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로나 길찾기: 댄스프로젝트 뽑끼 이윤정
본질을 탐구합니다
  • 일    시
    2020년 10월 12일 오후 2시
  • 장    소
    카페 프리시즌(서울 통의동)
김인아_〈춤웹진〉 기자



이윤정 ⓒ춤웹진




김인아: 〈춤웹진〉은 기획 인터뷰 ‘코로나 길찾기’로 코로나19 재난에서 춤계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윤정 안무가를 모셨습니다. 공연취소와 연기가 잇달았던 올해에도 쉼 없이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 있었나요?
이윤정: 취소된 공연은 없었고, 연기됐어요. 그 기간에 힘이 많이 빠졌어요. 거의 준비를 다 했는데, 갑자기 한 달 뒤로 연기됐을 때 안무 디테일을 잡을 시간이 생겨서 좋으면서도 계속 긴장감이 풀리지 않는 상태로 한 달을 보내야 했죠.
 상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얘기하면 작년에 했던 〈설근 체조〉를 대림미술관에서 3달 동안 전시했어요. 코로나19가 오기 전에 제의받았고, 전혀 해보지 않았던 영상 전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한 시간이 약간 안 되는 작업을 미술관에 데리고 갈 수 있을지,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부분을 빼야 할지 계획을 세웠어요. 듀엣에서 솔로 작업으로 변환하기도 했어요. 〈설근 체조〉는 두 사람의 드라마가 있는 게 아닌데다 영상으로 봤을 때 콘셉트를 명확하게 보여주려면 솔로가 더 낫겠다 싶었어요. 결국 김명신 무용수와 같이하다가 혼자 하게 됐습니다. 솔로 작업을 군무로 만들 경험은 있었지만, 이런 과정은 처음이었어요. 작업 과정에서 어떻게 무용수한테 얘기해야 하는지 배웠죠. 또 솔로로 작업할 때 영상으로 콘셉트를 보여주는 방법, 시각 작가가 아닌 안무자의 영상을 미술관 관람객에게 전시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좌충우돌도 많이 하면서 거의 2달을 그 작업에 매진했어요. 원래 3월에 전시 오픈이었는데, 4월로 연기됐어요. 한 달이 미뤄지는 과정에서 열심히 다시 편집했는데 매일 매일 영상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편집과정에서 내가 누군지 또 한 번 벽에 부딪히면서 공부를 하게 됐죠.






대림미술관 영상전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_ 이윤정 〈설근체조〉 ⓒd/p




 어쨌든 코로나 시대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다시 드러난 시기인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외국에 나가면 잘 될 거 같고, 서양 문물이 좋은 거 같잖아요. 그러나 코로나19를 잘 대처하는 한국의 태도, 국민적 태도를 보면서 미국과 유럽이 선진화된 생각과 철학적인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들에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철학을 좋아했던가?’, ‘왜 좋아했지?’라고 질문하면서 동양철학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봤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조금 더 본질로 돌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죠. 〈설근체조〉 영상을 만들면서 안무가는 무엇인지, 작가는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영상 편집에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있었어요. 그동안 편집 사이사이에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흔들고 있었거든요. 나도 저 들처럼 멋지게 만들고 싶다 했는데, 기준을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 외국 작가들, 외국 기준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내가 정말 원하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생각하니까 영상에서 군더더기가 빠졌죠. 좋은 경험이었어요.
 조금 더 본질에 가까운 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그럼 세포로 가자란 마음이 들었어요. 〈설근 체조〉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혀와 장기와 근막으로 표현했다면, 좀 더 본질에 가까운 세포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세포 공부를 시작했어요. 해부학책, 생물책들을 꺼내보면서 그림도 그리고 체세포가 무엇인지 배우면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마침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안무랩’을 제안했습니다. 세포를 공부하는 것 자체가 나의 현실이고 내가 궁금해 하는 지점이었어요. 작년부터 쭉 작업에 의해서 밀려왔던 질문들이 세포와 만났고 그것이 국립현대무용단 ‘안무랩’과 만난 거죠. 올해 ‘안무랩’의 주제는 안무가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작업이에요.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건 작품입니다. 작업하는 것 자체가 계속 내가 누구인지 들여야 봐야 하는 과정이에요. 이 과정에서 내가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지가 나를 표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서 세포, 춤, 사회적인 리듬을 연결했어요. 저는 세상을 리듬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작업을 보면 다양한 리듬 안에 사는 우리 그리고 그것을 어떤 리듬으로 표현했을 때 어떤 것이 발현되는지를 다뤘어요. 제 작업에는 유머가 꼭 있고, 그 리듬이 나한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리듬과 내 몸 안에 리듬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국립현대무용단 ‘안무랩’_ 이윤정 〈동시다발〉 ⓒ국립현대무용단




 세포도 다 다른 리듬을 갖고 있거든요. 리서치하면서 한 아티스트가 세포를 다룬 작업을 봤어요. 기분이 좋은 세포 사운드와 스트레스 받는 세포 사운드가 있어요. 또 세포가 싫어하는 화학 물질을 주입했을 때 세포가 엄청나게 싫어하는 걸 사운드로 냈는데, 무서운 소리가 나는 거예요. 아티스트가 어떻게 사운드를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공포영화에 나오는 사운드를 내더라고요. 현대음악하시는 분들이 세포 갖고 작업하시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세상에 새로울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런 리서치를 하면서 많이 배웠고 더 궁금해졌어요. 

 한번은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책으로 공부할 때 말이 모두 다르고 도무지 모르겠어서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교수님을 만났어요. 교수님이 생각하는 세포는 무엇이냐 질문을 드렸더니 본인은 소멸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시는 분이래요. 세포가 일초에도 수천억 개 죽고 살아나는데 그 초점을 ‘소멸’로 보시더라고요. ‘생성’이라 봤던 저와 다른, 새로운 관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업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생각과 교수님의 생각이 상반되면서, 그 사이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럼 중간에 살아있는 건 뭐지?’, ‘살면서 죽는 건 뭐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75분의 1초〉에서 저는 서 있는 상태에서 넘어지는 상태, 그 사이 버둥거리는 상태를 인간이 사는 삶이라고 봤어요. 어차피 죽음으로 가는 시간이니까요. 그런데 세포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세포는 나와 함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같은 시간을 살아요. 심장도 같은 시간을 살고 척수에 있는 세포도 같이 살고, 또 대장은 15년, 피부는 2주 다 다 달라요. 이 다른 시간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거죠.






아트선재센터 퍼포먼스 〈패스,킥,폴 앤 런〉_ 이윤정 〈동시다발〉 ⓒ박해욱/아트선재센터




 얼마 전에 아트선재 공연에서는 그 사이를 경험하는 리듬을 제 몸으로 찾아내는 게 중요했는데, 결국엔 이 모든 시간이 한 번에 만나는 순간이 잠깐밖에 안 되는 거예요. 모기약을 뿌려서 모기가 죽기 직전의 상태, 모든 시간이 멈추는 상태 혹은 버둥거리는 그 사이죠. 이번 작업 마지막 장면이 다 그거에요. 모든 스코어를 압축해서 하는 순간이 있어요. 스코어를 병렬식에서 직렬식으로 바꿨죠. 

 다시 돌아가서 나의 본질은 원자잖아요. 우주의 원자와 몸 안에 있는 원자가 같은 원료로 되어 있다는 것도 재밌더라고요. 되게 기초적인 거죠. 하지만 저한테 새로웠어요. 한편으로는 본질로 계속 돌아가는 습성·습관이 있는데, 그렇다 보니까 ‘그럼 춤은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거예요. 세포가 살아나고 죽는 것과 춤이 공중에 사라지는 건 흡사한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시간이 같은 시간이며, 춤도 사실은 버둥거리는 것에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아트선재 공연이 버둥거리다가 끝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어쨌든 저는 형식미가 있는 움직임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 더 최소단위의 움직임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중추, 축, 본질에 더 관심을 두게 돼요. 그게 지 지금 시대와 맞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올해 작업 중 세 가지를 먼저 말씀해주셨어요. 다른 활동도 소개해주세요.
발달장애인 공부하는 리서치 프로그램을 했어요. 발달 장애인 공부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건 자폐를 바라보는 세상의 태도인데, 보통 자폐인은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라 얘기하지만 공부하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 입장에서 얘기하면 그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 건 우리예요. 단지 뇌 구조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세상에 보인 것이 다를 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자폐 스펙트럼이라 하는데, 불빛이 전혀 다르게 보이고 우리가 말하는 ‘ㅂ’자가 안 들리기도 하고 다 다르죠. 보통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서 때리거나 윽박지르고 끌고 가잖아요. 그들은 계속 대화하고 싶어 해요. 자기 언어를 몰라주니까 마음을 닫는 거죠. 자폐란 말은 우리가 만든 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지겹게도 얘기하잖아요. “예술은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학적으로 나와 있는 말들이 있는데 그런 말들을 저도 당연하다는 듯이 일상적으로 썼던 거 같아요. 뇌 구조가 다르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예요. 다름을 인정한다는 말 자체도 싫어졌어요. 그저 정말 다른 거죠. 내가 어떻게 누굴 인정하나요. 아무튼 여름에 발달장애인 워크숍을 8번 진행했고 저한텐 좋은 기회였어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_ 발달장애인 대상 릴랙스드 퍼포먼스 개발(1차년) 프로젝트. 극단북새통×플랜Q




 국립극단에서 하는 ‘우리연극 원형의 재발견’을 남인우 연출님과 올 초부터 쭉 리서치 작업을 같이했어요. 원형, 신화, 굿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불꽃놀이〉라는 작품을 만들기까지 6개월의 시간을 같이 보냈죠.  
 또 광주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한 어린이극 〈나무의 아이〉를 했고, 중간에 국립극단에서 〈영지〉라고 아동·청소년연구소에서 하는 작업을 했었어요. 〈영지〉는 하루, 이틀 공연하고 코로나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온라인으로 전환했어요. 〈나무의 아이〉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아동·청소년극을 좋아해요. 청소년·어린이·아동도 볼 수 있는 공연이지 그들만을 위한 공연이 아니죠. 그런 맥락에서 아동·청소년이 가진 고민과 성인이 가진 고민이 맞아떨어지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대가 같이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는 거 같아요. 어린이, 청소년, 성인은 20대, 30대… 생애주기별로 나누잖아요. 서로의 말을 듣지 않아요. 〈영지〉는 초등학교 3학년 친구가 주인공이에요. 그 친구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른들 진짜 이상하지 않냐?”란 질문을 계속하는데, 통쾌한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얼마 뒤 11월엔 일민미술관에서 ‘11월×이윤정 춤이어추기 8’ 공연이 있어요. 일민미술관 기획전시 〈황금狂시대〉 중 이양희 안무가의 ‘클럽 그로칼랭(Club Gros-Câlin)’ 일환으로 진행돼요. 4팀을 초대해서 공연하는데 그중 한 편입니다. 이양희 작가님이 제가 지원금 떨어진 상태여서 같이 와서 공연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어요. 후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코로나 긴급지원사업에 선정돼서 어차피 ‘이윤정 춤 이어추기'는 할 거고, 그럼 이번에 콜라보를 하자 해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됐죠. 듀엣 작업이고, 어제 연습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번에 작업이 또 하나 들어왔어요. 12월 4~6일 48시간 논스톱 퍼포먼스 라이브 스트리밍에 아티스트로 참여합니다. 3호선 버터플라이 성기완 씨가 기획한 거예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복합공간 텅빈과수원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2시간 동안 작업을 보여주는데 총 48시간 동안 릴레이로 스트리밍될 거예요. 새로운 경험의 공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술관에서 영상전시와 퍼포먼스, 연극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 등 극장 춤으로 한정지을 수 없는 작업을 이어왔네요. 4월에 서울즉흥춤축제에도 참여하셨고 11월에는 국립현대무용단 10주년 온라인 페스티벌 ‘친하게 지내자’에서 ‘음악+즉흥춤’ 섹션에 참여한다고 알고 있고요. 그만큼 창작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코로나 상황에서도 즉흥, 영상, 연극, 장애 등 주제도 형식도 다양한 춤 활동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나아가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주의는 지금 팬데믹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죠. 이렇게 여러 작업을 안무가님 작품 제목처럼 ‘동시다발’로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바쁜 시간이 올 수 있었던 건 스스로에 투자했던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극 같은 경우는 정말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가 들어왔을 때 했어요. 30대 초, 2004~5년부터 연극을 시작했는데 보수가 많지도 않았어요. 연극을 모르기에 연습실에 많이 가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만 했어요. 그때 좋은 연출가들을 많이 만났어요.
극단 북새통 남인우 연출님, 국립극단 예술감독 김광보 연출님, ​극단 여행자 양정웅 연출님 그리고 구자혜, 하수민, 김경의 연출님​과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고 이야기를 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용과 연극이 가진 시스템이 무엇인지 배웠죠. 한 10년의 시간 동안 열심히 배웠어요. 그것이 무용 작업하는 시스템에 많은 도움이 됐고요. 주먹구구식으로 안무가가 모든 걸 다해야 하는 시스템, 지금도 그런 안무가들이 있지만 어쨌든 비주얼을 담당하는 건 안무가의 몫이에요. 그걸 다 해야 해서 너무 힘들었는데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전문가들이 모여서 각자의 시선으로, 관점으로 작업을 바라보니까 풍성해지더라고요. 그런 시스템을 갖고 싶어요. 

 그때 만난 아티스트, 배우, 스태프 등 좋은 작업자들이 자산이 된 거 같아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결국 남는 건 인간관계더라고요. 내가 작업에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지, 무용수가 아닌 연극배우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배우면서 경험을 쌓았어요. 또 무용씬이 아닌 다른 씬에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됐죠. 기댈 때가 없어요. 제가 감독으로 처리해야 하는 거잖아요. 긴 시간 동안 쌓인 경험을 통해 국립극단에 초대된 안무가로서 작업할 수 있게 됐고, 제 일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줬어요. 중요하잖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안무가가 마이너스로 작업을 하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리고 안무가 페이가 책정된 지 얼마 안 됐고요. 연극 쪽에서 금전적으로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마련했죠.

국립극단에서는 언제부터 작업했나요?
김광보 연출님이 외부에서 저와 같이 작업하다가 2008년 즈음, 국립극단 작업하시면서 저를 불러주셨어요. 쉬는 시간에 남인우 연출님을 우연히 만났고, 다음 작업을 같이하자 해서 또 다른 작업이 이어졌어요. 그리고 피디들이 추천하기도 했고요. 2010년도 남인우 연출님과 작업하면서 여신동 디자이너와 가까워졌어요. 그러면서 여신동 디자이너와 남인우 연출님이 2012년에 ‘이윤정 춤 이어추기'를 도와줬죠. 그때부터 품앗이 작업이 시작됐고, 돌아다니면서 받은 대로 뿌리는 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이번 11월 일민미술관 공연도 여신동 디자이너와 같이 해요.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죠. 그렇게 모든 게 툭 하고 던져진 게 아니라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동안 경험했던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 거예요.




제20회 서울즉흥춤축제_ 이윤정×김오키 ⓒ서울즉흥춤축제




15년간 충실한 경험, 탄탄히 다져온 관계가 지금의 작품활동으로 증명되고 있군요. 예전 이야기들이 나왔으니 이참에 지난 안무 작업은 어땠는지 큰 흐름에서 이야기 나눠도 좋을 것 같아요.
2012년 전에는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힘들었어요. 스스로 의심하고 의심만 하다 끝난 작업도 많았죠. 2012년 이후에는 10년씩 저한테 투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2012년부터 십년 주기로 중장기계획을 세우고 안무 공부를 하고자 했어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서예요. 지친 후배들에게 작업하는 유경험자로서, 조금 먼저 한 경험자로서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3년 동안 작업을 잘하고 싶단 마음이 앞서서 너무 힘든 거예요. 2012년은 살풀이로 시작했고 2013년도 무언가를 했고, 14년도에는 겁이 나더라고요. 아직도 ‘너가 진짜 후배들을 원하니?’, ‘너의 욕심은 아니니?’ 이런 생각도 들었죠. 3년이 지나니까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지현 평론가님이 첫 회에 보러오셨는데, “3년은 해야 거품이 빠진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3년차 때 마음이 수그러들면서 누구를 위한 작업이 아닌 나를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혹여나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을 하지 말고 이 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했는지 집중해보자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4년차 때 〈75분 1초〉를 했는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우니까 작업이 재밌더라고요. 충분히 내 안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드는 게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요. 〈75분 1초〉 할 때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남인우 연출님이 몸이 안 좋아서 입원했어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묘한 성취감이 생기더라고요. 남인우 연출님은 워낙 작업을 재밌게 하시는 분이니까 “남인우 연출이 다 만든 거 아니야?”라는 시선들이 있었고 내심 속상했었거든요. 나는 나로서 존재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썼던 글과 생각을 온전히 나로 바라보지 않고 있고, 누군가 옆에서 도와줬다고 생각하는 시선들,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이걸 남인우 연출님께 말했더니 이제부턴 연출님이 빠지는 게 좋겠다고 하셨죠.
 이후 손옥주 선생님께서 드라마터그로 참여하셨어요. 도전이었죠. 그게 〈1과 4, 다시〉였어요. 스스로에 대한 거품, 욕심이 사라지면서 온전히 스스로 안무가가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때 가장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전에는 두려워서 기댈 곳이 필요했어요. 작업이란 게 어떤 방식이 만들어졌을 때 밀어붙이는 건 내가 할 수 있지만, 혼자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 생각과 큰 틀을 잡을 때 도움을 받아요.
 요즘은 김재리 드라마터그랑 같이 작업하는데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들, 이를 테면 현대무용의 역사적 맥락, 현대예술에서의 맥락을 잡아줘요. 내가 역사 안에서 어떤 걸 하고 있는지 근원의 뿌리로부터 가이드하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명확하게 질문하는 내부 비평가이자 드라마터그예요. 제가 솔로를 하거나 듀엣할 때 안에 들어가 있으니까 스코어를 만들 때 놓치는 부분들을 잡아주죠. 시노그라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왜 이런 의상을 입어야 하는지 맥락을 짚어주고요. 안무가가 모든 것을 선택하는 작업방식이라기보다 협력해서 같이 만드는 쪽으로 달라졌어요.

10년 안무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다는 것이 흥미로워요.
네. 돌이켜보면 10년 안무계획을 하면서 예술가가 가진 욕망을 덜어내고 스스로 집중하고 질문하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내가 어떻게 예술가로서 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예술가로 사는 게 저는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동시에 예술가는 사회에서 보호해줘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Yes”라 할 때 “No”라고 얘기해야 하는 사람이죠. 100년 후에 맞는 말도 이 시대에 맞지 않다면, 지금 그 순간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작업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에요. 물론 모든 예술가가 작업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세상에 관해서 얘기하는 작가가 있다면 사회가 존중하고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 먹고 잘살게 도와줘야 한다는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 안에서 예술가가 갖고 있어야 하는 입지를 보호해주길 원하는 거예요. 예술가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사회에서 비타민을 주는 것과 같아요.
 예술가는 다른 방식의 활동가예요. 그래서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예전에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 선생님이 뭐 하고 지내냐 물어보셔서 공부하러 외국에 간다고 했어요. 전 공부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옛날 어원을 보면 ‘공부한다’는 건 ‘몸으로 익힌다’는 말로 시작된 거래요. 그 말이 좋아요. 저는 안무가라서 내 몸으로 터득하지 않은 말은 내 것이 아닌 거 같아요. 말로 배운 건 체화되지 않고 몸소 터득해서 사소한 근육 세포에 입력을 해줘야 하더라고요.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을 때 스스로 공부했던 시간 덕분에 소위 말하는 전문가가 돼서 얘기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 경험들이 없으면 부르지 않겠죠. 분명히 내가 공부하고 투자한 것은 어떤 식으로 발현돼요. 요즘은 집에서 열심히 알토 리코더를 불고 있어요. 또 하나의 투자예요(웃음).

11월에 하는 일민미술관 작업도 소개해주세요.
2018년에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공연과 전시를 한 적 있어요. 그 작업을 다시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점과 척추 사이: 시선+〉라는 이번 작품은 세포와 근막 장기 버전인데 오른쪽 팔에 있는 제 점 얘기예요. 청소년기에 점을 숨기고 싶어서 몸을 비틀었어요. 어렸을 땐 잘 모르지만, 청소년기에 몸이 부끄러웠고 점 때문에 여름만 되면 몸을 배배 꼬았죠. 뼈가 형성되는 시기에 몸을 너무 비틀어서 척추측만증 환자가 되지 않았을까싶어요. 척추측만증이 심하게 있거든요. 계속 춤을 추는 원동력이기도 해요. 안 추면 몸이 아파요. 어쨌든 그 작업은 사회적 시선에 대한 폭력, 약자에 대한 폭력, 억압에 대한 주제예요. 시선에 포커스를 두고 시선에 의해서 몸이 변형되는 것, 마음이 변형되는 것, 그런 권력을 이야기해요. 권력이 사실 멀리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바로 옆에도 있고 스스로가 권력이 돼서 내 몸을 진두지휘할 수도 있어요. 결국 시선과 생각에 관한 거죠.
 무용수와 안무가 사이에도 시선이란 게 존재해요. 어제 무용수랑 얘기했어요. “무엇을 할지 몰라. 명확하지 않아. 무용계, 무용 작업을 하는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일어나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네가 나를 보는 시선이 될 수 있어”라고 했죠. 조금 더 작은 단위에서 제가 제일 많이 경험하는 시선을 갖고 얘기 나눠보면 사회적 맥락에서 안무가와 무용수가 아닌 다양한 시선으로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세포 얘기했던 것처럼 조금 더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선들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서 그게 사회적인 맥락으로 연결되면 어떨까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구체적이진 않아요.
 무용수를 어제 처음 만났는데 굉장히 당차고 재밌더라고요. 작업이 내가 생각했던 것에서 다른 방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예전엔 두려운 마음이 커서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은 익숙한 무용수, 30대 중후반 무용수들과 하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시각예술 아티스트가 재료 탐구를 하는 것처럼 제가 무용수가 가진 몸 안의 소스들, 내가 원하는 걸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는지 탐구했나 싶더라고요. 이번엔 다른 컴퍼니 물감을 다른 방식으로 써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아요. 이번 작업에서는 18살 차이나는 무용수와 함께하는데 신선한 언어들, 명사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이 친구가 얘기해줄 때 흥미로워요. 또 이 친구가 인생에 대한 두려움을 얘기할 때 “괜찮아”라고 선배로서 얘기하는 것이 내가 꿈꾸던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코로나로 인해 춤 환경에서 변화된 방식, 새로운 흐름을 감지했을 텐데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특히나 매체가 바뀌는 것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있어요. 저는 본질로 돌아가서 근본, 뿌리부터 흔들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명확하게 알아버렸어요. 세포와 감각에 귀 기울이고 그 감각이라는 것은 태도이고 시선이 포함돼 있는 건데, 이런 걸 어떻게 다른 매체로 온전히 전환할 수 있을까요. 요즘 온라인 공연이 되고 있는데, 그냥 공연하는 장면을 찍어서 송출하는 방식은 저한테는 큰 의미가 없어요. 관객들이 오지 못해서 영상작업을 해야 한다면 작업의 관점을 시작부터 영상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영상을 만들 때 어느 장소에서 어디를 포커스로 어떻게 찍을 것인가, 여러 문제들이 제 스스로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아요.

갑자기 응급처방처럼 영상을 다뤄야 하는 상황이죠.
네, 아직 그런 습관이 안 돼 있어요. 조금 더 면밀하게 얘기하면 시간과 돈의 문제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퀄리티로 송출하려면, 제작비용도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이전까지 기록 영상과 새로운 영상 콘텐츠는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아까 본질적인 이야기에서 또 다른 본질적인 사건이 있는 거죠. 작업이 바뀌는 건 1~2년 안에 될 문제는 아니에요. 아티스트들은 영상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어요. 원하는 건 너무 많고 급변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대자본을 들여 거품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들을 볼 때 왜 솔직하지 못할까 생각도 들고요. 영상에 비치는 것은 정말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는 것인데 그럴 때는 조금 더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이면 자연스레 형식이 생길 텐데, 지금은 형식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멘토를 해달라고 요청받았어요.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2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이 작업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찾게 되면 형식은 그냥 만들어 질 거다. 어떻게 형식부터 만들 수 있겠냐”고 했어요. 사실 저한테 얘기하는 거죠. 세상이 급변해도 나만 확고하면 상관이 없는 건데 자꾸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또 어떤 부분에 있어선 휩쓸려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봐야 나중에 자기 것이 되니까 그 경험도 소중한 거 같고요. 멘토링에선 형식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형식에 가까워질 수 있는 생각의 길을 나눠주고자 했어요. 코로나 이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위기는 많았어요. 어려운 때일수록 선배들이 나서서 얘기를 해줘야 해요.

안무가님 세대야말로 90년대 활동을 시작해서 386과 Z세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했고 급변하는 시대의 최전방에 있었어요.
그래서 90년대에 활동한 사람들이 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조류에 계속 치이면서 산 세대입니다. 그래서 더 젊은 세대에 관심이 많은 거 같아요. 그걸 다 경험해봤고, 고민해봤으니까요. 그들에게 안내자 역할이 되었으면 하죠.




이윤정 ⓒ춤웹진




코로나 시기에 스스로를 지탱하고 이겨낼 수 있는 비책이 있다면요?
저는 호기심이 많아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이 시기가 기회다’라는 얘기도 하잖아요. 누군가에겐 기회가 맞는 거 같아요. 예술가로서 스스로 집중할 수 있고 스스로 읽다 만 책들을 한 번 더 꺼내서 볼 수 있고, 쉬면서 아픈 곳을 찾아내서 몸의 그 부분을 위로해주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요. 어디로 와있는지도 모르고 시간에 쫓겨서 달리잖아요. 뒷산을 걷거나 밥을 해 먹고 몸을 구석구석 즐겁게 씻는다거나 일상에서의 수행적 사고를 갖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내가 어디엔가 놓인 게 아니라 내가 거기까지 걸어가는 것. 그런 시간이 스스로가 괴롭지만 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이 바뀌려면 100일이 걸린대요. 무조건 3달을 해봐야 하니까 작은 목표, 하루의 목표가 생기면 스스로 위로될 수 있죠. 전 작은 습을 10년의 계획/목표로 봤어요. 10년이 별것 아니더라고요. 벌써 ‘춤 이어추기’ 8년째예요. 10주년에 무엇을 할지 기획하고 있는데 도록도 만들려고요. 오늘을 잘 살아야 도록을 만들 수 있어요. 오늘이 계획되어야 주 계획, 달의 계획이 생기고, 해의 계획의 생기니까요. 그렇게 삶을 살아야 도록을 만들었을 때 할 얘기가 생길 거예요. 작품만 해서 도록을 만드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걸어갈 것인지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어요. 저는 8년째 됐고 세포 공부 시작하면서 작년부터 또 다른 10년 계획을 세웠어요. 세포, 해부학으로 내 몸과 세상에 설계된 시스템이 어떻게 마주하는지를 공부하려고요. 저에겐 또 다른 10년이 생긴 거죠. 모두에게 행복할 수 있는 작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작업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그걸 누군가 좋아해 줄 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거 같아요. 세포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3년은 괴롭겠죠. 그렇지만 그 과정이 행복할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겁내지 않고 갈 거예요.

10주년 프로젝트 도록은 2022년에 나오나요?
네. 처음에는 ‘이윤정 춤 이어달리기’였는데 중간에 ‘이윤정 춤 이어추기’로 바뀌었거든요. 정말 바통을 들고 나와서 다음 세대한테 주고 싶어요. 그런 퍼포먼스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10주년엔 인터뷰도 하고 선생님들 얘기도 듣고 후배들 얘기도 듣고요. 아티스트가 가져야 하는 태도들에 대해서 심포지엄도 해보고 싶고 공연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잔치를 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밌을 거 같아요.

2시간을 훌쩍 넘겨 이야기를 나눴어요. 몸, 춤,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민, 성실하게 몸으로 익히는 아티스트의 자세, 스펙트럼 넓은 작업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예정된 공연 잘 진행되길 바라며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하겠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정리: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 ​ ​ ​ ​ ​ 

2020.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