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무용평론가 김영태 10주기 추모행사
“나는 사시사철 춤보러 다니는 구경꾼”
장광열_<춤웹진> 편집위원
 7월 12일은 시인이자 무용평론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영태(金榮泰)의 1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김영태는 2007년 7월 12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 1959년 〈사상계〉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월간 〈춤〉 〈객석〉 〈공간〉 등에 무용평을 발표, 무용평론가로 활동했으며 생전에 13권의 무용비평집, 17권의 시집과 7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었다.
 고인의 1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는 고인의 유해가 묻힌 전등사 참배, 고인의 유고집 〈초개일기〉 발간, 미술품수집가인 이재준이 모은 고인의 그림전시회, 그리고 ‘김영태를 생각하는 저녁’으로 짜여졌다.



  7월 11일 정오 전등사

 고인의 유해는 2007년 7월 14일 수목장으로 치루어져 전등사 대웅전이 위치한 왼편 나지막한 둔덕 커다란 나무 아래에 보존되어 있다. 무용가 황희연 황미숙 이희자, 출판인 이규상, 공연 기획가 장승헌, 그리고 필자가 고인을 기리며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것들을 차림상으로 대신하고 참배했다. 

 


 고인이 즐겨 사용하던 모자와 단장, 담배와 재떨이, 그리고 즐겨 먹던 혜화동 로타리에 있는 카페 엘빈에서 가져 온 커피, 그리고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고인의 10주기 행사를 알리는 리플렛 등이 싱그러운 향기의 국화꽃과 함께 놓여졌다.
 고인의 10주기를 맞아 간행된 450쪽의 〈초개일기〉도 헌정되었다. 고인이 발간하려다 투병생활을 하는 바람에 중단된 것을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가 10주기를 맞아 발간한 것이다. ‘김영태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일기’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특히 무용가들과 무용에 대한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동료 비평가들이 쓴 비평에 대한 메타비평 성격의 글과 공감의 글이 저자 특유의 어휘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생전 고인의 기록과 글쓰기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는, 말년의 고인의 흔적을 추억할 수 있는 글들이 적지 않게 게재되어 있다.
 일행들이 돌아간 뒤로 뉴욕에서 온 고인의 큰 아들 목우네 가족들도 전등사를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7월 12일 고인의 기일 오후 5시 류가헌

 종로구 청운동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에서 오후 5시부터 ‘김영태를 생각하는 저녁’이 추모행사의 하나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초개와의 동행’이란 타이틀로 준비된 고인의 그림 전시회의 오프닝과 〈초개일기〉의 출판 기념회도 병행해 치러졌다.
 류가헌에서 주최한 ‘초개와의 동행’ 전시회는 미술품수집가이자 레코드 리뷰어인 이재준이 소장한 40여 점의 김영태 그림이 지하 일층과 이층 전시장에 걸렸다. 이 전시는 7월 23일까지 이어지며 생전 김영태의 목소리를 듣고 볼 수 있는 영상도 볼 수 있다.
 ‘김영태를 생각하는 저녁’ 행사는 “고인의 커다란 얼굴 사진 앞에 놓인 모자와 단장을 보니 고인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 같다”는 사회자(춤비평가 장광열)의 멘트와 함께 고인을 추모하는 영상을 감상하는 것으로 첫 프로그램을 열었다.

 


 10여분 남짓 상영된 영상(편집 김정환)에는 고인의 육성과 함께 그동안 열렸던 추모행사의 이모저모, 고인이 남긴 유품 등이 담겨 있었다. 현대무용가 이정희의 공연에 출연해 함께 춤추던 고인의 모습이 비쳐질 때는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어진 순서는 추모 시낭송. 무용가 이나현이 고인의 절친한 친구였던 마종기 시인이 쓴 ‘김영태의 기차역‘이란 시를 낭송했다.

내 친구 시인 김영태는 몇 해 전 아파트 재건축에 밀려 엉뚱하게 혜화동에서 죽었지만 파랗게 조용하던 마지막 자리에서 한평생이 잠깐이네 하던 시든 목소리는 아직도 내게 머물고 있다. 친구가 살아온 길은 아무래도 눈감고 걸어간 몽상의 나그네. 그 말을 못 믿겠다면 문학이고 시고 무용이고 그림이고 음악이고 연극 안에서 푸푸 허우적대다 익사한 어부다. 두어 개가 더 있구나. 굽 높은 구두와 명주 목도리 헝클어진 머리털 속에는 예술 선동의 종이 그림들, 또 빈 주머니. (중략)

 고인이 남겼던 문화예술계 현장에서의 흔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추모 공연 순서. 김선구의 해금과 유인상의 장구 반주에 맞추어 배명균 류의 산조를 황희연이 춤추었다. 1997년 우면당에서 이 공연을 본 고인은 무용가 황희연을 위해 한편의 시를 남겼다. 시어에 등장하는 분홍빛은 단아한 춤사위에 실려 고인을 향해 웃고 울었다. 

 


 이재준, 류가헌, 한국춤비평가협회와 함께 10주기 추모행사를 총괄 준비한 공연기획가 장승헌은 경과보고를 통해 추모행사를 시작하게 된 경위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클라우드펀딩 모금 과정 등에 대해 들려주었다.
 “고인은 여러 예술분야에서 활활한 생애를 살다갔기에, 그의 주변에는 무용가, 시인, 화가 등 교류가 깊었던 예술인과 지인들이 유독 많았다. 그들을 중심으로 ‘초개 김영태 추모사업회’가 결성되어, 2008년에는 〈나의 뮤즈들〉이라는 제목의 1주기 추모공연이 열렸다. 3주기인 2010년에는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지인들이 각자 소유하고 있던 김영태의 회화 작품들을 한 자리에 전시했었다”며 그동안의 추모 행사도 소개했다.
 이어 참가자들이 고인을 추억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한국춤비평가협회 이순열 대표는 “고인은 무용 뿐 아니라 미술 문학 쪽에서도 두루두루 활동했었다”며 예술계 현장을 다방면에 걸쳐 기록하고 저술을 남긴 특별한 예인으로 고인을 추억했다.
 광장건축 대표인 김원은 투병 중에 있던 말년의 고인과 함께 했던 추억담을 들려주며 고인이 좋아했던 작곡가 에릭 사티의 생가에서 산 오렌지 모양의 메트로놈을 보여주며 생전에 고인에게 전해주지 못했던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인과 경복고등학교 동창생이었던 이종덕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고인은 최현과 더불어 낭만파 클럽을 대표했던 멋쟁이였다고 회고했다.
 고인과 매동초등학교 동창생이었던 사진작가 한정식, 무용가 육완순의 추억담도이어 졌다. 고인의 비평집 13권을 출판한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이번에 발간된 〈초개일기〉는 2006년 12월부터 출간을 도모했으나, 2007년 7월 고인이 황황히 작고하는 바람에 유고가 되고 말았다. 1969년 무용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틈틈이 기고한 글들과 1970년대에 쓴 일기, 그리고 1986년부터 〈현대시세계〉〈객석〉〈춤저널〉〈몸〉〈정신과 표현〉 등에 쓴 무용일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상일 교수(전 성균관대학교)가 “그동안 안 팔리는 춤 비평집을 고집스럽게 출간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고인의 저서는 당장 팔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가 읽고 음미해야 할 보고라고 생각한다”며 소중한 기록이라는 심정으로 발간했다고 답했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은 “이번 전시회는 한 예술가가 세상에 남긴 유형과 사람의 마음에 남긴 무형을 통해 그를 그리려 했다”며 “미술품 수집가 이재준은 초개의 저작 60권을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인의 책을 읽을 때는 ‘선생이 자그마한 손으로 밤새워 조탁한 문장들을 함부로 읽을 수 없어서’ 침향을 켜고 단정히 앉아 읽습니다. 초개의 그림 5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작가가 하세하기까지 마지막 5년 동안의 동행을 일지로 적어 기록하고 있습니다”라며 소장자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번 전시회를 위해 기꺼이 소장품을 내준데 대해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50여 명의 고인을 기리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무용가 육완순 김매자 김화숙 박인자 원필녀 황미숙 윤수미 윤명화, 무용평론가 이순열 이상일 채희완 이병옥 김채현, 사진작가 최영모, 디자이너 김정규, 공연기획가 김서령 이동민, 디자이너 김정규, 이찬주춤자료관대표, 강창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사장, 이태주 손기상 한용외 등 허행초 회원들, 그리고 고인의 유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행사가 파한 후 간단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용외 전 삼성문화재단 사장은 “문화예술계는 의리가 있다. 작고한 고인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정성스럽게 마련하는 모습은 비지니스 업계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것이다. 허행초 모임에서도 김영태 선생은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모임 후 그 현장에 있었던 예술가들을 기록한 글을 보면 번뜩이는 지성과 관찰력에 탄복했었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사시사철 춤보러 다니는 구경꾼”이라고 했던 고인은 아호인 ‘초개(보잘것없는 지푸라기)’ 처럼 스스로를 낮추었지만, 특히 무용계에 남긴 흔적은 결코 작지 않다. 사진_최영모



* 관련 기사

누군가 다녀갔듯이
몸의 언어 남기고 간 김영태

http://news.joins.com/article/21779574  (글_장인주 무용평론가, 보도_중앙일보 2017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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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개(草芥) 김영태(金榮泰) (1936년~2007년)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59년「사상계」를 통해 시단에 나왔다.〈草芥手帖〉〈여울목 비오리〉〈결혼식과 장례식〉등의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음악 평론집, 무용 평론집 등 61권의 저서가 있으며, 1971년부터 2007년까지 8차례에 소묘 그림 개인전을 가졌다. 1972년 현대문학상, 1982년 시인협회상, 1989년 서울신문사 제정 예술평론상, 2004년 허행초상 등을 수상했다.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유니버설 키로프 발레 콩쿠르․ 서울 국제무용제 심사위원과 1989년 한국무용평론가회(한국춤비평가협회 전신) 회장을 역임하였다. 
2017.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