀림과 번짐이 무대에 설치된 가는 철선으로 된 막에 미디어아트에 의한 영상의 변화로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것이 경이로왔다. 신디사이저 음악과 무대 한쪽에서 연주된 거문고의 생음악이 몽유도원무에 풍류를 더했다.

 




국립무용단 ‘더블 빌’_ 차진엽 〈몽유도원무〉 ⓒ국립극장




1447년 조선시대 초기, 역사 속의 그림을 한 무용가가 현대로 끄집어내어 춤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그 자체가 가상하다. 누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한국인에겐 전설과 같은 그림을 6세기라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춤으로 만들어 내보인 것은 뜻깊고도 뜻깊은 작업이었다.

차진엽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녀는 이번 공연으로 문화정책 당국자와 우리 모두에게 큰 숙제를 던졌다. 몽유도원도는 한국회화사
최고 걸작 중 하나라 할 수 있으며 김종서, 이개,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정인지, 서거정 등 당시 기라성 같은 인물 23명이 친필로 찬한 그림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손재형이라는 한 집념의 한국인에 의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엉뚱하게도 일본 나라 시, 덴리(天理)대학교 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몽유도원도 원본을 과연 누가 어떻게 찾아올 것인가?


필자는 무용평단에 늦게 나왔기에 차진엽의 20대 활동과 유럽에서의 활약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귀국한 후 30대 초반부터의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 현대춤 작품, 〈로튼 애플〉(Rotten Apple)을 시작으로 〈페이크〉(Fake), 〈미인〉(MIIN) 등을 보았다. 그녀는 여성이 직면하는 불평등의 문제, 결혼제도, 출산 등 페미니즘의 이슈를 주로 다루었다. 페미니즘은 여성 예술가들이 흔히 다루는 주제이다. 그러나 예술이란 ‘무엇을 다루었나’보다 ‘어떻게 만들었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녀는 타 장르와의 융합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작품마다 완성도 높은 문제작을 만들었고 그러기에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같은 이슈를 갖고도 담론으로 만들었다.


‘코로나19사태’가 불거진 2020년부터는 원형(原形, 原型)과 원형(圓形)의 중의적 뜻을 갖는 ‘원형하다’라는 낱말을 자의적으로 만들어(coining), 제목을 〈원형하는 몸〉으로 내걸고 ‘round 1’, ‘round 2’ 두 개의 작품을 공연했다. 자연과 생명, 존재와 순환의 문제를 ‘round 1’에서는 물과 얼음을 오브제로 사용하면서 거시적 안목에서 다루었고 ‘round 2’에서는 현미경 속 세계인 짚신벌레 같은 미생물의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미시적인 해석의 입장에서 춤으로 표현했다.

나는 이번 몽유도원무를 보기로 계획했으나 방심하고 있다가 표를 구하지 못한 지인을 위해 표를 구하는 일을 해보았다. 개막 수일 전인데도 첫날 표부터 매진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극장 측에 어떤 날, 어떤 좌석의 표든 취소되면 구입하겠으니 연락을 달라고 했다. 계속 돌아오는 답은 취소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차진엽 포스’, ‘차진엽 신드롬’(syndrome)을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국립무용단은 차진엽을 내세운 스타마케팅*에 성공한 것이다. 공공무용단이 분위기를 고양시키기 위해 차진엽을 안무자나 무용수로 초청해 그녀를 제일 나중 공연자로 해놓고 관객들을 불러모으곤 하는 지도 꽤 되었다. 그녀는 댄스 필름도 많이 찍었고 2018년 11~12월, KBS가 야심적인 다큐멘터리 프로인 ‘우루무치에서 서울’에 이르는 〈매혹의 실크로드〉를 제작할 때도 주연 무용수로 발탁되었다. 그녀는 팬덤을 가진 드문 경우의 춤꾼이 된 것이다.

 




국립무용단 ‘더블 빌’_ 차진엽 〈몽유도원무〉 ⓒ국립극장




차진엽은 36살 나이에 2014년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안무 총감독을 맡아 성공시킨 이래, 39살에는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현대무용 부문 안무감독에 지명되어 다음해 2018년 우리가 주최한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어서 2021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폐막식 예술감독을 맡는 등, 국내 중요행사에서 자주 안무, 연출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얼마 전까지는 50~60대 원로 교수가 하던 일이었다. 차진엽은 어떻게 보면 아직 젊은 나이에 한국의 ‘계관’(桂冠)무용가**가 된 것이 아닐까.

유럽에서 처음으로 독일 뒤셀도르프 시에 ‘춤의 집’(Tanz Haus, Dance House)을 만든 춤기획자 베르트람 뮐러(Bertram Muller)는 말한다. “한국은 예술춤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멕시코와 더불어 춤 자산을 가장 많이 갖춘 나라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피나 바우쉬(Pina Bausch)나 오노 카즈오(Ohno Kazuo, 大野一雄), 아크람 칸(Akram Khan) 같은 세계적인 무용가가 나오지 않는가? 안타깝다.”

한국의 춤계에서도 김연아, 손흥민 같은 세계적인 스타가 출현해야 한다. 그러면 춤 예술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진정한 문화예술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BTS,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의 성공과는 또 다른 국가적 도약이 되는 것이다.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가 끝나기 바쁘게 차진엽은 6월에는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는 영국 런던으로 또 벨지움으로, 7월에는 연극과 음악과 맥주의 도시인 미국 오하이오 클리브랜드로 가서 공연한다 한다. 공연의 성과를 바라며 그녀가 세계적인 스타로 날아오르기를 염원한다.


* 스타 마케팅(star marketing): 스포츠ㆍ방송ㆍ영화 등에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스타를 내세워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마케팅 전략.
** 계관무용가: 17세기부터 영국 왕실에서 국가적으로 뛰어난 시인을 ‘계관시인
(Poet Laureate)’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호칭했다. 이들은 종신직으로 국가의 경조사에 공적인 시를 지었다. 이에서 중요한 국가행사나 공적인 행사의 안무, 연출을 하는 차진엽을 ‘계관무용가’라고 칭해본 것이다.

이만주
춤비평가. 시인. 사진작가. 무역업,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고 ‘터키국영항공 한국 CEO’를 지냈다. 여행작가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사회성 짙고 문명비평적인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과 「삼겹살 애가」를 출간했다.​​
2022. 6.
사진제공_국립극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