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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첼론카 페스티벌 레지던시 작업
전쟁은 춤으로 논의될 수 있는 것인가?
정다슬_재독 현대무용가

 

 우크라이나는 지난 2013년 초부터 크림반도 문제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우크라이나 사태는 점차 악화되어 가고 있어 지금으로서는 사태 해결을 위한 뚜렷한 돌파구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비행기 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인으로서 같은 시련이 유럽 어디선가 또다시 벌어질까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춤을 추고, 페스티벌을 열며 끊임없이 예술을 갈구하고 있었다.


 2014년 겨울, 나는 우크라이나 첼론카 현대무용 페스티벌(Zelyonka Fest - International Festival of Contemporary Dance Theater)에서 주관하는 레지던시에 지원을 하였고, 운이 따라준 덕인지 인터내셔널 안무가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이 레지던시는 4월 열리게 되는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 안무가의 작품과 해외 안무가를 초청하여 우크라이나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까지 무용수로서 많은 작업을 해오며 ‘나의 것’을 하고 싶다는 갈망에서 지원하게 된 이번 레지던시는 해외 안무가를 초청하는 것이 처음이고 나는 2인무 등의 작은 작품을 안무한 경험은 있으나 총체적인 지원 아래 작품을 안무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기에 설렘도 컸지만 그 만큼의 걱정도 뒤따랐다.

 



 올 초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독일의 브레멘에서 출발해 체코를 경유하여 5시간 만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 도착하였다. 그간 작업을 위해 많은 나라를 다녀보았으나 늘 팀원들이 함께 있었기에 오롯이 혼자 떠나는 출장은 새롭게 느껴졌다.
 키예프 공항에는 페스티벌 디렉터이자 키예프 문화 예술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안톤 오브치니코프가 나와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아시아인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그는 나를 금방 발견했다.
 안톤은 우크라이나는 현대무용의 볼모지에 현대무용 축제를 만들어 무용계를 활성화시키고 안무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에서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그들이 더 넓은 세계에 눈 뜨도록 돕는 등 어린 학생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함께 버스를 타고 키예프의 남서쪽으로 2시간 반 가량을 달려 베르디치브 시티에 도착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체조와 서커스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서커스단의 단장이 베르디치브 시티에 극장과 연습공간, 아파트까지 완벽한 레지던스 공간을 구축해 놓았다. 수수하지만 기품 있는 극장은 한 때 유럽에서 가장 큰 설탕공장이었던 곳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다. 항시 연습과 공연이 가능한 이곳에서 실제로 레지던시 기간 동안 많은 서커스 아티스트들을 마주쳤고 연습도 참관할 수 있었는데, 기계적인 테크닉을 넘어서는 그들의 우아하게 단련된 몸짓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베르디치브 시티에서는 2주간의 시간이 작품 창작을 위해 주어졌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9명의 무용수들과의 작업을 통해 약 30분가량의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우크라이나로 떠나기 전 이미 작업을 최대한 많이 진전시켜 놓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주 후에는 3번의 쇼케이스가 계획되어 있었고 직접 표를 사서 보러 오는 관객들과 무용관계자들이 많이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많은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을 뿐 9명의 무용수들은 무척이나 작업에 열의를 보였고, 그들의 열정은 나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실제로 우리 엄마와 그녀의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기억의 형성을 소재로 시작된 작품은 내 계획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이 무용수들의 이야기로 채워졌고, 그들의 기억에 의존하게 되었다.
 2주간의 작업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이 어떠한 형태로 우리 안에 남아 있는지, 혹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한 것들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저장되는 형태와 그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에 대해 관찰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우리가 재료로 사용하였던 때로는 소소하고 때로는 중요한 기억들이 작품을 통해 들려지고 보여지고 춤춰지고 있었다.
 물론 9명의 무용수들 중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있었지만 2~3명의 무용수들이 통역을 자청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도움 없이 몸만으로도 모두와 소통하는 방법을 서서히 익혀갔다.

 



 먹고 잘 때만 빼고는 계속 리허설을 진행하는 매우 빡빡한 일정에 모두가 지쳐갔지만 그렇게 먹고 자고 춤추고를 반복하며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첫 번째 쇼케이스는 우리가 작업을 진행했던 베르디치브 시티의 극장에서 진행되었고, 이후 우리는 키예프로 옮겨 다양한 현대 예술 작업이 소개되는 쿠르바스 센터(Kurbasa Center for Contemporary Arts)에서 2번의 쇼케이스를 진행하였다.
 키예프에서의 쇼케이스에서는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 대사관의 설경훈 대사님과 코트라 키예프 무역관의 김광희 관장님께서 가족 분들과 함께 공연을 찾아주시기도 했다. 두 분은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문화행사가 반갑다고 하시며, 우크라이나의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많은 비지니스 맨들이 출장을 미루는 와중에 겁 없이 춤을 추겠다며 찾아온 젊은 안무가의 패기에 응원을 북돋아 주셨다.

 



 무용평론가와 기자, 무용관계자들이 주관객이었던 키예프에서의 쇼케이스는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공연이 끝나고 진행되었던 ‘관객과의 대화’였다. 이미 한국과 독일에서도 많이 보고 참여했던 시간이지만, 그 어느 곳 보다도 우크라이나의 관객들은 자신들의 솔직한 감상을 보다 적극이고 직접적으로 들려주어 나 역시도 생생한 피드백을 받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크라이나의 현대 무용이 신체적인 기량에 집중되어 있어서인지 탄츠테아터 형식으로 이루어진 나의 작품에서 혼돈을 느끼며 호기심을 갖는 관객들도 많이 볼 수 있었고, 평론가들의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질문들은 내가 작품의 언어화와 정의를 내리는 데 큰 화두를 던져주는 시간이었다.
 레지던시 과정의 마지막에는 이틀 동안 8시간의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아마추어 클래스와 전문 무용수를 위한 클래스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특히 아마추어 클래스에는 나의 공연을 보고 춤을 춰보고 싶어져 워크숍에 와주신 분들도 계셨다. 안무가이자 예술가로서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싶었다.

 



 레지던시 기간 동안 이루어졌던 몇 번의 인터뷰와 관객과의 대화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우크라이나의 무용수들은 어떠한가?”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비춰볼 때, 과연 전쟁은 춤으로 논의되기 적절한가?”였다.
 이 질문들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그들의 무용에 대해서도, 그들의 생활과 국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듯 했다. 사실 무용 안에서 어떤 주제든 논의 될 수 있겠지만 전쟁을 무용의 형식으로 이야기하고자 할 때는 그 결과로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한 잣대라고 생각된다. 분명 전쟁에 대해 논의하고, 기존의 사고를 변화시키고자 할 때에는 춤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의 레지던시를 마치고, 작품을 올리고, 우크라이나의 무용수들과 작업을 하는 동안 나에게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다. 늘 생기가 감돌며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우크라이나 국가와 국민들은 어쩌면 삭막한 현 상황을 누구보다 적절하게 춤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4월에 다시 한 번 찾을 우크라이나에는 그리고 내 작품에는 어떤 변화와 발전이 있을지 나 스스로 기대된다.

첼론카 페스티벌 웹사이트
http://www.zelyonka-fest.org/en/

 

2015.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