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획_ 10년 맞은 무용단 리더 연속 인터뷰 이나현·김성한·김길용
방희망_<춤웹진> 편집위원

춤 현장에서 활발한 작업을 하고 있는 3개의 전문 춤 단체들이 11월에 나란히 10주년 기념공연을 통해 신작과 보완된 작품들을 선보였다. 독립 안무가들이 이끌고 있는 이들 단체들 중에는 상주단체로 지정되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가 하면, 여전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하고 있는 데도 있다. <춤웹진>에서 그 주인공들을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 유빈댄스 예술감독 이나현

이제는 차별화 된 지원이 필요한 때

 

 

 

 

방희망 안녕하세요. 유빈댄스 창단 1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작년에 초연했던 〈기억흔적〉을 재구성하여 지난 11월 4일과 5일에 남산골한옥마을 국악당에서 올렸어요. 초연은 서강대메리홀에서 했었지요. 이번엔 장소를 옮겨서 했는데 평소 창작공연은 잘 열리지 않는 공연장이라 의외였습니다.
이나현 예. 원래는 이태원에 새로 생긴 현대카드홀에서 하려고 했어요. 10주년 기념으로 하는 거니까 전시, 영상 상영까지 같이 하면서 파티처럼 진행하려고 했는데, 준비를 하다 보니 홈페이지에 처음 공지되었던 것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조건이 맞지 않아 계약 직전에 그만 두고 다른 대안을 찾다가 남산골 국악당으로 가게 된 거에요. 반돌출 무대가 좀 부담스러워서 사전답사를 다섯 번이나 갈 정도로 고민을 했는데, 주변 분위기도 좋고 공연장도 아늑해서 의외로 좋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초연했던 서강대메리홀은 객석 경사도가 심한 편이라 아무래도 무용수들이 납작하게 보이기도 하고 휑한데, 확실히 국악당은 시야가 편하고 집중도가 좋았습니다. 저는 중간에 여성룡씨의 소리가 들어가서 그 이유로 국악당을 택하신 건가 했습니다. 재구성을 하면서 소리가 들어간 것도 의외였어요. 어떤 맥락으로 넣은 것인지요?
그런 이유도 있었지요. 소리는 예전부터 넣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한국소리를 좋아하고 전자음악과 어우러지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몇 년 전부터 정가, 구음, 판소리하시는 분들과 즉흥 공연을 한 적도 있었고 그런 작업을 쭉 해오면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번에 소리가 들어간 장면이 앞부분과 마지막 두 번 음악이 반복되는 부분이에요. 두 번째 반복될 때 약간 변화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어울릴까? 하는 생각으로 넣었는데 의외로 들어맞아서 연습실에서도 만족했었구요. 소리가 중간에 제 솔로 부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원래 그 솔로는 남자무용수가 추기로 했었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아 제가 하는 것으로 바꾸었어요. 등장과 함께 환기시키는 효과가 되었어요.

저도 보면서 그 전에는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주던 무대가, 소리와 함께 무언가 싹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구가 빠져나가는 장면이 좀 더 부드러워졌다고 관객들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제 춤이 아무래도 편안한 춤은 아니다보니까요(웃음).

 



안무가마다 각자 나름대로의 색깔과 개성이 있겠습니다만, 이나현 선생님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승부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다른 수단에 별로 눈 돌리지 않고 철저히 안무를 짜서 만들어 내는 알찬 작품을 견지하시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어떤 이야기에 기대지 않고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집요하게 다루길 즐겨 하고, 주제에 접근하는 자세도 철학적이랄까 과학적이랄까. 흔하게 만나기 어려운 춤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본인의 안무 작업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 저의 생각은 대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저는 무용을 좀 늦게 시작한 편인데 어찌 보면 무용세계에 별로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가능했던 것 같네요. 무용이 이야기를 전달하기엔 그다지 적합한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도 그러한 경향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게 의아했어요. 감정의 표현들도 상투적인 코드로만 이루어진 것이, 오히려 무용을 잘 모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 바로 보였던 것 같아요.
춤이라면 사람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게 주가 아닌가, 내 몸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졸업하고 젊은 안무가 창작공연 오디션을 보는데 즉흥을 해보라는데, 배운 동작만 반복할 줄 알지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무용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럽에서 경험을 쌓은 뒤 2002년도부터 저만의 솔로작품을 내놓기 시작했어요. 화가들도 자기만의 붓터치가 있듯이 무용가도 자신만의 움직임, 언어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해요.
이렇듯 춤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조심스러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2009년 말 홍대 다원예술문화공간(지금은 없어졌을 거에요)에서 ‘퍼포몸스’를 할 때 서강대 철학과 서동욱교수님이 제 춤을 두고 몸과 춤에 대한 얘길 하는데, 내가 춤으로 말하려던 것을 철학으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그걸 알고 놀라게 되었죠. 그 무대가 만들어진 다음부터 제가 생각하는 춤에 대한 것들을 주위에서 자꾸 이야기해보라고 권하는 식이 되면서 타 장르와의 결합을 시작하게 된 거에요.
서동욱 선생님과 페스티벌 봄에서 렉처 퍼포먼스를 같이 했는데, 몸에 대해 철학과 춤으로 각자의 생각을 풀어내고 철학과 춤을 잇는 매개체로 시가 들어갔지요. 그 작품을 두고 서선생님은 ‘신체연구’라는 제목을 짓고 저는 ‘어떤 모순’이란 제목을 지어 같이 썼는데, 지시적인 춤을 상당히 싫어하는 제가 춤을 두고 풀이를 하는 상황이 모순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은 거에요. 춤만 고집하더니 말을 하게 됐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제목이에요. 이후 2011년과 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에 들어가서 영상, 사진 등 다른 장르의 작가들을 만나서 협업하다보니 이제는 새로운 분야와의 만남의 가능성에 열려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영상작업을 하고 싶어요.

 



유빈댄스의 근황이랄까요. 현재 운영 상황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상주단체 선정에서 탈락되어 어려움을 겪은 걸로 들었는데요.

무용수들은 한 번 작업하고 맞으면 이후 작업까지 이어지길 원하죠. 여러 가지 사정상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월급을 주기 어렵다보니 고정 단원 없이 그때그때 찾게 되는데 한편으론 작품에 맞게 구성할 수 있는 자유는 있어요. 연습실은 가지고 있다가 운영에 힘든 부분이 많아 없앴어요. 하지만 무용수들이 자기 몸을 유지하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씩은 정기적으로 클래스를 같이 하고 있어요.

전문단체를 운영하는데 있어 지원제도에 대한 관심도 많을 것 같은데요. 지원방식이 어떻게 되면 좋을까요?
뒤돌아보면 내가 안무하고 작품을 구성하는 능력을 갖추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무용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보니 안무가들이 무용수들을 다루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이제야 좀 알 것 같고 편해졌어요. 최소 5년은 걸려야 자기 것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야 다른 장르와의 협업이 가능했어요. 이런 것을 생각해볼 때 한 작품마다 지원을 하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지원을 하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홍은창작센터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데 지금 공사를 하고 있지만 연습실 크기가 작으면 무대만큼의 에너지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갖고 있는 것만큼 좋은 연습실이 개인 단체들에게는 너무너무 필요한 상황이에요.
공간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작업을 믿고 다년간 밀어줄 수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원금을 받고 안이해질 수도 있겠지만 정말 작품을 하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든 해내거든요. 공연하고 나면 예술가가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예술가의 몫이거든요. 이것은 사실 사회가 오랜 시간이 걸려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저녁이 없는 삶이라고 하잖아요. 일상적으로 공연도 보고 즐기고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뭔가 정부 차원에서의 캠페인 같은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이번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티켓 1+1 지원사업을 시행했어요. 유빈댄스의 <기억흔적>도 거기에 들어간 작품인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나요?
보통 지인들에게 티켓 값을 다 받고 팔지 못해요. 단체로 얼마만큼 이렇게 구두 약속을 하면 수량은 많이 나가는 편인데 그에 비하면 1+1은 그 공연을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보는 거라 판매량은 적은 편이지만 수익금으로 들어오는 것은 비슷하더라고요. 도움이 안됐다고 말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유빈댄스를 10년 동안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점과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이번에 공연을 끝내고서 10년 동안 상황, 창작 환경이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는 점이 정말 힘들고 허탈했어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말이지요. 기억에 남는 것은 순간순간 연습실에서 뭔가 만들어지고 연결고리가 확 풀릴 때의 희열 그런 것들이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지난 인터뷰들을 보니 <소녀와 죽음>(2007)이 언급이 많이 되었던데요.
<기억흔적>?(웃음). 초창기에 솔로 작품 할 때는 움직임 언어를 찾겠다는 생각이었고 2008년까지는 2인무, 3인무 연습을 해본 거에요. 국내에 들어와서 무용수들에게 제 움직임을 전달하니 거부반응이랄까? 싫어하는 게 아니고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전달하되 작품은 어떻게든 끌어나가야 하니까 기존의 보편적인 움직임들과 함께 제 것을 입혀 나가는 식으로 진행했지요. 2009년부터는 제가 하고 싶은 쪽으로 이어 왔어요. 2009년과 10년이 음악, 구성, 움직임에 있어 전환기였다 생각해요. 그러고 난 다음 작년에 결실을 맺은 게 <기억흔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러 가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이후의 작업계획은 있는지요?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중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연구하고 계시는 주제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몇 편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요. 공연의 기회를 좀더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려고 계획 중입니다. 대학원에서는 ‘즉흥’을 연구하고 있어요. 들뢰즈의 철학을 통해 즉흥을 해석하려합니다. 즉흥을 어떻게 하는가 방법론에 대한 것이나 사회학적인 의미 등은 미국과 영국에서 연구가 나온 게 있고, 한국에서는 치유 무용과 관련해서 일상의 움직임을 다루는 경향이 강한데 저는 그런 것과 다르게 전문 무용인의 ‘즉흥’, ‘즉흥’을 통해서 몸을 어떻게 무용의 정해진 동작들로부터 일탈을 시킬 것이냐를 다루는 겁니다.

 



인터뷰에 꼭 담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무용에 대해 많은 사람이 보고 얘기 나눌 수 있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환경에서 무용가로 활동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10주년 공연이 끝난 뒤 다과를 함께 하면서 공연을 어떻게 봤다 이런 얘기를 나누는 것처럼, 관객도 많아지고 많은 얘기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전에는 단맛의 믹스커피만 마시다가 커피 전문점이 하나 건너 하나씩 생기면서 커피 맛, 쓴 맛을 알게 되잖아요. 현대무용이 믹스커피처럼 당장 행복하고 즐겁게 단맛을 주는 춤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쌉쌀한 커피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렇게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웃음)

2015.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