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추모_ 무용가 안나 핼프린(2)
평가를 삼가고 창조성을 배려하는 자세를 배우다
조희경_순환창작소 대표

미국 무용가 안나 핼프린(1920~1921)이 지난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서거하였다. 핼프린은 안무가이자 포스트모던댄스 개척자였으며 춤치유와 커뮤니티댄스 분야의 현장에서도 혁신적인 활동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조희경님의 글을 2번에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주


나는 2008년 가을, 안나 핼프린을 만나러 떠났다. 안나 핼프린의 수업을 듣던 첫날, 나는 즉시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춤에 대한 질문들의 답을 알고 있다! 드디어 내가 집에 도착했다는 것을! 나의 춤의 집을 찾았다는 것을!

수업 후 숙소에 돌아가 펑펑 울었다. 왜 지금에야 만났나, 억울함이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다.내가 춤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안나를 만났다면 더 효율적이었을 것 같은 마음에 억울함이 복받쳤다. 다음날 아침, 내게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안나의 수업을 듣고 안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건 내가 지난 8년 동안 춤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 춤과 여러 춤의 상황들을 만났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함이 사라지고 감사함이 올라왔다.




안나 핼프린이 해마다 열어온 〈지구행성의 춤〉




나에게 안나는 100년의 춤의 역사와 경험이 녹아있는,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 같았다.

나는 도제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 극도로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안나를 만났을 때는 평생 처음으로 소위 빗자루질 3년을 하면서도 옆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나에겐 배울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품은 또 다른 아주 중요한 이유는, 안나가 타인에게 자신의 것을 따라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각자의 개성과 창조성을 발현시키는 것을 평생에 걸쳐 실천해온 사람이었고, 당연히 나에게도 그렇게 대했기 때문에 나는 안나를 스승으로 두는 것에 전혀 구속감을 느끼지 않았다.

안나가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그 태도를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설명하기란 참 어렵다. 그러나 이 태도와 상태에 안나의 아주 핵심적인 것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하기에, 언어로 전달하기 힘든 것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안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 부분의 경험 이야기를 꼭 할 텐데 말이다.

안나는 나와 근 60세 나이 차이에도, 많은 경우 나를 친구라고 소개했으며, 실제로 동등하게 대화했고, 나의 의견을 물었으며, 실제로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선(先)경험자로서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자 할 때도 나의 개성과 고유성을 절대 침범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안나의 특별함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이며, 안나가 예술에서 추구하는 것과 일상에서 행동하는 것이 일치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직업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일상의 행동이 같을 때, 상대로서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되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나를 통해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안나가 실천한 비슷한 동작 형태, 같은 움직임 활동, 같은 안무를 외적으로 따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해질 때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느냐는, 바로 상대를 동등하게 생각하고, 나의 창조성뿐 아니라 상대의 창조성을 발현시키는 것에 주의를 두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느냐의 차이로서, 이 모든 행위의 질이 달라진다.

안나의 수업이나 공연, 인터뷰, 글은 이러한 이유들로, 체험자에게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것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대하는 근본적인 생각과 태도의 차이와 아주 오랜 시간의 실천에 따른 체화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안나에게 배우러 찾아오고 감동과 영감을 받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안나의 이런 면모에는 아마 다양한 이유와 배경들이 있을 것이다. 선천적인 기질도 있을 것이며, 가정환경, 교육, 영향받은 동료들, 배우자의 영향 등.




〈지구행성의 춤〉



〈지구행성의 춤〉에서의 안나 핼프린(아래 왼쪽)




이런 여러 이유 중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배경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안나는 유태인이다. 안나가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안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홀로코스트와 게토의 시대를 겪었다. 삶의 공간과 직업이 제한되고, 인간이 인간을 평등하게 다루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뼈아프게 가까이서 겪었다. 실제로 안나는 대학교 지원 시에,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에 입학신청을 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곳에 넣어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인생의 아이러니이자 신비로서, 바로 그곳에서 안나의 인생 최대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마가렛 휴 드불러라는 생리학자 배경의 춤 스승을 만났다는 것이다.

안나가 해주는 이러한 자신의 춤 경험의 이야기들은, 모두 살아있는 역사와 인간의 이야기들과 늘 엮여 있었다.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 생생한 삶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래서 늘 안나의 이야기는 소소한 것이든 춤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든 모두 가슴에 다가오는 힘을 품고 있었고, 상대를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근본 생각이 안나의 춤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데, 춤과 춤창작 과정에서의 ‘인간의 평등함과 창조성’의 ‘실천’이다. 그리고 바로 이 두 가지가 안나가 남편 래리 핼프린과 함께 협력해 만든 스코어링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코어(score)는 안나 핼프린이 환경건축가인 남편과 함께 구축한, ‘공동 창조 과정’” (Collective Creative Process) 인 R-S-V-P Cycle (재료-스코어-실행에 기반한 평가-실행의 순환)의 일부분이다.

안나가 고민하며 찾아내고 실천한 스코어링은 즉흥을 단순히 조금 더 재밌게 하거나 즉흥을 구성해 공연화해내려는 단순 수단의 차원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평등과 창조성의 실현에 관한 것이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창작과정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을 알아들을 것이다. 각자의 고유성과 창조성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서로 간의 동등성과 각자의 창조성을 공동의 일에서 발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고 이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다. 이것은 춤의 창작과 실행에 아주 근본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예술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삶과도 근본적으로 관련되는 문제들이다. 회사도 가정도 여러 명이 함께하는 창작과정의 그룹이며 실행의 장이고, 그 장 안에서 어느 누구도 인간이기를 바라지 기계도구 부품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구나 저 깊은 곳에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적으로 세상에 발현되기를 바란다. 어떻게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그 바램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포기하지 않고 고민해서 안나 자신의 답을 찾아내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해온 것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춤교육자로서의 안나, 안무가로서의 안나, 아내로서의 안나, 엄마로서의 안나, 한 인간으로서의 안나, 여러 모습 조각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를 가졌다.




〈Spirit of Place〉 리허설 ⓒJohn kokoshuka



〈Spirit of Place〉 리허설 스코어 ⓒJohn kokoshuka




안나는 춤학도인 나에게 춤의 객관적인 원리들을 가르쳐주었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동작을 흉내내는 것이 아닌 몸 구조로서의 움직임 어휘과 작동원리, 내면의 구조를 움직이는 것들의 방법을 통해 가르쳐 주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따라하거나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애쓰는 방법이 아닌, 나 자신으로서 춤을 출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모든 순간 심판하지 않는 피드백을 주는 언어 방식들로 나의 창조성을 발현하게 환경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안나는 자주 “심판적 평가는 창조성을 죽인다!”(judgement kills creativity!)고 강조했다. 내가 안나의 무브먼트 리츄얼이란 티칭 진행 자격을 검사 받을 때, 1달을 꼬박 말 한 마디 단어 하나하나 움직임 진행을 모두 세세히 나름 준비해 영어로 티칭 시연을 한 날, 나는 당연히 준비를 많이 한 만큼 나의 스승인 안나의 피드백이 궁금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나는 당시 안나의 평가를 기다렸다. 사람의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나는 그때 또 느꼈다. 나는 안 그런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평가의 교육체계에서 깊숙이 나고 자란 나에게 그것이 무의식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나는 내심 안나가 “아주 잘했어”라는 말을 하길 간절히 기다렸을 거다. 다른 말은 중요치 않고, 잘했다라는 단어만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안나는 그런 류, 즉 잘했다 못했다는 심판적 평가의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잠시 가만히 할 말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더니 안나가 말했다. “너가 오늘 이 시연을 해서 기뻐. 눈을 이완하는 활동을 너의 언어로 바꾸어 말한 부분이 흥미로웠어. 그리고 아마 사람들이 누워 있고 네가 진행을 하러 돌아다닐 때는 너의 발자국 소리와 진동을 누워있는 참가자들이 느끼고 영향을 받는다는 걸 생각해 보렴... ” 이게 끝이었다.

잘했어 혹은 못했어 같은 평가가 없는 피드백이 당시 얼마나 내 마음에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는지 그 느낌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내가 얼마나 심판적 평가에 익숙한 문화, 교육, 사회에 있었는지를 스스로 절실히 깨닫고 배우게 해주었다. 안나는 나에게 심판 없는 피드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 성장과 발전을 돕는 방식으로 실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주었다.

나는 안나의 모든 활동을 가능하면 다 경험하고 싶었던 때문에, 가능한 안나가 가는 곳에 다 데리고 다녀 달라고 제안을 드렸고, 안나는 나를 안나 수업의 진행 보조 견습생(apprentice)으로 많은 수업과 외부 워크숍, 행사 등에 함께 초대해주어 여러 보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안나는 수업 와중, 혹은 수업이 끝난 후, 자기가 왜 그 순간에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이런 순서로 했는지, 왜 사전 계획과 달리 즉흥적으로 그 순간에 진행을 바꾸었는지, 왜 이런 움직임 활동을 하는지 등의 내용들을 모두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다.

안나의 수업은 늘 감동적이지만, 어느 날 안나 수업 진행에 너무 감동을 받아서,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수업을 잘하세요?” 내가 물었을 때 안나가 이렇게 말했다. “아우, 왜냐면 내가 너무 실수를 많이 해봤거든. 아 이렇게 하면 안 됐었는데, 아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실수를 엄청나게 많이 했었거든.” 이 말은 나의 가슴 속에 늘 살아 있다. 이 말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수업을 만들 때, 공연을 만들 때 종종 이 말을 떠올린다. 큰 힘이 된다.

나는 안나가 수업과 작품을 어떻게 함께 해나가는지 보았다. 그 두 개는 전혀 상충되지 않고 서로 갉아 먹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엄청나게 성장시키고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음을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나도 이 두 가지를 함께 한다. 함께 하는데 전혀 불안감이 없다. 나 자신의 흥미로움과 배움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어떻게 교육을 지속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내 삶과 예술을 확장하게 하는지, 참가자 그룹이 진행 예술가와 어떻게 예술과 삶에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는지를 내 눈으로 보았다.






〈Stomp Dance〉 performance ⓒJohn kokoshuka




안무가로서의 안나를 작품의 공연자로서도 나는 경험했다. 이를 통해 안나의 연출에서 공연자가 얼마나 자유롭게 자기 자신의 창조성을 펼칠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었고, 작품 어시스트로도 자원하여 작품의 보조 도우미로서 안나가 창작과정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떤 말과 행동, 태도로 실천하는지 그 과정을 볼 기회도 가졌다.

일상의 인간으로서 안나와 씨랜치 별장에서 여름휴가의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 안나가 1년을 준비하는지, 엄청난 프로젝트들 사이에서 휴식을 갖는지,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조각조각 볼수 있었다.

안나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 절대 가르치려 들지 않는 방식으로. 안나는 나를 아메리컨 인디언의 세시(歲時) 축제인 딸기 축제에도 데리고 갔었다.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내부의 행사였기 때문에 외지인이 참여할 수 없는 행사였는데, 안나는 그 부족과의 오랜 인연으로 초대 받았고, 그곳에 나를 데리고 가주어 귀하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였다. 정화하는 도구인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공간 안에, 악기들로 연주와 노래를 하고 음식이 있고 춤을 추는 모습은, 삶의 축제 안에 춤과 예술이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그리고 문화권마다 갖는 공통성과 특별성 등을 직접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날 있었던 춤 중 새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새 춤 같은 것을 추었던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모든 춤은 그룹춤이었고, 그 춤을 춘 사람들은 모두 전문 직업 무용수가 아니었다. 새춤을 춘 무용수들은 청소년 정도의 마을 주민이었다. 그 춤을 보고 있으면, 전문무용수와 비무용수와의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무용수의 ‘몸’에서는 새의 영혼을 볼 수 있었다. 동작은 완벽했고, 몸을 통해 그 인간의 영혼이 춤으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보았다.

나는 감사하게도 내 인생에서 안나 핼프린이라는 내가 원하던 스승을 만났다. 누구나 각자의 스승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안나를 스승으로 만났고, 이것을 진심으로 나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안나는 계속 변화해온 한 인간이다. 우리 개개인 모두가 그렇듯,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화시킬 수 없는 변화무쌍한 한 명의 인간이다.

긴 글을 썼지만, 안나를 소개하기엔 너무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나라는 사람이 특정한 시기에 만난 안나 핼프린에 대해 부분적으로 묘사한 것이고, 안나와 안나의 작업에 대한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이고 해석이다. 30대에 전위의 선봉이었던 안나를 만난 사람이라면 고집불통의 과격하게 혁신적이었던 안나를 기억할 수 있고, 50대 암에 걸렸던 안나를 만난 사람이라면, 춤의 치유의 힘을 작업하던 안나를 묘사할지 모른다. 70대에 자연에서 많은 작업 시간을 보내던 안나를 만난 사람이라면 자연작업에 몰두한 안나를 묘사할 수 있다. 90대에 만났던 사람은 자기가 죽기 전 세상에 춤에 대해 무엇을 남길지 몰두하던 안나를, 각기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고 묘사할 것이다.

내가 안나 핼프린의 서거 특집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안나 핼프린을 안다는 것을 쓰기 위한 게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안나 핼프린이라는 무용가와 그 작업을 알게 됨으로서, 내가 그러했듯이, 자신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기만의 열쇠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통로들을 마무리로 덧붙인다.

무용가로서의 안나 핼프린의 철학과 작업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들이 궁금하다면, 안나 핼프린 홈페이지(www.annahalprin.org)에서 작업 개요 포트폴리오를 볼수 있고, 홈페이지를 통해, 춤에 대한 자세한 여러 책들과 영상자료들을 주문해서 볼 수 있다. 또한, 유튜브에서 안나 핼프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breath made visible〉을 검색하여 전편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이 영화에는 안나의 여러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며, 안나의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이외에, 유튜브에 anna halprin을 검색하면 매우 많은 인터뷰와 다 큐영상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순환창작소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나에게 연락해도 된다.

안나에 대한 나의 기억들을 긴 글로 이렇게 썼지만, 하늘에 계신 안나는 내가 안나의 업적에 대해 설명하거나 안나를 기억하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안나는 자신을 추앙하거나 쳐다보고 있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늘 자기 자신으로 살고 춤추기를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실천하셨던 분, 그래서 안나는 나의 스승이다.

늘 그랬듯, 안나는 나에게 사랑 가득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어 볼 것이다. ”그래서 요즘 너 무엇을 하고 있니? 너의 춤에서 너의 삶에서? 나는 그게 정말 궁금해.“ 나는 2014년부터 순환창작소를 만들어 모든 이를 위한 춤교육과 창작을 계속하고 있다.

깊은 울림을 주는 예술가와 인간이 무엇인지 나에게 경험시켜주고 그 실존을 보여준, 안나 핼프린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깊이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 나침반이 되어 줄 스승을 찾아 헤매고 바라고 있을 누군가와 사랑하는 스승 안나 핼프린에게 이 글을 바친다.

조희경

순환창작소 대표. 무용가, 무용교육자로 미술과 춤을 전공하고 2006년 일본 요코하마 댄스 콜렉션에서의 그룹 작품 안무작 <용해되는 물고기> 데뷔작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무대춤뿐 아니라 야외춤, 댄스 필름, 퍼포먼스, 커뮤니티댄스 등 다양한 매체, 장소, 사람들과 춤을 작업해오고 있다. 2014년 순환창작소를 세워 모든 이를 위한 춤교육과 창작을 해오고 있으며, 확장된 차원의 춤 및 삶과 연결된 예술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

2021.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