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코로나19, 국내 춤·예술계 동향
재난 속 춤과 공연예술, 도처에 위기 엄습
김인아_〈춤웹진〉 기자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췄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이하기 어려운 코로나19는 사회침체와 경직, 그로 인한 피해가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사태에 비해 도저히 비교가 안 될 규모로 체감되고 있다. 한 마디로 위기가 엄습하며, 공연예술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먼저 2월 23일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후 국공립으로 운영되는 문화예술공간들은 휴관을 결정했고,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거나 잠정 연기됐다. 국립극장 등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 공연기관 5곳이 휴관에 들어갔고, 국·공립예술단체의 공연들도 잠정 중단됐다.
 민간 예술단체나 소규모 공연장의 경우에는 예방을 위해 자체 취소 결정을 내리다가 관람객이 전혀 찾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기도 했다. 간혹 공연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3월 26일 서울시가 한국소극장협회에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한 공연장 잠시멈춤 및 감염예방수칙 엄수 협조요청’ 공문을 내려 보내면서 지금보다 더 적은, 최소의 관객으로 열거나 취소가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공문에는 공연 관람객 명단 작성을 비롯해 발열 체크, 해외방문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관객 간, 객석 및 무대 간 거리를 2m 이상 유지할 것 등이 요구됐다. 만일 조항을 어기면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벌하는 것은 물론 확진자가 발생하면 구상금을 청구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객석 300석 이하 소극장의 경우 관객 간 2m 거리를 유지하려면 객석 두 좌석을 비우고 관객을 앉혀야 해 30명 정도의 관객만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춤을 비롯한 공연예술계는 일시 정지 상태다. 2월부터 시작된 공연 취소는 3월까지 이어져 2020년 시즌 첫 공연들이 무대 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와 〈호이 랑〉이 취소되었고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시즌 두 번째 정기공연 〈안나 카레니나〉마저 취소되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도 공연 취소를 결정했다. 모든 예산과 기회비용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민간예술단체의 특성상, 공연 취소로 인한 발레단의 손실과 피해가 크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동참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3월 중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예정되었던 이고르 모이세예프 발레단 초청 공연, 서울시무용단의 창작무용극 〈​놋-N.O.T〉도 취소되었으나 〈​놋〉은 4월중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극장공연을 대신한다.




크리스탈 파이트 〈검찰관〉 ⓒMichael-Slobodian/LG아트센터 제공




 4~5월에 예정된 공연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히 국립단체의 신작, 해외단체의 첫 내한으로 기대를 모은 공연들이 기약 없이 연기되면서 아쉬움도 커지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대표 레퍼토리인 안성수 안무가의 〈봄의 제전〉과 신창호 안무가의 신작 〈비욘드 블랙〉을 더블빌로 구성한 ‘오프닝’이 잠정 연기되었다. 최진욱의 춤에 정구호의 미장센을 더해 ‘산조’를 재해석한 국립무용단의 신작 〈산조〉도 잠정 연기를 결정했다. 국립무용단 관계자는 “2020-21 시즌 내 〈산조〉 공연을 계획 중이며, 필요한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최종 공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LG아트센터가 기획한 두 편의 해외초청 공연도 잠정 연기, 내년 공연을 협의 중이다.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안나 카레니나〉를 비롯해 세계 공연계가 주목하는 크리스탈 파이트의 첫 내한공연, 니콜라이 고골의 동명의 원작을 무대화한 무용극〈검찰관〉도 오는 5월 국내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됐다.
 매해 봄을 알리는 춤축제들도 난항 중이다. ‘한국현대춤작가12인전’이 취소되었고, 한국창작춤 축제 ‘한국무용제전’은 잠정 연기를 밝히고 10월 중 개최를 모색하고 있다. 거리와 광장을 무대 삼아 무용, 퍼포먼스, 연극, 음악 등이 펼쳐지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도 올해는 열리지 않는다.




유니버설발레단 〈지젤〉 온라인 상영회 예고 영상 스크린샷 ⓒ예술의전당 유튜브 채널 www.youtube.com/sacmusichall




 이런 가운데 춤을 비롯한 공연예술계는 코로나19에 맞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술계가 디지털 미술관으로 전시 대안을 실행하는 것과 유사하게, 과거 공연영상을 온라인 스트리밍하는 서비스가 늘어나 안방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경기아트센터,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서울시향, 코리안 심포니, KBS 교향악단 등이 온라인 공연 콘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숱한 취소로 위축됐던 공연계는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예술의전당은 2013년부터 시작한 공연 영상화사업 ‘SAC On Screen’을 통해 제작된 영상 중 다양한 장르로 11편을 엄선하여 총 20회의 스트리밍 상영회를 진행, 스트리밍 시작 1주일여 만에 15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3월 20일부터 4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무용공연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과 〈지젤〉을 상영한다. 유니버설발레단은 ‘SAC On Screen’에서 상영된 작품 외에도 〈춘향〉 전막 영상을 유니버설발레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4월 5일까지 송출한다. 국립발레단의 다양한 레퍼토리도 오는 5월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상영 예정작과 세부 일정은 4월 중 국립발레단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공개된다.




 

2020 젊은안무자창작공연 포스터 ⓒ한국무용협회 │ 제20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포스터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코로나 시대,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무대 위 공연 실황을 생중계하여 관객은 극장이 아닌 안방에서 실제 공연을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지난 2월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시나브로 가슴에의 〈HIT & RUN〉이 무관중 공연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했다. 4월에는 서울시무용단의〈​놋-N.O.T〉(4월 18일), ‘2020 젊은안무자창작공연’(4월 12~19일)이 네이버TV를 통해 생중계된다. 앞서 영상 오디션으로 예선을 치른 젊은안무자창작공연은 최우수안무자상을 놓고 펼치는 본선 경연을 무관중 공연으로 진행, 온라인으로 송출한다.
 올해 20회를 맞는 ‘서울국제즉흥춤축제’(4월 21~26일)도 온라인 공연을 도입한다. 공연의 50%를 네이버와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공연장에서는 객석을 일부만 가용해 일정 거리를 유지한 관람을 시도한다. 마찬가지로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5월 14~29일)는 관객 간 거리두기 좌석제, 일부 온라인 공연으로 진행된다. 기존에 야외에서 일반 시민들과 함께 진행되었던 모스는 챌린지 형식의 온라인 참여프로그램으로 변경하는 등 코로나19에 대응하여 새로운 운영 방침을 논의중에 있다.
 이렇듯 온라인 공연 콘텐츠의 공급과 소비가 최근 크게 늘었지만 대부분 수익 창출과는 무관하다. 때문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나 베를린 필하모닉처럼 전세계에 팬이 있는 소수의 유명 단체들이나, 재정이 비교적 안정적인 국공립 기관들이 공공서비스나 홍보 차원에서 무료 온라인 공연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민간단체가 온라인 공연 서비스를 주도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오프라인 공연이 끊긴 대다수 예술가들과 공연산업 종사자들은 생존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어렵게 준비한 공연과 행사가 취소되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 진행이 막혀 당장의 생계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공연장 문을 닫게 만든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공연 소비행태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안 그래도 힘든 공연예술 종사자들은 공연 소비행태 변화라는 새로운 트렌드에 대응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까지 안게 됐다.




2020년 3월, 공연 장르별 매출액 통계 그래프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실물경기의 타격은 경제활동의 가장 끝에 위치한 예술계에 가장 파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3월 한 달 동안 연극·뮤지컬·클래식·오페라·무용 등을 포함한 공연계 전체 매출액은 91억2452만원으로 총수익이 100억원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1월 전체 공연계 매출액은 404억원이었고, 확산이 본격화한 2월에는 매출액이 그 절반인 209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3월은 전월 수익에서 다시 절반을 훨씬 밑도는 금액을 기록하여 두 달 만에 매출이 4분의 1 수준으로 급전직하했다.
 장르별로 보면, 뮤지컬을 제외하면 사실상 다른 장르는 고사 위기다. 3월 매출액 중 뮤지컬이 차지하는 비중은 88.7%(80억9531만원)였다. 연극은 5.3%(5억3191만원), 오페라는 4.5%(4억711만원), 클래식은 1%(8756만원)에 불과했다. 무용은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전년동기 3억1583만원이었던 데 비해 올해 3월에 열린 공연은 총 2건, 매출액은 5만원으로 총 매출비율에 아예 집계되지 않을 정도다.
 한편, 한국예총은 지난 3월 9일부터 12일까지 회원협회(10개)와 전국 156여개 연합회(광역시·도), 지회(시·군·구) 등 전체 130만 회원을 대상으로 긴급조사를 시행하여 ‘코로나19 사태가 예술계 미치는 영향과 과제’ 보고서를 3월 18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올해 1~4월 사이 취소·연기된 현장 예술행사는 2,500여건, 규모로는 약 600억여 원에 이르고 예술인 10명중 9명은 전년대비 수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예술인의 84%는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수입이 감소하거나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예총 이범헌 회장은 이번 보고서 발표와 관련하여 “코로나19 사태는 크게는 국가적 위기지만, 현장예술인들에게는 직면한 생계 위협”이라고 호소하며 “현장 예술인 및 단체의 피해에 따른 생활․운영자금 지원 등 긴급 조치가 필요하며, 이와 관련하여 조속한 추경 편성과 집행을 130만 예술인의 이름으로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앞서 문체부는 예술인복지재단과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산하기관을 통해 사례를 모집하고 예술인들을 긴급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예술인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예술인복지재단의 경우 코로나19 기간 동안 국내외 행사와 공연의 취소 및 연기로 소득이 감소한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저금리(1.2%)로 대출을 해주는 ‘긴급 생활안정자금’과 신청 창작을 준비하는 예술인들에게 1인당 300만원씩 지급하는 ‘창작디딤돌’ 등을 마련했다.
 긴급 생활안정자금과 창작디딤돌 모두 지원 예산 규모에 비해 신청이 초과된 상태로, 특히 창작디딤돌은 20일 마감 때까지 1만4800명이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재단이 마련한 지원금규모는 1만 2000명(360 억 원)분. 이중 6000명만 상반기 중에 지원받을 수 있고 나머지 6000명은 하반기에 받는다. 지난해 5500명 지원한 것에 이어 두 배 넘는 규모를 마련했지만, 코로나19로 턱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더구나 2019년에 지원을 받은 사람은 올해는 신청할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더딘 집행이다. 생계지원금 격인 창작디딤돌도 받는데 3개월은 족히 걸리고, 나머지 지원방안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11조 규모 추경 편성이 3월 17일 국회를 통과한 후 업종·분야별 긴급 지원방안에 따라 문체부를 비롯한 지자체의 지원방안이 속속 마련되고 있다. 문체부는 어려움을 겪는 소극장에 1곳당 최대 6000만원씩 총 200곳을 지원하고 예술인 및 예술단체에 2000만∼2억원의 공연 제작비를 지원한다. 서울시도 정부의 코로나19 추경을 서울시 맞춤형으로 재설계한 피해업종별 지원을 마련해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된 공연팀 가운데 공모를 통해 총 225개 단체를 선정, 팀당 2000만원 내외로 작품 기획 및 제작비용 등을 지원하고, 세종문화회관 빈 공연장을 활용한 무관중 온라인 공연을 제작, 공연팀 10개를 선정해 5000만원 내외의 제작비와 출연료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재난 속 일시정지로 벼랑 끝에 내몰린 현장예술인들에게 긴급 지원정책이 실효를 거둘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2020. 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