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의학의 시각: 춤의 세계 - 그림의 세계 6
무희들의 휴식은 마치 치옥 같다고 한 작품
문국진_원로 법의학자

프랑스의 화가 에드가 드가가 오페라극장 단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레단원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느끼니 잘 부탁한다는 간곡한 소원을 전한바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난한 무용수가 돈이 없어 힘들어 하자 영향력이 있는 친구들에게 그 무용수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는가 하면, 무희 한 명이 결핵으로 죽어갈 때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등 무용단 단원을 가족같이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용수들은 그런 드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은 드가가 자기들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고마워하며,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한 무용수는 “우리에게 친절한 화가 아저씨는 눈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색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계단 앞에 서서 지나가는 무용수들에게 잠깐만 서달라고 부탁하고는 재빨리 그 모습을 스케치하여 오가는 무용수들을 그리곤 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드가가 포착해낸 무용수들은 단단하고 건장해 보이기도 했으며, 또 어떤 무용수는 발레 동작 시 그 몸매의 곡선이 아름다운데다가 얼굴마저 뛰어나게 예쁘게 생기어서 이런 무용수는 단독으로 크게 그리면 많이 팔리는 그림이 되겠다 싶은 무용수도 있었지만 드가는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용수들은 드가가 부르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모델의 역할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드가는 작은 아파트의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서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그 작업실은 옷걸이 방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델들은 드가의 옷가지들 사이에서 자세를 취하여야 해서 난처했다고 한다.
 즉 드가의 목욕 가운이나 내복 등이 걸려있어 이를 배경으로 자세를 취하는 무희들의 모습을 본 그의 친구 한사람이 ‘특이한 작업실’을 거론하면서 옷걸이 방과 작업실을 분리할 것을 권유했지만, 드가는 일하는 사람의 작업실은 이래야 편하다고 대답했다는 후문이다.
 스케치할 때는 배경은 그리지 않고 무희의 포즈만 그리기 때문에 화가의 입장만 고수하고 무희들의 입장은 무시한 면도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드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십여 년 동안 무대 위에서 공연 중인 무희나 혹은 무대 뒤에서 레슨이나 연습에 열중하는 무희들을 그렸다. 그는 마치 스냅 사진을 찍듯이 무희들의 순간순간의 동작과 표정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그러나 그의 많은 스케치들과 작품들은 그가 이러한 우연한 순간을 쉽게 담아낸 것이 아닌듯한 휴식하는 그림도 있어 여기서는 드가의 무희들의 휴식하는 그림을 살펴보기로 한다.




드가 〈휴식〉 (1879), 보스턴 미술관




 드가는 젊은 무희들의 생기 넘치고 발랄한 동작들을 주로 작품에 남겼는데, 휴식과 관계되는 〈휴식〉(1879)이라는 작품도 있다. 두 무희가 붉은 긴 의자에 앉자 휴식을 취하는 그림인데 고된 일과를 잠시 멈추고 휴식하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두 무희는 무언가 어려운 입장을 한탄하며 낙심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 같다. 화면의 오른쪽 중간에는 신발을 고쳐 신으며 어떤 결의를 표하는 무희와 왼편 위에는 지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턱을 괴고 있는 무희를 그렸다.
 붉은색의 긴 의자는 화면의 긴장감을 끌어내기 위해 사선으로 가로 놓여 있으며, 이를 보완하는 듯 왼쪽의 무희가 입은 옷 역시 붉은색으로 칠한 것으로 보아 단순한 의미의 휴식이 아님을 암시한다.
 휴식은 재충전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자신을 놓아두는 일이지만, 보건데 두 무희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만 보고 어깨는 축 처지고 서 있을 힘마저 없이 낙심하며 휴식을 취하는 과정을 지나 이미 슬픔으로 변핸한 것 같은 모습이다.
 아마도 두 무희는 연습도중에 무언가 동작이 서 틀어 여러 번 지적되고 다른 무희들은 훈련을 끝마쳤는데 두 무희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그 잘못한 동작을 해 보아 역시 못하게 되면 퇴출되는 입장에 놓인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이 든다. 결국 이렇게 되면 무희지망에 대한 희망은 산산조각나기 때문에 그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 그림은 여성에 내재되었던 감정의 복합체가 어떤 정신적 외상의 충격에 노출돼 당황하는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슬플 때는 어떤 감정보다도 말초 혈관이 축소되어 활력이 약화되기 때문에 모든 근육에 힘이 빠진다. 이 모습으로 보아 붉은 옷의 무희는 머리마저 들 힘이 없어서 손과 팔을 턱에 고이고 있으며, 어깨가 무너지는 것 같아 팔다리로 받치고 있다. 이를 마치 스케치를 하듯 그려진 거침없는 파스텔의 흔적이 완연히 드러나 보이며, 인체의 윤곽선들은 자유스러운 선들로 간략하게 묘사되었다.
 이 그림의 두 무희는 인생의 고갯길에서 욕망이 좌절될 우려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여차하면 깨질 것 같은 경우에 보는 상처의식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흔하지는 않으나 무희지망생이 그 관문에서 겪는 치옥(治獄) 같은 휴식의 한 장면을 공개한 작품으로 보인다.




드가 〈휴식을 취하는 두 발레리나〉 (1898), 오르세 미술관




 드가의 무희의 휴식과 관계되는 다른 그림 〈휴식을 취하는 두 발레리나〉(1898)를 보면 푸른 발레복을 입은 두 무희가 심한 연습으로 녹초가 되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녹초란 맥이 풀려 힘을 못 쓰는 상태의 순 우리말로서 어떤 일에 불타올라 무섭게 집중하다가 갑자기 모든 에너지가 방전 돼 무기력이 극에 달한 상태를 말한다.
 두 무희는 연습을 열심히 하다 녹초가 되었는데 우측의 무희는 허리를 구부려 오른손으로는 발을 왼손으로는 다리를 만지며 과로로 뭉친 근육을 풀고 있은 모습이며, 좌측의 무희는 팔베개를 하고 입을 벌리고 마치 실신한 것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상태를 의학에서는 번 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 표현한다. 즉 '번 아웃은 타버려 없어진다는 뜻으로, 정신적 신체적 피로로 인해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뜻하는 용어로 우리말로는 탈진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과도한 업무 등과 같이 어떤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와 정신적인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한 상태로 탈진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이렇듯 무희지망생들은 교육과 연습에 자기가 지닌 역량을 지나치게 집중했다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무기력해진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무대 뒤의 가려져있는 세계’란 무용수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과 관련되는 것으로, 당시 무용수들은 주로 사회의 어려운 가정에서 선발된 어린소녀들로 대부분이 글을 모르기 때문에 강훈련의 혹독한 연습의 과정을 거치어야 만이 전체가 균형 잡히고 호흡이 맞는 발레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그림의 제목은 〈휴식을 취하는 두 발레리나〉로 되어 있지만 단순한 휴식은 아닌 듯싶다.
 휴식은 활동의 완결 뒤에 오는 마침이 아니라, 계속 진행과정 가운데 일시적 쉼을 뜻하므로 휴식은 그 피로를 경감시키고 동시에 기쁨을 유발시키며 미적 쾌감의 원천이 되어 인간 활동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휴식이어야 하는데 당시 무희들은 그러한 의미의 휴식이라기보다는 원시시대의 노동과 같이 일과 노리가 혼재된 속에서 육성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작품인 것 같다.
 흔히 노동은 인간의 다른 종류의 동작, 예를 들어 춤이나 연극 스포츠 등과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원시사회에서의 노동은 그러한 대립구분 없이 노동, 춤. 놀이 등이 함께 융합된 인간 활동만이 있었을 뿐이었다고 하는데, 드가가 그림을 그릴당시 무희지망생들의 입문과정에는 마치 원시사회의 노동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암암리에 표현하는 그림들인 것 같이 생각된다.

문국진 박사(1925~ )는 한국 최초 법의학자이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창립 멤버로 한국 법의학계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2019.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