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추모
현대무용계 대모, 육완순 이사장 별세
춤웹진 편집부

육완순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이 지난 7월 23일 뇌출혈로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현대무용진흥회는, 고인은 지난 20일 저녁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후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심한 출혈로 깨어나지 못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 5월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에서 여러 현대무용가들과 함께 ‘레전드 스테이지’에 선정되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작품 일부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서 과거 공연 영상과 예수의 독무 실연으로 짧게 소개한 바 있다. 레전드 스테이지에 선정된 무용가들 가운데 최고령자였던 고인은 무대에 올라 197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공연한 지 올해 48년째로 감회가 새롭다 하였다. 고인은 지난달 12일 ‘제3회 육완순 무용콩쿠르’를 열었고, 최근까지 올 연말에 있을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을 준비하는 데 동분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완순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




1933년 전북 전주 태생인 고인은 이화여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춤을 전공하며 현대무용가 박외선에게서 사사했고, 1961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일리노이 주립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배우는 한편 마사 그레엄, 호세 리몽, 앨빈 에일리 등의 춤을 연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1963년 귀국하여 고인은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첫 발표회를 열고 한국에 미국 스타일의 현대무용을 본격 소개하였다.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마사 그레이엄 기법을 주축으로 현대무용인들을 육성하였다.

고인은 1973년 이화여대 교목실(校牧室)의 제안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안무하여 부활절에 올렸고 이후 48년간 310회 넘게 이어진 기록은 한국 최장 최다 롱런의 춤 공연 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인은 1975년 최초의 한국 현대무용단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을 창단하여 현대무용 현장 활동가들을 다수 육성하였다. 이를 모태로 하여 1980년 한국현대무용협회 창립, 1982년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 개최(~ 현재), 1985년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창립, 1990년 ADF 서울(KADF) 개최, 1992년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개최(~ 현재) 등 한국 현대무용의 선도자로서 활동을 지속하는 동시에 국내 현대무용가들이 중견 무용가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일구었다. 춤평론가 고 김영태는 “육완순이 일찍이 한국 현대무용계를 위해 씨앗을 뿌려 결실을 거둔 것은 대모(代母)다운 춤인생을 보여준다”고 소개하였다. 아울러 30년 가까이 해마다 열린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은 국내 신진 현대무용가들을 100명이 넘게 해외 기획자들 및 행사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1991년 고인은 이화여대 무용과 입시에서 2명을 부정 입학시킨 사건으로 당시 학과 교수 2인과 함께 구속되고 법적 판결(고인은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받아 춤계와 예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일대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안무가로서 고인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다수의 현대무용 작품 외에 특히 서구 어법의 현대무용에 한국적 소재와 정서를 접목하는 작업으로 〈논개〉 〈초혼〉 〈숲〉 〈학〉 〈실크로드〉 등 수십 편을 남겼다. 고인의 작업과 활동 전반을 오래 지켜본 춤평론가 채희완은 “이땅에 현대춤 양식이 기틀을 잡게 하고, 우리 춤예술의 영토를 확장시켰다”고 평하였다.




육완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겟세마네 동산(1990)



 

〈초혼〉, 〈어머니의정원〉




지난 5월 ‘레전드 스테이지’ 무대에 소개된 영상 메시지에서 춤평론가 김채현은 “작품 활동, 인재 육성, 현대무용 기반 확장, 기획 등 다방면에서 육완순이 공헌한 바를 당대를 배경으로 하여 간결하게 압축하기가 쉽지 않으며 ‘육완순은 육완순이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대학 시절 고인에게서 현대무용 가르침을 받았던 춤평론가 이지현은 고인을 죽음은 물론 늙음과도 연결시켜본 적이 없을 정도로 어느 부고 소식보다 황망했다면서 “대학 시절 새벽 레슨 등 앞장서서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인내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시던 선생님의 순결한 의지와 강인한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회고하였다.

2021. 8.
사진제공_한국현대무용진흥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