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형식적 탐미주의의 정점
김혜라_춤비평가

안성수 감독의 안무는 순수 추상 형식을 탐미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작품이 발표될 때 마다 음악과 모던발레를 탐미하는 스타일에 대한 신뢰는 두터워졌으며 이 둘의 정교한 조합이 확인되어 왔다. 근래에는 그 음악적 관심의 스펙트럼이 국악과의 협업까지 확대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국립현대무용단 신작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은 그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전술한 대로 작품 〈검은 돌: 모래의 기억〉(11월 1일, 토월극장)은 안성수 감독의 안무스타일이 집약된 작품이다. 구체적으로 움직임의 질적 심화, 미니멀한 조명과 무대 연출, 국악의 음선율과 춤의 합일을 추구한 작품이다. 라예송 음악감독과 함께한 전작 〈제전-장미의 잔상〉의 연장선상에서 더욱 한국적 선율에 춤적 미감을 깊이 있게 접목하고자 한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작품 〈검은 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한 시간여 동안 댄서들의 물결치듯 일렁거리는 움직임이다. 바로 이 움직임이라는 작품의 주요 매개체를 통해 관객들에게 기억의 파편들을 이미지화 할 수 있는 정서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특히 작품 중간 즈음 무대를 비우고 음악만으로 무대를 채운 과단성은 비록 첫 시도가 아니라 신선함이 떨어졌다 할지라도 한국적인 비움의 미학을 실현한 장면이다. 여기에 구음의 울림은 기억이라는 의식 깊은 곳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안내자처럼 여겨졌다.
 한국전통음악에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전체 음악이 국악기를 사용하지만 한국적 색채보다 화음에서 벗어난 현대적인 성격이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졌다. 전작들에서 평가되었던 “음악이 춤의 부력”(국립현대무용단 픽업스테이지 〈슈팅스타〉, 〈춤웹진〉2017년11월호)으로 작용되었다는 진단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불안정한 곡 선율 사이사이를 안정된 춤으로 오히려 음악의 거친 질감을 채워준 느낌이었다. 음의 선율과 질감은 바람 같았고 그 바람에 산화되고 다시 뭉치는 일련의 과정을 댄서들의 춤을 통해 이미지화 했다고 본다. 정제된 듯 균형적인 군무 대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정지 혹은 꺾이는 한국춤 동작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잘게 쪼개는 촉매제로 인지되었다. 다시 말해 단단한 검은 돌덩어리(존재)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살아내는 과정을 시각적 미장센으로 펼쳐 놓은 것이다. 작품은 단조로운 듯하지만 일관된 바리에이션 규칙의 반복과 변용으로 무대는 춤의 질적 정서로 채워지며 시적 해석의 토대를 확보하였다. 모더니즘적인 아름다움을 고수하겠다는 자기 신뢰와 확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댄서들의 움직임도 기술적으로 빼어나 안정감이 있었기에 작품의 의도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주었다.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반면 크레센도로 에너지가 발산되는 움직임과는 달리 무미건조한 댄서들의 표정과 규칙적인 변형만을 보는 것은 관람자에게 인내심을 요구했다. 물론 모래로 은유된 댄서들의 몸은 물질화되었기에 표정이나 개성적 특질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작품의 주제를 생각해 보면 적절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작품의 주제적 성격을 객관화 혹은 명료화하기 위해서라고 여겨지지만 무표정 한 얼굴이 과연 적절하고 자연스러운지 모두가 생각해 볼 지점이다. 많은 현대춤에서 댄서들의 얼굴은 주인이 아닌 듯 자신의 영혼이 잘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댄서들이 군무에서 만드는 구도와 틀이 지나치게 균형감을 지향한 것이 마치 댄서들이 모래시계에 갇힌 듯한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모래가 잘게 부서지고 흩어지며 자아의 기억내지는 시간의 흔적을 찾고자 한 작품 의도가 있음에도 정형적인 틀 안 지나치게 갇힌 채 움직여진다는 생각이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여졌다. 결론적으로 안 감독의 안무와 예술적 소신은 〈검은 돌〉에서 더욱 심화되고 음악적 합일이 성취된 반면 통상적으로 해 온 개인의 춤언어에 천착된 작품으로 신작으로서의 기대감은 충족되지는 않았다.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황승택/국립현대무용단




 안 감독의 안무적 특성은 관객의 취향에서 보면 호불호가 있을 듯하다. 안 감독의 음악과 춤의 대등한 협력자로서 무대에서 그려내는 공연물은 대중들의 청각·시각적 만족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는 생각은 든다. 자신만의 춤 언어적 접근방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댄서들의 훌륭한 기량을 보면 미적으로는 아름답다. 이전의 바흐, 쇼스타코비치, 라벨, 시벨리우스, 스트라빈스키, 재즈 등 음악을 시각적 춤언어로 구현해냈고, 최근에는 전통음악으로 작품을 조합하는 방식은 해외유통을 유념한 듯한 행로로도 보이며 국립단체라는 정체성도 고민한 듯 보인다.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은 모더니즘적 순수 움직임과 시적 감수성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선물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컨템퍼러리 춤의 정신을 찾고자 한 관객들에게는 실망을 줄 수 있었던 동전의 양면성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춤의 형식적 탐미주의를 선호하는 관객들은 이 작품에 환호할 것이고, 전위성과 시의적 의미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그 어떤 충족감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2019. 12.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