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한마당
춤꾼들은 왜 그들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조봉권_국제신문 편집부국장‧ 전 문화전문기자

  ‘몸의 직접성’.
 이것은 춤 예술을 언제나 접하는 이에게는 낯익고 당연한 특성이자 덕목일 터이다. 한동안, 그러니까 10년쯤 되는 세월에 걸쳐 나는 ‘춤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부산을 중심으로 울산이나 경남에서 펼치지는 춤 공연을 최대한 많이 보고, 춤 예술인들과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한 기간이었다.
 그러나 일간지 문화부에서 한 가지 영역만 아주 오래 담당한다는 건 어려운 노릇이어서 벌써 몇 년 전 ‘보직’은 바뀌었고, 더는 춤 담당 기자로는 뛸 수 없었다. 춤 공연에서도 조금씩 멀어졌고, 현장감도 점점 떨어졌다.
 그 뒤로도 줄곧 예술과 문화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로는 활동했다. 주로 문학과 인문학 부문을 맡았고, 부산국제영화제(BIFF) 같은 큰 행사는 줄곧 취재했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내야 했고, 춤이 그리웠지만 잊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춤의 무엇을 잊었던 걸까?
 ‘몸의 직접성’이었다.
 춤에서 몸의 직접성은 당연하고 낯익은 것이지만, 춤 장르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매우 드물고 귀한, 어디서도 좀체 볼 수 없는 예술 특성이 되었다. 문학에서는 몸의 직접성이라는 감각을 만나기 힘들다.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스크린에 한 번 걸러져서 재현된 간접의 세계다. 보는 사람 모두 이걸 안다.
 연극에서는 말을 하며, 음악에는 직접성이 있지만 몸의 직접성은 아니다. 미술 작품을 보러 가면 대체로 그 작품을 만든 사람과 그 작품을 만든 과정은 거기 없다.
 지난 8월 23, 24일 부산 민주공원 중극장‧소극장에서 펼쳐진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 한마당에서 벼락 맞은 것처럼 느낀 건 바로 이 ‘몸의 직접성’이었다. 나는 벼락 맞은 빗속의 곰처럼 이틀 동안 공연을 보며 꼼짝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몸의 직접성은 강렬했다.


기획의도와 작품이 조화를 이룰 때

그렇다면 왜 그렇게 강렬하게 몸의 직접성에 사로잡혀버렸을까? 단지 몸의 직접성이라는 감각 세계를 한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만났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 한마당이라는 내력 깊고, 내공 쌓인 행사의 기획의도와 정체성이 이 공연의 춤 작품을 일거에 관통한 덕분이었다. 기획의도와 춤 작품이 제대로 만났다는 뜻이다.
 춤꾼과 안무가는 자기가 어떤 자리에 와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떤 춤을 왜 어떻게 춰야 하는지 의식했다. 객석에 앉아서 이 점을 줄곧 느꼈다. 지금 되새겨보면 예술기획에서 이렇듯 기획의도와 작품이 잘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산으로 가자는 기획의도는 훌륭한데 작품이 바다로 내달린다면, 작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객석에서는 큰 감동을 받기 어렵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떤 점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 대동굿 같은 행사는 작품과 기획의도를 맞추는 게 덜 어려울 수 있다. 1993년 시작해 2019년까지 26년 동안 열여섯 번(올해가 제16회째다) 동안 들인 공력과 쌓은 내공이 있고, 주제의식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는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한국에 ‘경제 도발’을 감행한 특수한 상황이 보태졌다. 아베 신조 정권이 경제 도발을 한 날은 올해 7월 1일이었다. 이것은 일본 극우와 아베 정부가 걸어온 ‘전쟁’의 한 형태라고 많은 국민은 받아들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한‧일 역사에서 ‘가해자’ 자리에서 내려와 본 적 없는 일본이 또 도발한 것이다.
 이 도발은 일본 극우와 현 정권이 예측하지 못한 반응을 여럿 일으켰다. 이 글에서 그에 관해 상세히 논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해두고자 한다. 볕이 잘 드는 방안에서 먼지떨이로 청소하면 그간 묵혀 있던 먼지가 일제히 솟아올라 알갱이까지 하나하나 보인다.
 그런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졌다. 많은 한국인이 그간 잊고 지냈던 일제와 일본 극우의 실체가 다시 한 번 먼지 알갱이처럼 드러났다. 많은 한국인이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마음을 다시 다잡고 생각을 정리하게 됐는데 그런 한국인에는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 한마당에 출연한 춤꾼과 예술가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출연진은 자기가 서야 할 무대가 어떤 무대인지 알고, 어떻게 춤춰야 하는지 느낀 상태로 공연에 나섰다. 객석에 앉아서 느꼈던 높은 에너지의 실체는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이라도 그 날의 공연을 되새겨 보아야 할 이유다.


디테일보다 힘과 짜임새 돋보인 공연

지금까지는 2019년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 한마당의 전체 분위기를 현장에서 느낀 ‘에너지’ 중심으로 살폈다. 개별 작품을 들여다보고 기록해두고자 한다.
 올해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 한마당은 지난 8월 23일 오후 3시부터 밤 10시께까지, 24일 오후 3시부터 밤 9시께까지 열렸다. 두 날 행사 시간을 합치면 10시간이 훌쩍 넘는다. 그런데 이틀 동안 그 공연을 모두 지켜보는 일이 힘들거나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얻은 느낌이다.
 춤 공연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육성을 담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변영주 감독의 1990년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1’ ‘낮은 목소리 2’ 상영을 비롯해 고사, 노래, 풍물, 소리, 시낭송, 시극, 산문극 등 다채로웠다.
 먼저 짚어두고 싶은 건,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가 보여준 진솔하고, 나직나직한 호흡과 시선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삶의 한 시절을 살아냈던 할머니들의 나직하고, 진솔하며 때로 천진한 말, 그런 흐름 속에서 가끔 튀어나온 무겁고 끔찍하고 아픈 회고는 이 행사의 전체 중심을 잡아줬다.




홍승이 〈내 이름은〉 ⓒ박병민




 ‘몸의 직접성’이 거친 호흡과 격한 리듬으로 뿜어져 나와 아프고 불편한 진실을 정면에서 마주보게 한 작품 몇 편이 인상에 깊이 남았다. 연극인이자 퍼포먼스 작가 홍승이가 출연하고, 백대현이 연출한 산문극 〈내 이름은〉(24일)이 그러했다. 단순하고 선이 굵은 움직임과 침묵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육중하고 불편했다. 객석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끝낸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정기정·손재서·방영미 〈소녀상 일어서다〉 ⓒ박병민




 정기정·손재서·방영미가 나선 춤 〈소녀상 일어서다〉(23일)의 묘한 현실성과 묘한 부조화는 현실 같고 구체적인 느낌과 강렬한 상징성을 함께 담은 점이 눈길을 잡았다. 예컨대 방영미는 아주 강렬하면서 과장되고 동시에 현실감이 선명한 의상과 몸짓으로 거침없이 춤췄다. 그 장면은 이 공연이 오늘, 여기, 우리 문제임을 환기했다.
 24일 무대에는 독무 4편이 잇달아 펼쳐졌다. 이번 해원상생 한마당에서 가장 힘 있는 대목이 여기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개별 춤이 모두 예술적 새로움이나 세련됨을 내장했다거나 무언가에 도전하는 ‘모던함’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의 춤은 각자 자리에서 ‘충실했다’.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 한마당의 기획의도를 그대로 받아 안고 충실하게 반영했다. 임지유의 〈가시는 길〉, 유은주의 〈언니야! 집으로 가자〉, 박재현의 〈당신의 역사〉, 강정윤의 〈기억의 길〉이다.
 다른 장르는 일단 미루고, 춤 예술의 시선에서 봤을 때 4명이 독무로 춤춘 시간은 굵직하고 거침없는 모습 그리고 희생된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기리는 정신을 보여줬다. 이들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몸의 직접성’이야말로 내가 잊고 있었던 춤의 힘임을 확실하게 느꼈다.




  

유은주 〈언니야! 집으로 가자〉, 왕정희 〈배웅〉 ⓒ박병민




 오랜만에 무대에서 춤춘 왕정희는 독무 〈배웅〉(24일)에서 여전히 풍성한 표현력을 보여줬다. 그의 춤은 풍성한 느낌, 어딘지 첨벙첨범 물살을 일으키는 이미지를 구현했다. 해원상생이라는 주제의식이 출렁댔다.
 전체 짜임새에 관해서도 언급해야 한다. 이 공연에는 여러 요소, 여러 장르가 결합했다. 이 행사 자체의 역사가 오래된 덕분인지 아니면 올해 더 그랬는지 세밀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어떤 쪽이든, 전체 흐름에서 짜임새가 있음을 느꼈다.




박소희·엄승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박병민



  

이삼헌 〈산천초목〉, 남도욱 〈8월의 봄〉 ⓒ박병민



  

홍순연 〈이팔청춘가〉, 윤수양 〈못다핀 춤〉 ⓒ박병민



이연정 〈천지마고〉 ⓒ박병민




 23일 제1부 열림굿 첫 순서였던 허경미 〈청수 한 동이〉는 매우 단순하고 짧은 퍼포먼스였지만,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순서였다. 박소희·엄승연이 출연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삼헌의 춤 〈산천초목〉, 남도욱의 춤 〈8월의 봄〉, 홍순연의 시극 〈이팔청춘가〉 등이 해원상생 한마당을 한결 풍성하게 했다.
 이와 함께 이틀 간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 한마당을 짜임새 있게 꾸리고 빛낸 예술가들로 최은희(열림북춤), 이연정(천지마고), 안혜경·방영식·최성원(이상 노래), 김요아킴·고명자·권용욱·시인(시낭송), 박소산(심학춤), 윤수양(못다핀 춤), 김광복(태평소산조), 장은영(소프라노), 양일동(소리) 등이 있었다.

조봉권
국제신문 편집부국장, 전 문화전문기자​
2019. 11.
사진제공_박병민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