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월례움직임 + 바리나모
예술가가 예술가를 후원하는, 월례움직임
김명현_춤비평가

일상과 예술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시대다. 대형 공연장이나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내 집 근처의 골목골목에서 연극과 무용과 미술 전시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목욕탕이 예술공간이 되고, 교회가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새롭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대학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과거 교회였던 곳이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등장했다. 혜화역에서 한 정거장이면 닿는 삼선교의 어느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벽돌식 4층 건물은 아직도 명성교회라는 파란 간판을 달고 있지만 이제는 “This is not a church”(이하 TINC)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곳은 교회가 아니다”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이 공간은 과거 교회였던 형태를 그대로 살려두고 공간만 텅 비워냈다. 그래서 한 켠에는 목사님이 설교를 하던 제단이 여전히 있고, 맞은편에는 합창단의 이동통로였던 계단참도 있고, 스테인드글라스가 어울렸을 법한 좁고 긴 창틀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무대를 위한 조명 하나 없는 이곳에서 월례움직임의 제49회 작가 프로젝트가 있었다. (1월 11일)




월례움직임 ‘작가 프로젝트’의 제49회 모임 포스터




월례움직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만난 친구들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안무가 최은진과 시각미술을 전공한 장현준이 이끌고 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최은진의 해외 레지던스 경험에서 비롯했다. 예술가들이 특별한 기획이나 계획 없이도 한 장소에 모여서 함께 시간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행위를 생산해 내는 특성을 보이는 것에서 착안했다. 그렇게 ‘예술가가 예술가를 후원하는 프로젝트’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월례움직임의 ‘작가프로젝트’는 매달 작가 서 너 팀의 작업을 공개하고 관객들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출발했으나 예술가의 과거 작업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하여 여러 방식으로 소개하고, 관객들과 한층 깊은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실험으로써 한 팀만을 섭외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번에 2회 째를 맞이했다. 


‘작가프로젝트’는 관객이 방금 보았던 것에 대해 언어화하여 피드백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이 피드백 세션이 관객과 예술가가 월례움직임을 사랑하는 이유라고 한다. ‘작가 프로젝트’는 매달 공간을 섭외하여 진행하는데 대부분 무료 대여 공간을 찾기 때문에 카페나 갤러리를 운영하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티스트의 옥탑방에서 진행된 적도 있다. 예술가가 예술가를 후원하는 기획인 만큼 예산은 거의 없다. 관람료를 받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수고한 아티스트를 위해 관객들로부터 후불관람료를 입금 받아 아티스트에게 100% 지급한다. TINC는 대관이었기 때문에 대관료를 협상했다.






월례움직임 ‘작가 프로젝트’ 바리나모 ⓒ장현준




2016년 5월에 시작된 월례움직임의 제49회 모임, 작가 프로젝트에 초대된 팀은 바리나모였다. 즉흥으로 이미 대중적 인기를 확보하고 〈신비밴드〉라는 그룹 명칭이자 작업 명칭으로 즉흥 무용과 음악 연주를 결합하여 춤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그들이었기에 월례 움직임과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오후 1시 30분에 문을 연 TINC는 목사님의 설교 제단이었던 곳에 2013년에 시작한 바리나모의 〈풍경〉 작업 시리즈의 전모를 볼 수 볼 수 있는 책과 포스터를 전시하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나모의 비주얼 감각과 그림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알록달록한 포스터들, 책자들이 있었다. 2시부터는 거주지인 제주도에서 태동한 〈풍경〉 작업의 시작부터 최근까지의 면면을 살필 수 있는 수많은 공연을 편집한 30분 분량의 비디오를 상영했다. 그리고 1시간 동안 바리나모의 퍼포먼스가 진행되었고, 그 후 1시간 30분 이상 관객과의 대화모임이 진행되었다. 한 아티스트를 위한 전시 및 공연, 대화모임이 4~5시간에 걸쳐 한 공간에서 펼쳐진 것이다.




월례움직임 ‘작가 프로젝트’ 바리나모 ⓒ장현준




퍼포먼스는 난방도 거의 없는 한겨울의 공간에서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관객들이 앉을 의자가 가득 널린 가운데에 맨발에 반팔 차림의 바리나모가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즉흥연주 대신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와 목소리의 지시를 관객들이 함께 수행하는 관객참여형 퍼포먼스였다. 종소리가 들리면 이동하고, 눈을 감으라는 지시에 눈을 감고, 뜨라는 지시에 눈을 떠가며 관객들은 바리나모의 움직임을 눈으로, 귀로 감각했다. 맨발에 반팔차림의 그들이 안쓰러웠던 것도 잠시 그들의 움직임은 격렬해졌고 관객들도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지시에 매우 진지하게 반응하면서 공간은 뜨거운 열정으로 넘쳤다. 그리고 어느덧 오후 4시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시간이 되자 어둑어둑해지는 공간과 좁고 긴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그 순간을 포착했다.




  



  

월례움직임 ‘작가 프로젝트’ 바리나모 ⓒ장현준




퍼포먼스가 끝나고 둥글게 둘러앉은 관객들은 진행자 장현준의 리드에 따라 피드백 과정을 시작했다. 첫 단계는 퍼포먼스에서 연상되는 단어를 하나씩 말하는 것이었다. 춤추는 먼지, 맨발, 플라나리아(=지렁이), 길을 잃은 사람, 딱딱한 바닥과 말랑말랑한 살, 사라졌다 나타나기 등 자신들이 감각하고 경험했던 것들이 한 단어로 말해졌다. 다음 단계는 퍼포먼스에서 받은 인상을 한 단어보다는 긴 구나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관객들은 자신들의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진행자가 말을 짧게 끊으려고 해도 말들이 홍수처럼 흘러나왔다. 심지어 진행자에게 새로운 제안을 할 정도로 관객들은 적극적이었고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는 바리나모와 관객들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바리나모는 퍼포먼스가 “사라지는 순간들의 리추얼”이란 제목을 가진 것으로 모든 것이 순간적인 찰나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감각할 수 있도록 눈감고 뜨기를 통해 영화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고자 했고, 제주도의 바람을 불러오기 위해 관객들을 이동시켰다고 설명했다.






월례움직임 ‘작가 프로젝트’ 바리나모 ⓒ장현준




나는 6시쯤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그 후로도 대화는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월례움직임의 기획자이자 안무가인 최은진은 피드백 세션을 단계별로 구조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술가가 공연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계속하는 것이 필요한데,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서 관객들로부터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데 몸으로 감각했던 것을 언어화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일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 그리고 대화로 이어지도록 단계별로 구조화했다고 한다. 이는 또한 관객들이 피드백을 줄 적에 멍청하게 보일까봐 걱정하는 불안을 제거하는 장치이기도 하고, 분석하고 언어화하기 전에 내 몸이 감지한 것을 느껴보게 하여 더 잘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관객들로부터의 피드백에 대해서 바리나모는 아티스트의 언어와 다른 관객들의 날 것 그대로의 언어는 자신들의 작업을 새롭게 개념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월례움직임의 현장에 처음 가보았지만, ‘예술가가 예술가를 후원하는 프로젝트’라는 취지에 잘 맞는, 잘 기획되고 섬세하게 배려된 작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예술가의 실험을 위한 안전한 장이 되고, 관객들에게 단순히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예술가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깊이 관계를 맺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되고자 하는, 예술가의 사회적 공헌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름다운 춤, 현장이었다. 월례움직임의 작가 프로젝트가 100회 200회 계속되길 응원한다.

김명현 

학부에서는 한국무용을, 석사과정에서는 예술경영을, 박사과정에서는 문화콘텐츠를 전공했다. 무용 작품의 기획에서부터 제작, 생산, 유통, 비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의 언어의 작동에 관심이 있다. 팟캐스트 플랫폼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심플리 댄스〉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

2022. 3.
사진제공_장현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