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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정.각(風精.刻)_ 오차원에〉 작업기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몸의 오차원적 재생
송주원_안무가
 〈풍정.각(風精.刻)_오차원에〉는 가상의 시간과 시간의 흔적, 그리고 동시간의 만남이다. 2017년 8월에 약 10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축적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대한항공 박스프로젝트 〈서예, 가장 원시적인 힘의 교류〉와의 만남으로 오차원의 장소와 도시공간무용프로젝트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길고도 뜨거운 여름날에 겨울바람을 품고 봄을 노래하는 무용수, 작가, 관객 참여 퍼포먼스 등 개개인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먹고 마시는 삶의 기초단위에서 놓쳐버린 가을날과 같은 삶의 풍요로움, 따뜻함과 동심, 협업이 만들어 낸 모자람과 넘침이 난무하는 현장이 펼쳐졌다.
 
- 〈풍정.각(風精.刻)_오차원에〉 트레일러
 https://youtu.be/gwaQzrfsfsM
- 〈풍정.각(風精.刻)_오차원에〉 리허설 영상
 https://www.facebook.com/mmcakorea/videos/1415386731830356/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 〈서예, 가장 원시적인 힘의 교류〉
 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30000000&exhId=201609020000487#
  


 00 바람이 불어오는 그 곳에서 바람의 뜻은 새겨진다

 올해의 여름은 〈풍정.각(風精.刻)〉과 함께 한, 네 번째 여름이었고 여전히 뜨겁고도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다.
 사십대 무용가의 삶을 시작하는 시점에 늘 지내오던 강남을 떠나 산과 구름과 바람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종로구 부암동‘이라는 낯선 동네로 이사를 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이 주어진 듯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무용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수업을 주로 하게 되었다.
 열다섯 살 입시무용이후 이십대부터 기존의 삶은 무대작업과 대학을 중심으로 전문 무용인들과의 삶이 전부라 여기고 살아 온 내가 어느 날 어떤 바람을 타고 부암동으로 이사를 왔고 새로운 상황이 주는 신선함과 오래된 공기 안에서 낯선 에너지의 균형감을 실감하며 나도 모르는 내가 간당간당 삶을 이어오는 것만 같았다.
 2013년 겨울 어느 날, 뼈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을 따라 광화문에서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어쩌다가 나는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서있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라는 질문이 몸속에서 또렷하게 찾아왔다. 한참을 걷다가 신호등에서 발을 모으고 단단한 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나를 만났다. 마음이 길을 잃고 헤매던 그날 밤, 내 몸을 흐르는 이 바람이 궁금해졌고 〈풍정.각(風精.刻)〉이 시작되었다.

“바람이 부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바람이 불면 지나쳐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뜻이 새겨져 있는 내 몸 상태, 그것이 〈풍정.각(風精.刻)〉이다.”
- 강일중 공연 칼럼니스트 

 



 01 도시공간무용프로젝트, 〈풍정.각(風精.刻)〉에 대하여
 
 안무가 송주원이 이끄는 일일댄스프로젝트는 지난 2014년부터 〈풍정.각(風精.刻)〉 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장소의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도시공간 무용 프로젝트 시리즈를 기획 및 진행해 왔다.
 〈풍정.각(風精.刻)〉에서 바람(風)은 우리가 현재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 모를 시간의 흐름과 삶의 좌표를 의미하며, 정(情)은 그 흐름의 켜에 쌓여 있는 사랑을, 마지막으로 각(刻)은 그러한 삶의 장면들이 사람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 공간에 새겨지고 다시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풍정.각(風精.刻)〉은 이와 같이 오랜 시간, 사람, 삶, 이야기가 축적된 도시 혹은 도시공간을 중심으로 현대의 삶에서 유리되고 잊혀진 정서와 도시풍경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은 안무가의 해석과 무용수의 지금의 일상에 대입되어 〈풍정.각(風精.刻)〉이라는 ‘신체-퍼포먼스-장소’라는 또 다른 매체로 매번 새로운 장소를 구축하고 기록한다.
 이 길 위에서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해 왔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어떻게 서로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동적 담론과 개개인으로 연결되는 공감각적이고 즉각적인 공유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www.11danceproject.com  



 02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몸의 오차원적 재생(regeneration)
 
 〈풍정.각(風精.刻)〉은 개발의 자본논리에 의해 변형되고 사라지는 도시 속 장소에 몸으로 말을 걸고 이를 질문하기를 반복하면서 서사들을 중첩시켜 새로운 차원을 펼쳐왔다. 그동안 세운상가, 낙원악기상가, 이태원MMMG, 서울도서관, 북촌문화센터, 통의동, 옥인동 등에서 작업해온 〈풍정.각(風精.刻)〉은 이번 일곱번째 시리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양지앙 그룹’과 ‘오차원’이라는 가상의 장소를 대상으로 하였다.
 양지앙 그룹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중심부인 서울박스를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일상이 공존하는 이색적인 장소이자, 사람들 간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교환할 수 있는 현대판 무릉도원으로 변화시켰다.
 지난 7월, 양지앙 그룹과 무용수들과 관객들은 서울박스를 파라핀으로 뒤덮어 마치 녹지 않는 얼음으로 뒤덮인 오차원적 풍경을 만들어냈다. 도시공간 무용프로젝트 〈풍정.각(風精.刻) 오차원에〉는 미술관 내 가상의 장소에 언어화 된 몸의 기록이 투영되어 ‘놓쳐버린 시간’, ‘살아 움직이는 언어’, ‘박제된 무릉도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난 여섯 차례의 〈풍정.각(風精.刻)〉의 취지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양지앙 그룹이 이미 2016년 10월부터 관객참여형으로 축적해온 작업 〈서예, 가장 원시적인 힘의 교류〉에서 수많은 관객의 흔적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도출해낸 질문들을 무용수들과 나누며 일상에서 당연하게 행해왔던 것들을 또 다른 의례의 차원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질문하는 것이다. 

 




 03 오차원에 이르는 여정

 
 지난해 10월부터 일일댄스프로젝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제안으로 세 차례의 워크숍을 거쳐 양지앙 그룹 작업이 설치된 미술관 속 전시공간을 〈풍정.각(風精.刻)〉의 일곱 번째 사이트로 설정했다. 이는 동네와 골목이라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곳과는 거리가 멀었던 〈풍정.각(風精.刻)〉의 여타 작업 장소와는 매우 다른 성격의 ‘보여주기’를 최적화하기 위해 수많은 장치가 설정된 장소이다.
 양지앙 그룹의 〈서예, 가장 원시적인 힘의 교류〉는 작가의 삶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짐으로써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전문무용수와 비전문무용수가 한 데 모이고 섞여 무대가 아닌 도시 속에서 몸짓으로 이야기를 그리고 춤의 언어로 발화하는 〈풍정.각(風精.刻)〉과 맥락을 같이 하기도 한다.
 ‘오차원’이라는 가상의 장소에서 양지앙 그룹은 그들의 파라핀 작업이 공연무대로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며, 〈풍정.각(風精.刻)〉 도시가 아닌 미술관을 가상의 공연 무대로 확장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식사 후 서예하기 퍼포먼스를 올해 2월과 5월에는 양지앙 그룹과 무용수들은 함께 차를 마시고 향을 음미하기도 하고, 파라핀을 직접 붓는 과정을 나누고 피라미드, 각자의 이슈를 수천 장의 한지에 서예를 하여 먹의 연못에 담고, 소나무와 의자, 차, 찻잔 등이 있는 공간에 파라핀을 부어서 ‘겨울’로 동결시켜 오차원의 공간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동결되어 모든 것이 박제된 장소가 만들어지며 퍼포머들은 일상에서 경험한 가령 ‘오늘의 아침식사는 무엇인가요?, 일상에서 자주 마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현재 당신의 삶의 토픽은 무엇인가요?, 동시대성을 상징하는 일련의 사건 (연합신문, 2017년 6월 21일자)‘ 등과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반추 등의 의례를 거쳐 작업의 가장 기초가 되는 단위들을 도출해냈다.
 서로 먹고 마시는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 나누며 서로의 일상의 단면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글로 몸으로 내러티브를 만들어 갔다. 눈만 감으면 바로 닿을 수 있는 무릉도원이, 실제 현실에서는 닿기 어려움을 체감하면서 내면의 장소의 힘이 가진 잠재력과 한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살아 움직이는 〈풍정.각(風精.刻)〉으로 구축해 내고자 하였다. 

 




04 여럿이 한 호흡 / 일일댄스프로젝트 손현

 
 첫 만남

 어쩌다 보니 3년 전부터 현대무용 공연에 간간히 참여하고 있다. 송주원 안무가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7월이다. 갤러리팩토리에서 기획한 현대무용 워크숍으로 인연이 되어 그해 10월, 무용수로서 공연에 참여했다.
 〈풍정.각(風精.刻)〉을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름을 풀어보면 '바람의 뜻을 아로새기다'란 뜻이다. 장소 특정적(site-specific)인 무용 프로젝트인 만큼 바람은 그동안 꽤 다양한 장소에서 불어왔다. 북촌문화센터, 이태원MMMG, 서울도서관(구 서울시청), 낙원악기상가 등의 공간을 거쳐, 종로구 창성동 일대의 골목에서도 공연이 있었다. 그중 다섯 번째 시리즈는 2015년 늦가을, 독일 베를린의 마인블라우(Meinblau) 갤러리에서 진행되었다. 공연 대부분이 10-11월에 있었기 때문인지, 관객과 무용수를 맴돌던 늦가을의 잔잔한 바람이 종종 생각난다.



 일곱 번째 이야기: 풍정.각 오차원에

 지난 8월 중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공연을 마쳤다. 이번에는 유독 마감이 몰려있는 주(나는 현재 미디어/콘텐츠 회사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에 리허설과 본 공연까지 겹쳐 몸과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무렵, 매 공연이 괴로웠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그런 걸 참 쉽게 잊는다.
 본 공연이 임박할수록 상황은 복잡할 때가 많다. 안무가, 무용수, 음악가, 기술감독, 사진 및 영상 작가, 큐레이터, 미술관 다른 부서 등 상상하지 못한 여러 문제들이 여러 관계에서 터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괴롭고도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추억할 수 있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처음에는 이런 과정을 혼돈 또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한 번 기적을 경험하고 나니 더 적절한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협력'이다.
 석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고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맞춰 연습하다 보니, 연습은 어느새 공연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의 습관이 되었다. 그들과 협력하면서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고, 공연은 차근차근 짜임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지난 석 달 동안의 기록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본다.

• 5월 7일(일): 풍정.각 일곱 번째 시리즈 준비를 위한 첫 미팅.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양지앙 그룹(Yangjiang Group)의 〈서예, 가장 원시적인 힘의 교류〉 전시를 함께 보면서 안무가에게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 5월 13일(토): 양지앙 그룹이 한국에 방문했다. 오후 2시부터 함께 차를 마시고, 4시부터 8시까지는 전시 공간 일부에 파라핀 왁스(paraffin wax)를 붓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파라핀을 천천히 부어야만 흰 눈처럼 서서히 굳는다는 사실을 네 시간이 걸려서야 알았다. 마치 세상사 중에는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진행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 5월 19일(금): 첫 번째 워크숍. 오전 10시에 국립현대미술관 지하 1층에서 모이기로 했다. 동네에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자 맥도널드에서 부랴부랴 맥모닝 세트를 주문해 먹고 왔는데, 하필 안무가의 첫 질문이 '오늘 아침에 먹은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그것이 내 몸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쓰도록 했다. 또한 평소 자주 마시는 음료와 그것이 내 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노트에 적도록 했다. 이는 추후 무브먼트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그 외에 두 가지 질문이 더 있었다. 요즘 관심 갖는 주제는 무엇인지? 그중 어떤 걸 손으로 쓰고 싶은지 물어봤고, 마지막으로 '먹의 연못'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전시 공간 안에 지금의 마음을 담아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도록 했다. 안무가는 각자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세로로 써달라고 주문했다.

• 6월 2일(금): 두 번째 워크숍. 그날 아침에 먹은 음식이 우연에 의한 선택일 수 있지만, 어쩌면 각자의 생활 습관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소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는 나는 어쨌든 팬케이크와 버터, 해시 포테이토와 커피 등 맥모닝 세트에 들어가는 음식을 춤으로 만들어야 했다.

• 6월 4일(일): 홍은동에 있는 서울무용센터에서도 연습을 시작했다. 각자가 상상하는 '시금치'를 소리와 동작으로 표현하는 단체 신을 만들어봤다.

• 6월 16일(금): 첫 번째 워크숍 때의 질문을 몸동작으로 구체화시키고 안무가에게 확인받는 과정을 지속했다.

• 6월 18일(일): 이후 연습은 주로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평일)과 홍은동 서울무용센터(주말)에서 진행되었다. 18일 오전에는 내 테마인 '맥모닝'이 잘 풀리지 않아 아침식사로 맥모닝 세트를 다시 먹어봤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내 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포만감을 느끼는 순간부터 가벼운 졸음이 오는 것 같다.

• 6월 23일(금), 25일(일), 30일(금): 연습 & 연습. 다른 무용수들의 동작을 서로 따라 해 보는 등 각자 안무한 내용을 공유했다.

• 7월 1일(토):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무용수 중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있었다. 전문 무용수와 비전문 무용수 모두 바르게 소리 내는 연습을 진행하며, 화음과 불협화음을 맞춰보았다. 같은 날 오후, 50여 명의 관객을 초청해 차 마시기 행사를 진행한 양지앙 그룹은 그 시간과 공간을 통째로 박제하려는 듯, 다시 파라핀을 붓기 시작했다. 사고하는 방법과 스케일이 다르다는 면에서 그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은 이런 발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 7월 2일(일): 첫 번째 워크숍 때, '요즘 관심 갖는 주제'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그때 적은 내용을 서예로 쓰는 시간을 가졌다. 그 종이를 뭉쳐 전시 공간 내 '먹의 연못'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연습.

• 7월 7일(금), 9일(일), 14일(금), 16일(일): 각자의 솔로를 연습하는 동시에, 전문 무용수들이 안무한 듀엣 동작을 비전문 무용수끼리 변주하여 발전시켜봤다. 역으로 비전문 무용수의 테마를 전문 무용수가 발전시키는 등 무용수 간에도 동작의 교류가 서서히 진행되었다.

• 7월 23일(일): 한여름의 홍은동 연습실에서 나의 서른세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안무가가 부암동에서 손수 사온 생강 케이크를 나눠 먹고 연습했다. 이날은 무학사의 손정민이 합류하여 간단히 의상을 확인했다.

• 7월 28일(금), 29일(토), 30일(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예고편 영상을 찍기로 해서, 의상을 입고 리허설을 진행했다. 토요일 저녁에는 다 같이 미술관 근처의 오래된 중국집 연춘관에서 저녁을 먹었다. 옛날 방식으로 요리한 탕수육이 맥주와 잘 어울렸다.

• 8월 5일(토), 6일(일): 어느새 본 공연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주말 이틀 연속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습 및 리허설 진행.

• 8월 7일(월): 퇴근하고 저녁 8시 30분부터 11시까지 미술관에서 리허설.

• 8월 9일(수):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미술관에서 리허설. 처음으로 음악가와 함께 리허설 할 예정이었으나, 미술관의 갑작스러운 운영 문제로 2시간 정도 지연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너무 더운 날씨로 인해 야외 공연 장소가 실내 로비로 옮겨지면서, 우리 측 리허설과 음향이 겹쳤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회사 업무 사정으로 반차를 내지 못하여 틈틈이 원격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 8월 11일(금): 오후 5시부터 8시 30분까지 미술관에서 리허설. 역시 반차를 내지 못하여, 리허설을 마치고 새벽 4시까지 일했다.

• 8월 12일(토): 드디어 본 공연. 오후 1시에 마지막 리허설을 진행하고 오후 4시와 7시 30분, 두 차례의 본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제법 많은 관객이 왔다. 자연스레 긴장했지만, 그 굳은 마음을 음악이 풀어줬다. 피아노, 비브라폰, 하모니카 등의 여러 악기가 내는 흥이 분위기를 살렸고, 우리는 리허설을 통해 어느덧 몸에 익숙해진 동작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계수정, 최창우, 존 벨(John Bell)에게도 감사드린다. 당신들의 연주가 좋았다. 

 



 협력 역시 습관이다

 〈풍정.각〉의 일곱 번째 공연은 결과적으로 무용수나 음악가 개인 특성만을 고집하는 것보다 더 큰 성과를 냈다. 그 성과는 관객 반응을 통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공연에 참여한 무용수와 음악가들, 더불어 송주원 안무가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 스스로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고된 협력을 이끈 안무가의 리더십 덕분이다.
 40여 년 동안 수천 명의 무용가와 백여 개의 회사들과 함께 일한 천재적인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는 자신의 저서 『여럿이 한 호흡』에서 이렇게 말했다.

"협력 역시 습관이다. 그 습관을 계발하길 바란다. 처음에는 개인의 발전보다 협력적인 프로젝트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그 감정을 극복하면 제 궤도에 오른 것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똑똑하다면? 더 심한 일벌레라면? 머리 회전이 빠르다면?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협력은 테니스 경기와 같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시합을 펼칠 때 비로소 실력이 향상된다. (중략) 협력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일하는 방식을 연습하는 것이다. 협력은 근본적으로 관계에 기반한 것이다. 따라서 협력은 '더 나은 인간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시작된다." (p.23) 

 


 바람의 뜻을 아로새기다. 〈풍정.각〉의 의미는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자 양지앙 그룹의 전시 마지막 날인 8월 27일 늦은 오후, 다시 미술관을 찾았다. 2016년 10월부터 시작한 전시도 이날이 마지막이다. 미술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전시 준비를 위해 분주해 보였다. 공연을 했던 장소가 통째로 변하는 기분은 어떨까? 삶의 터전이 사라진 듯한 상실감일까 아니면 새 단장할 장소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클까? 장소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은 어쩌면 장소특정적 무용 프로젝트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이 어디든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번에는 한여름의 뜨겁고 습한 바람부터 약간의 선선함이 감도는 초가을의 건조한 바람을 매우 즐겁게 느꼈다. 한 호흡으로 협력한 동료들과 안무가 덕분이다. 

 



05 공연 크레딧
 
일시_ 2017년 8월 12일 오후 4시 / 7시 30분
장소_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대한항공박스프로젝트

함께 한 사람들
전문 무용수: 강진안, 공영선, 김봉수, 김우진, 김호연, 손나예, 임정하, 최민선
비전문 무용수: 김세아, 김민재, 김윤하, 손정민, 손현, 이병엽, 양수현, 윤세영, 윤자윤, 한빛
음악: 계수정, 최창우, John Bell
일러스트: 최진영
홍보물 디자인: 김민재
의상: 무학사
사진: 이운식
영상: 이미지줌 (장준호, 이경진)
텍스트 정리: 이경희
퍼포먼스 공동기획: 박덕선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정수진 , 프롬에이 (강기영, 권윤정)
멀티플랙스홀 매니저: 지정수
장소: 대한항공박스 프로젝트 2016 : 양지앙 그룹
총기획 연출 안무: 송주원
주관: 일일댄스프로젝트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대한항공 

 



 11 일곱 번째 불어 온 바람이었다
 
 긴 시간 몸으로 품었던 일곱 번째 〈풍정.각(風精.刻)〉이 끝난 지 열흘이 흘렀다.
 지난해 여섯 번째 작업이 2016년 10월 3일이었고 삼일 뒤 10월 6일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분들과 양지앙 그룹을 만났었다. 첫 퍼포먼스인 밥 먹고 서예하기부터 차 마시기, 차 마시고 서예하기, 파라핀 퍼포먼스에 참여를 했고 통역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풍정.각〉 일곱 번째 장소에 대한 리서치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5월 13일 무용수들과 작가의 협업인 파라핀 퍼포먼스를 시작점으로 이 작업에서 찾아낸 질문들로 내러티브를 찾아 긴 터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직업군에 따라 연습시간을 정하고 각자의 일상을 이야기 나누고 몸짓으로 이어가는 놀이와 규칙을 정하고 공연리허설을 시작했다.
 이번 작업은 기존의 작업들과는 달리 인위적인 장소이자 가상의 장소에서 각기 너무나도 다른 매체로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작업이라 그간 이어져왔던 작업의 핵심구조가 흔들리기도 했었고 ‘오차원에’ 에 대한 의미와 장소성에 대한 혼돈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전문무용수와 비전문무용수의 교집합을 더 많이 갖는 것과 춤의 기술과 각 내러티브에 대한 제스처를 기반으로 한 몸짓언어를 더 밀도 있게 구축하는 것, 전문무용수들의 기술을 〈풍정.각(風精.刻)〉의 언어로 언어화 하는 것이 미션이자 이루고 싶었던 소망이었다. 연습과 리허설을 하면서 찾아질 줄 알았다. 그것은 희망이자 소망이지 나의 현실은 아니었다. 도저히 숨 막히는 어느 날, 어디로 가야할 지를 찾아 사십오 세 생애최초 홀로 가는 바다여행을 감행했었고 ‘나 안무 잘하고 싶다' 를 외치며 시도자체에 대해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기존의 방법들로 작업을 이뤄나갔다.
 〈풍정.각(風精.刻)〉은 도시의 장소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장소특정형 공연의 형태를 넘어서, 퍼포머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지점에 대한 상상력 확장에 주목하고 오차원에 라는 장소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선택하고 건축, 의상, 설치미술, 디자인, 에디터, 학생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비전문 무용수와 전문무용수가 모여, 서로의 언어를 탐색하고 발견하며 협업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와 표현의 확장하는 커뮤니티댄스이다. 공연전문예술가(무용인)와 비전문예술가가 공연자로 참가하는 작품으로 비전문예술가들에게 아마추어리즘에 기반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전문 퍼포머로서 인식하도록 하는 창작과정의 경험을 거쳐 하나의 완성도 있는 작품을 제작하는 경험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어떻게 풍요롭게 할지 춤예술의 가치공유와 삶과 예술활동을 이어주는 귀한 시간이자 그들과 함께 꾸는 꿈이다.
 일곱 편의 〈풍정.각〉 중 다섯 편에 출연한 영선이 말대로 이번에도 〈풍정.각〉만 도와주시는 개인 신 강림하여 또! 기적을 만났다. 8월 12일 7시 30분 공연은 여덟 명의 전문무용수와 열 명의 비전문무용수, 네 명의 뮤지션들, 무용수들 사이로 뛰어 들어오는 아이들까지 역대급으로 기가 막힌 하모니를 이뤄냈다.
 늘 〈풍정.각〉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말하길 이 작업은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지만 이번 공연 특히 7시 30분 공연은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미술관에서 한 시간 가량의 공연에 이렇게 몰입하다니 모두가 마법에 걸린 순간을 만났다. 그 순간 이것이 〈풍정.각(風精.刻)〉이고 살아있는 공연이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보는 내내 심장이 땅 밑으로 하늘위로 쥐락펴락 널뛰기를 하는 무대가 펼쳐졌고 공연을 준비하느라 초대를 놓친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적처럼 만나고 휘발되는 현장에서 그들은 정말이지 최고였고 오차원의 장소에 스며든 마지막 순간이었다.
 아직 내 눈가에는 그 날의 몸짓과 아름다운 연주가 여전한데 이번엔 이틀 뒤부터 여덟 번째 작업을 위한 준비로 청파동 골목을 오르고 있다. 하늘이 높아지는 것을 보니 곧 가을이 오려나 보다… 허허! 

 

송주원
무용수, 안무가. 극장중심의 공연에서 도시공간에 대한 리서치와 설치미술, 문학, 음악, 사진, 영상, 일러스트와의 코워킹으로 ‘도시-사람-지금여기’ 관계에 대한 내밀한 질의와 담론을 ‘도시공간무용프로젝트 〈풍정.각(風情.刻)〉 시리즈’를 통하여 장소특정적 퍼포먼스 공연으로 이어가고 있다. 

2017.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