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젊고 푸른 춤 벗나래들 1
어떠한 춤으로 세상에 첫걸음을 뗄 것인가?
채희완_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춤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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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춤으로 첫걸음을 뗄 터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춤 새내기 여러분!
초등 6년에, 더하기 6년, 더하기 4년, 16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이제 막 세상에 첫걸음을 내딛고자 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동안 나를 품어 주며 자라나고 키워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떠나, 이제 미지의 세계, 낯설고 두렵고 험난한 사회에 춤을 가지고 첫발을 떼려 하고 있습니다.
어떤 춤을 추어서 몸으로 세상에 첫 인사를 드릴까요?
어떠한 춤으로 세상과 첫 말문을 틀까요?
어떠한 춤으로 거세게 밀어닥칠 세상의 풍파를 타고 너울질할까요!
어떠한 춤을 가슴에 품고 품어 한 평생, 한 살매를 춤꾼으로, 지독한 춤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할까요?
과연 어떠한 춤이 있어 새내기 춤꾼으로 맞는 이 첫 시련을 뚫고 나가게 하리요,
한 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이는 여든 여덟살로 지난해 이맘때 돌아가신 사회운동가 백기완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춤으로 짙은 인연을 맺는 춤 벗나래 젊은 동사(同事) 여러분!
어떠한 춤이 내게 그런 축복을 내려주실 것인지 몸으로 더불어 생각해 보는 거지요.
그리고 그 춤을 이번 <신인춤 제전>, 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에 내보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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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에서 근대춤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획기적인 춤 활동을 하신 분으로 한성준 할아버지를 기억합니다. 그분의 말씀 중에, “사람이 일상 일하면서 공들여 살아가는 모든 동작들이 모두 춤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동작 자체가 춤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동작들이 춤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토대이고, 그렇게 해서 일상 동작에, 모든 일상사에 장단을 태우면 춤이라는 것입니다. 장단을 탄 동작, 그것은 리듬을 탄 동작(rhythmical movement)이라는 뜻이고, 율동성을 얻은 동작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상이 춤으로 바꿔지는 것입니다. 존재 이전을 하는 겁니다.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은 일을 일답게 할 뿐만 아니라 일을 거룩하게 하는 일입니다. 달리 말하면 일상적인 것을 예술답게 해주는 신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작품 소재나 매체로 채택하는 일상적인 움직임이나 일상사가 율동으로 거듭나면 모두 다 춤이 될 수 있고, 바로 그런 점에서 춤추는 일은 일상적인 것을 살아 생동하게 신명나게 만드는 것,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생각할수록 그분은 멋있는 말씀을 하셨고 이를 몸으로 실현하였습니다.
그분의 춤의 재료나 소재는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가마꾼의 춤, 어부의 춤, 농부의 춤, 신장수 춤, 광대춤, 무당춤, 호패사령 춤, 이런 이름의 춤이 자신의 춤의 중심 제재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아흔 가지 넘어 춤 작품 종목을 추적해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가 이런 것이 춤 소재나 제재가 될 수 있겠는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습니다. 시시하거나 하찮은 주변부의 일상사도 춤으로 떠올렸습니다. 그만큼 가장 현대적인 의미에서 그분은 자기 얘기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르로 춤을 선택하면서 거기에 살아가는 일들, 이를테면, 일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모습을 유의미하게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춤은 율동적인 움직임이되 노동 동기를 배제한 것이 춤이라는 정의는 원시시대의 많은 춤이나 일상사람들의 춤을 춤에서 제외시키는 한정적인 것입니다.
원래 춤이라는 몸짓은 노동의 예술적 연장이고 예술적 전개라는 게 춤의 본질이라고 백기완 선생님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주위 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 여러분의 춤, 바로 이것이 나의 춤에 가장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는 바로 그곳에 핵심부를 잡아 거기에 가장 알맞은 일상 동작을 구현해내고 그것을 리듬화한다는 것, 이것이 중요한 핵심입니다. 리듬화는 장단만 실어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운을, 심는 것입니다. 생기를, 생명 에네르기를 살아 생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춤은 노동의 반영이고 연장일 뿐 아니라 나아가 노동의 성화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일상의 거룩함을 몸움직임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고 달아 어르고 맺고 풀고’는 순조로울 뿐만 아니라, 막고 막히고 끊고 뒤집는, 역행이 출렁이는 역조(逆潮) 또한, 순행을 예비하는 우주운행의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춤은 춤의 진실을 향하여 풍랑과 역조를 애써 찾아 너울질치며 먼 항해를 떠났습니다.

*주: 해마다 봄철에 부산에서는 그해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춤꾼들을 위한 춤판이 열린다. 세상에 첫발을 떼는 새내기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다. 올해로 28번째를 맞는다. 위 글은 이 신인춤제전을 창설하고 이끌어온 예술감독의 격려사이다.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22. 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