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세계안무축제
대구 세계안무축제에서 보는 가능성들
권옥희_춤비평가

대구 ‘세계안무축제’(예술감독 박현옥. 수성아트피아 용지홀, 9월11일~12일)가 올해 7회를 맞았다. 단단하게 토대가 다져지고 성장에 가속도가 붙어야 할 시점에 COVID-19로 주춤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외안무가 초청이 취소되면서 ‘세계안무축제’라는 정체성의 균열을 보게 되지만 ‘한국작가전’ 공모를 통해 선정된 김영진과 박근태의 신작 무대로 인해 축제에 대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본다. 작품이 ‘세계안무축제’ 무대에서 검증을 거쳐 확대 발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개될 수 있겠다는 것. 더불어 ‘청년작가전’에 선정된 일곱 작품의 열정으로 균열의 자리에 하나의 춤 전망을 겹쳐놓을 수 있었다.






김영진(System on Public Eye) 〈흔적〉 ⓒ세계안무축제




 첫날, 김영진(System on Public Eye)의 〈흔적Trace〉.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무엇’에 대한 춤은 ‘시간의 흐름’을 손, 손목, 팔 어깨 다리, 목, 가슴으로 이어진 꺾임과 몸통의 회전으로 분절되고 커졌다가 다시 사라지는 움직임으로 탐구하는 작품으로 일관된 춤 에너지의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옆으로 늘어선 뒤, 한꺼번에 뒤돌아 서 걷는 뒷걸음은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가 하면, 춤이 일어났다가 비워지는가 하면 채 비워지지 않은 에너지는 다시 바닥으로 스며들어 사라지게 하는, 움직임이 유려하다. 움직임의 덩어리, 어깨 팔 골반 움직임에서 보이는 동작의 세련됨은 안무자의 독특한 춤언어로 보인다. 무거운 듯 아닌 듯, 동작을 엮어갈 때의 자유로움이 춤의 탈주를 부르고 탐구 같은 움직임의 몸이 만들어 내는 공기(춤 공간)는 서정적이다. 몸의 일부이고 생각의 연장인 동작이 이렇듯 있는 듯 없는 듯 섬세하게 흐른다. ‘역할’ ‘열정’ ‘본능’ ‘뜨거운 마음...’을 유려하고 개성적인 춤의 흐름으로 풀어낸 ‘흔적Trace’이었다.






박근태(The Park Dance) 〈손목이 꼬여버린 낯선...〉 ⓒ세계안무축제




 박근태(The Park Dance)의 〈A freak with a twisted wrist 손목이 꼬여버린 낯선...〉. 무대 오른 쪽 가장자리, 세 명의 여자가 긴 머리칼을 무대 바닥에 널 듯 풀어 헤치고, 몸을 앞으로 반을 접었다. 등이 얼굴이다. 가운데 붉은색, 검정색 삼각팬티를 입었다. 몸을 뒤로 젖혔다가 비명을 지른 뒤, 다시 엎드린다. 강렬하고 인상적인 춤의 시작이다.
 중앙무대에 흰색 팬티를 입은 7명의 남자가 몸을 반으로 접고 있다. 맨 끝에 있던 남자가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옆으로 쓰러지자 옆의 남자가 쓰러진 이의 팔을 잡아 끌어 다시 제자리에 세운다. 느닷없이 몸을 뒤로 젖히며 악! 비명을 지르고는 다시 몸을 접는다. 낯설다. 낯선 것인 만큼 매혹적이고, 충격적이기도.






박근태(The Park Dance) 〈손목이 꼬여버린 낯선...〉 ⓒ세계안무축제




 보라색 슈트를 입은 남자들이 무대 가운데 조명 아래 서 있다가 흩어지고 다시 가운데로 모이기를 반복한다. 마치 모델처럼 춤추듯 걷다가 가운데 모여 객석을 도발적으로 쳐다보면서 건들 흔들 춤을 춘다. 모두 춤을 무기처럼, 제 춤을 제 안에 장착하고 있는 겁 없는 장수들 같다. 안무자는 두 그룹으로 나눈 춤 배열과 구성으로 큰 이미지의 춤이 그려낸다. 큰 춤은 작은 춤 속에 있다. 하나하나의 춤이 다른 춤과 연계함으로써 춤의 상징체계를 이루어지는 것처럼 춤이 춤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른 춤의 응원을 필요로 한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자 세 명이 합류 다른 춤의 응원을 받은 춤 에너지가 폭발하며 극장의 공기를 바꿔놓는다.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이제 막 진지하게 춤을 추기 시작한 작은 장수들을 진지하게 바라보기를 그치지 않는 안무자(박근태)의 창작 태도에 큰 춤이 있다. 〈손목이 꼬여버려 낯선...〉은 안무자의 변화지점이 확연하게 보이는 작업으로, 사유의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새로운 시기로 넘어간 듯하다.




남희경(N. motion dance project) 〈답〉 ⓒ세계안무축제




 이튿날, ‘청년작가전’ 무대에 오른 7개의 작품은 같은 듯 다른 춤을 만드는 춤 에너지의 비롯됨, 그 근원을 확인한 무대였다. 남희경(N. motion dance project)의 〈답〉. 4명의 무용수가 모여서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눈에 갖다 대고 멀리 보는 동작으로 시작되는 춤은 분할 배치된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움직임의 대상이 ‘답’을 향해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되어 관객이 춤 흐름을 따라가 ‘답’을 찾을 수 도와줘야 한다.




박소현(박소현댄스프로젝트) 〈픽셀 2.0〉 ⓒ세계안무축제




 박소현(박소현댄스프로젝트)의 〈픽셀 2.0 pixel 2.0〉. 춤추는 몸을 자유롭게 쓰는 단체였다. 사물(상자)과 춤추는 몸의 연계, 무음에 시작, 음악이 시작되면서 등장하는 춤의 형태가 흥미로웠다. 상자(작은 화면을 은유)를 서로의 몸에 갖다 붙이고, 다른 이가 상자를 채가고 또 다른 이는 다른 이의 몸에 상자를 갖다 붙이고, 네 명이 상자를 잡는가 하면 손바닥으로 두 명이 잡는다. 반복된 움직이지만 주제를 제 스스로 물고 늘어지는 근성만이 춤의 깊이와 그 비슷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무대 위에서 상자가 내려오면 네 명이 아래가 뚫린 상자 안으로 들어간다. 머리와 가슴을 가둔다. 픽셀 안으로. 성실한 작품이었다.




엄세영(TEAM.A.we) 〈소프트〉 ⓒ세계안무축제




 엄세영(TEAM.A.we)의 〈소프트 soft〉. 4명의 남자. 몸을 단련하는 듯한 춤동작. 숫자를 세는 듯한 일정한 박자로 반복되는 음악과 움직임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춤 에너지가 일어난다. 세 명이 한 명을 밀고치고 옭아맨다. 폭력이 일어난다. 괴롭힘을 포장하고 의도를 숨긴 질문. “당신은 단단합니까?” 같은 질문에 ‘네’와 ‘글쎄요’ ‘^^;…’으로 나뉘는 대답에 따라 폭력의 대상이 정해진다. ‘^^;…’ 이렇게 답한, 무음에 혼자 몸을 훈련하는 이가 그 대상이다. 답, ‘^^;…’을 춤으로 보여준 좋은 설정이다. 마지막 세 명이 합류한 뒤 이어지는 춤은 다소 기계적이다.




김세인, 김소리, 박나현(lsm.M.Project) 〈언발란스〉 ⓒ세계안무축제




 lsm.M.Project의 〈언발란스 (Unbalance)는 김세인, 김소리, 박나현의 공동안무. 이상, 현실, 무력감이라는 대사와 같은 춤이 쏟아진다. 쓰레기를 들고 들어와 쏟아놓은 뒤 집어들고는 다른 이한테 쏟는다. 쓰레기 위를 걷고, 같은 대사의 독일어(?)는 낯선 단어가 주는 힘(멋)에 기댄 건지. 단어 쓰레기더미에서 희망을 이상을 잡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안쓰러운 초상과 달리 현실을 마주하고 직시하는 씩씩한 춤이었다. 암전되었다가 다시 불이 들어오자 쓰레기를 가득 안았다. 현실이다. 솔직함에 상징과 은유, 압축이 더해지면 춤에 깊이가 생긴다.




이현우(물망초댄스컴퍼니) 〈찰나: 감지하다〉 ⓒ세계안무축제




 이현우(물망초댄스컴퍼니)의 〈찰나: 감지하다〉 ‘즉흥성, 예상치 못한 운동성을 생성하며 우연성을 확장’에 대한 작품이었다. 두 명이 엎드려 있고, 중앙에 여자가 서 있다. 무음, 조용히 서 있다가 여자가 갑자기 엎어지면 다른 이들이 서고 다시 엎어지기를 서로 번갈아가며 반복한다. ‘쓰러진다’, ‘엎드린다’와 엎어진다는 동작이 다르다. 엎어진다는 찰나의 순간에 실제의 몸으로 온몸으로 엎어지는 것이다. 찰나에 반응하는 춤을 얻기 위해 더 먼저 또는 더 높이 솟아올라야 하는 것이 나의 몸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런(나) 몸을 타고 춤이 솟아난다.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 거듭될수록 춤에 힘이 생기고 깊어진다. 암전된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한 명이 춤을 춘다. 다시 암전, 또 다른 이의 춤, 또 다른 이로 반복 재생되는 춤은 마지막 세 명이 조명아래 서있는 것으로 끝난다. 재기 넘치는 좋은 작품이었다.




백찬양(난장댄스컴퍼니) 〈뿔을 세우다〉 ⓒ세계안무축제




 백찬양(난장댄스컴퍼니)의 〈뿔을 세우다〉. 민소매의 흰색바지를 입은 7명의 무용수의 춤 뒤에, 뿔(대립)머리―상투를 틀 듯 머리를 묶어세운―를 세우고 몸으로 실뜨기를 한다. 실뜨기가 만들어내는 작고 큰 경계의 조각들, 칸을 만들고 건너면서 대립과 갈등을 엮고 풀어낸다. 좋은 장치다. 뿔머리를 하지 않고, 뿔(대립)을 춤출 수 있게 될 때, 춤의 세계가 깊어져 있을 것이다.




최호정(Dance project Choi’s) 〈파도〉 ⓒ세계안무축제




 최호정(Dance project Choi’s)의 〈파도 wave〉. 4명이 무용수가 세로 한 줄로 서 있다. 3명 앞에 선 한 명. 조명이 같은 무대,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무용수의 뛰어난 신체조건과 춤기량이 눈에 띈다. 춤은 작품(성)을 통해 빛이 난다. 바닥을 밀고 다니는 움직임이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것 유연한 움직임과 강한 에너지의 조절이 좋다. 나선형으로 움직이는 춤은 주제를 표현하려는 의도로 읽히나 오히려 절제된 춤에서 작품의 선명함이 더 드러나기도. 음악이 전환되면서 쓰러지는 동작의 이어짐에서 희미한 ‘파도’를 본다.

 총 7팀의 공연으로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서울과 대구의 청년작가들의 춤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나뉘었다. 흥미로운 점이었다. 아마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처한 춤환경의 영향이 클 것이다. 다음 기회에 심층적으로 다뤄볼 기회를 엿보겠다.
 ‘청년작가’들의 춤은 이번 무대로 끝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춤으로 꾸는 꿈의 주인이 될 때까지 춤은 거듭되어야 하고, 그 지속을 보장해줄 수 있는 힘을 자신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 걱정은 청년작가들의 꿈의 싹이 돋기도 전에 말려버리는 그악스런 춤사회의 풍토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따라야 한다는 것.
 축하공연 무대에 선 ‘대구국제무용제’ 그랑프리 수상자인 김시진의 〈파리의 불꽃〉은 나무랄 데 없이 깨끗하고 힘 있는 춤을 춘 반면 김죽엽무용단의 〈소고춤-김묘선류〉은 축하무대로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 ​ ​ ​​​​

2021. 10.
사진제공_세계안무축제 조직위원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