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연재 | 나의 현장 상상 2
아, 들꽃에도 제 이름이 있음을
김현진_안무가

봄이 되니 겨우 내 숨어 있던 생명이 천지에서 움을 튼다. 차가운 회색빛 겨울은 어느새 여리여리 연둣빛 봄옷으로 갈아입고, 딱딱하게 얼어붙었던 땅도 폭신한 품으로 변신한다. 녹녹해진 대지를 뚫고 올라온 여린 싹, 마른 나뭇가지에 새로이 돋아난 잎새들, 동사한 줄 알았던 길고양이들과 반가운 조우, 천상의 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들……. 이 모두가 봄을 알리는 신호들이다.




  

  

들꽃 봄나무©김현진




자연은 미세하고도 섬세하게 또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명을 유지한다. 누군가가 눈치채든 못 채든 매 순간 매일매일 충실히 숨 쉬듯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그러다가 한순간 자연이 선사하는 드라마틱하고도 경이로운 장관을 맞닥뜨리게 되면 우리 인간은 경외감에 찬사를 보내거나 그만 넋을 잃고 멍해지기 마련이다. 지구, 자연이 벌이는 그와 같은 매직쇼는 사실 끊임없는 밑 작업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것이 감탄사가 튀어나오는 멋진 장면이든 아니면 인류에게 경고를 날리는 엄청난 재난이든 간에 말이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졌다. 내게 있어 겨울은 피부가 체감하는 절기상 겨울뿐만 아니라 마음의 겨울도 포함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11월부터 3월까지 동면에 돌입한다. 거의 집에 콕 박혀 어떻게든 추위와 대면하지 않는 생존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후변화 탓인지 겨울이 더 길어진 듯하다. 3월이면 동면을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1월에서 5월까지로 자그마치 두 달이나 더 늘어났다. 일교차가 큰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여기저기서 불어대는 돌풍 때문에 심란하기 그지없다. 봄기운을 만끽하려 해도 불어오는 강풍 때문에 그만 실내로 몸을 피하고 만다.

아무튼, 나는 올 초부터 안 하던 짓을 해보느라 기운을 다 소진했다. 가족과 스스로 거리를 두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했고, 그 덕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내게 큰 무리수인 대극장에서의 개인 공연도 올려 보았다. 또 그 덕에 몸살도 앓았고, 공연에는 언제나 많은 인내와 고난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렇게 벅차고 긴 겨울을 보낸 후 내 몸과 정신은 초기화가 된 듯하다.




〈나의 이야기〉 공연 준비로 찾은 한강고수부지에서 한 컷 ©방미현




그러다 봄을 맞게 되었다. 기후변화이니 뭐니 해도, 자연은 우리에게 어김없이 봄을 선사한다. 아직까진 말이다.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몸을 비집고 싹을 틔운 새싹들, 그 척박한 곳에 귀한 생명을 틔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그래 너희 거기 살고 있었구나, 얼마나 애썼니? 싹을 피우려 얼마나 오래 기다린 거니? 너희를 밟고 지나갈 수도 차마 꺾을 수도 없구나. 그곳에서 부디 잘 살아라…. 마음속으로 이러한 말을 전할 뿐이다. 그리고 몸을 낮추어 그들이 형성한 군락지를 들여다본다. 개체 하나하나 작은 몸의 생김새를 눈에 담는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갈 듯 여린 몸을 땅에 붙이고 앉아 나름의 아우라를 뽐내고 있다. 작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풀잎의 형태에서 그리고 오묘한 색색 가지의 꽃과 열매에서 신비스럽고도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몸집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생존의 방식도 제각각 누군가는 일찍 피고 지고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며, 싱그러운 열매와 향기로 생을 이어간다. 놀라운 건 이들에게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무심히 밟히고 언제라도 뽑힐지 모르는 잡풀의 운명이지만, 이들에게도 엄연히 각자의 이름이 존재한다. 그저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자연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는 이유였을까 아니면 인간의 기호에 맞춰 양식된 꽃집의 꽃들에만 눈길을 줬기 때문일까, 이토록 아름다운 들풀과 들꽃에 무심했던 나의 지난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난 그간 왜 이처럼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참 바보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 공연을 마치고 자연을 만끽중 ©김선주




간혹 무용계에서 이런 말을 무심코 던지는 ‘어른’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름 모를 신인들이 초대하는 공연은 보러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이름 없는 개인이나 민간단체의 공연은 피한다. 대신 국립 단체나 공공기관 등이 개최하는 큰 기획의 공연이나 이름 있는 대가의 공연은 어디라도 찾아간다”는 어른. 자신의 취향대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자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그 개인이 무용계에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용과를 졸업한 수많은 개인이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민간 무용단의 무대는 국가의 지원으로 운용되는 국공립 단체의 결과물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자명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꽃길만 찾아다닌다면, 나는 그것을 직무유기라 부를 수밖에 없다.

무용 창작자의 향후 활동과 가능성을 좌지우지할 결정권자들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너의 이름을 모른다. 그간 네가 나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네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면, 무용계의 건강한 생태계도 또한 그렇게 부르짖는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도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꺼이 발로 찾아다니면서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작지만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가는 소규모의 창작자들에게도 관심을 갖자.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들이 흘리는 땀과 열정 그리고 절박한 눈빛을 본 적이 있다면, 과연 무용계의 그 소수의 어른에게 외면받아야 할 이름 없는 존재들이었는지 감히 생각조차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김춘수의 시 “꽃”이 떠오르는 밤이다.

김현진

'김현진의 춤공방' 대표. 예고와 학부 그리고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무용문화와 실기과정' 석사를 마쳤다. 컨템퍼러리무용단 ‘탐’에서의 무용수 활동 이후, 독립 안무가로 지내며 〈나의 이야기〉(2022), 〈몸으로 자연으로〉(2016), 〈몸의 부호들〉(2015), 〈기괴한 도시〉(2014), 〈Nothing There〉(2004), 〈Discothéque〉(2003), 〈벗겨진...〉(2001) 등을 발표했다. 월간 「춤」, 「댄스포럼」에 춤기행문과 춤에세이를 연재기고한 바 있다. ​

2022. 6.
사진제공_김현진, 방미현, 김선주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