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리을무용단 정기공연을 보고
춤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가
송성아_전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강사

 리을무용단(예술감독 오은희)은 다양한 전통춤 메소드에 기초한 당대적 춤언어 개발에 주력해온 한국창작춤단체이다. 이들의 서른한 번째 정기공연이 지난 12월 10일과 11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펼쳐졌다. 작품은 상임안무자 이희자의 〈귀신이야기Ⅱ〉와 〈내 딸내미들〉이다.

 

 



 2012년 초연된 바 있는 〈귀신이야기Ⅱ〉는 귀신이 된 딸과 어머니의 만남을 소재로 한다. 작품은 네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며, 무대 중앙에 위치한 사각테이블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전개된다. 테이블 위에서 진행하는 〈장면1〉은 귀신이 된 딸을 묘사한다. 앉아있는 그녀의 발은 허공 속에서 부류(浮流)하고, 사지를 더듬는 손은 앙상하며, 초점 잃은 눈은 휑하다. 무언가를 먹고자 입을 벌리지만 먹지 못하고, 온 힘을 다해 절규하지만 소리 나지 않는다.
 테이블 아래에서 시작하는 〈장면2〉는 딸을 잃은 어머니를 묘사한다. 봉두난발(蓬頭亂髮)을 한 움직임은 낮고 거칠며, 여기저기를 가리키는 검지는 누가 우리 딸을 죽였는가를 묻고 있는 듯하다. 실성한 듯 무대를 휘젓던 어머니는 무대 한 켠에서 딸의 빨간색 구두 한 짝을 찾아 신고 테이블 아래로 돌아온다.
 〈장면1, 2〉를 통해 테이블 위는 귀신 딸의 공간이고, 아래는 살아있는 어머니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장면3〉에서 모녀는 각자의 공간에 누워 있고, 선잠을 자듯 이리저리 뒤척인다. 조금씩 서로를 감지(感知)하는 모녀는 손을 내밀어 머리를 빗겨주고 어깨에 기대지만, 그들의 해후(邂逅)는 눈물겹지 않고 서먹하다. 급기야 딸은 어머니를 죽인다.

 

 



 테이블이 사라진 〈장면4〉는 시간을 앞으로 돌려 딸 살해의 현장으로 이동한다. 어머니는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고, 딸은 누군가에 의해 감금된다. 극심한 공포 속에서 사력을 다해 문을 두드리는 모습은 자해(自解)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피투성이가 된 그녀는 햇살 흐르는 작은 구멍을 향해 마지막 절규를 하고, 아무도 오지 않는 밀실에서 빨간 구두 한 짝을 가슴에 품은 채 서서히 굳어간다.
 〈귀신이야기Ⅱ〉의 ‘장면1, 2, 3, 4’는 귀신이 된 딸, 딸을 잃은 어머니, 귀신 딸과 어머니의 만남, 딸 살해의 현장 등을 묘사한다. 여기서 이희자는 일상적 몸짓(gesture)인 걷기, 더듬기, 절규, 먹기, 손가락질, 뒤척임, 손뜨개질하기, 실 풀기 등에 기초하여 동작을 구성함으로써 각 인물의 성격을 간명(簡明)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전통춤의 주요 기법 원리인 감고 풀기를 활용하여 움직임의 진폭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이 같은 동작구성과 더불어 이목을 끄는 것은 삶과 죽음의 공간을 테이블 위와 아래로 구분하여 귀신 딸과 어머니를 만나게 하는 대목이다. 이승과 저승이 나란히 병립(竝立)해 있고, 산자와 죽은 자가 경계를 넘나들며 상호 소통한다고 믿는 우리네 사유를 일상적으로 흔히 보는 사물을 통해 간명하게 이미지화하기 때문이다.
 이희자의 〈귀신이야기Ⅱ〉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귀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네 개의 장면은 인물의 정서적 정황 묘사에 주력할 뿐, 누가 무엇 때문에 딸을 살해했는가에 대해 침묵한다. 이로써 네 개의 장면은 설득력 있는 서사구조를 확보하지 못한 채 파편화되고, 작품 전체를 통해 지각되는 것은 모녀가 뿜어낸 건조하고 거친 정서뿐이다.

 

 



 올해 서울무용제 경연대상 부분 참가작이기도 한 〈내 딸내미들〉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소재로 한다. 장삼을 변형한 겨자빛 의상을 활용하며 중요 이미지를 만드는 작품은 여섯 개의 장면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장면1’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흰색 수의를 입은 여인이 무대를 가로질러 빛을 향해 걸어가고, 아이를 잉태한 임신부가 그녀를 바라보며 배를 어루만진다. 이것은 어머니의 죽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장면2’는 본격적으로 작품이 전개되는 부분으로 어머니 죽음에 대한 딸의 슬픔과 그리운 어머니 모습을 묘사한다. 겨자빛 의상을 솜이불처럼 뒤집어 쓴 몇몇이 조그맣게 웅크려있다. 위아래로 들썩였다 좌우를 치는 몸짓은 딸의 슬픔과 통곡을 표현한다. 순간 의상을 포대기로 변형하여 아이를 엎은 양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나란히 걸어간다. 〈봉산탈춤〉 미얄을 연상시키는 그들은 그리운 어머니 모습이다.

 

 



 ‘장면3’은 어머니의 삶이 딸에게 재현되고 있음을 묘사한다. 암전 후 겨자빛 의상을 치마처럼 입은 몇몇이 일렬로 등장한다. 엉덩이를 살랑거리는 그들은 제대각시나 소무를 연상시키고, 치마를 풀어 아이를 어르는 모습, 엎는 모습, 키우는 모습 등을 이미지화한다. 이것은 딸의 삶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삶이 재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장면4’는 어머니 장례식이다. 겨자빛 의상은 상여가 되고, 수의가 된다. 모녀는 서로를 감싸며 뜨겁게 안고, 딸은 어머니에게 수의를 입힌다. 어머니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을 남기듯 홀로 춤을 추고, 딸들은 그 옆을 지킨다. 춤을 추던 어머니는 딸들과 함께 원형을 그리며 계속적으로 춤을 춘다.
 ‘장면5’는 계속해서 장례식이다. 저승길을 걸어가는 어머니와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딸을 묘사한다. 어머니는 무대 중앙에 놓인 상여를 풀어 무대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길을 만든다. 그녀는 휘영청 달 밝은 밤 여인들이 부르는 〈월월이청청〉과 함께 저승길을 걸어가고, 딸들은 길가에서 도무(跳舞)한다. ‘장면6’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짧은 부분으로 나직한 자장가 소리와 함께 아이를 업은 어머니의 모습이 비춰진다.

 

 



 〈내 딸내미들〉에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장면2, 3, 4, 5’이다. 딸의 슬픔과 그리운 어머니 모습, 딸에게 재생되는 어머니의 삶, 망자(亡者)와 상주(喪酒)의 춤, 저승길을 걸어가는 어머니와 극락왕생(極樂往生)을 축원하는 딸 등으로 요약되는 이들 장면은 다시 두 부분으로 묶어 볼 수 있다. 그 처음은 ‘장면2, 3’으로 딸이 어머니의 삶을 재현함으로써 어머니의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짐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아이를 업은 어머니의 뒷모습으로 암전되는 ‘장면1’과 제대각시나 소무를 연상시키며 등장하는 ‘장면2’를 연결해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즉 앞뒤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동시에 이들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브리지(bridge)가 없음으로써 둘은 분리된 각각으로 지각된다는 것이다.
 장례식을 묘사하는 ‘장면4, 5’를 또한 묶어 볼 수 있다. 망자가 춤을 추고, 저승길을 열어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이들 장면은 씻김굿, 진오기, 오구굿 등으로 불리는 사령(死靈)굿의 형식을 부분적으로 발췌하고 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들 굿의 핵심은 망자가 무당의 몸을 빌려 맺힌 한(恨)을 말하고, 가족들과 함께 이것을 풀어,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것이다. 〈내 딸내미들〉에서 어머니의 춤은 맺힌 한을 말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고, 딸들과 함께 추는 춤은 맺힘을 푸는 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상하와 좌우로 뿌리고 치는 그들 움직임에서 그러한 정서적 차이를 찾기 어렵다.
 이희자는 ‘장면2’에 등장하였던 상하로 들썩였다가 좌우를 치는 패턴을 계속적으로 반복 ‧ 변형·발전시키며 전체 움직임을 구체화한다. 이 점에서 〈귀신이야기Ⅱ〉와 더불어 동작구성이 매우 간결하고 학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브리지가 부재함으로써 작가의 주제적 언표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사령굿의 형식을 빌려 오지만 움직임의 질적(effort) 표현력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함으로써 단순 인용에 머문 측면이 있고, 정서적 공감대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




 춤은 동시대를 함께 살 필요가 있다

 오늘 우리는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정부에 의해 수장된 많은 아이들을 기억한다. 또한 찾지 못한 시신이 심해를 떠돌고, 죽임의 원인이 은폐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너무도 많은 귀신이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는 셈이며, 억울함을 토로하지도 마지막 인사도 못하였기에 장례식을 하였다고도 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살해의 원인은 밝히지 않고, 건조하고 거친 정서만이 넘쳐나는 〈귀신이야기Ⅱ〉는 답답함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죽은 어머니의 삶이 딸에게 재생되고 이어진다는 〈내 딸내미들〉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현실감이 떨어지며, 망자의 한을 풀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모습은 작위적이다.
 울고 또 울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오늘, 춤은 동시대를 함께 살 필요가 있다. 당대를 반영하지 못한 춤은 공감을 얻기 어렵고, 소통하지 못함으로써 사라진다. 이것을 반증하는 것이 중국에서 유입된 많은 정재들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쉬이 사라졌다. 반면, 당대적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전승된 〈처용무〉는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 하였다. 동시대성의 확보는 춤의 존폐를 가르는 중요한 요건이다. 또한 지금 여기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고민이며 도리이다. 

 

2017. 01.
사진제공_리을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