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안무가 김남진의 파리에서 바라본 한국의 춤계
프랑스의 그녀들- 그들과의 낮과 밤
김남진_댄스시어터 창 대표

 2013년 후반기에 몰렸던 해외 일정이 이제 다 끝이 났다.
 캐나다(9월 12-14일), 슬로바키아(9월 24일), 뉴욕(10월 23-26일)은 공연 때문에 갔었지만, 이번 파리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최한 한-프 커넥션 사업으로 일주일간(11월 9-16일) 프랑스의 Institut Francais(한국으로 치면 국제교류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합친 듯한 기관이라고 할까?)에서 한국의 5명 Artist를 초청했다. 해외공연에서의 느끼는 피곤함과는 완연히 다른 강행군이었다.
 11월 9일, 숙소에 여행 가방을 내려 놓자마자 극장으로 가서 대사가 많지 않은 연극 관람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총 7일간 아침부터 밤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짜여져 있었다.
 파리의 무용기관과 레지던시 프로그램, 극장 그리고 그들의 지원제도 등을 보면서 부러움이 몰려들었지만 그보다 나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그녀들이었다. 그녀들.. Christine, Sabine, Vanessa, Olivia가 바로 그 "그녀들"이다.
 이 "그녀들"은 Institut Francais의 직원으로 번갈아 가며 우리 5명과 한국 공공기관(예술경영지원센터, 국립극장,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나온 5명을 가이드하신 분들이다. 그녀들은 무용담당으로 낮에는 이렇게 사무실과 현장을 번갈아 가며 일을 하고 밤에는 주로 프랑스 단체의 공연을 본다. 그래서 프랑스 지방의 사소한 안무자의 이름은 물론 그들이 어떠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까지도 다 잘 알고 있었다.
 그중 Vanessa는 활달한 성격으로 항상 밝은 분위기를 창출하였고 아주 친해졌었다. 처음엔 Single인줄 알았는데 아들이 하나 있는 엄마였다. 그 엄마의 입에서 "나의 아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밤에 이렇게 공연을 보러 다녀야하는 직업 때문에". 그래서 그녀의 아들은 아빠와 함께 있길 좋아한다며 잠시 웃는다. 그러곤 다시 프랑스 무용단, 예술에 대하여 자랑하듯 흥분된 어조로 설명한다. 참 유쾌한 그녀이다. 이 그녀의 유쾌함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과는 다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1. 한국에서는 누가 지원을 어떤 식의 방법으로 하느냐?

 

 프랑스 국립 현대무용단의 안무자가 서서히 교체되고 있다. 십몇 년이 넘게 지켜왔었던 그 자리를 차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안무자도 있다. 꼭 임기 때문에 바뀌어야 하는 한국의 실정과는 다르다. 아직 좋은 작품을 만들고 있고 해외, 국내 투어를 왕성히 하고 있으면 지속적인 지원은 계속된다. 그럼 왜 바뀌는 것일까? 바로 좋은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공연 횟수가 적고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프랑스 역시도 지원에 대한 서류심사가 있다. 한국보다 더 까다롭고 그 분량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 지원금을 심사하는 사람들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진정한 작품을 만들게끔 한다. 제작의 입장에서 지원하고 또한 서류심사를 통과한 예술인은 이제껏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알고 있으며 이를 신뢰한다. 즉, 지원금의 분배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심사위원들이 생각해야할 고려사항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들이 잘 아는 그 인맥과 학연 그리고 지연 등 어쩔 수 없이 지원금을 나누어 분배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작품을 하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단체는 일회성 공연으로 끝이 나는지 아니면 투어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공연을 하는지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는다.
 지원금의 액수가 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정도라면 크면 큰 돈이고 작으면 작은 돈이다. 그러나 이것이 1~2회의 공연으로 끝이 난다면 이것은 정말 국가적 손실이며 낭비이다. 지원금을 주었을 때는 그 예술가를 믿고 준 것이고 그 후는 예술가가 책임을 져야한다. 투어로 연결하고 이익을 남기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매 작품마다 흥행을 하기는 어렵다하지만 그 후는 예술가가 알아서 해야 하며 또 작품이 안 나올 경우는 지원도 끊어서 차기 예술가를 발굴하여 지속적인 물흐름이 연결되어야 한다.
 예술은 고인 물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좋은 물이 흘러야 하는 것이다. 관에서는 이 지원받은 예술가가 어떠한 성과를 가졌는지도 파악하고 이번 지원으로 이러한 좋은 결과가 있었다면 다음번에 더욱더 나은 제도로 그 예술가를 Up Grade 시켜야한다.

 C.N.D(Centre National de Danse)에 장기 레지던시로 있는 안무자인 Fabrice Lambert에게 물었다. 만약 30분 정도의 Solo작품을 하기 위해 프랑스에는 최소한 얼마의 지원금을 생각하느냐고? 그의 대답은 3,000~4,000유로(한국돈으로 5,000~6,000만원)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군무일 경우에는 억 단위가 넘는다. 난 ‘너무 많은 액수이다’라고 말하고 한국의 민간단체에서는 그 만큼의 액수를 받을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그의 질문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국은 무용수에게 월급을 안주지 않느냐?"
 나의 약점을 들킨 듯한, 나의 치부를 들어낸 듯한 창피함이었다. 그들은 어쩌면 아직 한국단체를 프로단체라 생각지 않겠구나, 이 치부를 들키면서 나는 내가 갑자기 아마추어 안무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한국도 무용수에게 국ㆍ공립단체에서는 월급을 준다. 그러나 민간 사설단체에서는 수고료를 준다. 그 또한 천차만별로 정해져있지 않다. 그러니 하나의 직업이라 보기에는 당연히 미약하다. 프랑스는 무용수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여 그들이 그 월급으로 저축도 하고 생활을 하게끔 하니 그 지원금 액수가 그렇게 많은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한국도 레지던시 사업과 관련, 홍은 창작센터 등 몇몇 군데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는 있다. 그러나 이 고질적인 것이 바뀌지 않는 한 여전히 한국의 예술가는 아마추어이지 않을까? 지원금은 작품을 잘 만드는 사람에게 충분치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작품을 만들 수는 있게는 지원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잣대가 나이도 아니고 인맥과 학연도 아니지 않는가. 예술가 역시도 무언가를 위해 그의 이력에 한 줄을 적기 위한 방법으로 그 지원금을 남용할 것이 아니라, 혈세로 만든 작품에 대해 진정한 작품으로 그 책임을 져야하며 작품이 안 좋을 때는 그 다음해 지원금을 포기하는 양심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2. 현 시대가 원하는 국 ·공립단체

 필자가 프랑스에서 활동할 때(1996-2002)에는 프랑스의 국립 무용단체는 19개가량 있었다. 발레가 2개, 그 외는 현대무용이었으며 각 지방에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그리곤 나는 벨기에(2002-2007)로 갔다. 그 후 2002년까지만 해도 없었던 2개의 국립단체가 생겨났는데 바로 힙합국립무용단이다.
 요즘에는 Parc la Villette(예전 도축장을 개조)에는 서커스와 현대무용을 합친 작품들을 많이 선보이고 그들을 위한 극장과 학교가 명성을 떨치고 있다. 파리 외곽의 문화적 소외지였던 지역(파리 19구)의 건물(예전 시체의 관을 제작하던 곳을 개조)을 Centquatre 극장으로 다시 만들어 예술인과 그곳 주민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한국은 몇 년 전부터 대학무용과의 미달사태를 겪고 있으며 무용과가 통폐합되고 있다. 4년제를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어 다시 대학원을 들어가고 그마저도 졸업하면 현대무용 전공자가 갈 수 있는 직업단체라곤 몇 년 전에 생긴 국립현대무용단과 대구 시립무용단이 전부이다. 발레의 경우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이 직업단체이며 의외로 한국무용은 각 지방마다도 여러 개가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비보이를 위한 전문국립단체, 거리극 국립단체 등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전 세계를 무대로 몇 손가락에 뽑히는 비보이와 전국방방곡곡 넘쳐나는 거리축제, 여러 사소한 지방축제는 순수예술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인가?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여도 왜 아직 시선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인지? 뛰어오르기 위해선 발판이 필요할 것이며 그것을 발굴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예술가가 해야 할 몫이 아니고 관에서 해야 할 일일 것이다.



 3. 예술가의 몫

 한국을 돌아온 후 몇 개의 작품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작품의 수준이 좀 낮고 아주 쉬운 이야기로 조금은 허술한 세트 속에서 공연을 올린 작품들이었다.
 그러곤 관객의 반응을 또한 살폈었다. 꽉 메운 관객 속에 어느 정도 만족한 공연의 박수가 나왔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점으로 이 작품은 해외 공연용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그 일주일간 밤마다 본 공연들은 나를 비롯하여 한국관객의 구미에는 맞지 않은 듯 보였다. 이번 초청받은 5명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한국의 상영관에서는 그다지 흥행하지 않고 외면당하지만 외국에서는 인기가 있는 김기덕 영화감독과 한국에서는 유명하고 대충 흥행에도 성공하나 외국에서는 무명인 여러 명의 한국감독이 떠올랐다.
 유럽관객과 한국관객, 동양관객의 눈은 다르다. 감성 또한 큰 차가 있을 것이다. 그냥 한국관객의 입맛에 맞게 만들고 어우러져야 하나? 또 다른 감성을 지닌 그들에게 맞추어서 만들어야 하나? 물론 예술가의 뿌리를 가지면서 말이다.
 충분치도 못한 지원금으로 이 동ㆍ서양의 관점을 뛰어 넘어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얼마나 고민하고 고민을 해야 할까? 생각을 해 본다. 무엇이 오늘날, 이리 추운 겨울날, 한국의 예술가로서 해야 할 것인지? 나 혼자 방구석에서 소주 한잔과 라면을 끓이며 지내는 겨울이 아닌 아내와 자식이 있는 중견의 예술가라면 김기덕 감독의 예술관을 택할런지, 아니면 여러 명의 한국의 영화감독의 관점을 택할런지.
 그렇다고 이 여러 명의 한국감독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관점이 다를 뿐이다.
 가방을 하나 둘러메고 연습복을 안에 넣고 이 곳 저 곳,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다 보니 46살, 그 가방 안에는 이제 냄새나는 연습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자식도 나의 등에 업혀져 있다. 끊을 수 없는 생계와 예술과의 관계.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한 마리 벌레가 몸에 있기 때문이다. 그 벌레의 이름은 "대충"이란 벌레이다. 그냥 아는 지인이나 학교의 선후배, 제자 등이 오는 극장에서 대충하고 대충 박수 받고 쫑파티로 소주와 삼겹살을 구우면 어느 정도 이 땅에서 굴러는 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충하고 싶지 않고 그 프랑스의 그녀들처럼 밤낮 뛰는 사람들과 같이 한국에서도 밤낮으로 뛰는 사람들의 지원금으로 달리고 싶다.
 이제 곧 지원금 신청을 하는 시기이다. 제발 올해만큼은 그 나누어 주기식이 아닌 진정한 예술지원을 해주는 심사가 되었으면 한다. 프랑스에서는 경제위기와 문화예산삭감으로 이제 눈을 아시아로 돌리고 있다. 그중에 몇 번째로 꼽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들에게 한국을 문화적 자금이 많은 나라이고 프랑스 단체에게 아주 후한 나라란 소문이 나 있다. 그들에게 "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국의 단체도 지키지 못하면서 외국에게는 "봉"으로 보이는 창피스러움은 2014년에는 없어져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며 새로운 지원제도가 그에 맞게 창출되어야 한다. 그것이 관, 정부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이것이 7일간을 같이 달렸던 프랑스 관에 있는 "그녀들"이 나에게 준 고민거리들이다.
 이 추운 겨울, 더 이상 휠 허리가 없는 예술가의 등도 좀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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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