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영두 연출작 〈포스트아파트〉
나열된 자료에 눌린 정서적 공감대
김채현_춤비평가

두산인문극장이 기획한 〈포스트아파트〉는 이색적인 준비 작업으로 공연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두산아트센터, 6. 18. ~ 7. 6.). 단절과 연결이라는 아파트의 생리를 쫓아가서 혹시 있을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단서를 모색하려는 것이 본 기획의 취지로 제시되었다. 이 극장은 2013년부터 불신시대, 갈등, 이타주의자 등 매년 다른 주제에 대해 과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주제는 ‘아파트 네이션’, 2편의 연극과 1편의 다원(〈포스트아파트〉) 공연 그리고 1건의 전시회로 구현되었다.
 기획 측은 〈포스트아파트〉를 춤 공연보다는 다원 공연으로 분류한다. 안무-공간-사운드-영상의 콜라보로 구성되는 이 다원 공연에서 연출은 안무가 정영두가 진행했으므로 연출을 아우르는 안무의 비중은 월등히 높은 편이다. 〈포스트아파트〉가 어느 쪽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는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영두 연출작 〈포스트아파트〉 ⓒ두산아트센터




 한 편의 공연을 마련해나감에 있어 〈포스트아파트〉만큼 사전 준비 작업이 철저한 선례를 적어도 춤 공연에서는 찾기 어렵다는 사실은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준비 작업에서 기획 측이 중점을 둔 것은 인문학적 조사 작업이었으며, 비단 인문학적 조사 작업이 아니더라도 철저한 조사 작업은 대개의 춤 공연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재인식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포스트아파트〉는 블랙박스의 통상적인 정면 주시 형태의 관람 방식도 허물었다. 갤러리 같은 공간 속에 낮은 스탠드형 객석이 여러 지점에 설치되었고 그 사이 사이에 아파트의 베란다, 욕실, 놀이터 모래밭, 자투리 정원 등의 모형 오브제들이 배치되었다. 한 쪽의 긴 벽면에는 영상 이미지들이 비춰졌으며 그 옆쪽으로는 서울에서 지난 수십년간 형성된 아파트 시세를 기성 세대들(4·19 세대, 유신 세대, 3867 세대)의 생애 주기별 경제 지표와 병치시킨 그래프, 아파트 시세 차익의 거대한 누적치 통계,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단편들(삼성그룹의 신경영 선언, 도우미 용어의 등장, 기아자동차 스포츠카 개발, 노동법 개정 비난 궐기대회 등)을 알리는 이미지들이 내걸렸다. 무대 분위기는 학구적이고, 제작진이 진지하게 연구한 공연의 무대로서 괜찮아 보인다.




 

〈포스트아파트〉 무대 공간 ⓒ두산아트센터


 

〈포스트아파트〉 그래프 전시 ⓒ김채현




 공연이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일부 출연진들은 입장객들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본공연의 부분 부분을 예감케 하였다. 공연 중에 관객은 임의로 이동할 수 있다. 공연은 아파트 건설 현장의 소음이 어둠 속에서 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체 전개 내용은 대체로 한국에서 아파트 건설, 아파트 소유와 토지 공개념, 아파트 생활의 소감과 명암(明暗), 아파트 사람들의 마음 주고 받기로 나눠지지만, 그 부분들 사이에 명확한 기승전결은 없이 옴니버스적 전개가 주를 이룬다.








 

〈포스트아파트〉 공연 전 쇼케이스 ⓒ김채현




 〈포스트아파트〉가 아파트의 현재 모습을 완전히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포스트’에서 시사된다. 현재의 아파트가 조장하는 문제 때문에 아파트가 수긍될 수는 없지만, 〈포스트아파트〉의 어디에서도 ‘포스트’의 진면목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오늘날 주거 형태의 대세인 아파트의 대안으로서 만인이 공감할 포스트아파트가 무엇인지는 상상과 논의만 있을 뿐 그 실체는 분명치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포스트아파트〉는 ‘포스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다시피 하면서 관객에게 최종 판단을 맡긴다. 유사한 맥락에서, 아파트의 더 나은 진화를 위해 지금 문명의 오류를 해결하려면 더 나은 문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화두로 던져진다.
 이처럼 ‘포스트’에 대해 열린 태도를 견지하는 가운데서도 〈포스트아파트〉는 평상(平床)을 주목하였다. 평상이 비록 조그마하지만 전통 사회에서 마을 안의 교류 및 작업 공간으로 신실한 역할을 한 데 착안하여 공연 후반부에서 평상을 등장시켰다. 여러 세대와 여러 가구를 상징하는 출연진들은 평상을 여러 각도로 쏠리게 하고 평상과 어울리는 모습들을 다양하게 연출하였고 막판에 할머니를 평상으로 멀리 옮기는 장면에서 관객은 어쩌면 상여 나가는 것을 연상했을 것이다. 일테면 소공간에서도 공동체가 가능한 평상에 비추어 아파트에도 그런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지 〈포스트아파트〉는 암시한다. 이 부분은 공연 전체에서 아주 참신한 대목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포스트아파트〉 ⓒ두산아트센터




 〈포스트아파트〉의 출연진 6인은 연극배우와 무용수 각 3인으로 구성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대사 연기와 영상 이미지가 공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다. 아파트에 관한 여러 담론과 속설 및 현상들이 빠르고 친숙하게 소개된다. 예컨대 아파트에서 점차 늘어나는 고독사 현상과 이를 겨냥한 신종 고독사 보험도 한 대목 소개되듯이, 우리가 소문과 언론으로 접하거나 겪는 일들이 대사 연기로 간결하게 전달된다. 또한 대단위 아파트를 공중에서 본 전경, 대단위 아파트 주변 공터에서 어울리는 사람들, 평상에서 휴식을 취하며 어울리는 사람들, 아파트에서 홀로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들 등이 영상으로 등장한다. 이 부분들에서 잔재미를 느끼고 지금의 아파트를 다시 일별하는 기회를 가졌을지는 몰라도 관객이 얼마나 감정이입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포스트아파트〉 ⓒ두산아트센터




 〈포스트아파트〉 공연 중 지속적으로 제시되거나 환기되는 자료들은 상당히 과도해 보였다. 심지어 국내 아파트의 간략한 역사를 짚는 렉처도 곁들여졌다. 이 모두 아파트 혹은 포스트아파트를 논하는 자료들임에는 분명하였으나 그 자료들은 나열되어 있었고 상식들 이상의 의미를 갖긴 어려웠다. 〈포스트아파트〉는 심지어 두껍게 작성된 레포트 같은 인상을 주었다. 말하자면, 자료들의 평면적인 나열에서 관객은 초점을 갖기 어려웠고 공감대는 점차 옅어갔다. 아파트 혹은 포스트아파트 관련 자료와 정보의 소개가 주도함으로써 〈포스트아파트〉라는 ‘공연작’에서는 논리와 감정 사이의 불균형이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 방대한 자료에서 선정되어 나열된 자료들에서 공연의 취지와 문제의식이 이해될 수 있었던 반면에 객석의 정서는 휴면(休眠)을 취했던 듯하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 ​​ ​ 

2019. 08.
사진제공_김채현, 두산아트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