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화제의 공연_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내한공연
강수진(姜秀珍) 연보
장광열_춤비평가


1967년
4월 24일 서울 휘경동에서 부친 강재수와 모친 구근모 사이에 태어났다. 1남 3녀 중 차녀. 언니 여진과 동생 혜진은 하프를, 막내 동생 대준은 건축을 전공했다.

1974년
경희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977년
어머니의 권유로 리틀엔젤스예술단에 입단했다. 정규 수업 후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계속되는 연습 일정을 소화해냈다.

1979년
리틀엔젤스예술단 단원으로 1년 4개월 동안 미국과 캐나다 장기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언니 여진도 리틀엔젤스예술단에 입단, 강수진은 언니와 함께 연습에 참가했다.

1980년 선화예술중학교에 입학했고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부에 지원했다. 당시 강수진은 발레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것도 없고 흥미를 느낄 만한 계기도 없었다. 딸의 체격이 발레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어머니의 생각이 발레와 인연을 맺게 했다.

1982년
뒤늦게 발레를 시작했지만 베스트 선생의 지도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운 강수진은 이화여대 주최 발레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학교를 방문한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교장 선생의 눈에 띄였고, 1982년 1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유학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1985년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했다. 당시 강수진은 1위에 해당하는 스칼라십상을 다른 4명의 무용수들과 공동으로 받았다. 교육적인 면을 중시하는 로잔 콩쿠르는 공식적으로 순위를 발표하지 않으나 관례적으로 뒤에 호명된 무용수일수록 성적이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강수진(등번호 26번)은 가장 마지막에 호명되었다. 15세에서 18세까지의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콩쿠르 입상은 국내에 강수진이란 이름을 알린 쾌거였고, 메이저 발레단에 입단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강수진의 가능성을 확신한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교장은 1년 동안 수진을 그녀의 집으로 불러 함께 생활하면서 식사 매너와 대화하는 법, 침대 시트 교체하는 방법까지 가르쳤다. 강수진은 마리카 교장의 초청으로 모나코를 방문한 부모님과 3년 만에 해후했다.




1986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졸업하고 5월에 마리카 교장의 권유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입단했다. 19세였던 강수진은 당시로서는 최연소 입단이었다. 강수진은 발레를 하면서 많은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지만 “내 발레 인생을 열어준 사람은 마리카 선생님 한분 뿐”이라고 말했다.

1990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92년
<춤의해>를 맞아 한국의 문예회관 대극장(지금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가진 갈라 공연에 출연했다. 해외 유학 후 가진 첫 국내 공연이었다. 이반 카발라리와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2인무와 이리 킬리안(Jiri Kylian)의 <구름(Les Nuages)>을 춤추었다. “동양적 신비감을 물씬 풍기는 수줍음의 화신 같은 서정성.” “뛰어난 감정 처리와 유연성으로 고난도의 테크닉을 산뜻하게 처리했다”는 비평가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1993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전막 공연의 주역으로 데뷔했다. 데뷔 공연은 1월 29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발레극장(정식 명칭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립극장)에서 있었던 존 크랑코(John Cranko)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파트너인 이탈리아 출신 이반 카발라리 역시 이날 주역 무용수로 데뷔했다. 무용평론가, 발레 지도자, 공연기획자 등 20여 명의 국내 무용 관계자들도 한국인 무용수 최초의 메이저 발레단 주역 데뷔 공연 현장을 지켜보았다.

1대 줄리엣으로 예술감독을 맡고 있던 마르시아 하이데는 당시 그녀가 입었던 의상과 반지를 강수진에게 물려주면서 간판 무용수로서의 대물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모리스 베자르(Maurice Bejart) 안무의 <마술피리>에 파미나 공주 역으로 출연했다.

1994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솔리스트가 되었다.

10월 5-7일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함께 내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으로 출연했다. 금의환향의 무대였다.

레나토 자넬라(Renato Zanella) 안무의 <마타 하리>에 주역 무용수로 출연했다. 당시 예술감독인 마르시아 하이데도 강수진과 같은 배역으로 이 작품에 출연했고 현지 언론들은 강수진의 요염하고 매력적인 연기력을 파격적인 호평과 함께 소개, 신예와 원로 무용수의 공연을 비교했다.

1995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시즌 개막 무대 <잠자는 숲속의 미녀>(안무 Marcia Hydee) 공연에서 오로라 공주로 출연했다. 메이저 발레단의 시즌 개막공연에는 통상적으로 여러 명의 수석 무용수 중 서열 1위의 무용수가 출연한다. 주역 데뷔 2년 차인 강수진의 개막 공연 출연은 공연 3주 전에 전격 발표되었다. 예술감독 마르시아 하이데는 파격적인 캐스팅의 이유를 “강수진은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특별한 발레리나이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월간 <무용예술>지가 수여하는 무용예술상 `무용수` 상을 수상했다.

 



199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간판 작품인 <오네긴>(안무 John Cranko)에서 타티아나를 춤추었다.

<지젤>(안무 Sir Peter Wright)에서 지젤 역을 춤추었다.

6월에 빈국립발레단의 객원 주역 무용수로 <마타 하리>에 출연했다. 안무자인 레나토 자넬라가 빈 국립발레단의 새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강수진을 초청했다. 강수진은 처음으로 외부 발레단의 전막공연 게스트로 초청되었다.

8월에 유니버설발레단 초청으로 내한, <지젤>을 공연했다.

MBC 문화방송 선정 `이달의 예술가` 상을 수상했다.

1997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수석 무용수가 되었다.

3월에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의 초청으로 내한, 이시다 다네오(Ishida Taneo) 안무의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에스메랄다로 출연했다. 국립발레단에 최연소로 입단한 김지영과 더블 캐스팅이었다.

<신데렐라>(안무 Jean Christophe Blavier)에서 신데렐라 역을 춤추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안무 John Cranko)에서 캐서리나 역을 춤추었다.

1998년
7월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뉴욕에서 성공적인 데뷔공연을 치렀다. ‘뉴욕타임즈’는 “강수진만의 줄리엣”이란 단어로, ‘뉴욕포스트’는 “이미 빛나는 왕관에다 다이아몬드를 달아준 것과 같다”는 말로 호평했다.

10월에 <까멜레리 레이디>(안무 John Neumeier)에서 마르그리트 역으로 출연했다. 이날 공연은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가 초연된 극장에서 20년이 되는 해에 올려지는 특별한 공연이었다. 이날 마르그리트 역을 맡은 강수진은 그녀가 왜 지금 절정에 올라 있는 월드 스타인지를, 이듬해 국제무용협회가 그녀에게 왜 브노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우수 여자 무용수상을 수여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강수진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감정표현, 거침없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통해 해석한 마르그리트는 그녀의 줄리엣과 타티아나에 견줄 만한 명연이었다.

문화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젊은 예술가` 상을 수상했다.

1999년
4월에 `브노아 드 라 당스(Prix Benois De La Danse)` 최우수 여성무용수로 선정되었다. 영화의 아카데미상에 비견되는 이 상은 1991년 발족한 모스크바에 있는 국제무용협회가 수여하는 것으로 최우수 안무가에 존 노이마이어·이리 킬리안 · 롤랑 프티 등이, 최우수 여성무용수로 실비 기옘 등이 수상한 바 있다. 비운의 주인공 마르그리트 역을 맡았던 강수진을 두고 “안무가 훌륭함은 물론이지만 강수진의 사랑스러운 연기가 아니었다면 작품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을 것”라는 평이 있었다. 그녀의 수상은 독일 무용계의 경사였고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최초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고집쟁이 딸>(안무 Heinz Spoerli)에서 리즈 역을 춤추었다.

<대지의 노래>(안무 Sir Kenneth Macmillan)에서 주역으로 출연했다.

<풍경보기>(안무 Jean Christophe Maillot)에서 주역으로 출연했다.

<한여름밤의 꿈>(안무 Jean Christophe Blavier)에서 티타니아로 출연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정부 문화진흥 공익광고 모델로 선정되었다. 슈투트가르트 시내를 관통하는 전차마다 그녀의 얼굴이 크게 부각된 공익광고 포스터가 붙었다.
슈투트가르트 난(蘭)재배업협회는 새로 개발한 서양난 신품종을 <강수진 난>으로 명명했다.

5월에 슈투트가르트대학 출판사에서 각 분야의 전문인을 다룬 책 「아르바이트」를 출간했고, 무용계 대표로 강수진이 소개되었다.

9월 각 전문분야의 대표주자가 모이는 <슈투트가르트 컨퍼런스>에 독일무용계 대표로 참가

10월 대한민국 보관 문화훈장 서훈

 



2000년

부상으로 인해 공연 출연을 접고 재활치료에 매진했다.
당시 상항에 대해 강수진은 “<지젤> 공연을 1주일 앞두고 다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 병원을 찾았는데 정강이뼈에 길게 간 금이 선명히 보였어요. 1년 이상을 쉬면서 재충전의 기회로 삼았죠. 못 읽었던 책도 실컷 읽고, 브람스와 베토벤·모차르트 음악에 파묻혀서 지냈어요.”라고 회상했다.

2001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중국 홍콩 순회공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말괄량이 길들이기>로 공백을 깨고 성공적으로 컴백했다.

제9회 KBS 해외동포상을 수상했다.
경향신문사 `한국의 얼굴 55인`에 선정되었다.

2002년
1월에 남편 툰치 소크만과 결혼했다. 툰치는 터키 태생으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했었다.

<에드워드 2세>(안무 David Bintley)에서 왕비 이사벨라 역을 춤추었다.

<숙녀와 바보>(안무 John Cranko)에서 숙녀 역을 춤추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함께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까멜리아 레이디> 내한공연을 가졌다.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했다.

2003년
<레 실피드>(안무 Michall Fokine)에서 주역을 맡았다.
동아일보사 `프로들이 선정한 최우수 무용가` 1위에 선정되었다.

2004년
<지젤>(안무 Reid Anderson & Valentina Savina)에서 지젤 역을 맡았다.

10월 20일 강수진의 무대인생을 조망한 무용평론가 장광열 저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가 동아일보사에 의해 출간됐다. 강수진에 관한 최초의 단행본으로 토슈즈에 가려져 있던 강수진의 ‘당신의 발’ 사진도 공개되었다.

10월 25-26일 세종문화화관에서 열린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오네긴> 내한 공연에 타티아나 역으로 출연했다.

 



2005년

스위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2006년
1월 국립발레단의 스페셜 갈라 공연에 출연했다.

10월 1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말괄량이 길들이기> 내한공연에서 카타리나로 출연했다. 1969년 존 크랑코가 안무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통해 관객들은 희극적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새로운 강수진을 발견했다.

2007년
카머탄처린(Kammertanzerin), 궁중무용수(Chamber Dancer) 인증.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그녀를 카머탄처린(궁중무용수)으로 선정했다. 최고의 예술가에게 장인의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것으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받은 작위였다.
강수진 화보집 〈Sue Jin Kang〉이 독일에서 출간되었다. 국문&영문, 국문&독일어 판으로 각각 한정판 1,000권씩 출간되었다. 독일의 출판사 DACO-VERLAG가 기획, 140여 페이지 분량으로 출간된 이 책은 사진작가 Gundel Kilian이 수년 동안 강수진을 스케치한 사진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간판 무용수이자 전 예술감독이었던 마르시아 하이데와, 현 예술감독인 Reid Anderson, 그리고 무용평론가 장광열의 글이 실려 있다. 국문&영문판은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와 함께 기획했다.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열린 ‘2007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스타 초청 공연’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외국의 직업무용단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프로 무용수들과 함께 직접 무대에 오른 강수진은 〈Come Nevel〉(안무 Jiri Jelinek) 〈Le Grand Pas de Deux〉(안무 Christian Spuck)를 비롯한 국내 초연 작품과 <오네긴> 2안무를 선보였다. “강수진과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노원문화예술회관과 김해문화의전당에서도 공연이 이어졌다.

존 크랑코(John Cranko) 메달 수상. 안무가 존 크랑코의 작품을 빛낸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서훈

2008년
5월 강수진의 모친인 구근모 여사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정한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했다.

11월 17-18일 세종문화화관 대강당에서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 내한공연에 출연했다.

2009년
4월 성남국제무용제 갈라공연(예술감독 박인자)에서 제이슨 레일리와 함께 〈Legend〉를 국내 초연했다.

 



2010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The Ballet〉 공연을 가졌다. 서호주발레단의 무용수들과 강수진이 선정한 초청 무용수들이 함께 한 강수진의 갈라 공연으로 크레디아가 주최하고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대표인 무용평론가 장광열이 프로그래밍을 맡았다. 우베 숄츠 안무의 <스위트 No.2>와 <까멜리아 레이디> 1막에서부터 3막까지의 하이라이트와 지리 킬리안 안무의 <구름>이 공연되었다. 서울 공연 후 전주, 창원 공연이 이어졌다.

8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가 한국발레협회와 함께 마련한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Marijn Rademaker 와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2인무와 Mauro Bigonzett 안무의 〈Kazimir's Colours〉를 공연했다. 서울 공연에 이어 울산과 포항에서도 공연되었다.

2012년
6월 15-17일 세종문화화관 대강당에서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함께 내한 <까멜리아 레이디> 공연을 가졌다. 2002년에 이어 10년 만에 <까멜리아 레이디>가 국내 무대에 다시 선보였다.

2013년
10월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주립발레단과 함께 <나비부인>을 초연했다. 인스부르크발레단의 예술감독인 엔리케 가사 발가(Enrique Gasa Valga)가 강수진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었다.

강수진의 자서전 성격을 띤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가 인플루엔설에서 출간되었다.

 



2014년

2월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공로 훈장 서훈

6월 인스부르크발레단과 함께 <나비부인>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했다.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레퍼토리로 우베 숄츠 안무의 <교향곡 7번>과 글렌 테틀리 안무의 <봄의 제전>을 무대에 올렸다.

2015년
존 크랑코 안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레퍼토리로 추가했다.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Monemen 시리즈〉 〈Rising Stars 갈라〉 등 새로운 기획 공연을 시도했다.

2015.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