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랑스에서 보내는 엽서 10
국가고시 무용교사 자격증을 얻다
남영호_재불무용가

2013년은 내가 프랑스 국가고시 무용교사 자격증을 취득 한 해이다. 그동안 프랑스에서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의 활동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프랑스 무용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프랑스는 어떻게 무용교육이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었고,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프랑스에는 춤을 가르치는 규정들이 있다, 첫째, 예술가로서 무용작업에 대해서 가르치는 아틀리에 수업이 있고, 둘째, 무용학교에서 가르치는 정식 무용 수업이 있다. 정식 무용수업을 하려면 국가고시를 거친 무용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이 자격증은 클래식무용, 현대무용, 재즈 무용,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프랑스 무용학교에서는 3년 과정의 국가고시 무용교사 자격증 취득 교육 과정이 있다, 그외에 나처럼 프로 전문 무용수의 경험으로 오랫동안 있었던 사람들은 실기과정, 음악과정, 무용역사 이론 과정, 해부학 과정 등 많은 과정들에서 이수 혜택이 있어, 마지막인 무용교육 교수법 과정 400시간만 하고 시험을 볼 수 있다, 나는 400시간만 하면 되는 것을 무용학교에서 현대무용교육 교수법 과정으로 1년간 등록했다. 급하게 준비하기보다 시간을 가지면서 많이 관찰하면서, 실기 수업도 하면서 무용교육 교수법 과정을 경험하고 싶었다.

내가 국가고시 무용교사 자격증 취득 과정을 신청한 무용학교는 몽펠리에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 무용학교였고, 자격증 취득률이 거의 80%를 넘는 유명한 무용학교였다. 학교 이름은 Epsedanse, 재즈춤으로 유명한 무용학교이다. 재학생은 300명이 넘고, 프랑스 전국, 그리고 전세계에서 온다.

그 학교 원장은 재즈무용 출신으로 현대무용과 융합시켜서 안무가로서도 몽펠리에에서 제법 알려진 인물이다. 그 무용학교 안에는 주니어 무용단도 있어서 오디션을 통해 주니어 무용단 에 들어가게 되면 등록금은 전부 면제받으며, 프랑스의 많은 안무가들의 레퍼토리 작품들도 접해볼 기회가 주어지고, 학교 행사 및 프랑스 다른 도시 및 이웃 유럽 나라들에 가서도 공연들을 많이 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의 도시에 있는 무용학교들과도 연계된 것으로 안다. 한동안 한국인 학생도 있었고 주니어 무용단에서 활동하여 전문 프로무용수가 된 한국인 무용수도 있었다.

나는 무용학교 원장 선생님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 전에 별도로 면담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 들을 하면서 등록하게 되었다. 원장 선생님은 내가 자기 학교에서 무용교육 교수법 과정을 이수하는 것을 기뻐하였다. 물론, 나는 프로무용수였기 때문에 모든 무용교육 교수법 과정이 프로 무용가들 시스템에 들어가 있어서 거기서 등록비가 다 나왔다. 그 해 현대무용 교육과정을 하는 학생은 나를 포함 8명이었다. 그중 프로무용수 출신은 나 뿐이었고 나이도 내가 제일 많았다.

무용교육 실습과정 수업은 일주일에 3시간짜리 수업이 두 번 있고, 그외 움직임 분석 수업, 특강으로 주말 혹은 바캉스 기간에 하는 몸 동작 방법론 등 여러 수업들이 있었다, 무용교육 교수법 실습수업은 어린이 무용교육 교수법수업(유아부, 초등부로 나뉜다)과 성인 무용교육 교수법 수업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성인 무용교육 교수법 수업은 학생들끼리 선생님이 되었다가 수업받는 학생이 되었다가 하고, 어린이 무용교육 교수법 수업은 무용학교 근처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그 반 담당 선생님들의 인솔로 무용학교에 와서 학생들이 제시하는 수업들을 받았다. 그 외 나는 시간이 되는 대로 세 가지 무용 실기 수업들도 받았다.

이 학교의 자격증 취득률이 높았던 이유는 직접 수업을 만들어서 하는 실습시간들이 많은 때문이었다. 둘째 수업 시간부터 바로 시험 절차처럼 진행되어 갔다. 매주 3명이 각자 수업을 만들어 와서 교육 과정 학생들에게 40분간씩 수업을 행한다. 그 수업에는 40분간 아주 정밀하게 순서대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어야 했다. 선생님은 3명의 수업을 다 본 다음에 그 수업에 대한 질문과 여러가지 보충 수업을 해 주는 것을 학생들은 노트에 적고, 한 학생이 적은 것을 저녁 6시에 선생님께 메일로 다시 보내면 선생님께서는 그 학생이 적은 것에 대해 보충 설명들을 보태어 다시 그 노트를 교육과정의 전체 학생들에게 메일로 보내줬다. 정말 철저한 무용교육 교수법 수업이었다. 어린이 무용교육 수업도 어린이들은 돌아가고 나서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성인 무용교육 교수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랜 프로무용수 경험과 특히 있었던 무용단이 몸의 원리와 무용교수법으로 프랑스에서 유명한 두 안무가와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분들의 영향을 받아서 직접 몸으로 보이면서 하는 수업에는 많은 장점이 있었다. 무용교육 교수법 과정을 하는 학생들 중에는 아직 몸으로 되지 않는 것을 이론적으로 공부해서 시험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문제는 어린이 무용수업 교수법에 있었다. 어린이들 수업은 유아부와 초등부가 있는데, 그렇게 어린 유아들은 가르쳐 본 적도 없고, 유아부와 초등부를 비교하면서 수업을 잘 조절하지를 못했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너무 미숙했었다. 다행히 국립무용원에서 나오는 무용 교수법 교재가 있었다. 그것들을 읽고 이해하면서,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하는 수업들을 보면서, 선생님이 내 수업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것에서 많이 배우게 되었다.

시험은 일년에 두 번 6월과 11월에 기회가 있다. 몽펠리에 도시는 춤으로 유명한 도시이고, 이 무용학교는 워낙 크고 무용교수법 과정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아예 문화부에서 심사위원 1명과 그외 다른 도시에서도 심사위원들로 학교에 왔었는데, 모두 5명으로 기억한다. 시험은 2일간 진행된다. 첫날은 어린이 무용수업을 먼저 보이는데, 유아반 수업을 하는지 초등만 수업을 하는지는 당일 시험 치르기 몇 분 전에 알게 된다. 그후 그 수업에 대한 질문들을 하고, 다음 날은 성인용 무용수업 시험이 있고, 그 수업에 대한 보충적인 질문이 나온다. 그 후 따로 인터뷰 과정이 있다.

난 시험 날 아주 운이 좋았다. 그렇게 문제가 많았던 어린이 수업을 문화부에서 오온 심사위원에게서 아주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고, 성인 수업 시험은 심사위원들의 갈채까지 받았다. 인터뷰 때에도 프로 무용가로 활동하다가 이제는 가르치는 것으로 서서히 전환하려고 한다는 나의 말에 모든 심사위원들은 설득되었고, 그날 나는 이 무용학교 개교 이래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는 말을 무용학교 원장으로부터 듣게 되었고, 원장선생님은 곧 나에게 학교에서 가르칠 것을 제의하였다.

나도 처음 취득한 국가고시 무용선생님 자격증이니, 나의 방식대로 학생들을 정식으로 가르치고 싶었다. 원장선생님은 내가 안무가이기 때문에 고급반 수업을 하는 걸로 알고 있었지만 나는 기초반과 신입반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제안했다. 처음 기초 때부터 제대로 몸을 알면서 움직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장선생님은 매우 흡족해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 무용학교에서 일년 반 동안 강사를 했었다. 그때 정말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것 같다. 학생들이 점점 발전될 때마다 흐뭇한 보람들을 느꼈었다. 그 당시 배웠던 학생들은 그 후 점점 발전하더니 학교 졸업 후 무용단에 들어간 이들, 본인의 무용단 을 만들어 작업하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은 가끔씩 페이스북에서 계속 만난다.




프랑스 국가고시 무용선생님 자격증




내가 국가고시 무용선생님 자격증을 취득 한 달은 6월이었다, 그해 9월 중국 사천 지방 성두 도시에 공연을 하러 갔었는데 프랑스에서 전화가 왔었다. 그때 문화부 심사위원으로 왔던 분 의 전화였다. 프랑스 어느 지방 무용학교(콩세르바트와)에서 무용선생님을 찾는다고, 내 생각 이 나서 추천하려는데 내 생각을 묻고자 전화하였다. 나는 정말 감사하지만 몽펠리에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다.

내가 1년 반을 무용학교에서 가르치다가 그 학교를 그만 둔 이유는, 어느날 원장 선생님이 무용학교에 완전히 들어와서 풀타임으로 가르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무용학교 선생님은 아직 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어떤 기간을 잡고 집중 코스특강, 연수들은 좋아한다. 한국에 갈 때에도 3일간의 집중 코스 특강을 한다,






2020년 괴산에서 진행한 춤 특강 모습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가르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작년 4월에 국제 즉흥춤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한국에 갔을 때 주최 측으로부터 서울예고에서의 특강을 제안해주었다, 나는 서울예고 학생들에게 흥미가 생겨 하겠다고 답을 했으며 처음으로 서울예고에 가게 되었다. 서울예고 발레반을 위한 특강이었다. 학생들의 총기 있는 눈빛, 순수한 열정, 그 학생들을 보면서 특강하는 내내 더욱 느꼈던 것은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였다.

프랑스에서는 대학 교수 직업을 퇴직 직업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그 말은 젊은 시절 현장에서 하던 실습들의 경험들을 적당한 나이가 되면서 그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그래서 대학교수들은 나이가 거의 50세 이상들이다.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2. 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