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해외 한국 무용수 연속 인터뷰(3) 노르웨이 국립발레단 권세현
북유럽에서 거장 안무가들과 작업하는 기쁨




김인아
지난해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에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아 노르웨이 현지에서 <춤웹진> 인터뷰에 응해 주셨습니다. 당시 인터뷰 글에서 꿈을 향해 도전을 아끼지 않는 용기 있는 발레리나의 모습이 읽혀져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으로 옮긴 이유에 대해 여쭙고 싶네요.
권세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2년간 활동한 후에 제게 더 적합한 레퍼토리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트레이닝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클래식발레가 익숙하긴 하지만 드라마발레, 네오클래식발레를 더 좋아해요. 지리 킬리안(Jiří Kylián),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 리암 스칼렛(Liam Scarlett) 등 컨템포러리 작품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은 무용수들이 가장 경험하고 싶어하는 레퍼토리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요. 무용수로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노르웨이 국립발레단 입단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보낸 2년간의 활동은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었나요?
네. 옮겼을 당시에는 몰랐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예전보다 감정의 폭이 넓어졌고, 여러 안무가들과 수월하게 일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면서 네덜란드에서의 2년이 저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느끼곤 합니다.

두 발레단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클래식발레 레퍼토리는 비슷합니다만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은 지리 킬리안이 안무가로 계시기 때문에 해마다 무대에 올리는 모던이나 컨템포러리 발레 레퍼토리들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떠오르는 신진 안무가들과 작업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고요. 무용수로서 다양한 스타일을 접하고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는 한스 반 마넨(Hans van Manen)의 작품을 주축으로 오랫동안 함께 해온 안무가 분들과 꾸준히 작업하는 편이었어요.




북유럽 발레단으로 훌륭한 무용수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무엇보다 제가 입단했던 이유처럼 좋은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북유럽 발레단을 희망하는 무용수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무용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최고 수준의 환경과 시설을 갖추고 있는 점도 큰 장점이고요.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의 시설과 환경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알고 있어요. 좀더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저희 발레단의 재정이 비교적 탄탄해 복지 면에서 아주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어요. 대극장, 소극장, 연습실 시설도 완벽하다고 자부할 만큼 훌륭하고요. 모든 발레 연습실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복도 곳곳에 체력단련을 할 수 있는 헬스 기구가 놓여있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배치해 놓았죠. 춤추는데 필요한 토슈즈나 분장도구 같은 소품들은 제한 없이 제공받을 수 있어요.
발레 무용수들은 영국산 프리드(Freed) 토슈즈를 많이 신는데요. 저희는 기성품을 구매해 신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영국 본사 담당자분들이 오셔서 저희 발모양과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신 후에 수작업으로 제작해 신고 있어요. 그분들이 1년에 한번씩 점검도 해주시고요. 게다가 일반적인 진료를 담당해주시는 의사선생님과 침을 놔주시는 한의사 선생님, 재활 트레이너까지 무용수들의 상해를 전담해주시는 분들도 세 분 상주해 계세요. 70명에 달하는 모든 단원의 컨디션을 상세히 알고 케어해주시기 때문에 무용수들은 상해의 정도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죠. 아무래도 이런 세심한 배려가 무용수들에게 크게 와닿는 것 같아요.

 



지리 킬리안 등 일급 발레 안무가들과 리암 스칼렛 등 떠오르는 안무가들이 모두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을 위해 안무가로 초빙되었습니다. 그들이 발레단의 안무를 수락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라의 전폭적인 지지와 더불어 극장에서도 안무가를 최고 수준으로 초빙하기 때문에 좋은 안무가 분들이 저희 발레단과 함께하시는 것 같아요. 무용수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신뢰하시는 것 같고요. 발레단에 오시는 안무가 분들 모두 정도 많으시고 더 많은 걸 알려주시려고 하세요.

지리 킬리안과 함께 작업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처음 뵈었을 때 너무 평범하시고, 차분하시고 그저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인상이셔서 놀랐어요. 유명 안무가들은 보통 독특한 개성이랄까, 튀는 부분이 없잖아 있는데 우리 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작업하면서도 무용수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세요. 이 작품은 어떤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동작에 어떤 의미를 두고 안무했었는지 설명해주시곤 하세요. 킬리안의 자상한 설명이 무용수로 하여금 깊이 있는 춤을 끌어낼 수 있게 만들죠. 작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쩜 그렇게 아름다운 상상을 하실 수 있는지 놀라울 때가 많아요. 그분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요.
지난해 9월에 발레단에 입단하자마자 ‘지리 킬리안의 밤’ 공연이 있었어요. 세 개 작품이 무대에 올랐는데 저는 그 중에서 첫 번째 작품이었던 〈Bella Figura〉에 출연했어요. 두 번째는 〈Gods and Dogs〉, 마지막으로는 〈Symphony of Psalms〉의 순으로 공연되었죠. 지리 킬리안의 최신작 〈Gods and Dogs>는 NDT Ⅱ를 위해 안무한 작품으로 뮌헨에 이어 저희 발레단에서도 공연하게 되었어요. 파워풀하고 강렬한 모습 이면에 서정적인 느낌도 충만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함을 갖고 있어요. 초기작인 〈Symphony of Psalms〉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동작과 감정선으로 지금 봐도 전혀 손색없는 작품이었어요. 공연당시 관객들의 호응도 대단했고요. 역시 지리 킬리안은 대단한 안무가란 생각이 들었죠.

 




신진 안무가와의 작업 가운데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영국 출신의 리암 스칼렛과 크리스토퍼 윌든(Christopher Wheeldon)의 작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정적이고 음악적인 작품들로 클래식의 테크닉을 유지하면서도 감정 폭을 넓힐 수 있는 컨템포러리의 장점을 살린 점이 매우 좋았어요. 특히 리암 스칼렛이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전막발레 <카르멘>은 강렬하고 풍부한 감정 표현, 음악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남녀 2인무가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무용수로서 발레단에 대해 어떤 것들을 감사하게 생각하는지요?

잉그리드 로렌젠(Ingrid Lorentzen) 단장님이 제 춤을 아름답게 봐주시고, 좋은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단장님은 무용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레퍼토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세요. 유명 안무가나 신진 안무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소화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고요. 무용수들이 꿈꿔온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항상 최고의 환경에서 춤출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주시는 발레단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다음 시즌은 언제 시작되나요? 어떤 작품을 준비하시는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드라마발레로 매우 유명한 케네스 맥밀란(Kenneth MacMillan)의 <마농>으로 2015-16 시즌을 시작합니다. 9월 16일부터 10월까지 공연이라 돌아가자마자 한달 안에 준비를 마쳐야해서 빠듯한 일정이 될 것 같아요. 솔리스트로 출연하게 되는데, 테크닉 동작 뿐만 아니라 액팅도 많은 편이라 주역들과 교감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발레 작품이라 매우 기대됩니다. ‘윌리엄 포사이드의 밤’도 무대에 오릅니다. 포사이드의 〈One Flat Thing〉 〈Steptext〉 〈Back to the Future〉 세 개 작품이 예정되어 있고요. 이밖에 <지젤> <호두까기 인형> 등 클래식발레도 선보입니다.

 



무용수로서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직 부족한 면이 많지만 앞으로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에서의 경험으로 아름다운 무용수로 성장하고 싶어요. 제가 경험했던 것을 한국에 있는 후배들과 나누고 싶고 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언젠가는 유럽의 좋은 레퍼토리들을 한국에서 접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나라 발레가 유럽의 수준에 이를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에 유일한 한국인 단원으로서 클래식과 컨템포러리, 장르를 불문하고 활약하는 모습은 한국에 있는 발레 꿈나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 같네요. 언젠가 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이 내한해서 발레리나 권세현의 무대를 직접 만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2015. 09.
*춤웹진