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혜진 신임 서울시무용단장
소통과 강도 높은 훈련, 한국적 컨템퍼러리댄스 지향
  • 일    시
    2019년 2월 20일 오후 4시
  • 장    소
    세종문화회관 사무동 귀빈실
인터뷰 │ 장광열_춤비평가

 




장광열: 서울시무용단장 취임을 축하드린다. 취임 후 한 달여 정도 지났다. 단원들과의  작업이나 행정시스템을 어느 정도 경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시점에 대담 일정을 잡았다. 우선 신임단장으로서 단원들을 만나본 소감이 궁금하다. 

 

 

정혜진: 일단 서울시무용단원들의 마인드가 오픈되어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 만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서로에게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하게 멤버들을 많이 알고 있더라. 오래된 단원들은 공연하면서 알게 된 분들도 많았고, 젊은 사람들도 인연이 닿았던 분들이 꽤 있었다. 무용계 오래 있다 보니 언젠가는 다 만났던 분들이었던 터라 대화하고 서로 이해하고 나아가기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장광열: 서울시무용단 공연 작품을 거의 모두 보고 있다. 무대에 서는 서울시무용단원들을 보면서 창의적인 작업에 대한 욕구도 있어 보이고 완성도 높은 공연을 통한 예술가로서의 성취감에 대한 갈망도 크다고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연 작품의 편차도 크고 예술감독 공석이 길어지면서 객원 안무가 선정에 있어서도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듯 보였다. 외부에는 다양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무대에 올려진 작품은 공연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예술감독이 없는 체제에서는 단원들이 기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례은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원무용단의 경우에서도 이미 드러났다. 기본적으로 단원들이 창작작업에 대한 의욕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 공공 예술단으로서 서울시무용단의 새로운 변신에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 본다.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이 창작의 산실이며 창작을 앞세워 진행해 나가는 단체라는 점을 단원 스스로 잘 알고 있는데, 그에 비해 근 10년간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하나의 자부심은 단장이 없었어도 기획력을 발휘해서 조금이라도 관객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작품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문학과의 만남 〈카르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공연을 올렸다. 티켓 판매율이나 기획력을 성공적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

 

장광열: 티켓 판매율이나 기획력을 단체나 예술감독의 역량으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술작품으로서의 완성도이다. 대중성 있는 작품을 올렸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그러나 좋지 않았다. 대극장 무대에서의 장편 공연 작품창작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작업기간이 짧았고, 외부 안무가들이 와서 이미 스타일화된 움직임에 익숙한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 역시 힘겨웠던 것 같다. 예산, 극장, 기술 스태프, 무용수들이 확보된 상황에서 외부 안무가는 서울시무용단을 위한 좋은 레퍼토리를 만들겠다는 의지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유혹이 더 강할 수 있다. 외부 안무가들의 작업이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졌던 것에는 이런 여러 가지가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시무용단은 왜 공공무용단에 뛰어난 예술감독이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정혜진: 많은 부분에 동의한다. 외부 안무가들이 와서 작업할 수 있는 기간이 두 달 남짓이었을 텐데, 단원들의 장점을 살린다거나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기에는 무척 짧은 기간이다. 그래서 있었던 작품에 입히는 작업밖에 보여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저 역시 취임되고 나서 보니 주어진 시간은 세달 정도이고, 이미 대본 등이 정해져있는데 지금까지 저의 작업과 맞지 않아서 지난 한 달 동안 계속 씨름하며 대본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단원들의 결을 맞추게 하기 위해서 다시 기본부터 시작해 몸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3개월의 기간이 다른 외부 안무가 선생님들과 같은 조건이므로 확 바뀐 좋은 작품을 보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과 부담감이 없잖아 있다. 

 

장광열: 놀랍다. 세종문화회관은 산하에 여러 개의 예술단체를 두고 있는 전문 공연장인데 새로 부임한 단장에게 3개월 만에 대극장 신작 정기공연의 안무를 맡기다니…. 그럼 첫 작품은 언제 올려지나?

 

정혜진: 5월 23-24일에 대극장에서 70분 신작을 선보인다. 

 

장광열: 누가 보더라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단장 겸 예술감독의 역할을 맡고 있으니 단체의 책임자로서 하반기에 올리는 것으로 단안을 내리는 것은 무리인가? 

 

정혜진: 이미 계획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주어진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광열: 이런 문제 때문에 공공 무용단의 예술감독 선임은 조기에 이루어져야 한다.  임기시작부터 예술감독에게 큰 부담을 가중시키는 꼴이기 때문이다. 1년 3개월 동안이나 예술감독이 공석 상황인 것도 모자라 준비기간 없이 선임하는 시스템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에서는 예술감독 임기 만료 1년 전부터 신임 감독을 선임하여 단원 오디션을 실시,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고 활동계획을 꾸리는 시스템을 갖추고 철저히 준비한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임기를 시작할 때도 준비 기간이 불과 열흘도 안 되었다. 임기 첫 해를 시작하는데 이미 짜여진 공연 라인업에는  전막 창작발레를 10월에 올리도록 되어 있었다. 강 단장은 그 계획을 과감하게 바꾸었고 부임 후 4년이 훨씬 지난 올 10월에 전막 창작 발레 공연을 갖는다. 발레라는 장르의 특성도 있겠지만 대극장에서의 장편 공연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렇게 예술감독의 재량으로 공연 계획을 변경한 사례가 국내에 있었다. 서울시무용단장으로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작 공연을 해야 하는 구조니, 정말 힘드시겠다. 짧은 작품으로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정혜진: 생각이 많다. 지금 시작했지만 어쨌든 제가 작가를 선정한 것이 아니고 같이 일했던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호흡을 맞춰가는 단계다. 이번 공연 후에 업그레이드도 계획하고 있다. 

 

장광열: 요즘 외국에서는 워크 인 프로세스(work in process)라 해서 완성된 작품이 아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공연을 보여주는 시도가 자주 목격된다. 대개 관람료를 반만 받는다든지 해서 올리는데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도 유용하다. 완성된 작품은 6개월 혹은 1년 후에 선보인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대본을 받고, 무용수 훈련 기간도 짧은 조건에서 70분짜리 대극장용 신작을 선보이라는 것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스스로 좋은 작품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문제는 예술단체 노조에서도 부당함을 건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혜진: 지금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에 시간뿐만 아니라 제작비도 문제다. 이만큼의 예산과 시간으로 좋은 작품을 올리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무용단, 배정혜 안무 〈두레〉 ⓒ세종문화회관




장광열: 춤계 현장에서 이번 서울시무용단 신임 단장 겸 예술감독 선임과 관련해 바라는 것은 크게 세 가지쯤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정혜진 신임 감독의 경우 다양한 창작을 해봤던 분이다. 예원학교에서 학생들과의 작업, 최현 선생님의 제자로서 작업, 서울예술단과 정동극장에서의 관객친화적인 작업 등 다양한 유형의 작업을 해봤기 때문에 서울시무용단을 통한 창작 작업의 예술적 완성도나 작품 유형의 다양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두 번째로는, 무용수로서도 기량이나 훈련이 체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작품에 따라 어떤 메소드가 필요한지 간파하고 단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전 신무용 또는 전통춤 계열 단장들과 달리 창작을 지향하는 서울시무용단의 정체성에 맞는 분이 책임자로 왔다는 것이 현장의 반응이다.  

   세 번째는 효율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단장에 대한 기대이다. 서울시무용단은 고참 단원이나 개성 많은 단원이 많은 편인데 이런 무용수들과 작품을 해나갈 때 유연한 리더십이 더욱 필요하다. 행정 쪽과의 원만한 조율에서도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공공무용단 예술감독들은 예산의 문제나 행정지원 기관과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해오던 행정시스템을 바꾸기 어렵다거나, 예산이 너무 적다거나 여러 문제에 부딪힐 경우가 많았다. 

   한 달 남짓 지났으니 어느 정도 업무 파악이 끝났을 텐데 전속 예술단체를 향한 세종문화회관의 행정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나?

 

정혜진: 작품 만드는 것에 급급하여 아직까지 지원협력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먼저 신임 사장님께서 돈 걱정 없이 만드는 제작극장을 만들겠다고 하셨다. 무용단에 지원하게 된 계기도 그 분의 말씀이 희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임 사장님의 인터뷰를 보고 이런 분과 함께라면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문화재원팀장이 공석 상태인데, 팀이 완성되는 내년부터 훨씬 좋은 제작환경을 만들어주시겠다면서 올해까지는 조금 고생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장광열: 신임 사장이 선임되었을 때에 예술계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공연장 운영 경험이 없는 분께서 세종문화회관을 잘 운영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반응, 반면에 공연장을 운영해보진 않았지만 여러 유형의 공연장에서 자문위원과 회계 관련 업무로 이미 예술경영, 극장경영에 대한 시스템을 파악하신 분이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외부에서 협찬을 받거나 재정을 확보하는 루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세종문화회관이 산하에 전속예술 단체를 갖고 있는 만큼 제작극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극장경영이라는 것은 산하 예술단체를 관리하는 것도 있지만 재정확보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혜진: 이전에는 예술감독이 티켓 판매의 조건이 따랐다고 알고 있다.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현재 사장님께서는 작품에만 전념해라, 티켓을 팔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예술감독을 존중하고 북돋아주시는 말씀이 질 높은 작품을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장광열: 취임하면서 단원들에게 가장 강조한 점은 무엇인가?

 

정혜진: 지도위원이나 수석, 부수석의 체계가 있는데 이를 새롭게 꾸려나가는데 단원들의 불안감이 있었다. 이번에 지도위원, 수석, 부수석을 뽑는 직책 오디션을 봤다. 특히 전통과 신무용 부분은 굉장히 무난하게 잘해주셨다. 반면 창작적인 것에 대한 에너지 흐름 등은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번 오디션에는 그간 서울시무용단에 심사하지 않았던 분을 무작위로 공정하게 모셔서 전통과 창작부문을 50:50으로 심사했다. 그래서인지 기수 순으로 맡았던 기존과 달리 이번에는 중간 기수에 해당하는 분들이 수석, 부수석이 됐다. 체제가 흔들리는 이런 변화로 4~50대 분들은 아무래도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춤을 배워야하나, 심적 불안을 갖게 됐다. 저는 조직체계로 꾸려지는 무용단이기 때문에 저는 하루 빨리 직책이 확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게 누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제로 베이스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무용단에서 어느 누가 된다 하더라도 맞춰서 하리라 다짐했었다. 다만 팀별 제도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34명 단원, 12명 인턴을 세 파트로 나눠서 하는 팀별 제도를 제안했는데 이때에도 팀장이라는 직책을 두고 불안한 기색이 보였다. 저는 다함께 좋은 공연을 올린다는 같은 목표를 갖고 1년이라는 기간 동안 팀별 제도를 꾸리는 것이며 1년 후에 재평가하여 누구나 공정한 과정을 통해 직책을 가질 수 있음을 전단원에게 말씀드렸다.

 

장광열: 무용수 오디션은 프로 예술단체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객관적인 오디션 과정을 시행했고 이를 단원들이 수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시무용단의 변신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 

 

정혜진: 단원들에게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나를 비우자는 것이었다. 춤에서도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창작이라는 것은 비워야 나올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 단체에 맞게끔 비우는 작업을 먼저 하자고 말씀드렸다. 내가 나를 비워야 지혜가 생긴다.  내 스스로 들여다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느낄 때에 지혜가 나오기 때문에 그런 지혜를 비움으로서 찾자고 강조했다.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상대가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지 않나. 상대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소통으로부터 비롯된다. 상대가 나임을 알 때 사랑이 생기니 상대가 나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자고 말씀드렸다. 단원들께서 모두 공감해 주시더라. 후배들이 가르치는 변화된 체계 속에서 몸을 기초부터 다시 만드는 훈련으로 전단원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동작들을 너무 열심히들 하고 계시다. 전반적으로 단원들은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가 땀을 흘린다, 너무 개운하고 좋다, 피곤할 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또다시 새롭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말씀하신다. 지금 단원들 전체가 다같이 움직이며 기운을 북돋는 상황이다. 얼마나 수준 높은 작품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현재 5월 신작의 목표는 우리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광열: 서울시무용단장 선임을 결심하게 된 동기로 새로 온 사장의 재원조성 공약을 언급했다. 그밖에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정혜진: 사실 서울시무용단에 오기가 두려웠다. 지원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원이 열악한 때 서울예술단에 들어가서 고생이 많았었기에 더욱 두려웠던 것 같다.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도와달라며 못살게 굴었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했을 때에는 4층 객석을 채우느라 힘들었고 이후에도 작품하면서 티켓 판매는 거의 저의 담당처럼 나서서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기획팀들이 잘 움직이고 점점 더 조건이 좋아지면서 지금은 서울예술단이 버젓한 단체가 되었다. 매우 기분 좋고 뿌듯하게 생각한다. 

   서울예술단 초기에 매일 회의를 하며 관객 유치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었다. 그것의 해결방법은 소통이었다. 뮤지컬과 우리를 연결해서 소통하자는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예술단은 정기공연 대신 외부공연을 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뮤지컬을 끌어들이면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었다. 결국 뮤지컬의 팬 분들도 서울예술단의 팬이 되고 예술단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마지막 공연 같은 경우엔 티켓 오픈 후 얼마 안 되어 매진되는 성공을 거뒀다. 그 과정에서 너무 큰 고통이 따랐기 때문에 이번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힘든 곳에 가서 열심히 도움 드리는 것이 나의 소명인가 싶다.

   서울시무용단이 지난해 문학과의 만남 시리즈로 선보인 〈카르멘〉을 관람했었다. 당시 저는 〈장녹수〉를 안무하던 때였다. 장녹수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카르멘의 성격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카르멘과 장녹수를 연결해서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시무용단의 〈카르멘〉을 봤다. 한국무용과 발레의 콜라보가 나오길 기대했었는데 제가 기대하던 시너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놀랍게도 서울발레시어터 전막 그대로 발레작품을 서울시무용단원들이 소화하고 있었다. 한국무용하는 단원들이 발레를 하다 보니 이도저도 아닌 혼형스러운 모습, 게다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하모니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참을 보면서 나 같으면 하기 힘들었을 텐데 너무 열심인 단원들이 모습이 눈에 띠더라. 어떻게든 이 무대에서 잘해보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공연을 마쳤을 때 그들의 모습도 너무 인상 깊었다. 이만큼 열정적이고 넉살 좋은 단원들과 같이 한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어서 더 애정이 갔다. 서울시무용단에 가서 뜻을 펼쳐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장광열: 서울시무용단은 국립무용단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직업 무용단이다. 1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를 꾸준히 축적해 왔다. 그만큼 중요하다. 서울시무용단이 당면한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무용 전체의 문제인데, 언제부턴가 한국무용이 없어졌다는 생각이다. 현대무용의 테크닉이 한국무용을 지배하고 있는 거다. 서울예술단에서 무용감독으로 〈오르페우스〉라는 작품을 했었다. 그때 태극권, 택견의 동작을 따와서 안무했는데 남자 단원들이 충분하지 않아서 현대무용하는 분들을 객원으로 모셨다. 그런데 현대무용수 분들은 한국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한국무용수와 현대무용수가 서로의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인가 느끼게 됐다. 이제 한국무용수 분들은 대개 현대무용 움직임을 하고, 현재 서울시무용단 역시 현대무용 동작을 하는 상황이지 않나. 여전히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두 가지의 경계와 구분 짓기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 같고 그 결과가 한국적인 것이라면 왠지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 한국무용을 선호하지 않는데다 현대무용 동작을 해야지만 이 시대에 앞서가는 춤을 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 한국적 느낌이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저 같은 경우 82년도에 졸업하면서 인간문화재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뵙고 배웠다. 선생님들마다 특징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 춤의 맛과 멋을 교육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창작무용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언젠가부터 현대무용 움직임을 끌어와 동작들이 쪼개지면서 이를 한국창작춤이라고 하고 있다. 한국무용의 눌러 추는 춤이 아니라 무게중심을 위로 띄우며 잽싼 동작들, 날쌘 동작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저는 그런 것들이 서울시무용단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창작춤을 하는 사람들이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예전에는 한국춤을 추면 그때 문화를 같이 즐길 수 있었던 관객들이 있었기에 공감하고 좋아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 것을 어떻게 하면 외제스럽게 보일까를 연구하며 우리 것을 조금씩 퇴색시키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외국무용이 쫓아할 수 없는 우리의 참된 멋을 보여줄 시기이고 이를 서울시무용단에서 해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 춤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서울예술단에서 음악과 노래, 춤이 협업하는 가무극을 창작하며 얻은 것이 많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연출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무용이 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 한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스태프가 협업한다. 무용은 그런 협업이 없고 안무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일단 시작 단계인 대본작업에서부터 미흡함이 드러난다.

 

장광열: 정확하게 지적해 주셨다. 우리나라는 안무가 혼자서 그 많은 것들을 다한다. 외국의 경우 안무가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작품을 같이 할 스태프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스태프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아이디어도 짜내고 세밀하게 제작 콘셉트를 완성해 간다. 국내에서도 뮤지컬 제작의 경우 이 같은 시스템이 조금씩 정착해 나가는 것으로 보이나 무용은 여전히 모든 것이 안무가의 몫으로 제대로 된 협업을 하지 못한다.

   앞서 한국적 움직임에 관한 언급에 대해서도 첨언 하고 싶다. 국립무용단의 해외안무가 초청작으로 선보인 두 작품 가운데 조세 몽탈보의 작품이 테로 사리넨의 것보다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조안무로 국립무용단원을 기용했고 그 결과가 작품의 흐름에 효율적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외국 안무가가 대한민국의 국립무용단원들과 협업과정에서 자신의 움직임 메소드만으로 1시간 이상을 끌어간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한국무용의 스타일이 접합되어야 협업작품의 경쟁력도 그 만큼 탄탄해진다. 〈시간의 나이〉에서 장현수 씨가 나오는 부분이 좋은 예다. 작품에 그런 장면이 있음으로 해서 부족한 부분이 매워지는 것이다. 정 신임 단장께서 정확히 보셨다고 생각한다. 한국무용의 움직임이나 호흡을 기저로 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컨템퍼러리 댄스인데 우리는 현대무용적인 무엇을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서울시무용단이 잃어버렸던 예전의 명성을 다시 복원시키는 작업에서 한국춤을 기저로 한 컨템퍼러리 댄스를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혜진: 예산 부족으로 협업할 분들을 잘 모시지 못해 걱정이 많다. 그래도 지금 작가 분을 제외하고 제가 원하는 스태프들을 모셨다. 전체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은 없었고 개별적으로 만나 뵙고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제작 환경이 조금 더 좋아질 것이다. 서울예술단에서 했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아이디어를 계속 내놓으면서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장광열: 여러 문제점들이 도출됐는데 신임 단장으로서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이 있다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겠나?

 

정혜진: 일단 단원들이 저마다 중심점이 있어 춤의 결이 같지 않다. 어떤 동작이 주어졌을 때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지지 않고 다른 색깔이 비춰진다. 지금은 예술감독으로서 저의 색으로 하나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고 있고 이렇게 하다보면 서울시무용단의 색깔이 정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시무용단, 임이조 안무 〈바리〉 ⓒ세종문화회관




장광열: 예술계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공연예술 부문도 무용예술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정 단장께서 생각하는 이 시대 공공 무용단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혜진: 관객들이 카타르시스와 풍요로움을 느낄만한, 삶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활동으로 여길만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무용단에서 작품을 만들면 꼭 보겠다고 기대할 만큼의 작품이 나와야 한다. 서울시민이 서울시에 서울시무용단이 있음으로서 행복을 느꼈으면 한다. 작품을 보고나서의 뿌듯함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장광열: 현재 서울시무용단은 예술성 높은 작품을 선보이기보다 예를 들어 ‘찾아가는 무용공연’과 같은 행사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정혜진: 그렇다. 5월과 10월에 정기공연이 잡혀 있는데 그 사이에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았더니 5~7월을 중점으로 비정기적인 연계공연, 각 구청을 돌아다니며 하는 공연 스케줄이 많았다. 공연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지 않은 곳에 단원들이 가서 춤만 추고 오는 것이라 매우 열악할 것으로 짐작된다. 관객들에게는 행사위주의 무용작품을 맛보기처럼 보여드렸을 것 같다. 저 역시 찾아가는 공연을 해야 한다. 아무리 세종문화회관의 접근성이 좋다 하더라도 모든 분들을 위해서, 또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작품을 보여드리는 기회를 갖고 싶다. 그러나 어쭙잖게 한국춤 맛보기로 보여주기 식의 행사는 하고 싶지 않다. 공공무용단에서 지양해야 할 것 중 하나다. 고품격의 작품으로 감동을 드려야 하지 않겠나. ‘동무동락’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전통을 갖고 이시대의 춤을 선보이는 것인데 이를 다시 한 번 짚어서 품격 높은 한국무용의 창작 가치를 만들어 찾아가고 싶다. 

 

장광열: 해외 메이저 무용단은 일 년에 대략 150회 정도를 공연한다. 국립발레단은 이전 100회 내외에서 강수진 단장 부임 후 160회 넘게 공연하고 있다. 원래 공공의 무용단이고 국가나 시·도의 재정을 지원받기 때문에 많은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국내 시스템처럼 운영되는 것은 옳지 않다. 외국에서는 관객이 직접 단체가 속한 극장을 찾아가 공연을 관람한다. 서울시에 23개 구가 있는데 현재 구민회관의 시설 수준에서는 예술성 있는 작품, 세종문화회관의 기술 환경에 맞춰 제작된 작품을 온전하게 공연할 수 없다. 세종문화회관이 대관일을 줄여 서울시무용단 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 올리고, 서울시민들이 수준 높은 작품을 저렴한 관람료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찾아가는 공연은 공연횟수를 늘릴 수는 있겠지만 그와 같은 공연 행태를 굳이 전속 극장을 가진 서울시무용단이 전담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공모를 통해 서울시를 베이스로 하는 전문 무용단에서 이를 시행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더 토핑〉은 단원들이 안무하다보니 서울시무용단이 그동안 해오던 스타일과 다르게 다채로운 무대로 꾸며진다. 그러나 예술성의 측면에서는 평균점을 밑돈다. 서울시무용단의 공연의 질이 단원들이 안무했다고 해서 대학 무용단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무용단의 작품 수준이 예술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치기 어린 작품, 아이디어 하나만을 확장한 시도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움직임의 새로운 창출, 다양한 콘셉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그 책임은 공공무용단인 서울시무용단에 있는 것이다.

 

정혜진: 올해 12월에 있을 〈더 토핑〉은 팀별로 나눠 진행되는데 전 단원이 출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전원 출연을 계기로 단원들의 생각과 몸을 변화시키고 서울시무용단의 수준을 높일 수 있었으면 한다. 이전에는 10월 공연 후 2개월 동안 준비하여 12월에 공연했었는데 준비기간이 부족했다. 올해는 세 팀으로 나누어 지금부터 진행된다. 작품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단장으로서 어느 정도 관여할 생각이다. 

 

장광열: 〈더 토핑〉은 단원들의 안무작으로 구성되지만 작품이 좋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안무가가 아니라 예술감독에게 화살이 겨눠진다. 단체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작품은 예술감독의 책임이므로 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무용단 운영에 있어서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쇼잉’(showing)이라는 제도다. 신제품 나오기 전에 하는 시음회와 같은 것인데 해외에서는 대체로 공연 전 2차례 정도, 2주 전과 1주 전후에 쇼잉 프로그램을 갖는다. 2주 전에는 의상이나 분장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1주 전후에는 완전히 갖춰진 상태에서 연습실에 전문가들을 불러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작품에 대해 신랄하게 말해줄 수 있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다. 이들은 안무가들에게 의견을 전하지만 그에 대해 안무가들은 답변할 의무가 없다. 그리고 제안한 의견이 완성작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다. 안무가의 판단 아래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보는 쇼잉은 작품을 내놓기 전 마지막 단계에서 예술성을 높이는 기회가 되고, 몇 달 동안 연습이 이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단원들이 긴장하고 연습의 강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어준다. 막이 오르기 전 외부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듣는 것은 제작자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향후 서울시무용단의 운영과 관련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지켜보면 되는가?

 

정혜진: 스승님이신 최현 선생님의 테크닉이 한국의 대표 춤사위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들 어려워서 그 춤을 못 춘다고들 한다. 현재 10시부터 12시까지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기본 춤을 열강하고 있다. 모든 단원들이 같이 호흡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공을 들여 수업한다. 최현 선생님의 독특한 기법을 완전히 심어드려서 이것을 확장하여 창작춤으로 발현시킬 예정이다. 흘러가는 한국춤 무대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갖고 이 호흡을 통해 완성되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최현 선생님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 몇 가지를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동작을 하기 위한 준비단계, 시작하는 장단과 그 장단이 끝까지 다한 후 변화하기 전까지의 관계, 장단이라는 박자 안에서 흐르는 춤의 에너지까지 설명해드리고 있다. 끌어잡아서 끝까지 가다가 다시 호흡 변화로 춤사위가 바뀌고 이것이 계속되면서 쉴 틈 하나 없는 춤을 추게 된다. 호흡의 길고 짧음, 내뿜었을 때에 에너지의 강약,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테크닉 등으로 진정한 춤을 추는 것이다. 이를 기저로 창작무용을 준비하고 있다. 거기에서 우리 것을 찾아내어 선보이고 싶다. 한꺼번에 못할지라도 이렇게 첫발을 내딛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 지켜봐 달라.

 

장광열: 올해 서울시무용단의 공연 계획은 어떻게 짜여졌는가?

 

정혜진: 현재 3개 정기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5월 23-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을 신작 창작무대를 시작으로, 10월 10-12일 M씨어터에서 ‘함께 춤추고 함께 즐긴다’는 의미의 전통춤 무대 〈동무동락(同舞同樂)〉, 12월 5-7일 S씨어터에서 단원들이 직접 안무에 참여하는 프로젝트 〈더 토핑〉을 선보인다.

 내년 공연도 미리 준비 중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전체 계획에 준해 7개 기관이 주제에 맞는 기획공연을 올릴 것이다. 3월로 예정되어 있는데 올해 신작을 업그레이드해야할지, 세종의 계획에 맞춘 공연을 올려야할지 아직 정확히 결정짓지 못했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좋은 작품을 선보여야겠다는 생각만큼은 굳게 갖고 있다. 

 

장광열: 예술감독은 공식적으로 임기는 2년이지만 최소한 6년은 임한다는 생각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되지 않나?

 

정혜진: 제가 그만 두고 다른 분이 온다 하더라도 이후 그림까지 계획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물론 예술감독으로서 장기적으로 소명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은 굴뚝같지만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므로(웃음) 제가 만약 지속할 수 있다면 이런 플랜을 가지고 할 것이라는 것을 고민 또 고민하여 내놓겠다.





 




장광열: 예술단체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예술감독이 예술가로서의 실력을 갖추고 예술로서 소통한다면 오히려 소통이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서울시무용단 뿐만 아니라 예술단체 노조들이 강성해진 것 같은데 만나보니 어떠한가? 연습실에서 작업할 때와 노조원로서 만날 때에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고 하던데….

 

정혜진: 사실 서울예술단은 전체 단원이 노조인데 반해 서울시무용단은 단원의 반이 노조다. 생각보다 굉장히 협조적이고 말씀드리는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제가 새로운 안을 내놨을 때에 오히려 노조 분들은 먼저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따라와 주시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노조가 원하는 것이 분명 몇 가지 있다. 복지라든가 공연발전위원회에 들어오셔서 하는 것 등. 그동안 단장이 공석이었던 것 때문에 지금 제가 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 든다. 예술감독이 공석이었을 때 좌표를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했으나 이제 리더와 목표가 생기면서 하나로 결집되어 함께 나아가는 모습이다. 저에 대한 기대가 큰 것에 굉장히 감사했고 이분들의 복지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립 멤버로서의 자부심을 갖춰드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함께 발맞춰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오히려 따뜻함을 느꼈다.

 

장광열: 공연발전위원회는 레퍼토리 선정이나 오디션에도 관여하나?

 

정혜진: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광열: 그 부분은 원래 예술단체 노조가 관여할 일이 아니지 않나? 복지나 더 좋은 춤을 추기위한 환경 마련 같은 것은 주장할 수 있지만, 작품 선정은 예술감독의 고유 권한이고 오디션은 모든 단체의 운영을 책임지는 단장의 권한이지 단원의 몫이 아니다. 

 

정혜진: 그렇게 저도 알고 있고, 노조에서도 숙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리더가 없었기 때문에 노조에서나 공연발전위원회에서 이뤄지는 것에 따라가지 않고 어떤 사안이든 전체 단원회의를 거쳐 결정지어왔다고 한다. 이번에 안을 내놓았을 때 단원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당사자들만 불러놓고 상의했었다. 예술감독이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모든 사항을 일일이 단원들과 논의할 것이 아니라 제가 제안하고 단원들께서 믿고 따라와주는 방식의 제자리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장광열: 잘못된 관행들을 이번 부임을 계기로 바꿀 수 있었으면 한다. 단체 운영을 비롯해 오디션 제도나 작품 선정과 같은 것들은 절대 단원들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무용단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단체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정 단장께서는 다른 공공 무용단의 예술감독 응모에도 지원했었다고 알고 있다.

 

정혜진: 그렇다. 서울예술단에 연임을 바라보고 들어가긴 했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연임하지 못하고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됐었다. 창작과 협업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알게 됐으니 다른 단체 가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가무극에서가 아니라 나의 전공인 무용 쪽으로 와서 희생,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국립무용단과 국악원에 지원했었다. 국악원도 노미네이트가 됐지만 무산되면서 결국 다른 단장님께서 선임되셨다. 아직까지 나를 원하지 않는 단체라는 생각이 컸고 국악원에 가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어느 날 국악원에 가서 제가 아는 레퍼토리를 전혀 다르게 하시는 것을 보고 직접 전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악원은 춤의 정수를 지키는 곳이자 새로운 움직임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창작도 많이 하는 단체다. 저는 태평무를 이수했고 정재에 관한 공부와 강의도 해왔으며 나름대로 민속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것을 제대로 잘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기여할 바가 있을 거라고 봤다. 선생님들께서 물려주신 우리춤을 잘 이해하고 다시 만들어서 정말 아름답게 내보일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정재도 할 것이 굉장히 많은데 국악원에서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국악원에 지원했다가 같이 지원했던 한 분이 다른 단체에 가면서 저 혼자 남게 되어 또다시 2배수로 올리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무산되고, 다시 지원하라는 얘기를 듣고 넣었다가 기간 내에 문제가 많아 아예 발표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무산되어 재공고가 났다. 국악원과는 운이 맞지 않은 상황에서 마침 서울시무용단과 연이 닿았고 이곳에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장광열: 서울시무용단의 최근 10년 작업을 평가한다면?

 

정혜진: 먼저 고생하신 분들께서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만드셨는데 감히 제가 평가할 자격이 없다. 이전 작품에 대해 제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 서울시무용단에서 작업하면서 많은 분들이 90점 이상이라고 평가하실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 

 

장광열: 외국의 공공무용단에 예술감독이 선임되면 재임기간 동안 단원들의 기량을 얼마만큼 높였는가, 좋은 작품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가를 평가 받는다. 따라서 예술감독이 모든 작품을 직접 안무하지 않고 작품에 따라 적합한 안무가를 초청해 수준 높은 레퍼토리를 축적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 공공무용단에 예술감독이 들어오면 단체를 개인무용단처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단원, 극장, 스태프, 예산이라는 완벽한 제작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만큼 임기 동안 자신의 작품을 많이 만들어 놔야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정 감독께서는 계약된 2년 기간 동안 객원 안무가를 초빙할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정혜진: 여건만 된다면 좋은 작업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 싶다. 그분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발휘할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어드려야 할 텐데 지금으로선 어려운 상황이다. 조심스럽게 예견컨대 제 임기 동안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내년에 좋아지고, 그 다음해 더 좋아져서 제가 만약 재임된다면 객원안무가와 협업할 기회를 갖겠다. 안무가 분들이 서울시무용단에서 안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환경을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광열: 국립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이 지난 10여년 동안 외부에서 안무자를 초빙하여 작업했으나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는 한두 개를 넘지 않는다. 충분한 연습기간을 갖지 못했고 제작에 필요한 여러 지원이 밑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객원 안무자를 초빙한 예술감독의 책임이 크다. 저는 정 감독께서 서울시무용단의 임기를 길게 보고 재임 기간 동안 객원 안무자를 초빙하고, 단원들의 속성을 잘 아는 예술감독의 정확한 판단 아래 소품이라도 좋은 작품을 남긴다면 그것이 바로 예술감독의 공이 될 것이라고 본다. 아무쪼록 공공무용단에 적합한 여러 시스템을 정착시켜 주시고 재임 기간 동안 예술가로서 큰 성취감을 얻기 바란다. 긴 시간 동안의 대담이었다. 감사드린다. 

 

정리_ 김인아 〈춤웹진〉 기자 

2019. 03.
사진제공_세종문화회관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