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수요춤전〉조갑녀류 민살풀이춤 공연을 마치고
“누구나 출 수 있지만 아무나 못추는 것이 춤”
이계영_조갑녀춤보존회 연구위원

 7월 15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있었던 <수요춤전> ‘현시대를 통해 바라보는 전통의 재발견’ 공연은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무대였다. 공연을 마친지 조금 지났지만 어느 새 나의 마음은 조갑녀 선생님이 생존해 계시던 지난 3월로 돌아간다.
 춤의 가치를 알아 보셨던 한국일보 사진기자를 지내신 정범태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따님 되시는 정명희 선생에게 춤을 가르치기 위해 남원에서 서울로 상경하신지 어언 10년. 아흔을 넘기신 선생님은 올해 들어 응급실을 찾는 일이 부쩍 잦아지셨다.
 정명희 선생님과 함께 조갑녀 선생님의 춤을 학습해 오면서 살아생전에 선생님의 춤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에 나는 수요춤전에 공모하게 되었고, 공모 마감일에 맞추어 우편 발송을 위해 우체국에 다다랐을 때 다급히 응급실로 가셨다는 전갈을 받게 되었다. 곧 다시 퇴원을 하게 될 줄 알았지만 이틀 후인 4월 1일 조 선생님은 세상의 인연과 작별을 고하셨고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남원 국악성지에 모시고 나서야 공모선정에 내 이름이 올라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도 안 계신 마당에 이 공연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좀 더 서두르지 못한 후회스러움으로 고개를 떨구며 한숨만 몰아쉬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선생님께서 주신 기회라는 생각에 세상에 이런 명무가 있었으며 민살풀이춤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 제자 된 도리이자 의무라 여겨져 3개월 남짓 마음을 담아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생각할수록 맹랑해...춤이...내 멋이 있어야 하는 것이여...내 멋이 없으면 못 해....아무라도 못추는 거이다...멋도 있고, 한도 있고 그래야 추지...”

 일제 강점기 권번이라 불렸던 남원국악원 출신 조갑녀!
 일곱 살 나이에 춤을 추기 시작해 아홉 살에 춘향제 무대에 섰으며 열 두살에 독무대를 가지며 어린 나이에 남원 최고의 명무라는 찬사를 받은 춤이지만, 열아홉 나이에 결혼과 동시에 자녀들과 가족들을 떠안아야 했던 어머니의 이름 뒤로 숨어버린 춤....
 선생님은 언제나 “춤이 맹랑한 것”이라 말씀하시며 “아무나 출 수는 있되 아무나 되지는 않는 것”이라 하셨다. 그렇게 멋과 한을 춤을 출 수 있는 중요 요소라 생각하셨으며 한은 슬픈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마지막에는 흥으로 풀어내야 하는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춤은 반드시 스승에게 배우되 배우고 난 후에는 자기 춤을 추어야 한다 하시며 “서푼짜리라도 네 것을 해라” 하시던 말씀은 나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춤을 추어 오면서 했던 나의 많은 고민들... ‘춤을 잘 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바른 연습이란 어떤 것일까? 어떠한 춤이 좋은 춤인가? 왜 좋은 춤을 추어야 하는가? 춤의 발전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 춤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가?’
 이번 공연을 준비하고 마치면서 나의 이 같은 오랜 고민은 잘 추는 춤 보다는 좋은 춤을 추어야 할 것과 올바른 전통의 계승이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춤의 형식과 동작의 순서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춤꾼들에 의해 그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에 맞게 재해석되기도 하며 변화해 나가는 것, 그것이 춤의 변질이 아닌 긍정적 측면으로서의 발전이 아닌가 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조선생님의 훈련 방법은 시범을 보이며 춤가락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게 놔두고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 주시는 것이었다. 발을 놓고 떼는 방법만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으며 여든을 넘기신 나이에도 화장실 한번을 안가시며 지켜봐 주시고 기다려 주셨다. 그러다 춤이 잘 맞아 떨어지기라도 할 때면 “좋아!”, “얼씨구!”하는 추임새로 기분을 북돋아 주셨으며 음악을 못 알아들을 때면 “이 대목이 좋아..”, “대금 좋다...”하시며 또 다른 추임새로 음악을 듣도록 알려 주셨다. ‘춤은 기분으로 추는 것인데 춤추는 사람 기분 상하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지론 중의 하나였기에 ‘틀렸다’, ‘안 된다’ 하시는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이 가시고 난 뒤 비로소 이것이 본인의 춤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춤을 출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매우 간결하고도 좋은 학습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수요춤전>을 마치고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조갑녀류’란 ‘선생님의 동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춤을 출 때 지켜야 하는 법도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춤을 뽑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던 춤을 결국 선생님을 모시지 못한 자리에 올리게 되었지만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 선생님의 말씀대로 아직은 서푼짜리 춤일망정 좋은 음악만 있으면 춤의 순서에 매이지 않고 춤을 출 수 있게 된 것에 마음 속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제부터 시작 된 또 다른 춤의 길.... 굳이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춤의 가치를 알고 춤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잘 보듬고 싸안아 올바르게 대를 이어나가야 할 것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제부터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무대를 준비하며 묵묵히 춤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선생님! 좋은 춤을 남겨 전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리며, 존경하고 또 존경하며 마음 깊이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2015. 08.
사진제공_박상윤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