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유럽의 춤 현장Ⅱ
무대 뒤에서 만난 유명 안무가들의 모습
이선아_〈춤웹진〉 유럽 통신원

무용 쪽 일을 하는 우리 부부는 공연을 많이 본다.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에서 때로는 관객으로, 친구로 그리고 통신원으로 안무가들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가끔은 무용 기자인 남편의 인터뷰 현장에 동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 안무가가 평소 좋아하던 안무가라면 그 자리는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안무가에 따라 자신의 유년 시절과 삶을 털어놓는 예술가도 있고, 미리 준비한 이야기 위주로만 전달하는 안무가도 있다. 그 모습은 참 다양하지만, 매번 느끼는 건 프랑스 안무가들은 말을 참 잘한다. 정말 청산유수가 따로 없다. 이런 자리에 동석할 때면 나는 최대한 인터뷰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가끔 한 두가지 질문을 던지며 예술가의 이야기에 경청한다.

프랑스에 정착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무용 축제의 기자 현장에 참석할 때마다 불어가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은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모두가 웃을 때 웃을 수 없는 그 비참함이란…) 알아들을 수는 없고, 뭐라도 보고 배워야 할 것 같아 시작된 것이 관찰이다. 안무가의 말투, 행동, 제스처 등 기자들의 질문에 대처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말의 내용과 정보는 놓칠 때가 많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고 관찰하면서 안무가의 성격과 삶의 태도가 느껴졌다. 이 느낌이 작품에서 보일 때면 참으로 신기했다. (내가 사람을 유난히 잘 본다거나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무대 뒤에서 또는 거리에서 만난 안무가들은 어떤 모습일까?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몇몇 순간들을 나눠 보고자 한다. 누구를 평가할 의도도, 그럴 자격도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쓴 점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사는: 제롬 벨 (Jerôme Bel)

안무가 제롬 벨은 우리 집에서 2-3분 거리에 사는 이웃이다. 우리 부부가 자주 가는 야채 가게와 단골 카페가 그에게도 단골인 듯 싶다. 야채를 고르며 또는 카페 옆자리에서 그를 자주 본다. 나는 멀리서도 제롬 벨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주황색 테두리의 독특한 선글라스를 끼고 책을 즐겨 보는데, 그의 선글라스는 마치 자기만의 세상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법의 안경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그는 혼자만의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친한 친구가 제롬 벨 무용단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나는 여러 차례 그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남편과도 아는 관계라 인사를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동네에서 마주치면 서로 적당히 모른척 한다. 인사 나눌 때마다 늘 처음 만나는 것처럼 인사하기 때문에 나도 굳이 “내가 기억 안나냐” 는 등 묻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그와 같은 칸에서 내린 적이 있다. 파리 지하철은 출구 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세게 밀어야 하는데, 내가 먼저 나가면서 그를 위해 잠시 문을 잡아주었다.

선아 : 혹시 안무가 제롬 벨 아니세요?
제롬벨: ㅎㅎㅎㅎㅎㅎ 어머, 나를 알아요? ㅎㅎㅎㅎ
선아 : 당신의 작품을 여러 번 봤어요.

사실 다섯 번도 넘게 인사를 나눴건만, 야속하기도 하시지. 아무튼 마치 팬인 것처럼 인사를 건네니 대화가 쉬웠다. 나는 제롬 벨의 열혈 팬까지는 아니지만, 예술가로서 그의 업적과 작업을 존경한다. 지하철에서 나와 그의 집 앞까지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어머, 우리 이웃인가 봐요. 또 만나요!” 이렇게 인사를 전한 그는 며칠 후 거리에서 또 마주쳤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본 제롬 벨은 늘 예술에 또는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제롬 벨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의 페이스북을 보면 그의 관심사를 금방 알 수 있는데, 주로 정치와 환경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외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는 듯, 주변의 작은 것들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롬 벨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가 딸과 함께 있을 때면 여느 아빠처럼 행복해 보이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잠시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가 늘 예술에 빠져, 예술 안에 사는 모습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막상 현실을 살다 보면 그렇게 (예술가로만) 사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으니 말이다.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안무가: 리아 로드리게스 (Lia Rodrigues)

브라질 안무가 리아 로드리게스의 작품을 한 두 번 본 이후로, 나는 그녀의 작품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3년전쯤, 그녀의 대표작 <핀도라마>(Pindorama) 작품이 샤이오 국립극장에 올려졌다. 개인적으로 컨디션이 안 좋았던 때라 공연을 보러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그 작품을 놓치면 너무 후회될 것만 같았다. 공연을 보러 갔고 나는 첫 장면부터 매료됐다. 장면 하나 하나가 내 모든 감각을 작품 안으로 빨려 들게 했다. 무용수의 몸뚱이가 내 몸뚱이처럼 느껴졌고, 가슴 깊은 곳을 후비는 것 같은 아픔과 감동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렇게 숨을 죽이고 공연을 봤다.

공연이 끝난 후 리셉션에서 만난 리아 로드리게스에게 잘 봤다는 소감과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리아 로드리게스의 눈빛은 참 묘하다. 동물의 눈처럼 아주 순수하고 섬세하면서도 내면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라는 나의 말에 그가 내 눈 높이를 맞춰 주었다.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해 주었다. 나는 말 한 문장을 제대로 끝내기도 채 전에, 눈물이 발칵 쏟아지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공연을 잘 봤다는 말 한마디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눈물 한 방울도 아니고 대성통곡 이라니. 그런 나를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꼬옥 안아주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나에게 품을 내 주었다. 내가 진정됐을 때 쯤 리아 로드리게스는 이 작품의 드라마투르그를 불렀고, 이 관객이 우리 작품을 보고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그 두 분은 다시 한번 나를 안아주었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많으셨을 텐데, 리셉션에서 만난 얼굴도 모르는 관객의 이야기에 눈높이를 맞춰주고, 따뜻한 품을 내어준 안무가 리아 로드리게스, 나는 그날의 작품과 만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리아 호드리게스의 작품 <핀도라마> (Lia Rodrigues Cia. De Danças(RJ)_Pindorama)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 하는: 마기 마랭 (Maguy Marin)

마기 마랭 같은 거장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설렘과 동시에 떨리는 일이었다. <춤웹진> 인터뷰를 요청해야 하는데, 누구에게 찾아가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하는 건지 망설이다가 공연 후 마기 마랭을 직접 찾아갔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만 했는데, 자신의 두 손으로 내 두 손을 꼭 감싸 안으며, 따뜻한 눈으로 “봉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정치가, 혁명가에 가까울 만큼 스트롱한 분이라고 들은 것도 있고, 사실 꽤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손을 잡아 주는 순간 떨렸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간단히 내 소개를 했고, 매니저와 약속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쉽게도 인터뷰 약속이 있던 날 마기 마랭은 기차 지연으로 약속을 지키지는 못하셨다. 서면 인터뷰로 진행해야 했지만, 그분의 따뜻한 첫인상만큼은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나는 통신원인 동시에 아직 현장에서 무용을 하는 사람이라 이런 거장의 따뜻한 태도를 볼 때면 느껴지는 바가 많다. 관객을 만날 때 나는 어떤 무용가인가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지난 몇 년간 무대 뒤에서 만나본 안무가들은 유명한 거장일수록 겸손했고 따뜻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분들이었다. 그들의 작품뿐 아니라 태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이선아 

현재 파리에서 거주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 무용단 “Compagnie Le Guetteur”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웹진>을 통해 프랑스 무용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 ​ ​ 

2020.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