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 WHS 〈투오넬라의 백조〉
중립지대에 떠 있는 백조
노승림_음악칼럼니스트
 국립현대무용단이 올해 서울에서 마지막 작품으로 선보인 〈투오넬라의 백조〉(12월 15~1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는 지난 2015년 초연된 동명 작품의 리메이크이다. 

 


 공연 장소가 토월극장에서 자유소극장으로 바뀐 데다 안무가 또한 초연 당시 아쉬웠던 부분들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공연 전에 밝힌 바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실제 내용은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음악을 작품의 뼈대로 사용하는 안무가 안성수의 기준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토요일 공연 뒤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안무 및 행위 예술을 담당한 안성수와 빌레 왈로는 한결같이 “처음부터 시벨리우스의 음악에 초점을 맞추고 구상한 작품이었다”고 입을 모았다(이 작품의 태동이 애초에 2015년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에 맞춰져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두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공연이 2015년 초연보다 판이하게 다르게 다가온 것은 공연장 때문이었다. 보다 작은 규모의 자유소극장으로 바뀌면서 무대와 객석 사이의 친화력이 더 뜨거워졌고, 무엇보다 핀란드 뮤지션 사물리가 주도하는 맥박 치는 리듬의 음악이 국립현대무용단 단원들의 춤사위와 완벽하게 싱크로 됐다. 초연 당시 멀리서 뜬금없이 보이던 유니크한 오브제들의 의미가 디테일하게 전달됐고, 무대는 더 좁아졌지만 무용수들의 활동반경은 더욱 넓어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핀란드의 건국신화 칼레발라 중 아내를 얻기 위해 투오넬라를 사냥하러 가는 바람둥이 영웅 레민케이넨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승전결이 모호한 내용으로 콜라주처럼 각색된 것은 초연 때와 마찬가지였지만 그러한 앞뒤 없는 줄거리는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기형적으로 뒤틀려 우습게까지 보이는 팔다리 동작, 빌레 왈로의 기지가 돋보이는 오브제 연출과 봉춤은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본질적인 테마는 ‘죽음’이 지닌 선천적 어둠을 한 겹 덜어내고 삶의 역동성마저 관통한다. 안무에서 현저하게 드러난 한국 춤의 실루엣은 물론 극중 후반부 서양 비트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린 한국 전통음악의 선율 또한 이 작품의 정체성을 중립지대에 두는 데 일조했다.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 춤과 연극의 중립지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백조의 정체성은 이 작품의 의도만큼이나 모호하다. 그러나 그 모호함이야말로 ‘투오넬라의 백조’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가장 뚜렷한 상상력의 메시지이다. 
노승림
월간 〈객석〉 기자를 거쳐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이화여대 독어문학과 졸업   영국 워릭대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대 문화행정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 강의를 하고 있다. 역서로 『페기 구겐하임』, 『음악과 권력』, 『평행과 역설』 저서로는 『예술의 사생활』이 있다.
2018. 01.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