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무용중심극장 성과와 과제를 말한다
무용중심극장, 춤계 변화 맞춰 계속 진화해야



 

사회: 무용중심극장이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을 터전으로 개장한 지 올해 3년째를 맞는다. 잘 아시듯이, (재) 한국공연에술센터(한팩)가 출범하면서 무용중심극장이 탄생하였다. 무용중심극장은 개장 이래 국내 최초로 전속 단체가 아닌 일반 민간의 무수한 춤 단체를 대상으로 기획 개념을 적용하고 실현한 최초의 극장이었고, 이 기능은 앞으로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무용중심극장의 그간 성과를 살펴보고 향후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로서 오늘 공동 인터뷰가 마련되었다. 그간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대관과 초빙 등으로 다수 공연한 댄스씨어터까두의 박호빈씨부터 의견을 이야기하도록 하자.

 

 
 
춤 감성ㆍ특성과 합치하는 아르코예술극장


박호빈: 저는 2011년에 〈휘어진 43초 속의 여행자〉를 표현하였고 2009년도에는 〈FULL MOON(만월)〉을 작업했다. 2009년도 하반기부터 2011년도 상반기까지 다른 극장 상주단체에 있었기에 주로 초청공연으로 아르코예술극장에 올랐다. 아르코와 공동기획으로 대관신청 후 공연한 바 있다. 아르코예술극장은 왕성한 활동을 하는 무용인들에게 공간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LG아트센터 등에 비하여 아르코예술극장은 춤 창작활성화를 주도하는 극장이라고 본다. 저렴한 대관료뿐만 아니라 극장과 관객의 구조 자체가 무용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사회: 어떤 점에서 춤을 돋보이게 하는가?

박호빈: 시선 라인이 작품과 무용수에 대해 호감을 갖도록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토월극장의 경우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구조라 웬만큼 잘 표현하지 않는다면 연출하기 힘들다. 반면 아르코의 경우는 관람 시각 측면에서 돋보이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앞의 관객에게는 자세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아무래도 공연예술 자체가 거리감이 있어야 시각적인 면에서 살아나지 않겠는가. 너무 가까이 있다 보면 불필요한 것이 시선에 노출되게 된다. 뒤라도 시선높이가 완전히 압도하는 높이보다는 적당한 것이 좋겠다. 그런데 스탭진을 보면, 요즘은 다른 극장들도 자체 스탭진이 있어 역량에서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명시설의 경우 예술의전당은 노후된 것이 많은 줄로 안다. 예술의전당은 예상치 못한 부대시설 사용료, 대관료 등 비용에서도 타극장에 비해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아르코예술극장 역시 예술의전당처럼 바뀌어 부담이 많이 줄어들진 않는다. 현재 춤 작품을 극장 중심으로 공동기획하거나, 자체제작 공연이라면 부담이 줄지만 일반적인 대관공연은 퀄리티 높은 작품을 올리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사회: 아르코예술극장이 관객의 시선과 출연자의 시선 두 측면에서 적절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관객도 이 극장에서는 웬지 쾌적한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시선 각도와 같은 요소는 다른 예술 장르 사람들은 잘 모르는 부분일 것이다. 아르코예술극장이 무용수의 존재가치, 춤의 존재가치를 높여준다고 할 때 무용중심극장으로서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아르코예술극장과 공동 기획한 작년, 작품에서 비용 부담은 어떠했는가?

박호빈: 실질적인 공동기획이라 할 수 없었다. 지원금이 있었지만 극장 대관료에 대부분을 지출했었고, 자체제작은 컴퍼니에서 재원을 마련했어야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있었다.

전홍기: 아르코예술극장의 하루 대관료는 공연만 80만원정도이고, 예술의전당은 120만원 정도이다. 무용작품을 이틀 공연한다고 볼 때, 아르코예술극장은 250만원 정도, 같은 크기의 토월극장은 4~500만원 정도, 메리홀은 250만원 정도 소요된다.

박호빈: 부대시설비, 철야 작업을 포함해서 토월극장에서 총 800만원이 나온 적 있었다. 그 이후로는 토월극장에서의 공연이 꺼려진다. 아르코에서는 이틀 공연에 이틀 무대설치기간을 가졌었고, 공동제작 무대였기에 반절의 비용으로 공연한 바 있다. 다른 공연분야에 비해서 대중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무용공연이다. 수입창출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비용 면에서 조금이라도 저렴하고, 입지 조건, 인지도 등에서 아르코예술극장은 아마도 독보적이다.

전홍기: 무용인 입장에서 아르코예술극장만큼 역사성을 가진 곳도 없다.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같은 공립 극장들과는 좀 다르다.

박호빈: 1980년대 당시 다른 극장들에 비해서 민간 창작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극장이 아르코예술극장(구 문예회관) 말고는 드물었다.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은 무대가 거창하기 때문에 민간 단체가 하기에는 힘든 여건이었다.<

사회: 법적 명문 규정이 있지는 않지만 무용중심극장은 2010년도에 한팩이 출범하면서 공식화되어 횟수로 3년째 무용중심극장으로 통용되고 있다. 현정부 출범 이전부터 서울시내 여러 공연장 중 명동예술극장, 남산극장 등 연극을 위한 극장들은 늘어나는 듯하나 춤을 위한 극장 또는 춤에 적절한 공연장이 없다는 여론이 무용계 및 문화부에서 강하였다. 한팩과 문화부에서 이런 사정을 납득했기에 무용중심극장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해외에서는 무용중심극장이라는 개념이 있는가. 프랑스 무대에서 단원 생활을 포함하여 장기간 활동한 김용걸씨의 소감을 듣고 싶다.

김용걸: 해외에서 무용중심극장 같은 개념은 없는 듯하다. 파리의 경우 작은 극장들이 많다. 작은 극장에서 춤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춤이 들어가면 어느 정도의 규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연 규모와 성격에 맞게 구분하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공연장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아르코예술극장의 바닥 품질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댄스플로어를 굳이 깔지 않아도 무용수의 다리에 충격을 많이 주지 않는 무대인 것이다. 처음부터 잘 만든 무대라기보다는 무용수나 춤 출연진들에 의해 잘 만들어진 것이라 이 바닥을 무용인들이 덜 사용하는 것은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다. 무용수들이 그 무대에 올라서면 ‘짝짝 붙는 느낌’을 가진다. 객석 경사도, 전체 크기 등 아르코예술극장은 춤 작품을 하기에 적합한 공연장이다. 무용수들의 다리에 무리를 주지않는 완충제가 있는데, 그것을 아르코예술극장에 전체적으로 시공할 경우 약 2억원 가량의 비용이 들 것이다. 그러나 아르코예술극장은 완충제가 전혀 필요 없는 것 같다. 2층이 좀 높다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같은 방 안에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박호빈: 다른 공연장은 바닥의 느낌이 콘크리트 같아서 무용수들이 자주 다친다. 아르코는 무용수들의 땀으로 다져진 바닥이라 느낌이 좋다. 객석과 무대의 교감이 친밀하므로 작품이 잘 흡수된다. 그래서 연출하기가 용이하다.

전홍기: 춘천의 공지천 어린이야외극장 역시 야외임에도 불구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벽쪽은 칸막이로 되어 있고 관객은 야외전경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아르코예술극장 건축 때와 같은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걸로 알고 있다. 현재 이태섭 선생이 설계한 극장들은 객석이 공연자의 시선 각도 이하 높이로 줄여져 있다. 그러나 사장이 바뀌고 다시 리모델링하면서 객석을 높여 세웠다. 강동아트센터의 경우 이태섭 선생이 가장 완벽한 공연을 위해서는 기계설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여 무대 리프트를 없앴다. 아무래도 예술가는 기계장치로 인한 불안감이 있다는 것이 이태섭 선생의 주관이었다. 서강대메리홀도 마찬가지다. 이태섭 선생께서 자주 하던 말은 뮤지컬은 뮤지컬전용극장에서 하라는 것이었다. 시스템적으로 기계장치가 필수적인 뮤지컬은 뮤지컬전용극장에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다른 예술장르의 사람들은 아르코예술극장이 무용에 얼마나 적합한지 잘 모른다.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무용 출연진으로서 체득한 느낌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해 보았으면 한다.

김용걸: 아무래도 무용수는 서있는 공간이 맘에 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르코예술극장은 편안하게 느껴진다. 또한 아르코예술극장 객석의 앞쪽과 뒤쪽에서 관람한 적이 있었다. 양쪽 모두 편안하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른 극장에 비해 편안한 관람 조건이다.

전홍기: 아르코예술극장은 약간 날개형 객석으로 통짜형이 아니라 부채꼴 모양이다. 호암아트홀도 부채꼴 객석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호암아트홀은 산만한 느낌이 강하다.

박호빈: 시선 때문이다. 아르코예술극장은 2층은 제외해 두고 1층 객석이 무용수 시선 아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선 컨트롤이 용이하다. 객석이 높아지면 무용수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분산되어 버린다. 상당한 집중도를 갖지 않은 무용수가 타 극장 무대에 올라서면 기량이나 작품완성도 등이 쉽게 노출되어버린다. 그에 비해 아르코예술극장은 웬만큼 해도 잘해 보이고 더 잘 할 경우에는 완벽한 표현력으로 거듭나는데, 이는 다분히 시선 컨트롤이 용이한 극장구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무대와 관객간의 시선 교감도 훌륭하다. 관객이 쓸데없이 다른 곳을 보지 않게끔 자연스럽게 시선을 무대로 모아주는 극장 구조라서 관객 집중도가 높다는 점도 아르코예술극장의 장점이다.

김효진: 공감한다. 무용수로서 무대가 편하다는 것은 다른 극장과 견줄 수 없을 정도다. 호암아트홀의 경우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공연 후 무릎이 아팠던 경험이 있다. 집중력 면에서도 아르코예술극장이 월등하다.

사회: 지금까지 진단을 종합해보면 아르코예술극장이 다른 극장에서 보거나 느낄 수 없는 무용중심공간으로서의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무대바닥이 무용수들에게 '짝짝 들러붙게끔' 만들며, 출연자들 입장에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관객의 시선 방향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고 아늑해서 출연자들을 감싸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르코예술극장이 무용중심극장으로서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의견들을 들어보았으면 한다.

 

 

무용중심극장의 역할 뿌리내리기
 

전홍기: 연극이나 뮤지컬 장르의 경우 전용극장이 있다. 게다가 토월극장은 ‘연극ㆍ뮤지컬 위주극장’이 되었다. 무용계에서는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집중극장’이라 부르려했지만 여의치 않아 무용중심극장 타이틀로 만족해야 했다. 중심극장이라 함은 나누어 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전용극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측도 문제가 있지만, 그에 아무 반응없이 가만 있은 무용계 역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회: 지난 3년간 아르코극장의 공연을 장르 비율로 보면 무용과 연극이 엇비슷한 시일로 나눠쓰고 있는 것 같다. 실질적으로 날수로 계산해야 할지 건수로 따져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런 판단이 든다. 중요한 것은 무용중심극장의 필요성을 재인식하고 그 방향으로 극장의 성격을 강화하는 일로 보인다.

장광열: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스탭들과 함께 작업을 한 바 있다. 첫째 저렴한 대관료도 그렇지만, 둘째 스탭들의 뛰어난 능력, 스탭들이 작품제작에 있어 갖는 주인의식도 중요해 보인다. 무용예술에 대한 지원이라는 것이 무용가ㆍ무용단체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극장을 저렴하게 대관받거나 좋은 스탭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보다 더 실질적인 지원이 될 수 있다. 무용가와 무용단체가 편안히 작업할 수 있도록 시설과 인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박호빈: 아르코예술극장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다용도로 다양한 실험들을 할 수 있는 적합한 공간이다. 공간, 스탭 등의 좋은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 장르는 비단 무용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타 장르와 상대적으로 비교해본다면 대중성의 문제에서 열악한 쪽은 아무래도 춤계라 할 수 있고, 춤계가 자력으로 개선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사회: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중심극장으로 3년째 이어오면서 무용계에서는 그다지 이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타 공연 장르도 현실적으로 부족감이나 불편을 느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때문에 무용중심극장으로서 아르코예술극장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은 춤계 전체의 합당한 여론으로 보아 무방하다.

전홍기: 대학로라는 지역 자체가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유동인구가 많은 공간이긴 하나 순수 무용이나 연극에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지는 않다.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은 오히려 하드웨어적인 부분, 시스템적인 부분(무대 바닥, 조명장비, 객석의 시각선, 좋은 스탭들)이 정말 잘 되어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현장 조건들이다. 춤 예술가들이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대단한 만족감을 가질 수 있도록 훌륭한 인력들, 좋은 디자이너가 아르코예술극장에 있다. 아르코 안에서만큼은 좋은 품질의 춤 작품을 타 극장에 비해 4분의 1 정도 비용으로 해낼 수 있다. 앞서 제기된 것처럼 지원금을 주는 것보다 오히려 작품을 올릴 수 있도록 충분한 제반시설을 갖춰주는 것이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데 있어 나을 것이다.

사회: 명문 규정이 있은 것은 아니지만,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중심극장으로 명명하면서 대학로예술극장은 연극중심극장으로 만들었다. 이와 결부시켜 생각해본다면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서 공연하였을 때 아르코예술극장과 비교하여 관객, 시설 등의 면에서 어떠하였는가.

전홍기: 대학로예술극장은 바닥 자체가 조각형이라 밑쪽이 뚫려있다. 조각으로 되어있는 무대 바닥에 댄스플로어를 깔면 바닥에 떠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춤을 추었을 때 툭툭 큰 소리가 난다. 무용인을 위해 우드 같은 판을 준비해 놓았으나 그것을 깔기 위해서는 반나절이 소요된다. 결국 설치하기까지 반나절 정도 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그 판을 깔고 공연한 무용단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만들 때부터 정책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극장이 대학로예술극장이다. 조각형 바닥은 뜯어내 덧마루를 설치하는 등 연극에 더 적합지 않나 싶다.

김용걸: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르코예술극장을 만들 때 춤을 고려해 바닥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무용수들이 무대에 올라 무용에 적합한 무대로 만들어왔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바닥을 깔지 않고도 춤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은 LG아트센터와 아르코예술극장, 단 두 곳뿐인 줄로 안다. 무용수의 발은 굉장히 예민하다. 무대에 서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면 자신의 기량 이상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표현 자체가 조심스러워지게 마련이다. 결국 객석과의 교감까지 생각한다면 바닥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하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은 브라질에 공연을 하러 가면서도 상당한 무게의 댄스플로어를 갖고가 바닥에 시공한 후 공연한다. 전세계 어디라 할지라도 발레단원들이 연습하는 바닥과 똑같은 조건에서 공연하는 셈이다. 바닥의 퀄리티는 무용수의 부상과도 직결될 뿐만 아니라 좋은 무용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주요소이다. 아르코예술극장은 고무판을 깐다. 더 이상의 자재가 필요 없다. 다른 단체는 잘 모르겠지만 파리의 오페라발레극장 같은 경우도 바닥이 참 좋다. 기본적으로 고무판을 깐다.

전홍기: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우드를 깔아야 하고, 리틀엔젤스예술회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호빈: 바닥을 비롯하여 극장의 여러 조건들에 적응하여 공연하곤 한다. 모든 조건이 충족된, 만족할만한 상황에서 작품을 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김효진: 한국에 무용단체들이 많지만 프로페셔널로서 자리잡아 정착한 민간 단체는 거의 없다. 정책 측면에서 춤에 더 지원이 있어야 하며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은 전용극장이다. 극장 기능 면에서 아르코예술극장이 가장 으뜸인 것 같다. 대관료도 그러하지만 조명디자이너, 무대디자이너 등 스탭들을 확보해서 공연하려면 지원금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같은 비용을 들인다 해도 아르코예술극장의 스탭진 덕분에 훨씬 더 좋은 작품을 올릴 수 있다. 춤의 경우 개인단체가 자체 극장을 갖는 것은 현상황에서 꿈꿀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제야 학교와 분리되어서 프로 단체들이 자리 잡으려는 시점인데 정책적으로 전용공간을 지원해준다면 춤의 프로페셔널화가 빠르게 정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 아르코예술극장이 건립된 지 31년 되었다. 31년동안 무용가들이 사용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길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좌담에서 인상적이었던 ‘무대 바닥이 짝짝 들러붙는다’라는 표현처럼 극장 건설단계에서 어떤 신경을 썼기 때문일까?

김용걸: 신경을 썼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무용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판단하자면 후자쪽인 듯하다. 그런데 아르코예술극장 관계자들은 많이 보고 경험하신 분들이라서 무용가가 보완을 요구하면 타 극장에 비해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아르코에서는 일의 진행이 훨씬 빠르고 수월하다.

박호빈: 특히 춤 공연이 많은 극장이다보니 아르코예술극장은 건축 이후에도 좋은 나무를 쓴다든지 해서 신경을 쓴 것 같다. 조명 시설도 다른 극장은 노후된 경우가 많은데 아르코극장은 문예진흥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시설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예술의전당은 자체 경영시스템으로 평가를 받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극장시설보다도 자신들의 운영 관리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극장 설비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다.

전홍기: 아르코예술극장 말고 다른 극장은 전문예술가나 공연예술 관련 종사자들이 아닌 외주업체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광열: 예전에 언론사에서 공연장 선호도를 설문조사하니, 최고 공연장은 LG아트센터, 2등은 예술의전당이었다. 반대로 예술가들에게 가장 주저하는 공연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예술의전당이 아닐까 한다. 대관료도 그렇겠지만 예술가들이 작업하기에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무용스타, 나우무용단 공연을 위해 예술의전당에서 작업한 적이 있었는데 스탭들의 친절도부터 떨어졌다. 스탭의 분위기부터 다른 것이 굉장히 사무적이고 융통성도 없는데다 모든 것이 안 된다고 하는 부정적 반응이었다. 때문에 예술가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제작비는 제작비대로 많이 들어가는 곳이 예술의전당이었다. 스탭들이 외부에서 들어오다 보니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주인의식에서도 차이가 컸다. 아르코예술극장은 스탭진들이 일단 무조건 들어주겠다는 마인드이다. 또한 프로페셔널 단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 무용전용극장에 육박할 만큼 무대 시스템이 다르다. 이제 예술가들 수준이나 레퍼토리가 달라졌고 전문적 시스템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아르코예술극장 정도의 시스템이 있어야만 해외팀이 들어왔을 때에도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무용전용극장이 꼭 필요한 때이다.

박호빈: 정책 시스템을 봤을 때, 아르코예술극장의 경우 바람직한 점으로서 춤 창작 개인이나 창작단체들에게도 문호가 열려있다. 명동예술극장은 대중에게 어필될 수 있거나 인지도 높은 연극 작품을 올리려 하기 때문에 춤의 선택권은 좁다. 창작작품에 열린 마음을 가진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중심극장으로 더욱 다져나가는 작업에 있어 무용계도 더 능동적으로 준비해야할 필요가 있다. 명동예술극장도 무용작품을 더 고려할 필요가 있고, 춤계에서 양질의 작품으로 입지를 넓혀야 한다고 본다.


무용전용극장, 앞당겨야 할 중대 과제
 

장광열: 아르코극장이 무용전용극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첫째 춤 공연을 할 만한 중극장 및 소극장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은 중극장 규모의 극장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중극장 정도의 규모를 갖춘 극장이라 하면 아르코예술극장, 서강대메리홀과 복합적으로 여러 공연이 올려지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정도라 할 수 있다. 춤이 들어갈 수 있는 극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춤전용 소극장이 있기는 하나 그 조건이 매우 열악하다. 두 번째, 우리나라 무용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타장르와 함께하는 멀티 작품, 레퍼토리 작품, 젊은 안무가들의 기획작품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이를 수용할 공간이 필요하다. 아르코예술극장이 무용계에 끼치는 좋은 영향 중 하나가 국제교류 차원 공연을 장기적 계획 아래 추진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극장이 안무가와 단체를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가능한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작업들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무용전용극장이 없으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늘어난 국제교류에 따라 장기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좋은 안무가를 육성하거나 좋은 단체에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전용극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일반 대중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댄스와 같은 작품들이 해외 극장에서는 일찍이 시도되어 왔는데, 이런 성격의 공연을 우리나라에서 어느 극장이 해낼 수 있겠는가.

사회: 종합적으로 볼 때, 춤중심극장으로서 아르코예술극장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가.

김효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다. 작품 또는 결과물의 문제를 떠나서도 춤을 대상으로 시간을 갖고 극장 중심으로 기획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기적인 점도 그러하고 레퍼토리화되는 것 역시 무용인들의 꿈이지 않은가. 무용중심극장에서는 한때 잠깐 하는 페스티벌이 아닌 장기적인 기획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또한 무용중심극장은 춤 예술가에게도 이점이 있겠지만 예술가와 관객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준다. 이런 점들을 무용계 자력으로 해내면 되지 않겠는가고 반문하겠지만, 앞서 이야기 한 대로 무용인의 마인드만 프로페셔널일 뿐, 프로페셔널한 시스템을 개개인이 갖기란 지금 상황에서 상당히 힘들다. 다른 예술 장르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생적으로 크고 있는 춤 예술가들을 묶어줄 무용전용극장 같은 총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존에 있는 극장 가운데 실질적으로 무용가들의 노력으로 길들여놓은 극장으로서 아르코예술극장은 무용전용공간으로 매우 적합하다. 한팩의 기획은 그것 자체가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상당히 고무적인 제안으로 생각된다.

장광열: 아르코예술극장이 무용중심극장으로 바뀌면서 무용계에 다섯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 장기대관을 만들어 주었다. 예전에는 이틀 또는 삼일의 공연이었지만 이제는 일주일 단위의 무용공연이 가능해졌다. 둘째 아르코 무용중심극장이 제작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무가를 초청하거나 제작비 및 스탭을 제공해준다든지 해서 안무가들이 연출하고자 하는 바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직접 지원금을 주지 않더라도 극장측면에서의 제작기능을 통해 창작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셋째 지속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연계 지원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전에 좋은 공연을 만들었던 무용가들을 다음번에도 초청하여 다른 곳에서도 공연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는 것이다. 넷째로 레퍼토리 공연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다섯째로 무용공연의 홍보를 지원해 준다는 점이다. 이렇게 무용가들을 위한 지속적 관리가 무용중심극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만약 무용전용극장으로서 이런 프로그램들이 지속된다면 무용계에 긍정적 효과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 1981년 개관 이래 30여년 쌓은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춤계 입장에서 다른 극장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아르코예술극장만의 시간적 연륜, 이런 특성을 가진 극장이 무용중심극장이면서 무용전용극장과 같이 되어야 한다. 2012년도 세부사업계획 및 대관계획을 보니 무용과 연극이 날수, 건수로 절반씩 차지한다고 하지만 연극공연이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무용중심극장이라 하기엔 미흡하다.

장광열: 그런데, 댄스씨어터 까두는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아온 단체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지원의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듣고 싶다.

박호빈: 창작의욕이 살아나지 않았다. 현실여건이 개선될 만큼 지원제도 등의 변화 속도가 정체된 데다가 자생할 만한 기초체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공연예술계의 현실, 사회구성원으로서 대접받을 수 없는 현실, 총체적인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창작작업의 책임은 예술가들에게 모두 전가되고 있다. 단순한 실적에 의해서 또는 보이는 현상에 의해서 너무 쉽게 판가름나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안고가기 힘들다. 실제로 많은 지원제도의 변화 속에서 혜택을 받아왔다. 혹자는 많은 지원을 받았는데 자생하지 못했는가라고 묻기도 하고, 해외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예술가들의 환경과 우리 환경은 분명 다르다. 우리나라는 지원 인프라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예술가들이 모두 책임진다. 예를 들어 공연장 바닥에 판을 하나 까는데 반나절이 소요되는 데에다 지원금이 그런 쪽으로 다 흘러들어가버려도,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예술가들에게 전가된다.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힘들다. 정책 면에서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다른 사업이 신설되면 별도의 예산을 확보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음을 기약하면 되는데, 있는 예산에서 적당히 염출하고 보는 적당주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수치적으로는 성과를 낸 것 같지만, 그 성과 이면을 들여다보면 민간단체의 피해가 보인다. 그런 구조에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다. 무용을 통해 뮤지컬이나 오페라, 영화산업 등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의 수준이 같이 높아지는데, 그런 점들은 수치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수치화된 성과물들로 인해 춤계가 피해를 무용계가 강요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권익을 위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원금을 받아도 그 혜택은 무용가들에게 돌아갈 수 없고 제작대행, 스탭, 극장운영 등의 부분에 모든 예산이 투여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개선할 의지가 없다면 암울한 결과만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회: 그래서 우선 무용전용극장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무용전용극장이 그 무엇보다 실질적인 지원이다

김효진: 무용이 순수예술장르라서 자생할 수 있는 여러 여건을 구축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제는 환경 때문에 예술을 접는 사람을 만들기보다는, 예술가를 발견해서 발전시키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현 시점에서 가장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시설을 무용중심극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곳에서 제작, 기획한 것들을 정책적으로 밀기도 하여 브랜드를 키워나가야 한다. 상주단체, 지원금 같은 지원정책이 아니라 무용전용극장을 만들어주고 그 결과물을 우리가 본다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아르코예술극장의 기획공연물로 관객을 확보하고 그것을 홍보하는 일련의 과정만 따져보아, 무용전용극장이 있다면 민간단체 또는 아르코 기획과 다른 폭넓은 기획들로 저변을 확대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장광열: 독일의 무용전용극장, 탄츠하우스의 기획을 보면 춤 예술 장르가 전용극장 덕분에 어떤 경쟁력을 갖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일단 탄츠하우스가 육성하는 10개 남짓 아티스트와 컴퍼니들이 있다. 극장은 이들에게 작업할 예술극장과 공간을 확보해주고, 창작작업 중 모자라는 자금을 위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용클래스를 열어 예술가에게 작업에 충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품완성 후에는 해외 수출, 유통까지 지원한다. 결국 무용전용극장이 단순히 예술가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수준 높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만들어진 작품의 유통까지 해내는 기관이 되었다. 유럽 전역에서 무용전용극장, 댄스하우스를 만들어 현재 16개의 유럽 댄스하우스 네트워크가 형성된 상태이다. 무용전용극장이 있으면 국제교류, 유통, 대중화 면에서 굉장한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독일 탄츠하우스에서 한국 안무가를 초청 공연한다면, 그 작품을 유럽 네트워크가 함께 공유한다. 무용전용극장이 없다면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무용작품을 원할 때에도 네트워킹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무용전용극장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김효진: 미술 분야에 다양한 조건의 레지던스 프로그램들은 갤러리 등에서 스스로 작가를 두고 지원한다. 무용중심극장이라 해도 이렇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무용가들의 레퍼토리 등을 확보하여 유통을 한다면 춤문화는 확산될 것이다. 지금까지 무용에는 단발적 지원이 고작이었고,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비슷한 것을 해내려면 아무래도 무용전용극장일 텐데 그것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한계였다. 이번 한팩의 기획작품들을 통해 안무가로서 역량있는 신진 무용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사회: 그동안 국내에서는 극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기능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없었다. 설령 그런 인식이 있었을지라도 실천이 없었으므로, 인식이 없은 거나 마찬가지다. 춤 경영 각도에서 보자면 극장경영 개념이 굉장히 미약하다. 무용중심극장, 무용전용극장이든 혹은 무용전문극장이든 간에 극장의 기획 기능에 대한 개념이 새롭게 요구된다.

김효진: 예술의전당은 자체기획이나 제작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국내 많은 극장 중 간판을 내걸고 기획, 제작을 하려는 곳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공간은 정말 건물만 지어놓고 대관사업만 하는 중이다. 그나마 LG아트센터가 기업을 배경으로 해서 기획하고 있다.

김용걸: 극장이 대관만 하는 기구가 아니라 독일 탄츠테아터처럼 기획, 운영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무용이 단순히 음악 틀고 춤추는 공연예술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면 정책도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무용전용극장이 무용수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 춤에 대한 이미지가 바뀔 수 있도록 역할하는 곳이길 바란다. 세계적 추세를 놓고 보았을 때에도 무용전용극장이 없으면 우리나라 무용계 발전이 어렵다.

사회: 아르코예술극장은 서울에 있고, 서울시에서도 문화관광부에 미룰 일이 아니라 그 점에서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장광열: 아르코예술극장이 무용공연 제작기획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예산은 열악하다. 연극계와 비교해본다면 명동예술극장이나 남산예술센터, 장민호극장과 같이 연극전용극장은 예산이 확보되어 창작극 기획에서도 유리하다. 다른 장르의 극장들은 확보된 예산으로 제작지원을 하고 있는데 반해, 무용은 전용극장이 없을 뿐 아니라 중심극장으로서 지원하고는 있지만 예산이 부족해 제작지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지 못하다. 이제는 전용극장으로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기획프로그램과 제작지원을 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 이 같은 정책지원으로 관객을 확보하고, 좋은 무용작품을 다른 극장에게도 유통시키며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있는 안무가에게는 지속적-단계적으로 기회를 주는 순환구조의 지원시스템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무용전용극장이 절대 필요하다.

사회: 사실 직접지원도 절대 액수는 부족하다. 그래도 간접지원을 더 늘려 한다. 직접지원으로 각각 나누어주기 보다는 간접지원으로 극장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훨씬 더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간접지원, 극장 인프라 구축에 예산을 늘리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이런 점은 공연예술계에서 한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린다.

김용걸: 파리오페라단에 있으면서 파리에는 별로 없으나 우리나라에 많은 것이 무용학원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이 거대하게 존재하고 있다. 국가적 지원도 엄청나다. 발레단이 프랑스 춤계에 모든 양분을 나누어 주는 것처럼 느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센터가 없기 때문에 사설무용학원으로 분산되어 있다. 프랑스처럼 센터에 지원이 실현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김효진: 지금 무용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센터 역할, 기획제작 역할을 맡을 중심기관이 필요한데 그것이 극장이라면 무용인들이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극장을 마련해주고, 프로페셔널한 스탭을 지원받고, 작품을 기획, 제작, 홍보 나아가 유통까지 해줄 기관이 필요하다. 춤을 지원하는 여러 방향 가운에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무용전용극장이 아닌가 한다. 무용전용극장을 통해 무용의 대중화, 작가 발굴, 레퍼토리화, 관객과의 브릿지 역할 등 여러 문제를 동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장광열: 춤계 흐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제교류의 활성화, 춤작품의 유통, 일부 계층을 겨냥한 기획, 제작 등 춤작품의 상품화, 춤교육프로그램의 확산이 그렇고, 예를 들어 커뮤니티댄스의 경우 극장마다 자주 올려지고 있다. 그리고 외국에서는 국가를 대표할 안무가나 단체를 집중, 전략적으로 육성한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여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무용전용극장이 필요하다. 센터 기능을 할 공간도 요구되고 있는데 이를 신설하려 하기보다는 우선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전용극장으로 하여 효율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란다. 창작자들에게 좋은 공간을 제공하고, 유능한 안무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인력을 지원하고, 무용대중화를 위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전국 280개 공공 극장 가운데 무용공연을 한 번도 올리지 않은 곳이 절반 이상인데, 좋은 무용작품을 전국 공공 극장으로 연계시킬 수 있다. 사회와 공연예술계 변화 흐름에 맞추어 무용전용극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무용전용극장이라면 해외에서는 뉴욕의 조이스 시어터, 런던의 더 플레이스 극장이 손꼽힌다. 전세계적으로는 다수의 무용전용극장이 존재한다. 어쩌면 무용전용극장은 문화 선진국의 지표라 해야 할 것이다. 척박한 순수 예술을 위해 무용전용극장을 세워 범국가적으로 제대로 덕을 보자는 전략이 읽혀진다. 무용만 그런가. 어느 예술 장르든 전용 공간을 설립하는 것이 선진국이다. 조이스 시어터나 더 플레이스 극장은 규모에서나 역할에서 아르코예술극장과 유사하다. 객석 규모에서 조이스 시어터는 아르코예술극장과 비슷하고 더 플레이스는 4백석 정도이다. 현지에서 이들 극장이 민간단체의 춤 창작 활동에 대해 기여한 비중은 절대적이고 춤 조류를 선도한다는 인상까지 준다. 이들 극장을 창작의 견인차로 봐도 좋을 것이다. 이 극장들의 역할은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 공동 인터뷰는 무용중심극장의 긍정적 기여도를 중간 평가 식으로 논하는 데서 출발하였는데, 논의는 예상외로 무용전용극장으로 진전되었다. 이는 국내의 극장이 단순 대관으로 시종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극장이 창작의 산실로서 기능하도록 새로운 구도 혹은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만큼 춤이 극장에 대해 요구하는 바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는 뜻이다. 춤 공연이 많다고 해서 무용중심극장이라 할 수 없다. 지금은 어찌 보면 한국의 극장들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할 때이다. 현실적으로 춤 공연 관객층이 위축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관객층이 늘어야 하는 것도 사실로서 요청되는데,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전용극장이 실질적인 대안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고 그럴수록 진취적인 기획 경영이 요망된다. 아무튼 오늘 진지하게 거론된 무용전용극장의 역할로는 창작과 레퍼토리 개발 자극, 필요한 연계 사업 수행 등등 지난 몇해 경험을 축적한 무용중심극장의 장점과 실적을 심화 발전시키면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극장의 역할을 다시 묻게 된다. 극장은 단순히 물리적인 콘크리트 건물인가, 아니면 예술 공간인가. 우리는 어느 쪽에 비중을 두고 있는가. 당연히 후자 쪽을 택해야 한다면, 이제 국내 춤계의 필요와 여론에 맞춰 예술 공간에 적절한 체제와 인력을 갖추려는 마인드부터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에서도 가령 영남권, 호남권에는 각각 무용전용극장이 들어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역에 춤 수요가 없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해서 콘텐츠를 공급하여 예술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공공 예술 정책의 방향일 것이다. 오늘 공동 인터뷰가 춤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공연예술계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아울러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린다.
 


 

정리_ 김인아 기자

 

2012.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