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춤의 도시 뉴욕, 무용 프로듀서로 10년 살기 5 - 미식의 도시 뉴욕 II
개인 취향 존중 트렌드를 만나다
박신애_코리아댄스어브로드 대표

뉴욕의 맛을 압축해서 한 단어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단연 ‘다양함’이라고 하겠다. 달리 말하자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뉴요커들은 자신의 까다로운 입맛을 타인이 불편해할 부분으로 생각지 않는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 커피를 사려고 한없이 기다리다 한 블록이 멀다 하게 카페가 있는데 줄이 당최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저마다 넣는 우유의 종류, 온도, 시럽의 양, 크림의 유무를 정하느라인 것을 알고는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커피를 주문할 때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같은 것으로 통일’시키는 것이 음식점 주인에 대한 배려라 믿고 자란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에서 ‘저렇게까지 본인의 의사를 표현할 일인가?’ ‘뒷사람 눈치는 안 보여?’ 하는 의문이 당시에는 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라이프스타일이 존중받는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이야 나도 그들처럼 내가 마시고 싶은 우유, 온도를 들먹여가며 ‘ 아, 딱 내 취향이야!’ 하게 되었지만, 그때를 생각해 보면 가장 처음 접한 식음에서의 문화 충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나는 Soy Latte(두유라떼)를 좋아하는데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커피를 사다 달라고 하면서‘ 두유를 보통의 온도보다 뜨겁게 데운 라떼를 디카페인으로’ 가져달라고 한다면 여전히 대번에 ‘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테다.




Whole Foods market ⓒtripadvisor.co.kr




개인적인 성향이 많이 반영되는 음식문화만큼 뉴욕에는 콘셉트가 확실한 슈퍼마켓들이 발달해 있다. 그중 하나가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 이다. 홀푸드마켓은 인공 첨가제가 포함되지 않은 유기농 식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점인데 커피빈, 와인, 꿀, 초콜릿, 샐러드, 샌드위치, 각종 베이커리 제품 등 건강한 먹거리가 가득하다. 포장되지 않은 상태의 신선한 벌크 푸드를 사는 묘미도 있고, 맛있는 오가닉 푸드로 구성된 델리 코너까지 만나볼 수 있다. 현지인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유기농 식품들과 향신료를 쇼핑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대표적 마켓인 셈이다. 최근에는 유기농 화장품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에 관광 온 한국 여성들이 홀푸드에 화장품이나 올가닉 바디용품, 세제 등을 구매하고자 방문하기도 한다. 미국의 대표적 유기농 식품 전문점으로는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 웨스트사이드마켓(West Side Markets), 트레이더 조(Trader Joe's), 3개사가 제일 유명하다고 볼 수 있는데 홀푸드가 2~30대가 찾는 젊은 느낌이라면 트레이더 조는 40대 이상의 중년층이 더 많이 찾는다. 2017년에 홀푸드가 아마존사로 흡수되면서 이제는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하면 사는 곳 주변 홀 푸드에서 인터넷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Whole Foods Market은 유기농 제품을 파는 곳인 만큼 사회 환원이나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일에도 동참하는 데 참고로 일회용 비닐봉지를 완전히 없애기로 약속한 미국 최초의 슈퍼마켓이기도 하다.


홀푸드마켓에서 샐러드 같은 조리음식을 만나다 Ⓒ김채현



  

홀푸드마켓에서 치킨수프를 만나다 Ⓒ김채현




벌써 날씨가 서늘해지고 하늘이 높아졌다. 가을이 되니 더욱이 뉴욕이 그립게 느껴지는데, 사실 뉴욕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가을인 것 같다. 뉴욕에서는 가을에 ‘애플피킹(Apple picking)’을 많이 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을이 되면 단풍 구경을 하러 가는 것처럼 뉴요커들이 많이 즐기는 가을의 일상이기도 하다. 흔히 뉴욕을 빅애플(BIG APPLE)이라 부른다. 그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청교도들이 처음으로 미국으로 이주해 왔을 때 뉴잉글랜드 지방에 사과를 많이 심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뉴욕에 많은 사과나무가 심어졌다는 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그만큼 뉴욕에는 사과농장이 많다. 애플피킹은 과수원에서 사과를 손수 수확하여 담아 오는 야외 액티비티를 일컫는데, 선선한 날씨에 야외에서 사과를 수확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푸드트럭 음식을 먹으며 자연을 즐기기도 한다. 농장마다 다르긴 하지만 주로 봉지, 양동이, 자루 등을 주고 30~35불 정도의 돈을 받는다. 예전에는 25불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요즘 들어 코로나19로 야외활동에 목마른 뉴요커들을 상대로 금액을 더 올렸다고 한다. 애플피킹은 넓은 사과농장에 품종별로 사과를 심어놓아 원하는 품종이 있는 곳을 차나 트랙터 같은 것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과를 수확한다. 장점은 막 나무에서 딴 신선한 사과를 실컷 먹을 수 있고(농장 안에서 먹는 사과는 모두 무료다) 농장 한편의 매점에서는 사과로 만든 애플사이다, 애플파이, 잼 등을 함께 쇼핑하는 재미도 있다. 농장들은 저마다 농장의 특색을 만들어 방문자를 늘리기 위해 도넛, 파이, 사과피자 등 다양한 대표상품을 만들어 홍보하기도 한다.




Apple picking ⓒadventuresinfamilyhood.com




뉴욕을 생각하면 랍스터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많은 사람이 뉴욕에 오면 먹어봐야 할 대표 음식으로 ‘스테이크, 버거, 랍스터 등’을 이야기한다. 랍스터 가격이 한국과 비교하면 저렴한 이유도 있겠지만 맨해튼 자유여행 중 필수 코수로 자리 잡은 ‘첼시마켓(CHELSEA MARKET)’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구글이 들어와 더 유명해진 미국 역사보존지구로도 지정된 건물인 첼시마켓은 버려진 과자 공장(오레오, 리츠로 유명한)이 팬시한 마켓으로 재탄생한 장소로 뉴욕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 1930년대 육류 가공을 하던 공장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에 위치해 있다. 감각적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디자이너 소품샵, 랍스터, 타코 등 맛집들과 같은 다양한 먹거리가 있으며 일주일 내내 연다. 사실상 현지인이 랍스터를 먹으러 첼시 마켓에 가는 경우는 드문데 왜냐하면, 뉴욕 내에 첼시마켓보다 훨씬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랍스터 전문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첼시마켓이 주요 관광지인 만큼 한 번쯤은 꼭 가보시라. 그 옆의 하이라인 파크까지 특히 요즘 같은 날씨에 추천하고 싶다.




첼시마켓 입구 Ⓒ김채현



CHELSEA MARKET ⓒnew-york-city-travel-tips.com




미국 음식을 논하면서 어찌 햄버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있냐는 성화를 들었다. 개인적으로 뉴욕 생활을 하면서 햄버거를 딱히 찾아 먹던 매니아는 아녀서, 지난번 대표적인 음식을 다뤘던 '미식의 뉴욕 I편‘에서 햄버거를 소개하지 않았다가 햄버거 성애자들의 원성을 톡톡히 샀다. 미국 햄버거 중에 3대 버거로 유명한 쉐이크쉑, 인앤아웃, 파이브가이즈가 있다. 셋 다 프랜차이즈이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먹는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와는 확실히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중 Five Guys는 맨해튼에는 10개의 매장이 있고 미국 전역에서 만날 수 있다. 햄버거에 원하는 것을 골라 넣을 수 있는 점이 특징인데 대체로 한국 사람들은 기본 옵션이 다 들어가 있는 “All the way”를 선호하는 것 같다. ‘공짜면 다 넣어야지’ 하는 우리식 사고가 반영되는 지점인데 취향 확실하고 까칠한 입맛을 소유한 뉴요커들과 대비되는 것 같아 재밌기도 하다. 파이브가이즈에서 제일 특이한 점은 픽업하는 쪽에는 땅콩이 자루로 놓여 있는데 무료라서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점이다. 땅콩기름을 사용한다는 홍보를 하기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친구는 미국에 와서 파이브가이즈를 안 먹고 가면 미국 음식을 안 먹어 본 것이라며 예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쉐이크쉑이 ‘인생버거’라며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가 먹기도. 심지어 한국에 몇 개 없는 쉐이크쉑 분점이 공항에 있다며 일부러 찾아가는 수고도 자초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햄버거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임은 틀림없다. 인앤아웃버거(In-N-Out Burger)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본사를 두고, 서부 6개 주에 매장을 운영하는 체인으로 동부, 뉴욕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Five Guys ⓒsethlui.com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뉴욕의 음식은 디저트일 게다. 사실상 미국의 디저트는 나에게 너무 과하게 달고, 사이즈가 커서 가끔 엄두가 나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런데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치즈케이크이다. 치즈케이크는 뉴욕의 어느 식당을 가도 후식으로 준비된 메뉴일 만큼 뉴요커들에겐 일상이다. 뉴욕 치즈케이크는 치즈를 주재료로 만드는 커스터드 파이의 한 종류로 후식 파이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치즈케이크’ 하면 모든 사람들이 특정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노란색의 두툼한 모습이 특징이다. 치즈케이크는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를 비롯한 근동에서 만들어진 요리라고 하는데 로마 제국 때도 연회 음식으로 제공되었다고 할 만큼 그 역사가 깊다. 겉은 갈색에 속은 노랗고 부드러운 현대적인 형태는 19세기 후반 미 동부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정립되었다고 한다. 뉴요커들의 치즈케이크에 대한 애정은 대단한데 심지어 ‘치즈케이크’는 뉴욕에서 만들어졌으며, 뉴욕에서 만들기 전의 치즈케이크는 진정한 치즈케이크가 아니었다고도 주장할 만큼 자부심이 있다. 치즈케이크 팩토리(The Cheesecake Factory)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이젠 한국에도 제과 브랜드로 진출해 치즈케이크를 판매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치즈케이크가 메인은 아니고 미국식 이탈리아 요리, 멕시코 요리, 아시아 요리, 그리고 미국 요리 등 다양한 요리를 파는 식당이다. 물론 후식으로 치즈케이크를 먹을 수 있고, 식당 한켠에 다양하고 화려한 치즈케이크를 진열해 놓고 파는 곳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이곳은 주로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되곤 한다). 치즈케이크 팩토리가 대중적인 맛이라고 하면 뉴욕 최고의 치즈 케이크로 손꼽히는 곳으로는 엘린스 스페셜 치즈케이크(Eileen's Special Cheesecake), 오바마 치즈케익으로 유명한 주니어스베이커리(Junior's bakery) 그리고 베니에로(Veniero’s) 가 있다.




The Cheesecake Factory ⓒal.com




전편에 언급한 것처럼 인간에게 ‘음식’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그 시공간에서 느꼈던 감각을 생생하게 불러오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벌써 몇 번이나 뉴욕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고 2020년 시작된 팬데믹은 2년이 다 되도록 장기화하여 가실 줄을 모르고 있다. 2022년 1월 뉴욕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하루빨리 이 시간이 걷어지고 현지에서 더 생생한 음식들을 소개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박신애

민간무용단체의 해외진출을 돕는 비영리기관인 코리아댄스어브로드의 박신애 대표는 무용 국제교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프로듀서이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뉴욕92Y 하크니스 댄스센터에서 아시아/코리아 릴레이티드 프로그램의 게스트 큐레이터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국제 솔로 페스티벌 모노탄츠서울의 예술감독, 프랑스 파리 SOUM 페스티벌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2021. 10.
사진제공_박신애, 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