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 이 책] 내 안의 역사, 2019
남자들 장보기, 역사적 내력이 그랬어요
〈춤웹진〉 편집부

 

 

내 안의 역사

-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
전우용, 푸른역사, 434쪽, 2019년 1월



• 현실 속 현상은 역사적 내력이 있다. 특히 오늘의 현상을 해석하여 창작에 수용함에 있어 현상을 역사적 시점에서 파악하는 작업은 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급변하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 우리 주변의 일상적 현상을 조리 있게 포착하는 방편으로서 역사적 지식과 상식은 가치를 갖는다.

• 『내 안의 역사』는 먼 나라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52가지 현상을 5가지 범주(개인, 가족과 의식주, 직업과 경제생활, 공간과 정치, 가치관과 문화)로 나누어 그 역사적 연원을 짚고 오늘의 시각에서 해석한다. 
• (한국 전통사회에서) 시장은 집 바깥의 곳으로 내외 구별이 엄격하던 시대에는 본래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여염집 여자는 큰 길에서 장옷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19세기 말 한국에서 여성이 장보러 다니는 일은 금기와 같았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시장은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시장에서 물건 값 흥정하는 것은 남자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는 생각도 함께 퍼졌다. 시장에서 다시 남자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된 것은 대형 할인점이 생긴 뒤이다. 대량 구매와 자동차 운반은 장보기에서 양성평등 시대를 여는 데 큰 구실을 했다.
•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뒤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뚱뚱한 몸을 가지려는 대중의 욕망이 고조됐다. 비만을 건강이나 정력과 동일시하는 담론이 널리 유포됐고 마른 몸을 뚱뚱한 몸으로 바꿔준다는 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1920년대 중반 이후 한동안 유선형이 지식 청년층 사이에서 근대적 사물과 신체의 이상적 표준으로 각광 받았다. 유선형은 빠름의 도형이었고 빠름은 근대의 핵심 가치이기도 했다.
• 보릿고개라는 말이 현실감을 잃어갈 때쯤, 뚱뚱한 몸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 갑작스레 사라졌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현대 의학 상식,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의 산업화 등이 이 같은 인식 변화를 추동했다. 우리나라에 다이어트라는 단어가 소개된 것은 1960년대 말이었다. 88서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불어 닥친 스포츠 열풍 속에서 헬스클럽, 수영장, 에어로빅센터 등 몸 관리 업소들도 급증했다.
• (1980년대) 고열량 저영양의 값싼 정크푸드 판매점이 거리 곳곳을 채움에 따라 서민의 몸은 전반적으로 뚱뚱해졌다. 아마도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사이의 기간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자와 빈자의 평균 체중이 역전된 시기였을 것이다. 
•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강변 전체가 체육공원으로 바뀐 이후 주택가 소공원은 물론 산기슭과 하천변 곳곳에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이 들어섰다. 운동하는 사람이 급증함에 따라 이른바 아웃도어 의류 산업도 급신장했다.
• 1900년께 (조선) 궁내부 산하 공장이 (서울) 용산에서 유리 제조를 시작했고 1910년께는 서울에만 일본인 경영 유리 공장이 2곳 생겼다. 유리거울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은 자기 얼굴을 남의 얼굴 보듯 꼼꼼히 뜯어볼 수 있게 되었다.
• (1950년대) 기생충 감염은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풍토병이었다. 1945년 해방 당시 서울에 있던 5만 5천 개의 우물 가운데 절반이 사용되었으나 대부분 기생충 알 등에 오염되어 있었다. 1966년에는 기생충 질환예방법까지 제정되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자 기생충은 한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현모양처(賢母良妻)론은 중세 (조선) 유교의 덕목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창안되어 20세기 초에 한국에 유입된 천황제 국민국가의 여성관이다. 일본 천황제국민국가가 여성에게 부여할 역할은 남성이 나라에만 충성할 수 있도록 가정을 맡아 꾸리며 자식을 충성스러운 미래의 신민(臣民)으로 기르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현모양처 양성을 목표로 내건 여학교는 1906년에 설립된 양규의숙(養閨義塾: 규수를 양성하는 학교)이다. 이후 최근까지 여성의 자아실현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라는 담론이 대다수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했고,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남성관까지 지배했다. 
• (전통적으로) 쌀은 한국인들에게 현실과 이상, 욕망과 실제의 거리를 표시하는 상징물이었다. 해방 이후 (밀과 보리 등) 미국 잉여 농산물 도입과 정부의 의도적인 저곡가 정책으로 농민들의 쌀 생산 의욕이 감퇴한 결과 쌀 생산량은 계속 소비량을 밑돌았다. 정부는 쌀 소비를 억제하려고 강압적 수단을 동원했다. 쌀막걸리 생산을 금지하고 식당에서 쌀밥을 팔지 못하게 했으며 학생들에게 쌀밥 도시락을 금지하였다. 쌀밥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망이 수그러든 것은 1970년대 말 이후였다. 다수확 품종이 개발되는 한편에서 식생활의 서구화가 진전된 때문이다.
•『내 안의 역사』는 근대와 현대에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형성한 현상을 역사 연구가의 시각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정리하였다. 역사를 일상 속에서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이 책으로 역사에 관한 인식을 되살리면서 생활 속 현상을 해석하는 눈을 다져도 좋을 것이다.  


저자 전우용은 역사연구가로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이다. 저서로 『서울은 깊다』  『현대인의 탄생』 『한국 회사의 탄생』 『오늘 역사가 말하다』 『우리 역사는 깊다』 등이 있다. 



[➣ 이 책] 란은 국내에서 최근 간행된 신간을 소개하는 란으로서, 서평 형식보다는 〈춤웹진〉 독자들의 독서에 도움이 되도록 해당 신간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압축 소개하는 방식으로 서술됩니다.
2019.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