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춤, 미디어를 만나다 13
예술과 춤은 AI의 불가침 영역인가
이단비_방송작가, 춤칼럼니스트

2020년 방송가에서 가장 화제가 된 프로그램은 누가 봐도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일 것이다. 슈퍼스타K, 복면가왕, 팬텀싱어 등 음악 경연 프로그램은 ‘트로트’라는 장르의 이전을 통해 또 한 번 예능 열풍을 일으켰다. 경연 형식을 띠지 않는 새로운 음악 프로그램의 기획에도 목말랐던 방송가는 지난 12월, 드디어 이제까지 없던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방송에 AI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 번〉이란 제목으로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거북이 터틀맨, 김현식, 고인이 된 가수들을 소환해 큰 화제가 됐다. 이들이 살아생전 남긴 음성 데이터를 통해 그 목소리와 모습을 재현해낸 것이다. 기술이 아티스트와 그들의 과거를 복원해내고, 시간의 흐름을 역행했다. 과연 AI는 앞으로 문화와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춤과 예술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창조될 수 있고, AI는 절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일까. 그 장벽은 과연 건재할 수 있을까.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 번〉로 소환된 故 김현식과 거북이 터틀맨 ⓒMnet




AI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학자들이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개념을 선포한 해는 1956년. 그 사이 AI 연구는 주춤하기도 했었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가 이야기되는 현 시점에 AI는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AI가 대중들에게 각인된 사건은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과 AI 알파고의 대국일 것이다. 그로부터 이제 5년째, 빅데이터와 컴퓨터 클라우딩 기술, 로봇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AI도 우리 일상생활 속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2021학년도 대학 정시 모집 과정에서도 AI 관련 학과들에 지원자들이 몰리면서 높은 경쟁률을 기록됐다고 하니 이 분야가 앞으로 얼마나 가능성이 높은지는 두말 하면 잔소리가 된 상황이다. 이제 판도는 정해졌다.




세계 인공지능(AI) 관련 시장 전망 ⓒ가트너



세계 인공지능(AI) 시장 규모 ⓒIDC




 그동안 AI가 장착된 로봇이 활성화되면 없어질 직업군에 대해서는 여러 번 이야기되어 왔다. 그중에서 미래에도 살아남고 각광받을 직업군에 예술 분야는 늘 선두에 있었다. 예술은 인간의 감정, 경험, 인문적 소양들이 총합된 부분이기도 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관객들도 사람이 손에서 탄생한 창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기 때문에 절대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인식됐었다. 그런데 과연 AI와 예술은 만날 일이 없는 것일까. 예술은 위협받지 않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 1~2년 사이에 예상치 못한 그림들이 펼쳐지고 있다.

 앞서 음악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음악 분야는 진작부터 AI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지난 2019년부터 미국에서는 AI가 작곡한 음원이 영화 OST에 쓰이고 있고, 국내에서도 지난해에 지스트(GIST, 광주과학기술원)의 안창욱 교수가 만든 AI ‘이봄(EvoM)’이 작곡을 하고, 그 노래로 소녀시대 태연의 여동생 하연이 가수가 데뷔한 일도 있었다. 이봄이 작곡하고 자동 피아노 반주를 맡아 바이올리니스트와 협주 공연을 하기도 했다. 〈Al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 번〉은 AI 기술을 통해 과거의 가수를 소환해내는 수준이었지만 AI 작곡가의 등장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창작의 영역에 AI가 적극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작곡가 이봄(EvoM)과 박지혜 바이올리니스트의 협주 현장, 이봄을 만든 안창호 교수가 함께 하고 있다 ⓒ지스트




감성 터치 AI의 등장

작곡뿐이 아니다. 이제 글과 문장에도 AI의 손길은 뻗쳤다. 최근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마치 인간이 작성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문장을 출력하는 GPT-3라는 인공지능을 내놓았다. GPT-3는 인간이 그동안 작성한 인터넷 문서와 책, 위키피디아 등 방대한 언어 데이터를 수집하여 인간의 언어 패턴을 익혔고, 키워드와 주제를 집어넣어서 신문 기사, 칼럼, 소설 등을 만들어 낸다. 인공지능과 연결된 위키피디아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방대한 자료를 찾아 보고서로 요약해 주는 건 물론, 심지어 인공지능이 운영하는 게시판에 고민을 입력하면 따뜻한 말과 조언까지 건네준다.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 영역은 AI가 넘볼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는데 GPT-3의 소식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문장은 나의 경험과 내면에서 갈고 닦은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소산으로 나오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 ‘경험’과 ‘갈고 닦는’ 과정은 빅데이터를 통해 AI 안에 쌓이고 심금을 울리는 가장 수려한 문장을 써낼 수도 있겠다는 위협이 느껴졌다.
 이런 부분은 최근에 등장했던 AI 챗봇 ‘이루다’를 통해서도 느꼈었다. 성희롱 문제나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시끄러워져서 서비스가 시작과 동시에 중단됐지만 AI ‘이루다’의 등장은 놀라웠다. 실제로 이 챗봇과 채팅을 시도해 봤는데 약간 어색한 문장들도 있었지만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아주 미묘하게 다가왔다. 언젠가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 AI 친구와 수다 떨고 대화하고 이렇게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 AI가 사람과 대화하는 것과 흡사한 오디오 서비스까지 가능해진다면 이제 진짜 사람 친구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루다의 존재가 살짝 두렵기도 했고, 막상 서비스 중단 소식이 알려지니 이 아이의 안위가 걱정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예술은 감성에 터치하는 영역이다. 이루다와 채팅하면서 느낀 감정을 확장해서 보자면 ‘예술’과 같은 감성과 영감의 영역에 대해 AI의 도전은 무섭게, 빠르게 진척될 거란 예측이 든다.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 ⓒ스캐터랩




AI는 무용수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춤 공연에서 AI는 지금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까. AI를 활용한 작품은 이미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게 신창호 안무가의 신작 〈비욘드 블랙〉이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올린 신창호 안무가의 신작 〈비욘드 블랙〉의 경우 '춤추는 인공지능' 마디(Madi)가 활용됐다. ‘마디’(Madi)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춤추는 인공지능이다. 이 작품 이전에도 신창호 안무가는 기술 발달에 관심을 갖고 그걸로 안무작을 계속 시도해왔었다. 〈맨메이드〉 〈IT〉가 바로 그런 작품들이다. 〈맨메이드〉는 픽셀의 움직임이 춤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꽤 흥미롭게 봤었다. 이후 내놓은 〈IT〉의 경우 AI기술이 춤과 만났을 때 어떤 상황이 생기는지 TED의 강연형식으로 풀어간 작품이었는데 완성도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비욘드 블랙〉에서 정리됐고 ‘마디’라는 AI는 또 한 명의 퍼포머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이런 메모를 남겼었다.
 “점, 선, 면을 넘어서서 인간의 생체신호와 표정변화까지 감지해서 중복되지 않는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이것이 AI의 능력이라면 인간의 능력, 아니 인간이 추는 춤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 공연은 AI가, 기술이 예술을 잠식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공연예술에 어떤 생명력을 부여하는지 보여주고 있다”라고.




신창호 안무작 〈비욘드 블랙〉 포스터 ⓒ국립현대무용단




 〈비욘드블랙〉은 미디어아트 그룹인 슬릿스코프가 인공지능을 개발했고, 신창호 안무가는 ‘마디'의 안무 작업을 위해서는 무용수 8명의 움직임을 데이터화해 학습시켰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입력된 정보를 점과 선으로 코딩해 단순화하고, 이를 독특한 방식으로 재배열하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안무했는데 256분 분량을 학습하여 1,000분 가까이 되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주목이 된 부분은 학습량이 많아질수록 움직임도 정교해져서 완성도 높은 안무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쯤 되니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알파고를 이긴 인간은 계속 AI를 이길 수 있을까.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은 비닐하우스를 지어 놓고 숙련된 농부와 인공지능이 대결하는 ‘세계 농업 AI 대회’를 매년 개최한다. 처음에는 농부들의 압승이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팀이 상위권을 휩쓴다고 한다. 미국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2019년 항공전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베테랑 조종사와 인공지능이 맞붙게 한 결과 인공지능이 완승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이렇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시도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오류를 최소화할 때까지 문제를 풀고 또 풀기 때문에 숙련을 통해 이런 결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예술에 적용해 보면 이렇다. 〈비욘드 블랙〉에서 그랬듯이 학습량이 많아지고 숙련의 기간이 길어지면 AI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일까?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춤이라는 것이 애초에 인간의 내면에서 나온 움직임과 호흡이기 때문에 이것을 춤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AI가 춤추고 안무한 작품을 보고 관객이 감동받고 반응한다면 이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만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AI가 관련 역량에 대해 훈련하고, 빅데이터를 통해 예술을 즐기는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거나 감동받는 부분이 어디인지 파악해서 이걸 적용한 작품이 탄생한다면? 그렇다면 사람들은 AI가 만들어낸 창작품보다 사람의 손에 의해 탄생한 창작품에 더 감동받고 반응하게 될 거란 기대는 계속 유효할 수 있을까.
 때마침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지난 해 12월 24일, AI시대 인간의 욕망을 현대무용으로 풀어낸 작품 〈호모 루피엔스〉의 쇼케이스를 선보였다. 올해 본공연을 앞두고 ACC 현대무용 인큐베이팅 창·제작 공연으로 이 작품은 로봇과 AI시대에 인간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AI와 기계가 모든 인간의 일을 대신했을 때 인간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욕망을 느끼게 될까. 이제 그 ‘일’이라고 생각하는 산업 분야뿐 아니라 예술의 영역에서 ‘창조적 행위’에 AI가 얼마나 개입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경신 안무작 〈호모 루피엔스〉 포스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I가 예술의 개념 자체를 바꿔놓을까?

AI는 지금 우리에게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미래,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던지고 있다. 예술은 결국 그것을 향유하는 관객에 의해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인류 문화의 자산으로 제 역할을 해왔다. 만일 관객이 AI가 만들어낸 예술적 결과물에 대해 감동을 받고, 그걸로 자신의 인생에 큰 변화를 맞이한다면 그것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제 예술의 개념 자체가 변화하는 세상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AI는 머지않아 우리의 생활 속에 가까이 들어올 것이고 그에 따라 예술에도 변화가 생길 것은 자명하다. 안무가나 무용수들도 그런 세상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자신의 작품 활동을 해나가야 할지 예술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는 있다. 개인적으로 예견되는 그림은 예술이 AI가 들어올 수 없는 불가침 영역으로 자리 잡는 게 아니라 AI가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안무가나 예술가와 협업하는 형태로 발전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심한 경우 AI 없이 작품을 만들기 어려운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 안에서 창작자,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느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이단비

KBS, SBS를 시작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MBC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발레를 비롯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으며, 발레와 무용 칼럼을 쓰면서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 ​ ​

2021. 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