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매튜 본 〈백조의 호수〉, 무용인가 댄스 뮤지컬인가
브로드웨이는 음악이 근간인 대중적 성격의 공연물을 뮤지컬로 폭넓게 인정
장지영_ 국민일보 기자 / 공연 칼럼니스트

1999년 6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토니상 시상식. 지난 1년간 브로드웨이(500석 이상 극장)의 신작 연극과 뮤지컬을 대상으로 한 토니상은 미국 공연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이다. 영화의 아카데미상처럼 미국을 넘어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53회째였던 당시 토니상 시상식의 최고 화제는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이 〈백조의 호수〉로 뮤지컬 부문 연출상과 안무상을 수상한 것이다.
 무대에 오른 본은 “뮤지컬이 아닌 작품으로 뮤지컬 부문 최고 연출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는 소감을 밝혔다. 〈백조의 호수〉가 작품상 후보조차 되지 않은 것을 유머러스하게 비판한 것이다. 본은 토니상 수상 후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상 수상작인 댄스쇼 〈포시〉를 뮤지컬에 포함시켰다면 〈백조의 호수〉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말했다.
 〈포시(Fosse)〉는 특별한 줄거리 없이 밥 포시의 안무를 보여주는 춤 중심의 레뷔다. 뮤지컬의 이전 단계 또는 뮤지컬의 한 종류로 분류되는 레뷔는 북뮤지컬(book muiscal)과 달리 줄거리가 없다. 다만 주제가 있다는 점에서 주제가 없는 보드빌과도 구별된다. 본의 지적처럼 뮤지컬이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백조의 호수〉를 포함시켜도 이상하지 않다.










매튜 본 〈백조의 호수〉 ⓒJohan Persson/LG아트센터




 본의 〈백조의 호수〉는 동명 고전발레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으로 가녀린 여성 백조 대신 근육질의 남성 백조가 등장한다. 1995년 영국 런던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초연됐으며 이듬해 4월 런던 웨스트엔드의 올리비에상 무용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토니상이 연극과 뮤지컬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올리비에상은 연극과 뮤지컬은 물론 오페라와 무용까지 대상으로 한다. 본의 〈백조의 호수〉는 연극이나 뮤지컬이 아닌 무용 장르에 포함됐다.
 그 해 다시 무대에 오른 본의 〈백조의 호수〉는 웨스트엔드에서 무용으로는 역대 최장기인 120회 공연됐다. 본은 〈백조의 호수〉에 앞서 〈호두까기 인형〉(1992)과 〈하이랜드 플링〉(〈라 실피드〉가 원작)을 선보였었는데, 당시엔 무용 관객들에게만 알려졌을 뿐이다. 하지만 〈백조의 호수〉가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르자 기존 무용 관객이 아닌 새로운 관객, 주로 뮤지컬 관객이 보러왔다. 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을 제작한 영국 거물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가 공동제작자로 나선 덕분이다.
 본의 〈백조의 호수〉가 1998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을 때 ‘뮤지컬과 무용을 섞어놓은 작품’이라고 소개됐다. 그리고 이듬해 토니상 위원회는 부문별 후보를 발표하면서 뮤지컬 부문 연출상 및 안무상 후보로 본을 올렸지만 작품상 후보에 〈백조의 호수〉를 넣지 않았다. 하지만 토니상 역사에서 연출상과 안무상을 받은 작품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않은 것은 유례가 없다.




〈컨택트〉 ⓒ오디컴퍼니




 2000년 54회 토니상 시상식은 전통적인 뮤지컬과 달리 노래 없이 춤을 중심에 놓은 수잔 스트로만의 〈컨택트〉를 둘러싼 논란이 일어났다. 1999년 오프브로드웨이 초연을 거쳐 2000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남녀 관계에 대한 3개의 에피소드를 춤으로 구성됐다.
 ‘댄스 플레이’로 소개된 이 작품은 참신하고 파격적인 스타일로 주목을 받으며 토니상 뮤지컬 부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당시 〈컨택트〉가 후보에 오른 것은 평단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뉴욕 공연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평론가인 뉴욕 타임즈의 벤 브랜틀리는 “뮤지컬의 영역을 확장시킨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반면 브로드웨이의 음악가 노조는 〈컨택트〉 공연에 어떤 뮤지션도 포함돼 있지 않다며 뮤지컬이란 장르에 적합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컨택트〉가 기존 클래식 음악을 사용했으며 라이브 연주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니상 위원회는 〈컨택트〉에 대해 엄격한 장르 구분보다 새로움의 추구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게다가 1999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대본도 스토리도 대사도 없는 〈포시〉가 뮤지컬 부문 작품상을 받은 상황에서 〈컨택트〉는 후보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봤다. 〈컨택트〉는 결국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음반을 발표하지 않고 토니상 작품상을 수상한 첫 뮤지컬이 됐다. 토니상 4개 부문을 수상한 이 작품은 3년간 1174회 장기공연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컨택트〉 ⓒ오디컴퍼니




 본의 〈백조의 호수〉와 스트로만의 〈컨택트〉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춤을 전면에 내세운 ‘댄스 뮤지컬’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 역시 댄스 뮤지컬에 포함되는 작품을 선보였다.
 타프가 2002년 싱어송라이터인 빌리 조엘의 노래들로 만든 〈무빙 아웃(Movin' Out)〉은 기존 대중음악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1960년대 미국 롱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월남전을 겪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무대를 타프가 안무한 춤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댄스 뮤지컬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2003년 토니상 9개 부문 10개상 후보에 올라 편곡상과 안무상의 2개 부문을 수상했다.
 〈무빙 아웃〉 역시 〈컨택트〉와 마찬가지로 뮤지컬 포함 여부를 놓고 잠시 논란이 일었다. 빌리 조엘 모창 밴드가 내내 노래하지만 극중 등장인물들은 춤만 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에 대해 음악을 근간으로 하는 대중적 성격의 공연물로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무빙 아웃〉 이후 장르 논란은 사라졌다.
 타프는 2010년엔 브로드웨이에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들을 가지고 또다른 댄스 뮤지컬 〈컴 플라이 어웨이(Come fly away)〉를 선보였다. 뉴욕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무빙 아웃〉처럼 무대 위에 밴드가 있고 등장인물은 춤만 춘다. 다만 〈무빙 아웃〉의 모창 가수 대신 시나트라의 음성을 그대로 활용하되 듀엣곡만 여자 가수가 실제로 부른다.
 사실 〈컴 플라이 어웨이〉는 타프가 시나트라의 음악을 가지고 안무했던 일련의 작품들의 연속선상에 있다. 타프는 시나트라의 음악을 가지고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에서 1976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함께 직접 춤까지 춘 듀엣 〈원 모어 프랭크〉를 시작으로 1982년 14명의 댄서가 출연하는 〈나인 시나트라 송〉, 1984년 바리시니코프와 일레인 쿠도를 위한 듀엣 〈시나트라 스위트〉를 안무한 바 있다. 이들 작품들은 〈컴 플라이 어웨이〉에 조금씩 녹아들어 있다. 그런데, 〈컴 플라이 어웨이〉는 2013년엔 덴마크 왕립발레단을 위해 발레 버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댄스 뮤지컬을 만드는 시도가 등장한 바 있다. 2004년 댄스컬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 〈사랑하면 춤을 춰라〉나 2005년 넌버벌 퍼포먼스로 구분됐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2007년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뮤지컬 〈심청〉이 대표적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댄스 뮤지컬’이란 용어가 등장했지만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댄스 플레이건 댄스 레뷔건 뮤지컬로 포함된 후 굳이 ‘댄스 뮤지컬’이라고 정의할 필요가 없어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댄스 뮤지컬’이란 용어 자체가 사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본의 작품들은 여전히 무용으로 분류된다. 영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2003년 LG아트센터가 〈백조의 호수〉를 처음 선보일 때 ‘댄스 뮤지컬’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후 일반화됐다. 한국에서 뮤지컬이란 장르가 워낙 인기 있기 때문이다. 즉 팬층이 얇은 무용보다는 뮤지컬로 홍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 댄스스포츠의 춤들을 갈라 형식으로 보여주는 〈번 더 플로어〉처럼 해외에서 ‘무용’으로 구분되는 작품이 한국에서 ‘댄스 뮤지컬’로 소개되기도 한다.
 다만 본은 〈백조의 호수〉를 비롯해 자신의 작품을 어떤 장르로 분류하던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2004년 내한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내 작품은 때로는 무용, 때로는 연극, 댄스 뮤지컬, 댄스 시어터로 불리기도 한다. 나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고 답했다.
 반면 〈컨택트〉는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뮤지컬로 확실히 알려졌다. 미국에서 뮤지컬로 분명히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작품을 만든 스트로만도 〈컨택트〉를 뮤지컬로 정의하고 있다. 스트로만은 〈컨택트〉 초연 당시 “나는 〈컨택트〉를 둘러싼 논쟁이 너무 과장돼 있다고 생각한다. 〈레미제라블〉엔 전혀 춤이 안 나오지만 뮤지컬이 아닌가? 내겐 뮤지컬의 정의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본과 스트로만의 태도는 작품에 따른 차이보다는 영국과 미국의 공연문화 차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연극 전통이 강한 영국 웨스트엔드는 북뮤지컬이 워낙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데다 무용의 전통 역시 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미국 브로드웨이에선 뮤지컬의 초창기부터 춤의 비중이 컸다. 현대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는 1920년대 후반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1930년대 할리우드의 뮤지컬 영화들을 대표하는 것은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콤비의 춤이었다. 같은 시기 브로드웨이는 춤을 위해 수많은 안무가들을 필요로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안무가들은 순수예술인 현대무용과 발레에 토대를 두면서 상업예술인 뮤지컬에서도 작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신고전주의 발레’로 대표되는 조지 발란신도 아메리칸발레스쿨과 뉴욕시티발레단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뮤지컬 안무를 맡았다. 경제적 이유가 크긴 했지만 그는 1936년 〈지그프리드 폴리즈〉와 〈온 유어 토우즈〉를 시작으로 1950년대까지 20여편의 뮤지컬에서 안무를 맡았다. 그리고 〈온 유어 토우즈〉 등의 영화화에 따라 할리우드에서 몇 편의 안무를 맡기도 했다.
 영국 램버트 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 돌아온 아그네스 드밀은 발레 시어터(지금의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와 몬테카를로 발레 시어터에서 안무가로서 주목받았다. 그는 1943년 뮤지컬 〈오클라호마〉의 안무로 뮤지컬계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켰다. 〈오클라호마〉는 이전의 쇼뮤지컬 달리 대본, 음악, 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작품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제작자가 외모를 보고 무용수를 뽑았지만 드밀부터 안무가가 직접 무용수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또한 드밀은 1947년 뮤지컬 〈알레그로〉에서 안무와 연출을 동시에 맡았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다가 발레로 영역을 확장한 제롬 로빈스는 오랫동안 뮤지컬과 발레 안무를 병행했다. 로빈스가 1944년 발레 시어터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으로 안무한 〈팬시 프리〉는 ‘미국적인 음악과 발레’라는 찬사를 받은 후 그의 안무 및 연출로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이후 그는 수많은 히트 뮤지컬에서 안무는 물론 연출까지 겸하게 됐다. 특히 1957년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으며 안무와 연출을 모두 맡았는데, 미국 뮤지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발레와 현대무용이 가미된 그의 안무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이 작품의 영화 버전을 로버트 와이즈와 함께 공동연출해 아카데미상까지 받았다.
 뉴욕시티발레단 창단 직후 부감독으로 참여한 그는 발란신 타계 이후 발레단을 이끌었다. 1960년대말 브로드웨이 작업을 접고 발레단에 돌아온 그는 〈모임에서의 춤들〉 〈인 더 나잇〉 등을 내놓았다. 이들 작품은 뮤지컬 안무 때와 달리 스토리와 감정이 최대한 배제된 추상적인 성향을 보인다.
 발란신, 드밀, 로빈스 이후 순수 무용과 상업 무용을 오가는 안무가는 한동안 배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로빈스 이후 브로드웨이에는 연출까지 맡는 안무가들이 대거 늘어났다. 1950년대 말부터 잇따라 등장한 밥 포시, 마이클 베넷, 토미 튠, 그라시엘라 다니엘레 등이 대표적이다. 베넷의 경우 뮤지컬 〈시소〉의 대본을 직접 쓰고 〈코러스 라인〉의 오리지널 컨셉트를 낼 정도로 작가로서의 기량도 뛰어났다.
 특히 포시는 뮤지컬 〈시카고〉 〈카바레〉 등에서 알 수 있듯 고난도 테크닉을 바탕으로 섹시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안무로 유명하다. 다재다능한 그는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으로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1973년 영화 〈캬바레〉로 아카데미상을, 뮤지컬 〈피핀〉으로 토니상을, TV 콘서트 〈Liza with a ‘Z’〉로 에미상을 받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영화, 공연, 방송의 3대 상을 한 해에 휩쓴 그는 명실공히 쇼비지니스의 제왕이었다.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안무가들이 연출까지 겸하는 경우가 낯설지 않게 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스트로만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스트로만은 1999년 〈컨택트〉와 2000년 〈뮤직맨〉에서 안무와 함께 연출 재능을 잇따라 뽐냈다. 이어 2001년 그가 안무와 연출을 맡았던 〈프로듀서스〉는 브로드웨이에서 손꼽히는 히트작이 됐다. 지금도 그는 〈빅피쉬〉 〈리틀 댄서〉 〈브로드웨이의 왕자〉 등 수많은 작품에 안무 겸 연출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그는 뮤지컬에서 출발해 발레 안무가로도 이름을 남긴 로빈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 뉴욕시티발레단, 퍼시픽 노스웨스트 발레단 등 전문 무용단에서도 종종 작품을 안무하고 있다.
 스트로만과 반대로 발레와 현대무용에 뿌리를 두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업을 이어가는 안무가들도 있다. 예를 들어 현대무용 안무가 가스 페이건은 1997년 뮤지컬 〈라이온킹〉의 안무를 맡았다. 〈라이온킹〉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현대 발레계에서 손꼽히는 안무가인 크리스토퍼 휠든은 2002년 뮤지컬 〈성공의 달콤한 향기〉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뒤 2014년 안무와 연출을 모두 맡은 〈파리의 아메리카인〉으로 이듬해 토니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 뉴욕시티발레 상주안무가인 저스틴 펙도 201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데뷔작 〈회전목마〉로 이듬해 토니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펙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을 맡은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안무를 맡았다.
 브로드웨이는 자국만이 아니라 해외 안무가에게도 러브콜을 보냈다. 이스라엘 출신으로 영국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호페쉬 쉑터는 2018년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안무로 참여했으며, 벨기에 출신 거장 안느 테레사 드 키에르스마커는 올해 말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안무를 맡았다.
 미국에서 안무가들이 순수무용과 상업무용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과 달리 한국은 벽이 높다. 안애순, 정영두 등 몇몇 현대무용 안무가가 뮤지컬 작업에 참여했던 것을 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현대무용이나 한국무용 안무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연극 연출가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안무가 동작을 만드는데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뮤지컬계가 순수무용 안무가들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지만 드라마에 대한 이해력과 대본 분석력이 있는 젊은 안무가라면 한번 도전해봐도 좋을 듯하다.

2019. 10.
사진제공_Johan Persson, LG아트센터, 오디컴퍼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