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연속 해외취재_ 춤 자료의 재탄생 3
춤, 온라인 뮤지엄으로 뻗어가다
김채현_춤비평가

춤 자료의 보존 측면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충실한 곳은, 필자의 판단에 비추어, 미국이다. 이미 소개한 국립춤박물관, 뉴욕공연예술도서관의 제롬 로빈스 디비전의 예에서도 보듯 미국에서 특히 예술춤 자료는 이 2곳에 집결되어 있다. 이곳들만의 자료로도 미국은 세계에 내로라하는 예술춤 자료 보존 국가로 자부할 만하다. 이곳들은 모두 공공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년 사이 예술춤 자료 보존에 민간 기관이 가담하여 미국의 그러한 위상은 더욱 굳어지고 있다. 이 작업을 수행하는 민간 기관은 제이콥스필로우이다.
 뉴욕 동북부에 위치한 매사추세츠주 서쪽 끝에 버크셔라는 곳이 있고 이 지역의 제이콥스필로우(Jacob’s Pillow)는 미국에서는 유일하게 춤 때문에 미국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제이콥스필로우는 예술춤 영상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 왔다.
 제이콥스필로우에서 이 작업은 어느 날 갑자기 추진된 것이 아니고 그럴 만한 내공이 쌓여 있었다. 제이콥스필로우는 일찍이 춤 전용 극장과 춤 자료관, 춤 실습 스튜디오를 갖춰왔고, 그 일대는 휴양지로도 이름이 높다.(미국 국립춤박물관이 소재한 새러토가스프링스 역시 유명한 휴양지다.) 이곳의 춤 역사는 근 90년에 이르며 1942년 미국 최초로 전용 극장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새러토가스프링스처럼 이곳도 산골 오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1930년대부터 미국 예술춤의 흐름에서 훨씬 강력한 역할을 펼쳐 왔다.(그때 새러토가스프링스는 예술춤과는 아무 인연도 없었다.)




제이콥스필로우 테드숀극장, 미국 최초 춤 전용극장 ©2019 김채현



제이콥스필로우 부속 극장 ©2019 김채현




 제이콥스필로우가 디지털화하는 예술춤 영상 자료는 다른 곳에서 수집한 것이 아니라 주로 자체의 역량으로 길게는 근 80년 동안 확보한 것이다. 이 자료들은 오래된 것일수록 (미국의) 20세기 현대무용 역사에서 소중하다고 봐야 한다. 이를 이해하자면 제이콥스필로우의 역사를 잠시 훑어볼 필요가 있다.
 제이콥스필로우를 설립한 사람은 무용가 테드 숀이었다. 그는 1914년 무용가 세인트 데니스와 결혼하였고, 이 부부는 이후 1920년대를 통털어 미국의 예술춤 세계를 주름잡은 인물들이다. 그들이 세운 데니숀무용학교/무용단이 육성한 마사 그레이엄, 도리스 험프리 등은 이 부부의 예술관을 벗어나 1930년대에 미국 현대무용을 주도하였다. 당시 미국에서 제자들이 스승을 앞질렀고 좋게 말하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심하게 말해 제자들이 스승을 단숨에 극복하는 양상이 펼쳐졌던 것이다.
 현대무용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에 데니숀 부부는 현대무용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또한 그들은 현대의 무용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제대로 인식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무용수로 육성한 마사 그레이엄 등은 현대무용을 창출해냈는데, 이는 데니숀 부부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데니숀 부부가 육성한 무용수들이 현대무용을 창출했다는 근거에서 데니숀 부부가 현대무용의 탄생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바는 작지 않다고 평가된다.




공연전 해설을 위해 마련된 자리 ©2019 김채현




 데니숀무용단은 스펙터클한 무대춤으로 북미 대륙 전역을 휩쓸 정도로 대중들에게서도 호응을 크게 받았으며 당대 미국 사회에서 무용가 세인트 데니스는 여성 아이돌로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30년 무렵 데니숀 부부는 서로 관계가 틀어지면서 두 사람은 별거하고 이후 각자의 춤 작업을 걸어간다. 이를 계기로 남편 테드 숀은 버크셔 지역의 산간 지대에서 농장을 매입하여 그곳을 제이콥스필로우(야곱의 베개)라 명명하고 예술춤의 보금자리로 정착시키는 작업에 전념하였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지도하는 남성 무용단을 창설하여 1933년부터 북미 대륙 전역에서 그들만의 공연을 엄청 활발하게 지속하였고, 1942년에는 제이콥스필로우에 춤 전용 극장을 미국 최초로 건립하였다.
 그때부터 테드 숀은 제이콥스필로우에서 매년 여름 장기간 춤 페스티벌을 기획하였다. 데니숀 부부가 창안하지 못하고 제자들이 창안한 현대무용을 비롯하여 발레, 사교춤, 각국의 민속춤과 고전무용, 그리고 마임까지 아우르는 매우 폭넓은 시각에서 춤제전을 진행하여 당시 미국의 예술춤을 활성화시키고 또 그것이 무대예술로 안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제이콥스필로우 댄스 페스티벌은 지금도 해마다 6월 중순부터 두어 달 열린다. 춤 공연과 실기 연수,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는 이 제전에서 무대 공연은 과거처럼 폭넓은 기획의 폭을 견지하고 있고 근래에 와선 평상시에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된 프로그램들이 추진되고 있다.






제이콥스필로우 자료관 내부 ©2019 김채현



제이콥스필로우 역사를 알리는 부스 ©2019 김채현




 제이콥스필로우는 방대한 춤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과거의 사진이나 도서, 춤 공연 자료, 영상자료가 그것들이다. 이들 자료 가운데는 국립춤박물관, 뉴욕공연예술도서관의 제롬 로빈스 디비전의 소장 자료들과 겹치는 것들이 상당수일 테지만 제이콥스필로우에만 있는 자료는 무시 못할 가치를 지니며, 이 점에서 제이콥스필로우는 독보적일 수 있다. 이 가운데 사진이나 공연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것은 기본이며 특히 제이콥스필로우 댄스 페스티벌을 비롯한 자체 이벤트에서 확보한 영상 자료의 디지털화는 제이콥스필로우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자료화 작업에 속한다.
 2011년에 첫선을 보인 Jacob’s Pillow Dance Interactive 프로그램은 제이콥스필로우 댄스 페스티벌의 2010년까지 출품작들을 소개한다. 공연작들을 1분 30초 정도 길이로 발췌 압축한 영상이 공연 세부 사항 및 공연 경위와 함께 자체 홈페이지(www.danceinteractive.jacobspillow.org
)에서 소개된다. 공연작 전체를 보려면 제이콥스필로우를 방문하면 되고, 또한 이들 자료는 시대별, 단체별로도 분류되어 검색이 용이하다. 또한 자료들은 계속 보완되고 있다.




제이콥스필로우 댄스인터랙티브프로그램 초기 화면



부스에 설치된 노트북에 댄스인터랙티브가 업로드되어 있다 ©2019 김채현




 지난 8월 제이콥스필로우를 방문하였다. 이곳 또한 뉴욕에서 고속버스로 몇 시간을 가서 또 원거리를 택시로 이동해야 당도할 수 있다. 26년만에 다시 방문한 제이콥스필로우는 그때보다 관람객이 많아 보였고 훨씬 활기가 넘쳤다. 자료실 또한 디지털의 도움에 힘입어 그러하였다.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Jacob’s Pillow Dance Interactive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노트북이 여러 곳 설치되어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예술춤 영상 자료를 공개한 규모를 기준으로 하면 Jacob’s Pillow Dance Interactive 프로그램이 현재까진 최대인 것으로 생각되고 그것은 온라인 뮤지엄으로 명명될 만하다. 물론 그것이 공연작을 부분 영상으로 압축한 것이라는 한계가 있고, 어쩌면 규모가 절대적 평가 기준은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Jacob’s Pillow Dance Interactive 프로그램이 운영됨으로 해서 미국에서 예술춤 자료들이 더욱 입체적으로 존재하게 되고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과의 접속이 더욱 활성화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9. 1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