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부산국제무용제, 대중성 시도는 좋았지만....
제8회 부산국제무용제를 보고
최찬열_춤 평론 / 미학

 춤추는 몸은 가벼워진 몸이며 해방된 몸이다. 이는 춤이 자신을 억누르는 온갖 “중력의 악령”을 털어낸 자유로운 몸의 유희이기 때문이다. 춤 속에서 일상에 찌든 몸과 마음의 굴레는 찬란하게 사라져버린다.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닷새 동안 해운대해수욕장 등 부산 시내 곳곳에서 계속된 춤의 난장 속에서 춤꾼과 시민은 몸적 떨림으로 공명하며 다 함께 생명의 약동에 참여했다. 춤과 함께 사람과 도시는 새롭게 되살아난 것이다.
 올해 부산국제무용제는 힙합과 팝핀, 살사 등의 대중춤을 개막일 공연의 중심부에 배치하며 시민과 친밀한 소통을 꾀하였다. 다소 예술성이 부족하더라도 시민과 친근하게 소통하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대중춤이 국제무용제의 중심부를 차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런 시도는 아주 바람직했다.




주변부 행사 같은 개막일 공식초청공연


 하지만, 산만하고 혼란스럽다. 축제의 이런저런 공연을 쭉 살펴본 뒤 든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공식초청공연과 주변부 행사의 구분이 모호했다. 이질적인 춤이 이 무대 저 무대에서 분별없이 뒤섞이고 개막일과 폐막일의 중심 무대를 빛내는 도드라진 작품 하나 볼 수 없었다. 또 쉬운 춤, 즐기는 춤을 축전의 중심부에 배치하며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좋으나 초청된 춤꾼들의 기량과 작품들의 질은 턱없이 모자랐다.
 현대춤, 발레 등 국내외 초청작들도 해운대 특설무대가 지닌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전혀 살려내지 못했다. 가령 김용걸의 <그 무엇을 위하여>는 미묘하게 변화해가는 춤의 흐름을 잘 포착해야 하는 섬세한 솔로 작품으로 소란스러운 야외무대에 적합한 공연은 아니다. 반면 힙합이나 팝핀 등 원초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야생의 춤은 거리에서 더 빛나는 춤이다. 이런 춤이 가진 화려한 기교와 역동성에 적절한 예술성이 가미된 춤들이 해변 특설무대에 어울릴 것이다. 해운대 특설무대는 거리도 아니고 극장도 아니다. 거리와 해변 특설무대, 극장의 특성을 고려해서 각각의 연행공간에 적절한 작품을 선정해서 배치할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의 춤 그대로 답습하는
AK21 경연 참가작들


 경연방식을 도입해 젊은 춤 작가들의 창작의식을 부추기고자 마련된 AK21 국제안무가 육성공연은 우선 명확한 심사 기준을 세우고 이에 적합한 참가 요건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이번 경연 무대에 오른 작품들로 미루어 짐작건대 뚜렷한 선정 기준은 없어 보인다. ‘가려 뽑은’ 경연작들은 기존의 춤을 그대로 답습하며 관습화된 몸짓을 반복할 뿐이었다. 새로운 몸짓-감각은 부재한 채 공허한 아이디어와 판에 박은 듯한 진부한 감성만 남발했다. 기존의 춤이 구축한 견고한 틀에 균열을 내는 패기 있고 실험적인 작품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M-note 무용단의 <하프타임>(신승민 안무)은 모범이 될 만한 독특한 작품이었다. 구음과 음악의 절묘한 화음을 배경으로 시공간적 경계지대를 노니는 춤꾼들의 섬세한 움직임의 조화가 일품이었고, 멈춤과 틈에 대한 농밀한 인문학적 사유를 선명하게 표현하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춤은 원초적 생명의 자유롭고 역동적인 운동으로부터 솟아나는 출산적 힘의 몸적 유희이다. 그러기에 자본과 권력이 만들어내는 온갖 형태의 도시적 스펙터클에 저항할 수 있는 강력한 감응력을 지니고 있다. 시민의 꿈이나 욕망, 몽상이나 판타지를 온전하게 담아내고, 스펙터클의 매혹을 제압하면서 다른 감성의 영역을 개발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부산국제무용제를 기대해본다.

 

 

 

 

 

 

국립모스크바대학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소속 민족인류학연구소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다시 부산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춤 혹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通)학문적인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현재 부산민예총 부산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2012.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